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23화>
“그러니까! 내 말이!”
관리 본부장은 최후식 이사의 외침에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천문석은 이태성 길드장의 생각이 짐작됐다.
‘배수의 진!’
세기말 대한민국에 가서 직접 보고 겪었기에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에서 해일처럼 쏟아져 나온 마수와 몬스터 무리!
하얀 번개 추이린이 그 마수와 몬스터를 우레 폭풍으로 박살 내지 않았다면?
초대형 뱁새와 과거의 니케가 광화문 광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그 엄청난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모조리 서울 전역으로 쏟아져 끔찍한 대참사가 터졌을 거다!
이태성 길드장의 생각은 이걸 저지하겠다는 것!
광화문 게이트에서 세기말 대한민국처럼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지면!
하얀 번개 추이린, 초대형 뱁새, 과거의 니케가 그러했듯 게이트를 틀어막아 마수와 몬스터가 흩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배수의 진!
태성 빌딩은 웅크려 숨기 위한 성채가 아닌 공격하기 위한 진지였다!
광화문 게이트에서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다시 한 번 쏟아지는 순간.
태성 빌딩을 버리고 역으로 치고 나갈 수밖에 없게 배수의 진을 쳐둔 거다!
당연히 다른 성채 빌딩에는 필수인 봉쇄 마력 회로, 강화 철판, 비상 탈출로는 태성 빌딩에는 필요가 없었다!
탈출로와 방어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태성 빌딩에서 이태성 길드장의 섬뜩한 각오가 느껴졌다!
성채 빌딩에 웅크리는 게 아닌 역으로 치고 나가 광화문 게이트를 틀어막겠다는 각오!
이것이야말로 마탄, 마도구, 강화 전투복 하나 없이 맨몸으로 조악한 해머와 도끼, 칼을 들고 마수와 몬스터에게 달려든 1세대 헌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문제는 그 각오 때문에 독 안에 갇힌 쥐가 됐다는 것!
“하- 이 더러운 불운!”
천문석이 탄식하는 순간.
최후식 이사는 분통을 터트렸다.
“선배! 태성 선배! 이게 뭔 뻘짓입니까!”
본부장이 바로 동조했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젠장! 으으윽- 어떻게든 강화 철판 격벽이라도 깔아놨어야 했는데! 국가 헌병대라니! 시바시바! 그동안 쟁여 둔 마탄 모조리 털리게 생겼잖아!”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두 사람!
당연했다!
탈출로를 찾아올라왔는데 오히려 막다른 곳! 독 안으로 도망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좌절할 시간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 헌병대가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다른 탈출로 혹시 없습니까!? 지하 설비실이 다른 곳으로 연결됐다거나!?”
“지하는 강화 철근이랑 콘크리트로 완전히 막았어.”
“혹시 주위 다른 건물로 넘어갈 방법이…….”
“주위 건물 전부 봉쇄 절차 들어간 성채 빌딩이다. 당연히 못 뚫어. 아니, 창밖으로 몸을 드러내는 순간 저기 장갑 진압차 진압 대포가 쏟아질 거다.”
지하도 옆 건물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늘밖에 없다!
천문석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자.
최후식 이사와 관리 본부장의 시선도 같이 하늘로 향했다.
“옥상에 헬기 없지?”
“당연하지! 광화문에 헬기 못 띄우는 거 알잖아? 옥상에 있는 건 길드장 옥탑방밖에 없다.”
최후식 이사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본부장.
천문석은 탄식했다.
“하늘만 날 수 있다면…….”
순간 최후식 이사가 탄성을 터트렸다!
“하늘! 그렇지 하늘이 있었어!”
“네?”
“윙슈트! 태성 선배가 산 윙슈트가 옥탑방에 있다! 그거라면 빠져나갈 수 있다!”
관리 본부장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윙슈트? 그게 옥탑방에 있다고!? 그게 왜 옥탑방에…… 아니, 그보다 나도 모르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장철 선배랑 자랑 배틀 붙다가……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확실해! 태성 선배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보여 줬어!”
윙슈트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 기능이 짐작됐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리며 외쳤다.
“바로 올라가죠! 국가 헌병대 언제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본부장실을 빠져나와 텅 빈 사무실을 가로지르는 세 사람.
들어온 비상계단을 향해 달릴 때 사무실 입구에서 확성기에 실린 외침이 들려왔다!
[하하하- 잔챙이는 신경 쓸 거 없다! 우리 목표는 10층! 태성 길드다!]
국가 헌병대 김태희 소령의 외침!
소리의 감이 가깝다!
이대로 비상계단으로 달리면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야! 저기 말고 옥상으로 이어지는 다른 비상구 있지? 어디……!?”
최후식 이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리 본부장은 몸을 돌려 달렸다.
“내가 앞장설 게! 사무실 몇 개 지나서 통로 지나면 막아둔 계단 있어!”
관리 본부장은 복잡하게 이어지는 사무실을 전력으로 달렸다.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천문석은 광화문 빌딩에서 가져온 야구 배트를 꺼내 들었다.
타다다다다다닥-
미로처럼 얽힌 책상과 파티션을 지나자 나타난 길게 쭉 뻗은 통로!
통로 끝에 초록색 강화 철문이 나타났다!
“헉, 저기! 허억- 저기다! 저기로 올라가면 된다! 나한테 열쇠 있어! 바로 올라가자! 허억-.”
관리 본부장은 숨을 몰아쉬며 전력으로 달려 문에 열쇠를 꽂았다.
그리고 열쇠를 돌리는 순간 섬뜩한 직감이 천문석의 뇌리를 스쳤다!
“잠깐만! 멈추……!”
다급히 외치며 손을 뻗는 순간.
저절로 열린 문에서 날아오는 그물!
촤아아아-
활짝 펼쳐진 그물이 경악한 관리 본부장을 덮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고 돌진하는 동시에 연속으로 날아오는 그물!
촤아, 촤아아-
단숨에 내력을 끌어올려 그물을 밀어내려는 순간.
파지지지직-
그물에서 마력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벨트를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뒤로 빠져 늦었다!”
최후식 이사!
으아악-
악을 쓰며 벨트를 잡고 달려 단숨에 거리를 벌린다!
이 순간 비명과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포획 그물? 설마!?”
“하하하- 잡았다!”
“국가 헌병대? 저 일반인입니다! 난장판에는 근처에도 안 갔어요!”
“하! 도망치던 놈들은 잡히기만 하면 뭐 하는 말이 다 똑같아! 민간인? 됐고. 본부에 가서 확인하면 됩니다!”
“야! 후식아! 도와줘! 나 잡혔어! 얼른 도와줘!”
쓰으으으윽-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그물에 잡힌 관리 본부장은 비상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국가 헌병대 군인들이 통로로 쏟아져 나왔다.
하얀 해골을 그려 넣은 강화 헬멧에 푸른색 강화 전투복! 국가 헌병대 체포조!
검은 군복에 방검방탄복을 입고 충격봉을 든 타격대!
순간 천문석과 최후식 이사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분명 10층에 올라온 비상계단에서 김태희 대령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런데 정작 국가 헌병대가 나타난 건 반대쪽! 잠겨 있는 비상계단이었다!
“어떻게!? 분명 뒤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순간 복도 반대쪽에서 확성기에 실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드디어 이렇게 만나는구나?]
저벅저벅 복도로 걸어 나오는 확성기를 든 대령 계급장을 단 군인!
전투 예지 능력자 김태희 대령이 복도 끝에 나타났다!
혼자서!
천문석과 최후식은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다!
김태희 대령이 사냥개!
국가 헌병대 군인들이 사냥꾼!
그리고 자신들이 사냥감이었다!
사냥개가 사냥꾼이 매복한 장소로 사냥감을 몰아간 것이다!
함정에 빠졌다!
좌우가 벽으로 막힌 통로!
앞은 국가 헌병대 정예 병력이!
뒤는 전투 예지 능력자가 막아섰다!
앞뒤가 모두 막힌 위기 상황!
“……!”
“……!”
천문석과 최후식 이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 찰나의 순간 이심전심, 계획이 세워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하아앗-
기합을 터트리며 국가 헌병대 체포조와 타격대를 향해 돌진하는 최후식 이사!
최우식 이사는 각성력을 터트리며 외쳤다!
“버티고 있겠다!”
대답은 필요 없다!
이미 천문석도 내력을 끌어올려 복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타겟은 복도 반대쪽에 홀로 서 있는 국가 헌병대 지휘관 김태희 대령!
최후식 이사가 버티는 동안 김태희 대령을 인질로 잡으면 깔끔하게 끝난다!
쿵쿵, 쿵쿵쿵쿵-
바닥을 연신 박차며 기세와 돌진력을 끌어올린다!
이 돌진력과 기세를 야구 배트에 담는다!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 파르르 떨리는 야구 배트!
그러나 야구 배트는 페이크다!
피하는 순간 굉천수를 먹이고!
구인창의 경력으로 감각을 교란한다!
예지 능력도 육체에서 나오는 것!
감각이 무너져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 예지가 가능할 리 없다!
‘단숨에 사로잡는다!’
10여 미터 앞!
굉천수의 경력을 움직이며 야구 배트를 던질 준비를 할 때 김태희 대령과 시선이 마주쳤다.
“……!”
씨익 웃고 있는 김태희 대령의 눈에는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었다!
‘언제……!?’
순간 김태희 대령의 어깨가 움찔하고 손이 잔상을 흘리며 벨트로 움직였다!
벨트에 걸린 장총신 리볼버!
퀵 드로우!
사람한테 마탄을 갈긴다고!?
그것도 마탄 범죄자를 지구 끝까지 쫓아가는 국가 헌병대가!?
‘말도 안 된다! 페이크다!’
무시하고 야구 배트를 던지려는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슬라임 마탄!
국가 헌병대는 태성 빌딩 앞에서 장갑 진압차로 슬라임 마탄을 쏟아부었다!
헌터들과 자신에게!
“……!”
순간 벨트에 닿은 김태희 대령의 손이 파팟- 번개처럼 올라오고!
한국 헌터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선 확인!”
외침이 터지는 순간 생각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으아악-
끌어올린 모든 내력을 터트려 몸을 날려 구른다!
데굴데굴데굴-
인간 굴렁쇠가 되어 엄청난 속도로 복도를 구르는 천문석!
이 순간 너무나 익숙한 총성이 터져 나왔다.
“빵야! 빵야!”
* * *
“……!?”
너무나 익숙한 총성!
탓-
바닥을 손으로 때려 벌떡 일어나는 동시에 빙글 돌아가는 몸!
순간 보이고 들려왔다!
그동안 자신이 수많은 적을 낚았던 방법이!
김태희 대령은 손가락 총을 겨누며 다시 한 번 외쳤다!
“사선 확인!”
“빵야! 빵야!”
입으로 총성을 낸 김태희 대령은 마무리로 손가락 총에 훅- 입바람을 불더니 씩 웃었다.
“낚였냐!? 국가 헌병대 지휘관인 내가 사람한테 마탄을 쏠 리 없잖아!?”
크카카카카카칵-
김태희 대령은 배를 잡고 전신을 흔들며 미친 듯이 웃었다.
“…….”
‘뭐지, 이 느낌은?’
배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우며 차갑고, 먹먹하며 어찔한 무언가!
서울 사태 이후 끝없이 사건·사고, 난장판에서 구르며 수많은 강적과 싸웠을 때도 느끼지 못한 ‘무언가’가 지금 느껴졌다!
천문석은 ‘무언가’의 정체를 바로 깨달았다.
무공, 각성력으로 밀려 패배하는 건 괜찮다.
전생에서 현생까지!
싸운 적보다 도망쳤던 적이 몇 배는 많았으니까!
그러나 말싸움, 잔머리에서 밀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천하를 유리걸식하던 전생의 어린 시절부터 가진 자부심이었으니까!
반드시 이긴다!
천문석은 야구 방망이에 구인창의 경력을 담고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김태희 대령! 제대로 붙자!”
“좋다! 얼마든지 와라!”
전생 천마 천문석과 전투 예지 능력자 김태희 대령은 정면에서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