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34화>
콰아아아아아앙-
굉천수가 터지는 순간 물결치듯 퍼져나가는 빛과 소리!
대련장에 퍼져나간 빛과 소리는 강화 콘크리트와 유리 벽에 수십 번 충돌하며 증폭되고 증폭되어 연쇄 폭발했다
쿠르르르, 쾅쾅쾅-
끝없이 터지는 섬광과 굉음에 시야와 청각이 단숨에 마비되고 대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대련장의 헌터들과 입구를 열고 쏟아져 들어오던 헌터들은 프라이팬에서 튀겨지는 팝콘처럼 사방으로 튕겨 올라 널브러졌다!
음파 폭탄을 터트린듯한 엄청난 위력에 각성력을 끌어올려 버티는 게 전부!
"ㅁㅁ ㅁㅁㅁ?!"
"ㅁㅁ! ㅁㅁㅁㅁ?!"
"ㅁㅁㅁ! ㅁㅁㅁㅁ!"
....
악을 쓰며 사방으로 손을 뻗어보지만, 보이는 건 새하얀 섬광뿐!
시각과 청각이 날아가자 다른 감각까지 교란되어 균형감각이 무너지고!
미친 듯이 요동치는 마력장에 몸 안의 각성력까지 들끓는다!
스스로의 외침조차 들리지 않는 지금, 누웠는지 서 있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천문석 자신조차 생각지 못한 엄청난 위력의 굉천수가 터졌다.
게이트 마력장을 연료 삼아 터트린 굉천수의 폭발에 대련장에 가득한 헌터들이 단숨에 무력화됐다!
그러나 대련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헌터가 있었다.
국가 헌병대 김태희 대령!
김태희 대령은 두 발로 똑바로 선 채 한발, 한발 걸어오고 있다!
자신을 향해서!
'와, 쟤 진짜 장난 아니네!'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하는 동시에 잽싸게 몸을 돌려 달렸다.
"마력 각성자?!"
"으아악- 눈, 눈이 안 보여!"
"미친! 이게 뭐야?!"
“섬광탄? 마력 섬광탄이 터진 거야?!”
“미친 국가 헌병대 앞에서 섬광탄을 써!”
사방에서 쏟아지는 외침들!
김태희 대령도 간신히 움직이는 게 전부, 시각과 청각이 맛이 갔다!
게이트 마력장을 이용한 굉천수는 상상 이상의 위력을 냈다!
하지만 굉천수의 근본은 허풍수이고, 지금 눈앞에 널브러진 이들은 전원 헌터들이다!
감각이 무너져 무력화됐지만, 지금 상태가 유지되는 건 길어야 4, 5분!
그 후에는 분노한 천여 명의 헌터들을 마주해야 한다!
박수 칠 때 떠나듯이!
임팩트 있는 한 방을 때린 지금이 도망칠 때다!
타타타탁-
천문석은 무력화된 헌터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강화 철문 앞에 도착했다.
딱, 따닥-
"하, 시바! 열쇠 구멍!"
최후식 이사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엉뚱한 곳에 열쇠를 꽂는 상황.
미리 경고했음에도 굉천수에 당해 시각과 청각이 맛이 갔다.
천문석은 전법륜인의 수인으로 최후식 이사의 등을 짚고 마음으로 뜻을 전했다.
[제가 열게요!]
"천문석?!"
[네!]
잽싸게 열쇠 꾸러미를 낚아채 남은 열쇠를 확인한다.
남은 열쇠는 7개!
탁, 탁, 탁, 탁, 탁, 탁, 철컥-!
일곱 번째! 마지막 열쇠가 돌아가는 순간 부드럽게 돌아가는 문고리!
마침내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렸다!
캬카카-
천문석은 최후식 이사를 문틈으로 밀어 넣고 몸을 돌려 외쳤다.
[모두 안녕이다! 만나서 더러웠고!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카캬카카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즉시 타다닥- 번개같이 문틈으로 들어가 재빨리 문부터 잠갔다.
* * *
쿵-
강화 철문이 닫히고 하얀 섬광이 사라진 공간, 빙글빙글 위로 이어진 나선 계단이 나타났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그러나 계단을 오르기 전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천문석은 열쇠 꾸러미를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외쳤다.
"와! 진짜진짜! 정말정말로?! 마지막 열쇠라고요?!"
그렇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철렁, 철렁-
열쇠 꾸러미에 걸린 100개가 훌쩍 넘는 열쇠들!
문을 열기 위해 꽂았던 100개가 넘는 열쇠 중 마지막 열쇠가 문을 여는 열쇠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우연, 불운이라니!
천기와 용맥을 이어 게이트 마력장을 불렀던 사문의 비의, 천문(天問)!
천문의 잔향이 아직 영육과 혼백에 남아있기에 느낄 수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불운에 담긴 명백한 의도를!
그리고 이렇게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불운을 몰아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하늘님!
"하늘님? 진짜 이러시긴가요? 대체 이러시는 이유가 뭔가요?!"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문득 눈앞에 보였다.
하늘하늘-
투명한 실 한 가닥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흔들리고 있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너무나 아득하여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인과, 천의(天意)!
그 천의의 끝자락 '실마리'가 나타났다!
실마리는 돌돌 말린 실타래의 시작!
실마리를 잡아당기면 실이 술술 풀려 나오듯이.
천의의 실마리를 잡으면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하늘의 인과를 되짚어 살필 수 있다!
전생의 스승님께 천문사를 물려받으며 스치듯이 들었을 뿐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이게 진짜로 있었다니!
분명 스승님이 구라 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 아니, 그보다 하필 왜 지금 여기서 보이는 거야?!’
그동안 몇 번이나 말을 걸어도 대답 없던 하늘이 반응을 보였다!
굉천수를 먹이고 도망가는 위기의 순간,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리자 마치 대답하듯이!
굳게 잠긴 강화 철문과 허공에서 튀어나온 실마리!
감이 왔다!
여기서 이 천의의 실마리를 잡아당기면 말이 안 될 정도로 계속되는 불운의 이유를 알 수 있다!
게이트 마력장을 연료 삼아 터트린 굉천수가 사라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3, 4분가량!
지권인의 무아지경에 들어간다면 가능하다!
전생 현생을 통틀어 처음 만나는 천의의 실마리다.
이유를 알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
찰나의 순간에 결심하고 지권인의 수인을 짚어 무아지경에 한발 걸친다.
그리고 손을 뻗어 실마리를 잡는 순간 번쩍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
사막, 빙하, 바위 산맥, 대수림, 십만대산, 검의 숲, 무너진 고성, 불타는 대지, 넓은 호수와 등을 밝힌 수많은 화선(花船)….
제대로 살필 틈도 없이 찰나의 순간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장면과 사람들!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사물, 사람 모든 곳에서 아득한 인연과 인과가 느껴진다!
전생, 현생, 후생!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삼생의 인과가 펼쳐지고 있다!
천문석은 마음을 모으고 관조했다.
이 순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멈추고 거대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
도시의 남북을 잇는 다리는 모조리 끊겼고 범람하는 강 위를 유람선과 뗏목, 오리배가 필사적으로 왕복하고 있다!
북쪽 강변에 모인 엄청난 수의 사람들!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달리는 여자.
악을 쓰며 잡동사니 뗏목을 끄는 남자.
유람선이 다가오는 선착장을 향해 밀고 들어가는 가족.
...
너무나 눈에 익은 장소와 광경!
천문석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한강?!”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마치 줌을 당기듯이 장면이 확대됐다.
직접 보고 겪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청난 물이 쏟아지는 중랑천!
수위가 확 불어나 강변으로 물이 넘치는 한강!
상판이 뚝 잘려나가고 교각이 부서진 성수대교!
강을 건너 남쪽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 뒤로 폐허가 된 건물과 버려진 차량, 곳곳에 진지를 만들고 탄환을 쏟아내는 군인들이 보였다.
‘세기말 대한민국.’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 배송 의뢰에서 잘못 얽혀 가게 된 세기말 대한민국이다.
지금 눈앞의 장면은 광화문 게이트가 열린 후 한강 남쪽으로 탈출 때 봤던 모습이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무언가 다르다!'
폭약으로 상판 가운데만 깔끔하게 잘려나갔던 성수대교는 교각까지 무너져 내렸고!
버려진 자동차, 무너진 건물과 박살난 도로의 상태가 자신이 직접 겪은 것보다 훨씬 좋지 않다.
마치 며칠 동안 마수와 몬스터가 몇 번이나 쓸고 지나간 것처럼!
"....!"
문득 드는 직감에 고개를 드는 순간 폐허가 된 도심지 너머로 불쑥 튀어나온 머리가 보였다!
거대 괴수!
분명 이곳 한강 변에 나타난 건 거대 괴수가 아닌 몬스터 웨이브였다!
잔해를 모아 건물 사이 도로를 막아 둑을 쌓고, 범람한 중랑천 제방을 무너트려 한 번에 몬스터 웨이브를 쓸어 버렸다!
‘설마, 2020년으로 돌아온 후인가?!’
그렇다면 소총과 기관총에서 탄환이 쏟아지는 게 말이 안 된다!
자신과 동료들이 돌아온 건 EMP 마력 폭풍이 터진 직후였고, 그때 화약과 전자기기는 모조리 작동을 중지한다.
게이트가 열린 건 1월 1일 00시 00분!
EMP 마력 폭풍이 터진 건 게이트가 열리고 24시간이 지나지 않아서다!
즉,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말이 안 됐다!
이게 말이 되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이곳은 내가 갔던 세기말 대한민국이 아니다!'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장철, 장민!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돌아왔을 때 분명 과거를 바꿨음에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장민과 장철 두 사람과 대화하고 알아챘다!
-자신과 동료들이 갔던 세기말 대한민국.
-장철과 장민이 겪었던 세기말 대한민국.
마치 한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두 세계가 있다는 것을!
"....!"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은 자신이 가지 않았던 나뭇가지.
장철과 장민이 겪었던 또 다른 세기말 대한민국이다!
* * *
“....!”
불쑥 튀어나온 하늘의 인과! 천의의 실마리는 장철과 장민이 겪었던 세기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게 지금 왜 나와?’
‘뭐가 이렇게 뜬금없어?!’
황당함에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다시 한번 장면이 변화했다.
무너진 성수대교, 끊겨나간 영동대교, 난장판이 된 뚝섬이 휙휙 지나가고 주차장 구석 버려진 자동차에서 장면이 멈췄다.
그리고 숫자 세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십칠, 구십칠. 구십칠? 구십구, 백!"
금이 자동차 창문 위로 살금살금 머리를 드러내는 불에 그을린 곰 인형.
그리고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곰곰아. 아빠 왔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
이 순간 천문석은 벼락 치듯 모든 걸 깨달았다!
-자신이 이 광경을 보게 된 이유를!
-천의의 실마리가 왜 여기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어째서 하늘의 인과와 인연이 가지도 않은 세계에 닿아 있는지를!
이성을 넘어서는 직관으로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생생히 기억났다.
2020년으로 돌아와 장철에게 곰 인형 곰곰이를 건네준 그 밤!
천문사의 주인으로 대를 이어 쌓아 올린 업에 담아 단 한 번 할 수 있는 비의를 행했다!
천문(天問)
하늘에 고했다!
'...장철의 딸을 내놔라!'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보일 리 없는 천의가 보이고,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인과가 하나하나 이어진다.
순간 올올히 쏟아져 내려 흔들리는 수백 수천만 가닥의 인연의 실들!
그리고 이 인연의 실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찬란한 인과와 따뜻한 운명!
선악도 정도 없는 하늘이 빚어낸 운명은 어째서 이토록 따뜻한가?
답은 간단했다.
그 실 한올 한올, 인연과 인과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천문석은 웃었다.
찰나의 순간 천의를 엿보아 얻은 깨달음은, 마찬가지로 찰나의 순간에 물거품처럼 흩어지리라!
이 찰나의 순간이 지나면 알게 된 모든 것을 잊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천문(天問)!
업을 담아 하늘에 고했던 맹세는 이 혼백과 하늘에 이미 새겨져 있으니!
입에서 나와 세계에 울려 퍼진 말은 잠시 잊는다 하여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의 극에 달했고, 다시 그 극을 넘어 하늘과 땅을 이었던 이름, 석(石)! 돌멩이에 걸고 다시 말한다.
허상 속 금이 간 창문으로 뻗어가는 손,
뻗은 손이 아무렇지도 않게 창문을 통과해 만져질 리 없는 곰 인형, 곰곰이에게 닿는 순간.
천문석은 그 자신이 행한 인과, 찰나의 순간에 물거품처럼 기억에서 사라질 이름을 불렀다.
"장세린. 곧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