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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35화 (93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35화>

톡-

천천히 뻗은 손이 곰 인형의 머리에 닿는 순간 느껴졌다.

하늘의 저울에 올려진 기원과 대가.

천문으로 하늘에 고한 기원과 그 기원을 이루기 위한 대가 업(業)이 저울의 양쪽 쟁반에 올라가 있었다.

하늘의 저울은 아직 기원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대가가 부족해 아직 수평이 맞지 않은 상황…….

‘어, 잠깐! 뭔가 좀 기울기가 이상한데……!?’

고개를 갸웃하던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하늘의 저울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법!

거기에 더해 마치 알아서 날아오는 세금 고지서처럼 알아서 대가를 가져간다.

느껴진다!

올올히 빛나는 천기, 아득한 하늘의 인과가 저울에 대가로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사건·사고·고난들이!

하하하하하-

하늘님 이런 건 정말 철저하시군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손에 닿은 곰 인형 머리가 흔들리고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털실 모자를 쓴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 곰곰이 뒤에서 조심조심 나타났다.

장세린.

그리고 반짝이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아지경을 깨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콰아앙-

번쩍 정신을 차리는 동시에 물거품처럼 꺼져 허공으로 흩어지는 무언가!

“……!”

잠시 엿본 천의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 순간.

콰아아앙-

강화 철문이 진동하며 다시 한 번 굉음을 토해 냈다!

“……무슨!?”

뻗던 손을 멈추고 휙-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움푹- 패이고!

우수수- 돌가루가 쏟아지는 강화 철문!

김태희 대령!

어느새 감각을 회복하고 강화 철문에 각성력이 담긴 공격을 쏟아붓고 있다!

이 괴물 같은 회복력!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당장 튀어야 한다!

“……방금 뭐였냐? 너, 설마 마력 섬광탄을 터트린 거야!?”

마침 눈을 깜빡이며 비틀비틀 일어서는 최후식 이사!

“설명하기 복잡한데 아닙니다! 우선 튀어야 합니다! 이 계단 맞죠!?”

“어, 맞는데…….”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천문석은 최후식 이사를 번쩍 들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야, 야!”

기겁하는 최후식 이사!

그러나 어째선지 날아갈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타다다다닥-

3층 높이, 수십 개의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올라가자 마침내 문이 나타났다!

‘옥상’ 두 글자가 벽에 새겨진 강화 철문이!

이 강화 철문 뒤에 태성 빌딩 옥상이 있고, 그 옥상에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이 있었다.

국가 헌병대 저지선을 탈출할 윙슈트가 있는 옥탑방이!

“바로 열겠습니다!”

“잠깐…….”

한달음에 뛰어 문고리에 손을 뻗는 순간.

파스스스슥-

강화 철문 위로 새파란 마력광이 생겨났다!

흠칫 놀라 물러서는 순간 새파란 마력광이 생겨난 강화 철문 위에 드러난 마력 회로!

수많은 사건·사고에서 몇 번이나 봤던 보안 마력 회로, 보안 등급 강화 철문이다.

게다가 마력광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심상치 않다.

‘상급!? 아니 이건, 설마……!’

조심스레 마력장에 손을 넣고 기감을 살살살 움직이는 순간 밀려 오는 거대한 감각!

“최상급 정제 마석! 미친 최상급 정제 마석을 박아 놓은 보안문이라고!?”

그냥은 못 뚫는다!

설마, 이것도 열쇠를 꽂아서 열어야 하는 건가!?

잽싸게 문을 살피지만, 열쇠 구멍은 없었다!

자신이 만난 이태성 길드장은 이렇게 겹겹이 문을 만들 성격이 아니었다.

보안문을 달아 놓기는커녕 있는 문도 귀찮다고 열어 두고 다닐 스타일이다!

“그런데 뭔 잠긴 문이 이렇게 많아!”

자신도 모르게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당당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걱정할 거 없다!”

최후식 이사는 어느새 보안문 옆에 서서 벽을 두들겼다.

쿵, 위이이잉-

모터음과 함께 벽에서 나타난 터치스크린!

보안문 옆 벽에 숨겨진 터치스크린의 용도는 뻔했다!

“이사님? 그 터치스크린!?”

기대감을 담아 묻는 순간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맞아! 이 보안문이랑 연결된 터치스크린이다! 여기에 비밀번호 입력하면 된다! 태성 선배가 열쇠 가지고 다니기 귀찮다고 이 문은 패스워드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패스워드는……!”

“이태성 길드장님이 최후식 이사님에게도 가르쳐 줬군요!”

“아니, 당연히 아니지.”

“……네?”

‘아니, 지금 이 급박한 상황에 무슨 소리야!?’

황당함에 반문하는 순간 나선 계단 아래에서 다시 굉음이 들려왔다!

쾅, 쾅, 콰아아앙-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치는 강화 철문 소리가!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저 강화 철문 뒤에는 자신이 터트린 굉천수의 눈뽕을 맞고 빡친 김태희 대령과 국가 헌병대, 분노한 수백 명의 헌터들이 있었다!

이제 곧 수백 명한테 다굴을 맞을 상황이다!

역시 인생은 각자도생, 자력갱생!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

내력은 없어도 머리와 수인은 사용할 수 있다.

전법륜인의 수인! 아니, 지권인의 수인을 짚어 뇌력을 극한으로 끌어올어 패스워드를 찍는 거다!

잽싸게 실행하려는 순간.

최후식 이사가 씩 웃으며 외쳤다.

“당연히 태성 선배는 패스워드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뭐가 패스워드인지 감이 온다!”

“……감이 온다고요?”

‘이거 믿어도 되는 거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하하하하하-

최후식 이사는 자신만만한 웃음과 함께 터치스크린에 손을 올렸다.

터치스크린에 나타난 가상 키보드와 커서!

영문에 한글, 특수기호까지 포함한 풀 배열 가상 키보드가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천문석이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타타닥-

최후식 이사는 주저하지 않고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충성충성^^9]

“……?”

‘뭐지, 지금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나?’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야, 이거 엄청 유서 깊은 이모티콘이야. 태성 선배가 혈맹 온라인 1섭 해방 전쟁에서 승리하고 만든 이모티콘인데…….”

이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앙, 콰드드득-

대련장 입구를 막은 강화 철문이 아작나는 소리가!

“최후식!”

뒤이어 터진 김태희 대령의 분노한 목소리!

“……!”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키패드의 엔터키를 치고 보안문 손잡이를 돌렸다!

‘제발제발제발!’

스르륵-

손잡이는 부드럽게 돌아가고!

철컥-

놀랍게도 보안문이 열렸다!

휘이이이잉-

이 순간 너무나 달콤한 자유의 바람이 불어왔다!

이심전심!

천문석과 최후식은 환호성을 지르며 보안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탁 트인 개방감과 쏟아지는 햇살!

마침내 성채 빌딩을 탈출해 옥상에 나왔다!

천문석은 재빨리 보안문을 닫았다.

기이잉, 철컥, 철컥-

모터 소리와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 위에 떠오른 보안 마력 회로.

“됐다! 이 문은 1급 보안문이야! 아무리 국가 헌병대여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쌩으로 마력을 깎아내서 뚫어야 한다! 못해도 1시간은 걸릴 거다! 이제 안심해도 된다!”

1시간!

윙슈트를 찾아서 탈출하고 샤워하고 밥을 먹어도 충분한 시간이다!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과 함께 주위를 돌아봤다.

탁 트인 옥상!

그러나 옥상의 크기가 태성 빌딩의 크기에 비해 작았다.

문득 왼쪽 난간 너머를 보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이 자리한 이곳은 태성 빌딩 옥상 위에 다시 절벽처럼 우뚝 솟아 있는 분리된 공간이었다!

‘이래서 지금 들어온 계단으로만 올라올 수 있다고 말했구나!’

깨달음의 순간 이곳에 올라온 목표가 보였다.

평범한 담과 열린 철문.

하얀 돌멩이가 깔린 마당.

넓은 마루가 있는 평범한 2층집.

오래된 단독주택처럼 문에 걸려 있는 명패.

[이태성]

첨단 마도 공학 기술이 집결된 성채 빌딩 옥상에 자리한 평범한 집.

당장이라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저 2층집이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이다.

윙슈트가 있는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에 마침내 도착했다!

“가자! 바로 윙슈트 찾아서 튀자! 하하하-.”

“넵! 얼른 빠져나가서 사우나 때리고 밥 먹죠! 카캬캌-.”

천문석과 최후식은 희희낙락 옥탑방을 향해 달려갔다.

한달음에 달려가는 천문석의 등 뒤로 투명한 실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주머니에서 시작해 허공으로 뻗은 투명한 실, 천의의 실마리는 곧 설탕이 물에 녹아내리듯 허공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천의의 실마리가 흘러나왔던 주머니 속 동전.

악덕 상인이 은근슬쩍 저울을 누르듯, 천의의 실마리를 당겨 저울을 좀 더 기울어지게 한 별과 용이 그려진 검은 동전은 반짝- 한번 빛났다가 곧 빛을 잃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처음부터 빛난 적이 없다는 듯이.

* * *

콰드득, 쿠우우웅-

최후식이 도망친 강화 철문이 마침내 떨어져 나가고 옥상으로 이어지는 나선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이 있다!”

우와아아아-

헌터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앞으로 나서 명령했다.

“너희는 여기 입구에서 헌터들 질서유지 하면서 대기해라!”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약속이 틀리잖아!”

“맞아! 강화 철문 열면! 밖으로 내보내 준다면서!”

으르렁대듯 외치며 위협하듯 밀고 들어오는 거친 헌터들.

휙-

빛바랜 강철 건틀릿이 한 헌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어, 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힘을 주는 순간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

와드드득-

단숨에 무릎 꿇려진 헌터는 다음 순간 공기돌처럼 문밖으로 날아가 헌터들과 뒤엉켜 굴렀다!

“너희들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거냐!?”

장난처럼 헌터를 던져 버리고.

광기로 번뜩이는 눈으로 장총신 리볼버를 까딱이는 김태희 대령.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악을 쓰며 대들었던 헌터들은 대번에 기가 죽어 찌그러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콰아앙-

김태희 대령은 건틀릿으로 벽을 때리고 명령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뚫을 수 있었어! 무혐의 기회를 준거에 감사하면서 기다려라! 때 되면 알아서 내보내 줄 테니까! 너, 너! 둘 여기 입구를 지키고! 헌터들은 질서 유지한다!”

“네, 질서유지요?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한 줄! 여기 입구에서부터 대련장 밖 복도까지 헌터들 전부 한 줄로 세워놔라!”

“…….”

“…….”

재앙급 마수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한 줄로 서 있으라고!?

‘뭐지, 차례대로 질서 있게 뒤지라는 건가……?’

헌터들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명령에 말문이 컥 막혔다.

당장이라도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상대는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다!

손에 들린 장총신 리볼버, 일명 문화재!

저 빌어먹을 문화재에서 날아온 슬라임 마탄에 맞고 던전 노역장에 끌려 갔다가, 넋이 나간 얼굴로 돌아온 놈들이 한 트럭이다!

으으윽-

곳곳에서 트라우마가 도졌는지 앓는 소리가 새워 나왔다.

몇몇 베테랑 헌터들이 눈빛을 교환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

다굴을 놔서 간신히 제압한다고 해도 결국 더 거대한 공권력이 나타날 뿐이다!

‘빌어먹을 젠장!’

‘괜히 싸움 구경은 와서는!’

‘시바. 시바! 이런 의뢰는 받는 게 아니었는데!’

‘이러다가 나중에 미안하지만, 하수구 던전은 가야겠다고 끌고 가는 거 아냐!?’

……

용역과 헌터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할 때.

김태희 대령의 입이 열렸다.

“마수는 걱정할 거 없다! 나한테 방법이 있으니까! 한 줄로 서서 우선 대기하고 있어! 그보다 내 도장 가져왔지!?”

국가 헌병대 소령은 바로 무장 상장에서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이 강화 철문 여는데 손 보탠 녀석들 팔 내밀어!”

헌터들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하나둘 팔을 내밀었다.

파파파팟-

팔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느껴지는 마력!

“이거는!?”

깜짝 놀라 도장이 찍힌 팔을 본 헌터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됐지? 바로 대련장 헌터들 정리하고 한 줄로 세워라!”

“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팔에 도장이 찍힌 헌터들은 반색해서 몸을 돌려 외쳤다.

“새끼들아 뒤로 물러나!”

“공간 틔워! 공간 없이 몰려 있다 기습받으면 끝장이야!”

“1미터 간격 유지! 움직여라! 빨리 움직여!”

……

그리고 스스로 대응 논리를 만들어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김태희 대령은 목소리를 낮춰 부하들에게 명령을 쏟아 냈다.

“너, 너! 둘 여기 강화 철문 입구 지키면서 대련장에 싸울 공간 확보해야 한다!”

“긴급 상황이다! 내가 다 책임진다! 발포 허가한다!”

“지시 불이행하는 놈 있으면!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을 먹여 줘라!”

……

명령이 이어질 수록 굳어가는 얼굴들.

국가 헌병대 전원은 명령에 담긴 속뜻을 알아챘다.

이곳 대련장이 재앙급 마수를 막을 저지선이다!

그리고 한 줄로 길게 줄을 서는 헌터들은 보이지 않는 재앙급 마수의 등장을 알릴 경보기이자 시간을 끌기 위한 방패였다.

과연 김태희 대령님!

기만과 사기, 낚시질의 달인!

지금 이 자리의 헌터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낚여 재앙급 마수와의 전투에 한발 걸치게 된 거다!

‘불쌍한 녀석들.’

‘불쌍한 녀석들…….’

……

국가 헌병대 전원이 같은 생각을 할 때 명령이 떨어졌다.

“가자! 우리는 진입로를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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