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38화>

‘지금 저게 뭐하는 거야?’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나선 계단을 올라온 헌터는 멍하니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봤다.

으아아악-

끄아아억-

괴성을 지르며 보안문에 찰싹 달라붙어 각성력을 쏟아 내는 헌터들.

“거의 다 됐다! 자유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각성력으로 마력장을 태우는 거다!”

악을 쓰며 헌터들을 독려하는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각성력으로 보안 마력회로를 방전시키고 있다!

‘도대체 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국가 헌병대면 보안 마력회로 바이패스, ‘마스터키’가 있잖아!?’

언제 재앙급 마수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망치로 문을 때려 부수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

‘마스터키와 보안 마력회로 연결하면 간단히 무력화되는데 이게 무슨 삽질…….’

순간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

‘마스터키를 설치할 마력 각성자가 없구나!’

당연했다!

깃발 꽂는 걸 구경하러 난장판에 휩쓸린 얼빠진 마력 각성자가 자신 말고 또 있을 리 없었다!

‘잽싸게 문을 열고 튄다!’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순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이야아아아악-

보안문 끝에 달라붙어 악을 쓰며 쌩 각성력을 밀어 넣는 헌터!

협회에서 스치듯이 봤던 마력 각성자다!

‘아니, 쟤 지금 저기서 뭐 하는 거야!?’

반사적으로 부르려는 순간 들려온 외침.

“힘을 내라! 이 문만 열면 태성 빌딩 옥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태성 빌딩 옥상!’

순간 전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흘렀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태성 빌딩!

눈앞의 보안문 너머에는 태성 빌딩 옥상이 있다!

그리고 그 옥상에는 태성 길드 길드장! 인간재해 이태성의 집이 있다!

“……!”

눈앞의 마력 각성자가 말없이 쌩 각성력을 쏟아붓는 이유를 깨달았다.

‘국가 헌병대에 협력해서 이태성 길드장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준다고!?’

상상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돌았다!

이태성 길드장의 눈과 귀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뻗어 있다!

재앙급 마수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도 인간재해 이태성 길드장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다!

‘절대 튀지 말아야 한다!’

재빨리 뒤로 물러서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

킥, 킼키킼킼-!

“앗! 저기라고!?”

스르륵-

단단히 잡은 손에 걸린 무게감이 사라지고.

타다닥-

어느새 손에서 빠져나온 꼬맹이가 보안문을 향해 달렸다.

“잠…….”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 동시에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알바! 내가 구하러 왔어!”

보안문을 향해 달리는 특급 헌터.

“아이 목소리……?”

무심코 몸을 돌리는 김태희 대령.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 *

아이!

김태희 대령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을 움직였다.

쿵-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뻗는 손!

‘잡았다!’

꼬맹이가 입은 옷깃이 손끝에 걸리는 순간 위협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킥, 킼키킼킼-!

새끼 다람쥐가 번개같이 튀어나와 손을 물려고 한다.

“앗! 안 돼! 니케 멈춰!”

꼬맹이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돌처럼 굳어 버리는 새끼 다람쥐!

김태희 대령은 이 틈에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회전 낙법으로 바닥을 굴러 일어났다.

“야, 너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아앗! 왜 잡아! 나 알바 구하러 가야 해!”

김태희 대령은 단단히 잡은 아이를 정신없이 살폈다.

평범한 재킷에 모자.

벨트에 걸린 장난감과 나뭇가지.

모자 위에 앉은 작은 하늘다람쥐까지.

집 앞에 놀러 나온듯한 옷차림의 7살 남짓한 아이는 멀쩡했다.

하아-

안도하기도 잠시 정신이 아찔해졌다.

재앙급 마수가 돌아다니는 성채 빌딩 최고층에 나타난 어린아이!

도망치는 헌터들에게 밟히기라도 했다면!?

재앙급 마수와 우연히라도 마주쳤다면!?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분노가 치솟았다.

“야, 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하얗게 질린 국가 헌병대 장교와 병사들이 보였다.

“지금 이 안에 재앙급 마수 돌아다니는 거 몰라!? 그런데 아이가 여기까지 올라와!? 지금 제정신이야!? 민간인 소개 어떻게 하는 거야!?”

국가 헌병대도 군인.

군인의 제1 목표는 국민의 보호!

어린 아이가 무방비 상태로 위험한 성채 빌딩을 가로지른 건 변명할 여지 없는 작전 실패다!

국가 헌병대 장교와 병사들은 참담함에 고개 숙였다.

이때 고개 숙이는 소령의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잠깐 아이라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연대장의 손에 잡힌 아이를 보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 단어!

뽀미 후손!

봉쇄된 성채 빌딩 그것도 32층까지 아이 혼자 힘으로 올라왔을 리 없었다!

로비에서 뽀미 후손을 타고 사라진 아이 거나 중간에 뽀미 후손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다!

소령은 재빨리 김태희 대령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 아이 ‘뽀미 후손’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뽀미 후손!

김태희 대령은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부하의 생각을 바로 알아챘다.

“뽀미 후손. 아니, 고양이! 너 혹시 로비에서 고양이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온 거니? 혹시 고양이가 도와준 거야!? 혹시 아이랑 고양이 못 봤어!?”

김태희 대령이 아이를 내려놓고 묻는 순간

국가 헌병대와 줄을 선 헌터들의 깜짝 놀란 시선이 아이에게 모였다.

“고양이? 앗!”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는 입에서 튀어나온 생각 하지도 못한 대답!

“냠냠이! 완전 멋진 고양이인데! 마수한테 공격받아서 자고 있는데?”

마수 한데 공격받아서 자고 있는 고양이 냠냠이!

“……!”

김태희 대령의 머릿속에서 팟- 스파크가 튀고 아이의 말이 재구성된다.

-마수 : 정체불명의 재앙급 마수!

-냠냠이 : 뽀미의 후손, 고양이!

-자고 있는 :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무시무시한 재앙급 마수의 기습 공격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격전을 벌인 냠냠이!

결과는 양패구상!

뽀미의 후손 냠냠이는 상처를 입고 기절했다!

“뽀미 후손! 냠냠이 지금 어디 있니!?”

“냠냠이 같이 왔는데. 잠깐만. 냠냠이 보여 줄게!”

‘뽀미의 후손이 지금 여기에 있다고!?’

깜짝 놀라 바라보는 순간 입고 있는 상의 속으로 손을 넣어 꼬물꼬물- 움직이는 아이.

옷 속에서 움직이던 손이 나왔을 때 그 손에는 쿨쿨- 잠든 새하얀 새끼 고양이가 놓여 있었다.

“……!”

“……!”

“……!”

김태희 대령, 국가 헌병대, 용역, 헌터!

모두는 아이 손 위에 잠든 새끼 고양이를 홀린 듯이 바라봤다.

터질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

국민대, 북한산, 서울의 수호자!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도 서울을 지키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구한 뽀미!

뽀미의 후손이 나타났다!

* * *

“뽀미 후손!?”

“저 새끼 고양이가 뽀미 후손이라고!?”

“뽀미 후손에 보상금 걸려 있지 않았냐!?”

“맞아! 뽀국추에서 엄청난 보상금을 걸어 놨어!”

“보상금이 문제가 아니지! 뽀미 재단 앞으로 모인 돈이 수천억이 넘어!”

“잠깐 그럼 저 꼬맹이가 그 보상금에 재단의 돈까지……?”

……

어느새 바짝 다가온 헌터들에게서 경외와 호기심, 시기와 욕망이 뒤엉킨 시선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김태희 대령은 건틀릿으로 벽을 내려쳤다.

바짝 다가온 헌터들이 굉음에 흠칫 놀라 물러서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손을 내밀며 다급히 외쳤다.

“마력 스캐너!”

김태희 대령은 마력 스캐너를 들고 조심조심 잠든 새끼 고양이에게 접근했다.

“잠깐만 그대로 있어.”

마력 스캐너로 각성력은 검출할 수 없지만, 각성 동물의 반발장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릎 반사나 마찬가지!

각성력이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반발장이 일어난다!

김태희 대령은 한 손으로 각성력을 일으켜 새끼 고양이 위를 훑고 그 뒤를 따라 마력 스캐너를 움직였다.

아이의 작은 손 위에 잠든 새끼 고양이.

츠츠츠츠츠-

그 위로 움직이는 각성력이 담긴 손과 마력 스캐너!

이 자리의 모두는 각성자!

김태희 대령이 무엇을 하는지 바로 알아채고 숨죽여 이 모습을 바라봤다.

“……!”

“……!”

“……!”

그러나 마력 스캐너가 새끼 고양이 위를 전부 훑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간이 마력 스캐너 정확도가 높지 않아!”

누군가 외치는 순간 각성력을 일으킨 손과 마력 스캐너가 다시 한 번 새끼 고양이 위를 훑었다.

츠츠츠츠츠츠-

한 번, 두 번, 세 번……!

마력 스캐너가 새끼 고양이 위를 일곱 번 훑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 마력 스캐너 고장 난 거…….”

삐이이이이-

건틀릿에 접촉하는 순간 울리는 경보음!

마력 스캐너는 정상.

새끼 고양이에게서는 반발장이 검출되지 않았다.

즉, 이 새끼 고양이는 뽀미의 후손이 아니었다!

“하아아-.”

“그러면 그렇지…….”

“뽀미 후손이 인간 아이 품에서 잠들어? 처음부터 말도 안 됐어!”

……

땅이 꺼질듯한 한숨 소리와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교차할 때 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했지? 그럼 난 이만 갈게. 옥상에서 알바 기다리고 있거든!”

“……?”

문득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어느새 텅 빈 보안문에 바짝 다가가 한껏 발돋움하고 문고리에 손을 뻗는 아이!

“그 문고리 잡으면 안 돼!”

경악한 김태희 대령이 외침과 동시에 몸을 날리는 순간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문고리를 잡은 작은 손이 움직이는 순간.

스르륵-

문고리는 아무 저항 없이 돌아가고.

철컥-

여전히 푸른 마력장을 뿜어내는 보안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깜짝 놀란 외침.

“앗! 이 문 열면 안 되는 거였어!?”

쿵-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열었던 보안문을 다시 닫았다.

* * *

갑자기 나타난 꼬맹이가 작동중인 보안문을 열었다!

“……?”

“……?”

“……?”

아득한 침묵 속에서 의문과 경악이 담긴 시선이 쏟아질 때.

김태희 대령의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순간 자신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보안 마력회로가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상급 마력 각성자!?’

아니다! 1세대 헌터 하얀 번개 추이린조차 이렇게 빠르게 보안 마력회로를 우회하는 건 불가능하다!

순간 전율과 함께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

‘등급외 마력 각성자!’

지금껏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등급외 ‘마력’ 각성자다!

다른 계통에서는 등급외 판정을 받은 각성자가 존재한다.

등급외 초능력 각성자, 뽀미!

등급외 전투 예지 각성자, 검은 폭풍!

……

하지만 마력에서 등급외 판정을 받은 각성자는 아직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등급 외 마력 각성자로 짐작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게이트 전쟁의 전환점, 인류의 승리, 세계 패권을 상징하는 발명품.

마탄과 게이트 안정화 장치.

전술 등급 마도구 나이트 아머.

재금 그룹의 오너.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초거대기업을 세운 두 오너!

이름조차 베일에 가려진 두 오너가 등급외 마력 각성자로 짐작되는 두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에 지금 한 사람이 더해졌다.

보안문 문고리를 잡은 채로 고개를 갸웃하는 꼬맹이!

각성은 그 시가가 어릴수록 포텐이 커지지만, 미성년자 각성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이 아이는 7살 남짓!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나이다!

그 포텐이 어떨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마력 각성자가 나타난 것이다.

김태희 대령은 격동으로 전신이 떨려 왔다!

재앙급 마수와 뽀미의 후손이 나타난 이곳에 등급 외 마력 각성자 아이가 나타났다!

이 순간 모든 우선순위가 재조정됐다.

등급외 마력 각성자의 포텐을 지닌 아이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게 최우선 목표다!

이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왜 대답이 없지? 그냥 가자고?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모두 안녕안녕!”

아이는 손을 흔들고 다시 문고리를 돌리려 했다!

“잠깐! 멈춰!”

김태희 대령은 한달음에 뛰어가 문을 막고 외쳤다.

“너 마력 각성자 맞지!? 언제? 혹시 이 빌딩 안에 들어와서 각성한 거야!?”

김태희 대령의 외침에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뭐!? 나 마력 각성했어! 진짜로? 이제 나 특특급 헌터 된 거야!? 그럴 줄 알았어! 계단 올라오는데! 막 힘이 솟아났거든! 니케! 냠냠이! 휘잉휘잉! 나 마력 각성했데! 카캬캌-.”

“잠깐만! 팔 좀 확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팔을 내밀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특급 헌터.

“누나! 빨리! 빨리 확인해 줘!”

김태희 대령은 조심스레 팔을 잡고 더욱 조심조심 각성력을 끌어올려 팔 안으로 밀어 넣었다.

“……!”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없다! 한점의 각성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다시 문을 열어 볼래!?”

스르륵, 철컥-

아무렇지도 않게 보안문을 여는 아이!

보안 마력회로가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그런데 각성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뭐지, 이게 대체 뭐지!?’

“누나! 나 각성 맞지? 마력 각성이면 막 손에서 파직 전기 나가는 거 맞지!? 니케! 나 특특급 헌터 됐어! 카캬카카캌-.”

특급 헌터가 환호성을 터트리고.

김태희 대령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설마?”

보안문에 각성력을 쏟아붓던 헌터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스르륵, 철컥-

아무렇지도 않게 열리는 문!

“……!”

경악한 김태희 대령은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고 직접 돌렸다.

스르륵, 철컥, 쿵-

스르륵, 철컥, 쿵-

……

부드럽게 열리고 닫히는 보안문!

“……!”

“……!”

“……!”

김태희 대령, 국가 헌병대, 각성력을 쏟아붓던 헌터, 길게 줄을 선 헌터들!

모두는 냉기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얼어붙었다!

“설마, 설마. 설마……!?”

김태희 대령은 번개같이 고개를 돌려 꼬맹이에게 확인했다.

“너, 이 보안문! 이 잠긴 보안문 네가 열어 놓은 거지? 그렇지!?”

특급 헌터는 김태희 대령과 문을 번갈아 보더니 대답했다.

“이 문 원래 안 잠겨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