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36화 (93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36화>

“가자!”

쿠쿠쿠쿠쿠쿵-

김태희 대령과 완전무장한 국가 헌병대는 단숨에 나선 계단을 뛰어올랐다.

예상대로 최후식과 동료는 이미 사라진 후.

나선 계단 끝에는 푸른 마력광을 뿜어내는 굳게 닫힌 강화 철문만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겪었던 상황.

국가 헌병대 전원은 바로 알아챘다.

보안 마력 회로가 새겨진 보안문이다!

“정제 마석을 마력원으로 사용하는 보안문입니다. ‘마스터 키’로 보안 마력 회로를 해제하려면 마력 각성자가 필요합니다!”

“하, 시바! 마력 각성자.”

김태희 대령은 절로 분통이 터졌다.

유력인사의 패닉룸, 비밀 금고, 비밀 도주로!

수없이 봤기에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봤다!

물리 충격 감쇄, 각성력 교란, 마력 저항이 중첩해서 걸려 있다.

1등급 이상의 보안문이다!

최선은 마력 각성자가 마력 회로에 바이패스를 만들어 우회해서 여는 것!

바이패스를 만들 재금 그룹의 우회 마력 회로 마도구, 일명 ‘마스터 키’는 충분하다!

문제는 이 ‘마스터 키’를 발동시켜 마력 회로에 붙인 마력 각성자가 국가 헌병대에 없다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영관급 장교의 임금과 수당, 인센티브를 모두 합한 연봉이 최하급 마력 각성자의 월급도 안 되기 때문이다!

던전 노역장에서 엄청난 양의 마석과 부산물을 생산하는 국가 헌병대가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아이러니!

‘시바, 시바시바! 예산 좀 달라니까! 이번에도 보안문에 막히잖아!’

마력 각성자만 있으면 ‘마스터 키’로 바이패스를 만들고 간단히 열 수 있는 보안문에서 또다시 막히게 됐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차선은 마력 회로에 마력을 공급하는 정제 마석이 방전될 때까지 문에다가 마탄을 쏟아붓는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스마트폰이 꺼지듯이, 정제 마석이 방전되면 마력 회로는 꺼진다!

그렇게 되면 남는 건 그냥 단단한 강화 철문뿐!

그러면 방금 강화 철문을 열 때처럼 헌터들을 동원해 문을 때려 부수고 열면 된다!

급할 건 없다!

최후식과 그 동료는 독 안에 든 쥐, 아니 호랑이다!

재앙급 마수와의 전투.

뽀미의 후손과 아이 찾기.

궁지에 몰린 호랑이를 ‘자원입대’ 시키기.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각성력을 유지해야 한다!

‘좋아! 이 방법으로 간다!’

우선 보안문에 어떤 정제 마석을 사용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물러서라!”

김태희 대령은 명령하는 즉시 마력광이 맺힌 보안문 위로 건틀릿 낀 손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부드럽게 마력광을 파고드는 건틀릿.

건틀릿에 서서히 각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건틀릿에 각성력이 맺혀 마력광과 충돌하는 순간.

파직, 파지지직-

엄청난 마력 불꽃이 쏟아져 내렸다!

다급히 몸을 날려 건틀릿을 빼내는 김태희 대령.

쏴아아아아-

반사적으로 꺼낸 소화기가 건틀릿에 쏟아져 마력 불꽃을 꺼트렸다.

견적을 낼 필요도 없다!

각성력과 마력광이 충돌하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이태성! 이 또라이 새끼!”

절로 터져 나온 욕설!

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태성 이 미친놈이 소모품인 보안문 배터리로 ‘최상급 정제 마석’을 박아놨다!

최상급 정제 마석!

더럽게 비싼 최상급 정제 마석을 보안문 소모품으로 사용한다고!?

‘시바, 시바! 누구는 예산이 없어서 마력 각성자 한 명 영입을 못하는데!’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마력의 순도와 응집도, 반응도를 볼 때 이건 그냥 최상급 정제 마석이 아니라 ‘액화’ 정제 마석이다!

마석 ‘액화’ 기술은 재금 그룹의 특허 기술이다.

더럽게 비싼 라이선스 비용과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마력 촉매가 있어야 가능한 특허 기술!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

학교, 병원, 대피소 같은 1급 보안 구역과 나이트 아머의 연료로 사용하는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을 보안문에 박아 넣었다!

유통 물량 자체가 제로에 가까운 전략 물자를 자기 집 입구에다가 박아 놓은 거다!

이건 돈이 많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어떻게 구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파팟 답이 머리에 떠올랐다!

20년의 세월 동안 길드 랭킹 부동의 1위, 태성 길드에는 마력 각성자들이 득실거린다!

게다가 이태성 길드장은 검은 폭풍과 깊은 친분이 있는 1세대 헌터!

검은 폭풍과 마찬가지로 마수, 몬스터와 싸우며 얻은 마석과 부산물을 마탄 개발 전 작은 공업사였던 재금 공업에 공급했다!

이 커넥션은 재금 공업이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으로 성장한 뒤에도 이어졌다!

재금 그룹이 헌터, 사람, 기업, 국가를 차별한다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가지 결론이 나온다!

국가에 공급하는 마탄, 안정화 장치 운용비용은 단 한 푼도 깎아주지 않는 재금 그룹!

재금 그룹 그 더럽게 치사한 새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을 매겨 놓은 ‘액화 정제 마석’ 라이선스와 마력 촉매를 태성 길드에 헐값으로, 아니 공짜로 넘긴 거다!

그리고 태성 길드 소속 마력 각성자는 그 라이선스와 마력 촉매로 직접 마석을 정제해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을 만든 거다!

전투 예지가 속삭인다.

이게 바로 진실이라고!

“하, 시바! 더러운 1세대 헌터 인맥! 나도 더 빨리 각성했어야 했는데! 시바! 인맥을 쌓았어야 했는데!”

진실을 깨닫는 순간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

분노가 치솟는 동시에 절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의 마력을 모두 깎아내 방전시키는 건. 지금 가진 마탄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부족하다!

“대령님! 이 보안문!? 설마!?”

김태희 대령의 외침과 반응에서 상황을 눈치챈 부하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사기 유지는 지휘관의 필수자질!

번개같이 머리를 굴린 김태희 대령은 재빨리 표정을 고치고 의연하게 말했다.

“좋은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 * *

“네?”

“지금 그게 무슨?”

“이거 1급 보안문인데 좋은 소식이요?”

“나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 있다고요!?”

예상대로 어이없어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렇다! 좋은 소식과 좋은 소식이다!”

김태희 대령은 한 번 더 강조하고 보안 문을 가리켰다.

“모두 짐작하겠지만, 이 보안문에는 최상급 정제 마석이 배터리로 박혀 있다!”

“최상급 정제 마석!”

“어떤 미친놈이 보안문에다가 그걸 박아 넣……!”

아-!

같은 탄성이 터지는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인간재해 이태성 길드장!

부하들의 경악한 시선이 쏟아질 때.

김태희 대령은 재빨리 입을 털었다.

“바로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

“모두 알겠지만, 최상급 정제 마석을 박아 넣은 이 보안문은 어지간해선 안 뚫린다!”

“그건 이 성채 빌딩 안에 숨어 들어온 재앙급 마수가 완전히 갇혔다는 뜻이다!”

“즉, 수도 서울의 심장 광화문 일대는 안전하다! 이게 바로 첫 번째 좋은 소식이다!”

“……?”

“……?”

“……?”

황당, 당혹, 의문, 어이없음!

복잡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하는 부하들에게서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게 좋은 일이야?’

‘특임대 옥상으로 강하해서 이 문으로 진입하는 게 계획 아니었어?’

‘잠깐! 방금 그 말은 우리도 재앙급 마수랑 같이 갇혔다는 말이잖아!?’

부하들의 당혹한 시선이 모이는 순간.

딱- 손가락을 튕겨 주의를 환기하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좋은 소식은 이곳 32층에 헌터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다!”

“……네?”

김태희 대령은 푸르스름한 마력광을 머금은 보안문을 가리켰다.

“저 헌터들 중에 혹시 마력 각성자가 있으면 바로 ‘마스터 키’로 마력 회로를 우회해 보안문을 열 수 있다!”

“…….”

“…….”

아무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마력 각성자는 헌터계의 귀족!

그런 귀족이 성채 빌딩 옥상까지 도망쳐왔을 리가 없다.

자신이 마력 각성자라는 것만 증명하면 바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까!

처음부터 예상한 반응!

김태희 대령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건 플랜 B일 뿐이다! 플랜 A는 따로 있다! 밑에 줄 서 있는 헌터 애들 그 줄을 여기까지 연장한다!”

“……설마!?”

소령은 바로 감이 왔다.

최상급 정제 마석의 마력을 깎아내기에는 마탄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넘쳐 흐르는 자원이 있었다.

“각성 헌터! 각성력!?”

“맞아! 헌터들의 각성력이다! 이 보안문 강강약약이다! 강할수록 반발력이 커진다! 즉, 저 밖에 있는 고만고만한 헌터들의 각성력으로 이 보안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제 마석의 마력을 깎아내 방전시키는 거다!”

김태희 대령은 확신을 담아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보안문 앞에선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더, 더 힘을 줘!”

끄아아악-

“조금만 더! 좋았어!”

보안문에 달라붙어 각성력을 쏟아붓는 다섯 사람의 헌터!

한 헌터가 픽 쓰러지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재빨리 쓰러진 헌터를 빼내고 명령했다.

“뒤에 헌터! 바로 달라붙어서 각성력 쏟아부어라! 끊기면 안 돼! 그리고 이 녀석한테 도장 찍어 줘라!”

“……도장!”

도장이라는 말에 탈진한 헌터가 반색해 고개를 드는 순간 팔에 특수 잉크를 바른 도장이 찍혔다.

[무혐의]

던전 노역형 면제 도장!

“으아악- 해냈다!”

탈진한 헌터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 길게 줄을 늘어선 헌터들이 외쳤다.

“야, 앞에 도장 받았으면 얼른 뒤로 빠져라!”

“그래! 빠져! 지금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여!”

“이거 내 차례 되기 전에 열리는 거 아냐!?”

“하, 시바! 어떻게든 앞에 서야 했는데!”

……

초조한 얼굴로 보안문을 바라보는 헌터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이 보안문에 마력을 공급하는 배터리는 최상급 액화 정제 마석이니까!

김태희 대령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생각보다 헌터들의 각성력 양이 많다!

지금 속도라면 20분!

길어도 20분이면 정제 마석을 방전시키고 문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20분이면 충분하다!

인근 성채 빌딩은 모두 봉쇄된 상황!

태성 빌딩 주위에는 광역 포위망을 펼쳤다!

최후식이 도망칠 방법은 하나!

헬기로 하늘을 날아서 도망치는 거다!

하지만 이곳은 청와대가 바로 앞인 광화문이다!

허가 없이 헬기를 타고 날아오르는 순간 거대 괴수 반발장조차 한방에 뚫는 재금 그룹 마력포가 발사된다!

최후식은 함정에 갇힌 호랑이! 잡는 건 시간문제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옥상이 아닌 이 안에 있다.

정체불명의 재앙급 마수.

뽀미의 후계자와 아이.

부하들을 풀어 뒀지만, 시간 벌이일 뿐!

최대한 빨리 문을 열고 특임대가 들어올 진입로를 열어 줘야 한다!

김태희 대령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연신 외쳤다.

“더, 더더! 강하게 각성력을 밀어 넣어라! 이 문을 빨리 열수록 자유의 순간도 빨라진다!”

* * *

천문석과 최후식 이사가 옥상에 도착하고.

김태희 대령과 길게 줄을 선 헌터들이 옥상 보안문을 뚫고 있을 때.

태성 빌딩 레이스에 참가한 다른 이들도 32층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남중국 외교관을 끌고 달리던 부관과 특임대.

“헉, 허억- 드디어 32층이다!”

부관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각층이 여러 구역으로 나뉘었고 나뉜 구역마다 다른 계단이 이어진 빌어먹을 구조!

이 미로와 같은 구조 때문에 한참을 헤매고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옥상으로 이어진 연대장님이 계시는 32층에!

“가자 방금 폭음 심상치 않았다!”

부관은 앞장서 비상문 밖 통로를 달렸다.

그 뒤를 따르는 남중국 외교관과 특임대.

부관은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수많은 던전과 균열, 마경을 개척했지만, 이곳 태성 빌딩 같은 난장판은 처음이었다.

얼굴을 가린 사람만 공격하는 투명한 마수!

거대한 웨이브를 만들며 도망치는 헌터들!

복잡한 미로 같은 건물 구조!

그리고 방금 터져 나온 엄청난 굉음!

봉쇄 절차가 끝난 성채 빌딩은 몬스터 웨이브, 거대 괴수의 공격에서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됐다!

그런데 무언가 터지는 폭발음도 부딪치는 충돌음도 아닌.

거대한 진동이 벽과 기둥을 타고 흐르며 이 거대한 성채 빌딩을 종처럼 울렸다!

그 압도적인 힘과 위압감!

그것이 만약 이 성채 빌딩에 나타난 재앙급 마수의 능력이라면?

봉쇄 절차가 완료된 성채 빌딩조차 막을 수 없는 재앙급 마수가 나타났다면!?

“……!”

상상만으로도 침이 마르고 전신이 덜덜 떨렸다.

최대한 빨리 아군과 합류해야 한다!

32층 복도, 이제 곧 재앙급 마수가 격전이 펼쳐질 전장을 정신없이 달릴 때 문득 느껴졌다!

“인기척! 오른쪽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바로 오른쪽으로 꺾는다!”

타다다다다닥-

복도 끝까지 달려 수직으로 꺾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통로 벽에 바짝 붙어 한 줄로 선 헌터들.

-새치기하는 헌터를 잡아내고 줄 간격을 조절하는 헌터들.

-희희낙락! 팔뚝을 보이며 웃고 있는 헌터들.

-복잡하게 뒤엉킨 헌터들을 밀어내며 줄을 세우는 헌터들.

그리고 이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똑바로 줄 서라!”

“한 줄로 서라고 새끼들아!”

“새치기하는 새끼는 맨 뒤로 보낸다!”

“야, 그보다 그거 진짜야? ‘도장’ 찍어 준다고!?”

“당연하지! 크크킄- 보이냐? 이 팔뚝에 도장! 내가 제일 먼저 손들고 뛰어나가서 도장 받았다!”

“진짜잖아! 뭐지? 미친 치와와가 진짜 완전히 돌아 버렸나!?”

“야! 앞에 공간 나왔잖아! 간격 좁혀!”

“거기 뒤! 줄 안 선 헌터들 뒤로 물러서서 줄 서! 한 줄로 서라니까!”

……

“…….”

“…….”

“…….”

“…….”

사력을 다해 달려온 넷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재앙급 마수가 나타났는데 이 모습은 뭐란 말인가?

한 줄 서기?

팔뚝에 도장 자랑?

…… 단체로 돌은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