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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57화 (95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57화>

“…….”

추이린은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높게 솟은 빌딩으로 사방이 막힌 막다른 골목.

마치 다른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포근한 기운이 감도는 골목 안에는 솜털 같은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몸에 닿는 순간 물방울처럼 톡- 터져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는 눈!

이 순간 몸 안에서 마력이 차올랐다!

마치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을 손에 쥔 것처럼!

“……!”

추이린!

마력 각성자이자 재금 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한눈에 알아봤다.

솜털도 눈도 아니다.

이 공간에 흩날리는 이 하얀 것들은 99.99999% 이상의 순도로 완벽하게 정제된 ‘마력 결정체’다!

그리고 이 마력 결정체의 원천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게이트 마력장!

휘이이이-

이 골목 안에 부는 포근한 바람에 게이트 마력장이 실려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온 게이트 마력장이 찰나의 순간에 마력 결정체로 변환되어 솜털처럼 흩날리고 있다!

마력이 유형화된 마석을 정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게이트 마력장이 순식간에 마력 결정체로 변화하고 있다.

그 어떤 마력 각성자도 불가능한 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누가! 아니, 무엇이 이런 현상을 일으켰는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추이린은 떨리는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빌딩 벽 앞에 섰다.

그리고 경이 어린 시선으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봤다.

커다란 원과 이 원을 품은 줄기.

구불구불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

골목 바닥에서 시작해 빌딩 벽 위로 그려진 커다란 빛의 나무!

누군가 돌멩이로 낙서하듯 그린 것 같은 빛의 나무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구불구불 사방으로 뻗은 나무줄기가 우수수 흔들리고.

파스스스슷-

마치 꽃잎이 바람에 날리듯 순수한 마력 결정체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톡톡, 톡톡톡-

마력 결정체가 몸에 닿는 순간 차오르는 마력!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누군가 그려놓은 이 빛의 나무가 게이트 마력장을 정제해 마력 결정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적층 마력 회로, 마력 촉매, 정제탑!

그 무엇도 없이 게이트 마력장을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어린아이 낙서 같은 그림만으로!

그 자신이 마력 각성자이자 마도 공학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 그림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득한 수준의 마도 공학 기술이 담겨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전 세계를 모조리 뒤져도 단 두 사람뿐이다!

추이린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만든 경이로운 건축물이 보였다.

빌딩 사이 조각난 하늘에 떠 있는 천공섬.

초거대 기업 재금 그룹의 본사, 전능 옥좌.

전능 옥좌의 주인, 재금 그룹의 오너!

자신과 김철수 발명가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이유는 오너의 ‘돌’을 찾기 위해서였다.

즉, 지금 재금 그룹 오너는 이런 이적을 행할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사람뿐.

하지만 그 사람이 한국에 있을 리 없었다.

이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한국으로 조용히 입국한 이사들!

그 일이 이번 일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면?

한국으로 입국한 게 이사들만이 아니었다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나이트 아머를 만들어 낸 베일에 가려진 마도 공학자!

재금 그룹과 쌍벽을 이룬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창립자!

이 그림을 그린 건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다!

* * *

“어째서!?”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추이린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뜩이고 전략실에 얻은 정보들이 조합됐다.

-은밀하게 한국에 입국한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들.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이상 현상.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화살표.

-북한산에 발생한 마력 유동 현상.

-광화문 광장에 깔린 수천의 용역 헌터들.

-난장판이 된 광장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국가 헌병대.

-재앙급 마수가 나타나 아작난 태성 빌딩.

-태성 빌딩에서 일어나고 사라진 마력 유동 현상.

그리고 지금 눈앞의 그림이 나타났다.

게이트 마력장을 정제해 마력 결정체를 만들어 내는 빛의 나무 그림이!

이 모든 것들이 우연히 일어났을 리 없었다!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 인과가 있는 것처럼.

이 모든 인과는 하나의 물건과 하나의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너의 돌!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이 순간 이성을 넘어서는 직감이 속삭였다!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재금 그룹 ‘오너의 돌’을 가지고 튀었다!’

깨달음의 순간 추이린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이 아닙니다. 다른 세력이 개입했습니다!]

태성 빌딩을 수색 중인 김철수 발명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즉시 차양 밖으로 나와 명령했다!

“이곳으로 모든 인력을 집중한다! 2중! 아니, 3중으로 은폐 마력장을 치고 보안팀과 방역팀인원을 추가 동원한다!”

* * *

태성 빌딩 32층 대련장.

김철수 발명가는 추이린의 문자를 받는 순간 전율했다.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이 아닙니다. 다른 세력이 개입했습니다!]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추이린이 ‘돌’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곳이 아닙니다.

마력 유동을 일으킨 태성 빌딩 32층까지 훑었는데도 ‘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세력이 개입했습니다!

자신도 이미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태성 빌딩에서 일어났다는 모든 일이 말이 안 됐다!

-갑자기 나타난 재앙급 마수가 태성 빌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바람에 몸을 숨긴 마수가 얼굴을 가린 사람만 골라서 공격을 했다고?

-모든 방어를 무력화시키는 공격을 퍼부었는데,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추이린의 문자를 받는 순간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퍼졌는지 감이 왔다!

다른 세력이 개입했다!

그리고 추이린이 그 꼬리를 잡았다!

김철수 발명가는 문득 고개를 들어 대련장 너머 나선 계단을 봤다.

저 나선 계단을 올라가면 이번 일의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국가 헌병대 지휘관이 있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

추이린이 잡은 꼬리를 쫓는 것!

국가 헌병대 지휘관을 만나 정보를 얻는 것!

김철수 발명가는 선택했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어차피 상대가 의도적으로 뿌린 정보!

그런 정보를 들어 봐야 판단에 혼란만 생길 뿐이다!

“돌아간다!”

* * *

태성 빌딩 옥상 구석, 무너진 2층집 잔해 뒤.

김태희 대령은 리볼버를 손안에서 돌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가짜 영약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네! 전부! 최후식 그놈이 사기를……!”

남중국 헌터 팀장이 다급히 대답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말을 자르고 툭툭 질문을 던졌다.

“광화문 광장에 용역 수천 명을 풀어 난장판을 만들고.”

“마탄과 총기로 완전무장하고, 남중국 외교관을 사칭하고.”

“태성 빌딩을 아작내고. 여기 이 2층집을 무너트린 것까지.”

“그러니까 이게 전부 다 최후식이 ‘가짜 영약’으로 사기 쳐서라고?”

하지 않은 일들까지 은근슬쩍 끼워 넣어 뒤집어씌우고 있다.

절로 분통이 터졌지만, 무장한 부하들이 잡히고 마탄이 털린 이상 발뺌할 방법은 없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남중국 헌터 팀장은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네. 맞습니다! 전부 다 최후식 그 녀석이 ‘가짜 영약’으로 사기를 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놈은 처음부터 사기 칠 계획…….”

순간 김태희 대령은 버럭 소리쳐 말을 끊었다!

“그걸 지금 나한테 믿으라고? 어디서 구라를!”

기리리리릭-

리볼버 실린더가 돌아가고 총구가 겨눠진다!

“영약이 아니라 신뢰가 문제……!”

다급히 외쳤으나 한발 늦었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공이가 움직인다!

“잠……!”

얼어붙는 순간 회전하는 실린더를 때리는 공이!

틱-

빈 구멍!

그러나 방아쇠는 멈추지 않고 연속해서 당겨졌다!

실린더 구멍은 다섯!

장전된 마탄은 한발!

틱, 틱, 틱-

1/4, 1/3, 1/2!

그리고 마지막 한 발!

1/1, 100%!

공이가 움직이는 순간 남중국 헌터 팀장은 비명 지르듯 외쳤다.

“대환단! 최후식이 가진 영약, 대환단입니다!”

‘대환단!’

김태희 대령은 돌아가는 상황을 단숨에 깨달았다!

얼마 전 재벌들이 찾는 좀 비싼 영양제인 영약이 갑자기 헌터 시장에서 씨가 말랐다.

헌터 업계를 감시하는 국가 헌병대는 당연히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튀어나온 수많은 이름.

상인, 기업, 외교관, 삼합회, 헌터, 길드…….

이 꼬리를 거슬러 올라가자 엄청난 거물이 나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 남중국을 제패한 천외천의 각성자, 천검!

천검이 대환단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남중국 군벌 수장들은 이 명령에 몸이 달았다!

남중국은 연방 성립은 기정사실!

새롭게 생겨난 엄청난 시장과 이권에 줄을 대려는 이들이 블랙홀처럼 영약을 모조리 빨아드리고 있었다!

가짜 최후식, 알바가 ‘진짜 대환단’을 가지고 있었다!

남중국 헌터 팀장, 이 녀석은 알바의 대환단을 확보하기 위해 이 난장판을 만든 거다!

‘알바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야!?’

가짜 최후식은 이제 황당함을 넘어 두려울 정도로 온갖 일에 얽혀 있었다!

게다가 그 뒤에 자리한 거대한 조직의 힘마저 느껴졌다.

김태희 대령은 문득 스마트폰을 봤다.

NTM_CHS 아이디를 사용했다는 헌터 나라 사이트는 이미 폭파된 상황!

갑자기 나타난 재금 연구소는 마력 오염을 이유로 봉쇄선을 펼치더니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태성 빌딩을 콕 찍어 조사하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스마트폰을 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국가 헌병대, 헌터 부대, 경찰, 검찰, 문화재청까지 광범위한 압력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태성 길드장 집이 아작난 게 알려졌다!’

정당한 공무 수행 중에 일어난 사고일 뿐이다.

하지만 박살 난 집의 주인이 이태성 길드장이라는 게 문제였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했다고 중국에 있는 조직을 박살 내는, 사적 제재를 가하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알려진 인간재해 그 자체!

하지만 김태희 대령은 이태성 길드장은 걱정하지 않았다.

법과 원칙 없이 눈에 거슬리는 건 모조리 박살 내는 것 같은 이태성 길드장이지만 그에겐 확고한 선이 있었다.

신의(信義)!

게다가 이태성 길드장은 검은 폭풍, 이세영 소장님을 찾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이세영 소장님의 정보를 말하면, 최악의 경우라도 몇 대 쥐어박히는 거로 끝날 거다!

진짜 문제는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전전긍긍하는, 자신에게 압력을 넣고 있는 권력자들이다.

분노한 권력자보다 위험한 게 겁먹은 권력자.

재금 연구소의 봉쇄가 풀리는 순간 이번 일에 엮인 자신과 부하 전원이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냉기 지대, 유적 발굴대!

방법은 하나다.

가짜 최후식, 알바를 잡는 거다!

알바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남중국의 절대자가 될 천검이 노리는 대환단!

북한산의 수호자 뽀미의 후손, 새끼 고양이, 냠냠이!

재앙급 마수를 단숨에 제압한 등급외 마력 각성자의 포텐을 지닌 꼬맹이!

검은 폭풍의 리볼버와 전설의 귀환까지!

이 모든 것이 알바와 엮여 있었다.

알바만 잡으면 이 모든 것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고 모든 문제가 단숨에 해결된다!

‘반드시 알바를 잡는다!’

새삼 결심하는 순간 전투 예지가 꿈틀거렸다.

남은 단서는 하나!

NTM_CHS 아이디를 사용하는 제 3자가 이동한 장소, 남중국 푸젠성!

알바는 분명 남중국 푸젠성으로 간다!

김태희 대령은 건물 잔해 너머 부하들에게 외쳤다.

“이 녀석이랑 그 부하들. 딴생각 못하게 하수구 던전 노역장에 처박아 둬라.”

“잠시만! 제 도움이…….”

다급히 외치는 남중국 헌터 팀장이 병사들에게 끌려 사라지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군복을 벗어 던지고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에 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 건틀릿과 리볼버를 차폐 처리된 배낭에 넣고 언더커버용 반지를 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액화 정제 마석을 쭉쭉 빨아먹는 언더커버용 반지의 기능은 단 하나, 각성력 억제!

순식간에 위압감과 기세가 사라지고 20대 초반 풋풋한 학생 모습을 한 김태희 대령이 폐허에서 나왔다.

김태희 대령은 부하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난 지금부터 휴가다. 조사, 감찰, 징계. 뭐가 됐든 내가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정식으로 시작될 거다. 말을 아껴라.”

몇 년이나 모신 연대장.

국가 헌병대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은 김태희 대령의 생각을 바로 알아챘다.

‘휴가로 시간을 벌고, 무언가 하시려는 생각이다!’

국가 헌병대 군인들은 일제히 발을 구르고 경례를 했다.

김태희 대령은 고개를 까닥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태성 빌딩 옥상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학생증을 내밀고 마력 스캐너를 통과해 재금 연구소 봉쇄선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남중국 푸젠성!

하지만 알바는 보통 녀석이 아니다.

그 녀석을 잡으려면 준비가,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철저한 준비를 갖출 곳이 바로 앞에 있었다.

최초의 이세계 거점도시, 신서울로 이어지는 광화문 게이트 지역!

“진정한 템빨을 보여 주마!”

김태희 대령은 광화문 게이트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산 정상에서 굴린 눈덩이가 어디로 굴러 갈지 예측할 수 없듯.

천문석이 일으킨 사건·사고는 생각지도 못한 연쇄 반응을 만들어 냈다.

장철 헌터, 이태성 길드장.

장민 대표, 암살검 한경석, 최후식 이사.

남중국 헌터 팀장.

진교은, 다단계 바람잡이.

추이린 수석 연구원, 김철수 발명가.

국가 헌병대 김태희 대령.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문석, 특급 헌터, 류세연은 옥탑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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