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52화>
-……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깊은 침묵.
그러나 곧 미친 듯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하- 그렇지! 태성 선배도 자기 성채 빌딩이 아작난 건 알아야지!
최후식 이사는 단숨에 천문석의 의도를 눈치챘다.
태풍이 몰아치면 자잘한 흔적은 사라지는 법!
인간재해 이태성 길드장의 분노 앞에서 남아날 흔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좀 약하지 않냐? 이게 압수수색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명분이 좀 약한데. 내가 슬쩍 양념을 좀 칠까……?
은근한 어조로 말하는 최후식 이사.
하지만 양념을 칠 필요도 없이 사실만 말해도 충분했다.
언제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법!
최후식 이사가 윙슈트를 입고 튀고 난 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천문석은 담담하게 일어난 일을 말했다.
“아뇨. 그냥 사실만 말해도 충분합니다. 이사님 떠나고 나서 헬기가 추락해 옥상에 있던 집이 무너졌거든요.”
-……
짧은 침묵 뒤에 이어진 목소리에는 불신이 담겨 있었다.
-헬기가 추락해 옥상에 있던 집이 무너졌다고? 잠깐 그 말 설마……!?
천문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태성 길드장님 자택, 2층집 헌터 부대 전술 헬기하고 충돌해서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길고 깊은 침묵에서 너무나 생생한 감각이 전해졌다.
설마, 의혹, 불신, 놀람, 경악!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이 뒤엉킨 외침이 터져 나왔다.
-태성 선배! 인간재해 이태성 집이 주저앉았다고!? 우리가 윙슈트 꺼낸 그 집!
-정제 마석, 마도구, 아이템! 20년 동안 이태성 길드장이 모은 재산이 쌓여 있는 그 집이!
-그러니까 벽이 뚫리고 그런 게 아니라! 통째로 폭삭 주저앉았다고!?
……
최후식 이사의 경악 어린 외침을 듣는 순간 새삼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 수 있었다.
타격대, 특임대, 용역, 헌터!
재앙급 마수, 우레 폭풍 니케!
갑자기 튀어나온 특급 헌터와 냠냠이!
……
임팩트 있는 사건이 연속해서 터져서 미쳐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모든 걸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이 가장 임팩트가 컸다!
한국 길드 랭킹 부동의 1위, 태성 길드 길드장!
등급외 오러 각성자이자, 탱커 랭킹 1위!
게이트 전쟁, 서울 수복 작전의 영웅!
조 단위로 계산해야 하는 재산!
20년 동안 중고거래 사기꾼에서 갑질하는 재벌 3세와 국회의원까지 눈에 거슬리는 것은 모조리 박살 낸 인간재해!
한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세계 곳곳에 뻗어 있는 인맥!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한 사람.
이태성.
그 이태성 길드장의 집이 폭삭 무너진 거다!
이 일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남중국 헌터 팀장.
미친 치와와, 김태희 대령.
두 사람은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었다.
인간재해 이태성 길드장의 분노가 쏟아질 테니까!
‘이게 애들 싸움에 형을 부르는 기분인가!?’
전생 천마 시절, 불려 온 형 역할 만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통쾌함에 웃음을 터트렸다.
카캬카카카카-
-야! 어떻게 된 거야!? 진짜 태성 선배 집이 무너진 거야!? 그것도 국가 헌병대 전술 헬기에 충돌해서 무너졌다고!? 자세히 좀!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봐!
다급하게 외치는 최후식 이사.
자신이 남중국으로 떠나면 최후식 이사가 뒤처리를 해야 한다.
제대로 대응하려면 일어난 사건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잠시만요. 정리 좀 해서 말씀드릴게요!”
천문석은 이번 난장판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손으로 꼽으며 빠르게 할 말을 골랐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NTM_CHS 아이디로 헌터 나라에 올린 ‘대환단’이었다!
그리고 오늘 한경석 공방에서 골드바의 진실을 알게 되고 재금 빌딩에서 나오면서 난장판이 시작됐다.
순간 스치듯 머리를 지나가는 장면들!
-대환단을 올린 NTM_CHS를 찾아 광화문에 쫙 깔린 수천의 용역 헌터와 바람잡이.
-헌터 나라 앱 때문에 난장판이 된 광화문 광장.
-바람잡이를 통해 찾은 용역 헌터의 배후.
-대환단을 찾아 남중국에서 온 팀장과 헌터들.
-남중국 헌터 팀장 납치와 의도치 않게 알려진 ‘최후식’이란 이름.
-국가 헌병대 출동과 봉쇄된 광화문 광장.
-유일한 탈출로 태성 빌딩 도주.
-김태희 대령과의 격전과 짝퉁 검은 폭풍의 리볼버.
-대련장에서 터트린 굉천수.
-윙슈트로 도망치려는 순간 나타난 전술 헬기.
-생각지도 않게 옥상에 나타난 재앙급 마수, 니케.
-조종사가 니케에게 물려 추락한 헌터 부대 전술 헬기.
-추락한 전술 헬기와 충돌해 폭삭 주저앉은 이태성 길드장의 집.
-우레 폭풍 마수로 진화해 분노를 쏟아 낸 니케.
-냠냠이를 타고 나타나 니케를 제압하고 이 난장판을 끝낸 특급 헌터.
그리고 윙슈트로 특급 헌터와 도망치며 마침내 이 모든 사건이 끝났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
손을 꼽다 보니 양손이 모자랄 정도로 줄줄이 튀어나오는 사건들!
하루, 아니 한나절 동안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환청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콸, 콸칼뢐롸콸-
분노한 이태성 길드장에게 아작이 나고도 끝까지 따라오며 짓는 미친 치와와 울음소리!
순간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김태희 대령,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라면 당연히 그럴 거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태성 길드장에게 당한 김태희 대령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찾을 때.
자신은 한국이 아닌 남중국 푸젠성에 있을 테니까!
카캬카카캌-
-야, 자세히 좀 말해 달라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천문석은 잽싸게 웃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일은 헌터 나라에 올린 대환단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천문석이 긴 설명을 시작할 때.
특급 헌터는 8점짜리 새하얀 돌멩이로 열심히 바닥과 벽에 그림을 그렸다.
* * *
-지금 태성 선배뿐만 아니라 레이드 팀 전체가 연락이 안 된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다. 지원팀 쪽으로 연락 돌리는 중이니까 곧 연결될 거야. 네가 말한 다른 것들 바로 준비해서, 너희 사무실 직원 통해서 연락할 게.
긴 설명이 끝나고 돌아온 최후식 이사의 대답.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천문석은 전화를 끊고 씩 웃었다.
남중국 헌터 팀장과 김태희 대령은 이걸로 해결됐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다!
천문석 고개 돌려 외쳤다.
“다 끝났다. 특급 헌터 이제 집에 가자.”
“앗! 알바 나도 끝났어! 얼른 이리로 와!”
벌떡 일어나 외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가 일어난 바닥에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골목길을 넘어 빌딩 벽까지 타고 올라가는 그림.
페루 나스카 대평원의 그림을 축소한 듯한 낙서가!
“어느새 이걸 다 그렸냐!? 아니, 그보다 이 낙서는 뭐야!?”
특급 헌터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내가 꿈에서 본 그림이야! 알바 다람쥐옷 배터리 다 떨어졌잖아? 휘잉휘잉이 그러는데 이 그림 그리고 중간에 놓으면 다시 배터리 충전된 데! 알바 얼른 여기다 놔! 우리 꼭 날아서 가야 해! 앙꼬 대장한테 자랑할 기회야! 날아서 지나가면서 손 흔들면 엄청완전 부러워 할 거야!”
카캬카카컄-
의심 한 점 없는 얼굴로 신나게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이 그림에 놓으면 윙슈트 마력이 충전된다고?’
천문석은 특급 헌터가 그린 낙서를 봤다.
중앙에 자리한 찌그러진 원.
바닥을 넘어 벽을 타고 오르는 쭉 뻗은 기둥.
그리고 이 기둥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구불구불한 선들.
“말미잘?”
질문하는 순간 웃음이 뚝 끊기고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아니지! 알바 자세히 보란 말야! 이거 나무잖아! 나무!”
“이게 나무라고?”
“당연하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나무를 닮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운데 찌그러진 원은 뭐란 말인가!?
“야, 이게 어떻게 나무야? 하나도 안 닮았잖아!”
“잘 봐! 내가 잘 설명해 줄게!”
특급 헌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찌그러진 원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이건 엄청 환한 촛불이야! 이 촛불로 나무가 자랐어!”
“그리고 여기 쭉쭉 뻗은 건 나무줄기야! 완전 높이 하늘을 뚫고 자랐어!”
“요기 구불구불 사방으로 이어진 건 완전 멋진 나뭇가지야! 이 위에서는 재밌는 일들이 엄청 많이 생겨!”
특급 헌터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제 알겠지?’라는 얼굴로 바라보는 순간.
대답하는 듯한 바람 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휘잉, 휘잉-!
냐암, 냐아암-!
‘어째서일까?’
문득 고개를 돌려 바람과 냠냠이를 보는 순간 바람 소리, 동물 울음소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맞습니다! 대두목!’
‘대두목! 완전 나무랑 똑같아요!’
“역시! 휘잉휘잉이랑 냠냠이는 알아볼 줄 알았어! 이건 어떻게 봐도 나무라니까! 알바도 이제 알겠지!?”
“…….”
천문석은 그림 한쪽을 가리켰다.
“이것도 나뭇가지냐?”
천문석이 가리킨 곳에는 말미잘 촉수처럼 구불구불 뻗어 나가는 선이 원을 그리며 뒤엉켜 있었다.
“앗! 당연히 이것도 나뭇가지야. 시간이 없어서 이건 적당히 그렸어. 이 나뭇가지는 잘못됐거든.”
“잘못됐다고?”
“어. 원래라면 여기에 와서 이렇게 뻗어 나가야 했거든!”
특급 헌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하얀 돌멩이를 들어 선이 뒤엉킨 곳 한 뼘 앞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쭉- 다른 선과 만나지 않는 선을 그었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요기에다가 긋는 거였는데…….”
하얀 돌멩이는 한 뼘 뒤, 선이 뒤엉켜 원을 그린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잘 못 온 거야. 그런데 여기는 오면 안 되는 곳이거든. 그래서 나뭇가지가 이렇게 된 거야!”
특급 헌터는 언제 나와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더니.
이얍, 이야얍-!
입으로 효과음을 내며 정신없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륵그륵, 그르르륵-
하얀 돌멩이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원을 그려냈고, 뒤엉킨 원은 다른 선을 뚫고 점점 커졌다!
“…….”
천문석은 멍하니 점점 커지는 원을 보다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니, 뭘 또 진지하게 보고 있는 거야!?’
특급 헌터가 언제나처럼 맥락 없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아무리 저지선을 넘었어도 이곳은 광화문이 지척인 장소!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
“야, 그만!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어, 아직 모자란 데? 잠깐만 기다리면 내가 본 거랑 똑같이 그릴 수 있는데!”
“아냐. 괜찮아. 이것만으로도 똑같아!”
“아닌데…… 부러지기 직전까지 그려야 하는데…….”
천문석은 스마트폰으로 버스 정류장을 검색하며 건성으로 물었다.
“부러진다고? 부러지면 어떻게 되는데?”
특급 헌터는 웃음기 하나 없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지퍼백에 담긴 1/3쯤 남은 녹은 사탕.
“앙꼬가 먹던 사탕?”
“맞아! 부러지면 이 사탕! 알바가 준 내 보물이 없어져! 완전 엄청 큰일이야!”
“어, 그래. 엄청 큰일이네.”
피식 웃으며 대답할 때 특급 헌터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른 것도 전부 없어져.”
“다른 거 뭐?”
“어, 전부다! 특급 쌩쌩이, 한우, 삼겹살, 퐁퐁검, 친구들, 앙꼬, 삼촌, 세연, 엄마…….”
특급 헌터의 외침이 길게 이어질 때 뇌리를 스치는 기이한 감각!
천문석은 문득 시선을 내려 특급 헌터를 봤다.
특급 헌터는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손을 하나하나 꼽으며 이름을 말하더니 손가락을 모두 채우는 순간 주먹 쥔 손을 내밀며 외쳤다.
“봤지? 전부 다 없어져!”
‘뭐지? 방금 뭔가 이상했는데?’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한 게 전부 다 사라진다고? 그럼 엄청 큰일 나는 거 아냐?”
“맞아!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특급 헌터는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
“…….”
‘뭐지, 이 뜬금없고 맥락 없는 대답은?’
“야, 그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는 부러지는 걸 막을 방법을 말해야지! 맥락이 없잖아! 맥락이!”
“막을 방법?”
특급 헌터의 의아한 시선이 옷깃과 허공을 스쳤다.
냐암, 냐아암-?
휘잉, 휘이잉-?
냠냠이와 휘잉휘잉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잘?”
“하, 하하- 와, 이 황당한 꼬맹이 녀석!”
역시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꼬맹이!
특급 헌터와의 대화는 언제나처럼 허탈하고 어이없는 헛웃음으로 끝났다.
“됐고. 이제 가자. 좀 있으면 집에 가는 버스 온다.”
“뭐!? 알바! 내가 잘 설명했잖아! 우리는 다람쥐옷 입고 날아가야 한다니까!”
특급 헌터가 다시 한번 주장하는 순간.
부아아아앙-
골목 입구에서 거친 엔진음이 들려왔다!
끼이이이익-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급정거하는 장갑 SUV가 보였다.
‘헌터? 헌터 부대? 국가 헌병대!?’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특급 헌터를 옆구리에 끼웠다.
“바로 빠져나간다!”
“앗! 아앗! 충전! 다람쥐옷 충전! 냠냠이랑 휘잉휘잉이 도와줄 거야! 우리 충전해서 날아가야 해!”
절대 안 될 말!
여기서 싸웠다가 꼬리가 붙으며 그 개고생을 하며 탈출한 의미가 없다!
“기각!”
단호히 외친 천문석은 몸을 돌리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쿠우우웅-
바닥을 짓밟고 폭발적으로 가속하려는 순간 장갑 SUV에서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들려왔다.
“오빠! 특급 헌터! 여기야! 빨리 타!”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
“……!”
“으앗!”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동시에.
특급 헌터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알바! 세연이야! 우리 도망 안 가도 돼! 다람쥐옷 충전해서 날아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