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27화>
타다다다닥-
최후식 이사는 계단을 뛰어오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땀을 뚝뚝 흘리며 앞서 달리는 천문석!
상황이 너무 급변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라잡기도 힘들다!
“야,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12분! 국가 헌병대가 계단으로 쏟아져 들어와 추적하는 걸리는 시간입니다! 그 안에 최대한 거리를 벌려서 튀어야 합니다!”
“12분? 자세히……!”
재빨리 말을 끊고 외치는 천문석.
“어차피 달라진 건 없습니다! 국가 헌병대보다 빨리 옥상에 도착해 ‘윙슈트’ 입고 탈출하면 끝납니다!”
“……!”
최후식 이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지금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때가 아니다!
돌아가는 상황! 자세한 사정은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에서 윙슈트를 찾아 입고 탈출한 후에 들으면 된다!
타다다다닥-
최후식 이사는 각성력을 끌어올려 천문석을 앞질렀다.
“내가 앞장설게! 중간에 몇 번 다른 계단으로 갈아타는 게 빠르다!
이미 들은 이야기!
이태성 길드장의 옥탑방이 있는 옥상으로 가려면 녹색으로 테두리를 칠한 비상계단을 달려야 한다!
“옥탑방! 34층 꼭대기 층에…….”
“아냐! 34층 꼭대기 층에는 계단이 없다! 이태성 길드장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33층에 있어!”
천문석은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에 새겨진 층수 13층.
지금부터 올라가야 할 층수 20층.
내력이 간당간당하고 내상까지 심해진 상황에서 육체의 힘으로 20층을 올라가야 한다.
뒤를 쫓는 건 탁월한 잔머리의 소유자 김태희 대령과 국가 헌병대.
리볼버는 이미 넘겼기에 중간에 꼬리를 잡히면 악전고투를 치러야 한다.
외부 상황과 육체 상태 모두 암울한 상황.
하지만 천문석은 웃었다.
‘충분히 할 만하다!’
도망치는 건 무공에 입문하기 전, 전생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특기니까!
꼬맹이일 때도 밀려 오는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위기를 어떻게든 해쳐 나왔다.
혹시 아는가?
생각지도 못한 남중국 헌터 팀장의 짝퉁 리볼버로 김태희 대령을 낚았던 것처럼. 갑자기 귀인이 튀어나와 도와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단단한 강화 콘크리트에 막혀 하늘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 하늘의 어이없어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앞장선 최후식 이사를 따라 계단을 뛰어올랐다.
* * *
[90, 89, 88, 87, 86…….]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긴장감이 흐르는 통로에 숫자 세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 목소리가 아닌 건물이 울부짖는 듯한 진동을 통해서!
“……!”
“……!”
바짝 긴장한 국가 헌병대 타격대원들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강화 철문을 바라봤다.
김태희 대령이 강화 철문에 바짝 달라붙어 손을 올리고 있다!
그 손이 닿은 강화 철문은 부르르- 진동하며 마치 스피커라도 된 듯이 소리와 진동을 토해 냈다!
평소. 아니, 전투 중에도 나사가 2, 3개는 빠진듯한 김태희 대령!
그런 김태희 대령이 어떻게 가능한지 짐작도 안 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게다가 김태희 대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표정!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지던 입도 굳게 닫혀 있다!
김태희 대령과 몇 년 동안 함께한 타격대 고참 대원은 바짝 긴장했다!
예전에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마수 부산물로 만든 각성 마약 유통조직을 잡기 위해 마약 파티를 벌인 재벌 2세들을 털었을 때!
사설 경호팀과 용역 헌터 백여 명을 아작내고 벽을 뚫고 들어가 패닉룸에 숨은 재벌 2세들을 체포해 던전 노역장에 처넣었다!
미친놈 그 자체였던 그때와 비슷하다!
국가 헌병대의 미친 치와와가 깨어났다!
강화 철문 너머로 도망친 헌터가 미친 치와와를 깨운 것이다!
고참 타격대원들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눈으로 빠르게 대화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중요한 건 뒷수습이다!’
‘맞아! 지금 상부 완전 빡쳐 있을 거다!’
고참 타격대원들의 가슴이 타들어 갔다.
윗선의 압박을 무시하고 연대를 통째로 동원해 기습적으로 광화문 검거 작전을 벌인 상황!
게다가 평소 윗선에서 쏟아지던 압력을 막아주던 서울 헌터 부대 박찬석 준장마저 자리를 비웠다.
하필 정기 근무 교대가 얼마 뒤인 지금 꼬투리가 잡히면 끝장이다!
다시 냉기 지대 개척대로 보내져 추위에 덜덜 떨며 곰고기를 씹고 얼어붙은 땅에 곡괭이 질을 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경험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방법은 하나!
최대한 빨리 도망친 헌터를 잡고 이번 검거 작전을 마무리하는 거다!
“……!”
“……!”
“……!”
고참 대원들은 눈빛을 교환해 순식간에 합의를 끝냈다.
이때 통로를 울리던 카운트다운이 마침내 끝났다.
[7, 6, 5, 4, 3, 2, 1, 0.]
그리고 명령이 떨어졌다.
“추적 시작한다!”
타다다닥-
순간 잽싸게 강화 철문에 달라붙어 문고리를 돌리는 타격대원!
탁, 탁-
“잠겼습니다! 바로 뚫죠!”
타격대원들은 반사적으로 각성력을 끌어올려 돌진했다.
으아아악-
악을 쓰며 단숨에 거리를 좁혀 어깨, 방패, 진압봉에 각성력을 담아 충돌한다!
쿵, 쿠우웅-
쾅, 콰아앙-
굉음이 울리고 진동이 퍼져 나갔지만, 강화 철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뒤에 뭔가 지지하고 있다!”
“어느새 막은 거야!?”
“문틀째로 박살 내자!”
“3인 1조! 같이 돌진한다!”
“바위를 깨트리는 파도처럼! 뚫릴 때까지 쉬지 않고 두들긴다!”
으아아악-
타격대원들은 괴성을 지르며 어깨를 맞대고 돌진!
콰앙, 콰아아-
굳게 잠긴 강화 철문을 향해 각성력을 쏟아부었다!
바스러진 시멘트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고 당장이라도 철문이 떨어질 듯 요동쳤다!
“10분이면 뚫을 수 있다!”
“모두 힘을 내라!”
고참 타격대원이 악을 쓰며 몸을 던지는 순간.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보던 김태희 대령이 입을 열었다.
“……너희 지금 뭐 하냐?”
고참 대원들은 사색이 되어 외쳤다.
“더 빨리 뚫겠습니다!”
“야! 멈추지 마! 악으로 깡으로 돌진해!”
“폭약! 당장 폭약 가져와라! 통째로 날려 버리자!”
순간 김태희 대령의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멍청한 새끼들아! 지금 뭐 하는 거야!?”
“……!”
“……!”
강화 철문으로 몸을 던지던 타격대원들은 단숨에 얼어붙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뭐야!?’
‘미친 치와와 왜 저래!?’
‘지금 우리 뭐 잘못한 거야!?’
……
쿠우우웅-
순간 김태희 대령이 강화 철문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야, 이 문 뭐야!?”
“네? 강화 철문인데요?”
“무언가 뒤를 막은 것 같습니다!”
“앗! 그렇지! 강화 철문이지! 멍청한 녀석들아 문이 아니라! 벽을 뚫는 게 빠르지!”
“앗!”
“아앗!”
“그렇지! 벽이다! 벽을 뚫자!”
깨달음의 탄성이 터지고 벽을 향해 돌진하려는 순간 그 앞을 막아서는 김태희 대령.
“대령님?”
하아아아-
김태희 대령은 땅이 꺼질듯한 한숨과 함께 문을 다시 가리켰다.
“저 강화 철문 어디로 이어졌냐?”
“……이거 비상계단으로 들어가는 문인데요?”
“그래. 맞아 이 문 뒤에 비상계단이 있다.”
김태희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장과 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비상계단은 건물 위층 아래층으로 이어지겠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타격대원들은 선생님 앞의 아이들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희가 아래층에서 올라와 매복했죠.”
“그러면 난 여기 어떻게 왔을까?”
김태희 대령이 질문하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통로 반대쪽 사무실로 움직였다.
타격대원들이 문 뒤 계단에 매복하고 기다린 동안 김태희 대령은 반대쪽에서 사냥감을 몰고 왔다!
“맞아! 난 저 반대쪽 사무실 방향 계단으로 올라왔어. 자 그럼 여기서 문제.”
김태희 대령은 씩 웃으며 멍하니 서 있는 타격대원들을 훑어봤다.
“지금 여기서 막힌 강화 철문을 뚫는 게 빠르겠냐? 아니면 저기 사무실 방향 계단으로 달려가서 아래층, 위층으로 뛰어가는 게 빠르겠냐?”
순간 타격대원 34명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아.”
“아!”
“앗!?”
눈앞에 막힌 강화 철문이 나타나자 반사적으로 그 문을 뚫으려 했다!
하지만 그 문은 막다른 장소로 이어진 문이 아니라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이다!
비상계단!
그렇다! 비상계단이다!
당연히 로비부터 최상층까지 층마다 문이 있는 게 당연했다!
잠긴 문이 나타나면 열려는 심리!
간단한 심리 트랩에 완전히 낚였다!
국가 헌병대 34명이 경악으로 굳어 버린 순간.
김태희 대령은 말을 쏟아 냈다.
“멍청한 새끼들아!”
“문을 막아 둔 것 자체가! 어!”
“뚫느라 시간 날리게 하려는 낚시질이잖아!”
“그런데 신입부터 고참까지 줄줄이 이 간단한 트랩에 낚여!? 하!”
김태희 대령은 충격봉으로 사무실을 가리키며 외쳤다.
“뛰어! 당장 달려 새끼들아!”
“네!”
“네, 네!”
“둘로 나누자! 아래층……!”
“아냐! 건물 밖은 봉쇄됐다!”
“죄수부대가 위로 훑고 올라올 거다!”
“11층으로 올라가서 옥상까지 훑어야 한다!”
……
타격대원들은 바로 몸을 돌려 통로를 전력 질주했다.
“야, 전부 가지 말고 너, 너너! 세 명은 남아라!”
김태희 대령은 부하 셋을 멈추게 하고 바로 명령했다.
“너희는 여기서 이 문 뚫어라!”
“네?”
“이 강화 철문을 뚫으라고요?”
“연대장님이 방금 이 문은 낚시질이라고……?”
하아아-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야, 야! 너희 머리는 장식이야? 생각이란 걸 하는 게 힘들어!?”
타격대원 셋이 미친 치와와의 으르렁거림에 바짝 쫄아드는 순간 폭풍처럼 쏟아지는 외침.
“지금 이 빌딩 안 마력장 충돌로 통신 안 되지?”
“그런데 아까 부관이 남중국 외교관 데리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단 말야.”
“그럼 걔네들이 어디로 오겠냐? 막 텔레파시가 통해서 알아서 옥상으로 올까?”
“아니지! 당연히 출발한 장소! 10층 바로 여기로 돌아오겠지!”
“그런데 어라? 돌아 와보니까 아무도 없네? 그럼 어떻게 되겠냐!?”
“아…….”
“아…….”
“아…….”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타격대원 셋.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절로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상부에 수십 번 건의하고 요청했다!
국가 헌병대가 상대하는 건 마수와 몬스터가 아닌 교활한 범죄자들!
전투력이 뛰어난 각성자가 아니라, 기만과 협잡에 능하고 입을 잘 터는 악마적인 두뇌를 지닌 각성자를 뽑아야 한다고!
평소에는 단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잔머리를 가진 놈!
한번 보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 목줄을 채우고!
동귀어진의 자세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상대가 나타나자 모조리 낚여 버렸다!
짝퉁 리볼버로 협박하고 강화 철문을 막는 단순한 행동으로 34명의 타격대원을 모조리 낚은 악마 같은 두뇌와 놀라운 힘을 지닌 각성자.
‘최후식!’
지금은 최후식을 잡는 게 우선이다!
김태희 대령은 끓어오르는 울화통을 꾹꾹 내리누르며 명령했다.
“너희는 여기서 문 뚫은 다음에 계단에서 대기해라. 외교관이랑 특임대, 내 무장 상자 도착하면 같이 옥상으로 전력으로 올라와라. 알았냐?”
.”네! 대령님!”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쿵, 척-
발을 구르고 절도있게 경례하고 몸을 던지는 타격대원 셋!
김태희 대령은 즉시 몸을 돌려 통로를 달리며 각성력을 움직였다.
타다다다닥-
발을 뻗는 매 순간 파문이 퍼져 나가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각성력과 사념파!
진동이 벽을 타고 흐르듯! 각성력에 담긴 사념파가 벽과 천장을 타고 흐르며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개가 공기 중에 흩어진 냄새를 맡듯!
박쥐가 초음파로 어둠 속에서 장애물을 파악하듯!
사념파로 전해진 정보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으로 해석되는 순간!
김태희 대령은 너무나 분명히 느꼈다.
두 사람이 도망친 흔적을!
-계단을 뛰어 미친 듯이 옥상으로 달리고 있다!
그 흔적에 남겨진 감정을!
-안도, 불안, 초조, 다급함 그리고 희망!
도망친 최후식과 다른 헌터!
둘이 향하는 옥상에 둘이 믿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김태희 대령은 사무실을 가로질러 달리며 눈을 번뜩였다.
이태성 길드장, 강철 해머, 하얀 번개 추이린, 청년 헌터 허무인…….
한국 헌터계에는 힘으로는 감히 대적할 엄두도 나지 않는 기라성 같은 헌터들이 득실거렸다.
하지만 김태희 대령은 꼿꼿이 머리를 세우고 상대가 누구라도 미친 듯이 짖고 추적하고 물어뜯으며 다짐했다.
무력에서는 밀려도 잔머리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겠다고!
자신은 그 다짐을 실적으로 증명했다!
힘과 권력, 재력을 가진 수많은 각성 헌터, 정치인, 재벌 2세뿐만 아니라.
사소한 위반사항, 꼬투리를 잡아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각성자와 일반인을 던전 노역장에 처넣었다!
그 결과 국가 헌병대는 엄청난 악명을 얻었다.
국가 헌병대와 만난다는 상상만으로도 감히 마탄이 장전된 총을 사람에게 겨눌 엄두조차 내지 못할 악명!
국가 헌병대는 모든 각성 범죄자, 마탄 범죄자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이자 억제기가 된 것이다!
그 결과 게이트 전쟁을 거치며 수십만 자루의 총과 마탄이 민간에 풀렸는데도 대한민국의 마탄 범죄율이 극도로 낮았다.
게다가 각성자와 비각성자 모두의 공적 국가 헌병대가 존재하기에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의 갈등도 낮았다.
처음 국가 헌병대를 창설한 의도대로!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찬란하게 빛나든 젊음과 힘을 모두 잃은 채 주름진 얼굴로 환하게 웃던 그 모습.
힘과 수명을 깎아가며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킨 국가 헌병대의 창설자.
검은 폭풍 대선배!
김태희 대령은 ‘미친 치와와’ 대선배가 직접 붙여 주신 코드네임에 걸고 맹세했다!
“반드시 잡는다! 최후식!”
그리고 선택지를 내미는 거다!
[하수구 던전 노역형]
vs
[국가 헌병대 자원입대 서약서]
두 가지 선택지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전투 예지가 꿈틀거렸다!
쿵쿵, 쿵쿵쿵-
터질 듯이 맥동하는 심장과 이 맥동을 타고 전신에 흐르는 전율!
악마적인 머리를 가진 최후식!
그 녀석이 국가 헌병대에 들어오는 순간 대한민국의 마탄 범죄자들에게 대재앙이 떨어지리라!
김태희 대령은 전력으로 계단을 뛰어오르며 다시 한 번 외쳤다.
“최후식! 반드시 입대시켜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