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20화>
빵 빵, 빠아앙-
연속으로 쏘아진 세 발의 슬라임 마탄!
정직하게 정면으로 한 발!
엉뚱하게도 텅 빈 좌우로 한발씩!
납작 엎드리거나 펄쩍 뛰기만 해도 피할 수 있는 단조로운 공격!
그러나 천문석은 깨달았다.
‘함정이다!’
어느새 좌우에 펼쳐진 장갑 진압차 7대의 물대포 포신이 움직이고 있다!
원격 조정!
물대포가 그려내는 사선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천문석은 단숨에 사고 가속 상태로 빠져들었다!
물컹물컹-
슬라임 마탄 세 발이 흔들리며 날아오는 찰나의 순간!
파파파팟-
머릿속에선 사선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뒤로 뛰어 추진력을 얻고 로켓처럼 전진하면!?
-외통수! 다리에 맞고 발이 묶여 연행!
-앞으로 가속! 바닥에 납작 엎드려 썰매 타듯이 돌진하면!?
-장갑 진압차를 뒤로 물리며 사격! 30분 동안 쫓아만 가다가 포위되어 체포!
-그냥 대놓고 굉천수를 터트리면!
-특수부대 전원 강화 헬멧 착용 중! 장갑 진압차 안의 병력에도 소용없다!
섬광 속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슬라임 탄환을 맞고 개같이 멸망!
……
찰나의 순간 수많은 대응책이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된다.
실패, 실패, 실패……!
끝없이 이어지는 실패의 연속!
3할의 내력으로는 전제 조건을 바꾸지 않는 이상 포위망을 뚫을 방법은 없다!
광화문 광장이 난장판이 된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지하게 싸우지 않았다.
여유를 두고 누구도 다치지 않게 허허실실, 우유부단하게 행동했다.
이번 사건이 결국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도록!
마도 18문의 지존 전생 천마가 아닌 대한민국의 청년 헌터 현생 알바로 싸웠다!
단 한 가지만 바꾸면 상황은 반전된다.
마음가짐!
허허실실을 버리고 생사 대적을 상대하듯 진지하게 임하는 것!
십만 마인을 철권으로 짓밟아 통치하던 전생 천마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할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답이 튀어나왔다.
천문석은 결심과 동시에 사고 가속 상태에서 빠져나와 내력을 실어 외쳤다!
[봐주는 건 이제 끝이다! 제대로 상대해 주마!]
음파 폭탄이 터진 듯 대기가 울부짖고 전신의 솜털이 단숨에 일어섰다!
전신이 저릿저릿 울리는 엄청난 외침!
주위를 포위한 국가 헌병대와 헌터 부대!
뒤를 따라 달리는 헌터들!
수천의 각성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순간 정면으로 쏘아진 슬라임 마탄을 향해 나아가며 진각을 밟는다!
쿠우우우웅-
단단한 보도블록이 거대한 북이 되어 요동치고!
콰지지지직-
그 진동을 따라 거미줄 같은 금이 사방 퍼져 나가고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흔들렸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압도적인 위용에 국가 헌병대, 헌터 부대, 각성 헌터 모두가 굳는 순간.
슬라임 마탄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압도적인 위용을 보인 헌터를 슬라임 마탄이 저지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생각대로 슬라임 마탄은 천문석을 막을 수 없었다.
천문석은 번개같이 손을 머리 뒤로 움직였고!
휘리리릭-
어깨에 걸쳐진 남중국 팀장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 슬라임 마탄과 충돌했다!
촤아아아-
이 순간 천문석은 진각을 밟으며 일으킨 반발력으로 뒤로 뛰어!
촤아, 촤아아-
남중국 헌터 팀장을 방패처럼 들어 슬라임 마탄을 막으며 태성 빌딩을 향해 번개처럼 후퇴했다.
“…….”
“…….”
“…….”
어이없어하는 시선과 황당해하는 표정!
천문석은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누른 듯 정적이 내려앉은 광장을 달리며 생각했다.
전생의 마인과 국가 헌병대는 다르다.
국가 헌병대는 자기 일을 하는 것뿐! 마인을 두들겨 패듯 진지하게 싸울 수는 없었다!
“후퇴! 전략적 후퇴다! 태성 빌딩으로 후퇴한다!”
천문석은 크게 외치며 정신없이 달렸다!
* * *
촤아악-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서늘한 감각!
“……!”
흠칫 놀라 번쩍 눈을 뜨는 순간 휙휙 지나가는 풍경!
밧줄에 꽁꽁 묶인 몸과 그 위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점액질!?
“이게 뭐야!?”
남중국 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며 힘을 주는 순간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냐? 각성력 일으키지 마라. 마력 불꽃…….”
“최후식!”
반사적으로 각성력을 끌어올려 힘을 준다!
와드득-
단숨에 끊어지는 밧줄!
그러나 몸통에 달라붙은 점액질은 끊어지지 않는다!
으아악-
다시 한 번 각성력을 일으키며 악을 썼다.
“야, 마력 불꽃! 마력 불꽃!”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콰직, 콰지직-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점액질에서 튀어 오르는 마력 불꽃!
커어어억-
비명이 터져 나오고 팔다리가 경련하며 힘이 빠져 축 늘어진다!
팟-
순간 무언가 날아와 전신을 지지는 마력 불꽃으로 단숨에 날려 버린다!
‘최후식? 이 녀석이 왜 나를 도와주는 거지!?’
의문이 담긴 눈으로 보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야! 계속 온다! 잘 버텨라! 각성력만 안 일으키면 괜찮을 거야!”
“……뭐?”
빵빵, 빠아앙-
터져 나오는 폭발음!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촤아, 촤아아-
몸에 맞고 확 퍼져 나가는 점액질!
“……설마 지금 이거……!?”
천문석은 남중국 헌터 팀장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어, 그거 슬라임 마탄이야. 인체에는 해가 없으니까 걱정 마. 아마도…….”
“야, 이! 방패! 너 지금 나를 인간 방패로 쓰고 있는 거냐!?”
“……아.”
“뭐? ‘아.’ ‘아’라고!? 미친! 야! 나 외교관이다! 당장 날 풀어! 지금 이거 외교 문제야! 미친놈아!”
“외교관? 하-! 특급 헌터 고등어 먹는 소리 하네! 네가 외교관이라고!? 이름은? 직책은? 그래서 어느 나라 외교관인데!?”
“…….”
대번에 말문이 막힌 팀장!
예상대로 단 하나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외교관이면 내가 천마다! 어디서 개구라를! 하-.”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연속해서 쏘아지는 슬라임 탄을 팀장 방패로 막으며 달렸다.
어느새 팀장 방패는 3미터가 훌쩍 넘어간 상태!
이제는 피할 필요도 없이 직선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
사방에서 날아온 슬라임 마탄이 알아서 촤아, 촤아악- 인간 방패에 달라붙었으니까!
“야, 너 괜찮아!?”
이때 한발 먼저 도망친 최후식 이사가 자동차 문짝을 양손에 들고 달려왔다!
“괜찮습니다!”
“다음 계획은!? 이 자동차 문짝 방패로 밀고 나갈까!? 모두 방패를 들면 뚫을 수 있다!”
순간 주위에 귀를 기울인 헌터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문짝, 판자, 테이블 같은 방패를 들고 달리는 헌터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 재들 낚시질하는 겁니다! 방패로 돌입한 순간! 장갑 진압차 뒤로 빼면서 슬라임 탄을 계속 날릴 겁니다! 돌진하면 말라 죽습니다!”
귀를 기울이던 헌터들은 짧은 탄식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문석은 빌딩 입구로 달리며 외쳤다.
“우선 빌딩으로 들어가죠!”
“그래 우선 들어가자!”
천문석과 최후식이 달리는 순간.
국가 헌병대 지휘관의 명령이 들려왔다!
[전 부대 전진한다! 장갑 진압차 저항하는 헌터에게 슬라임 마탄 발사한다! 아낌없이 쏟아부어라!]
구르르르르르-
수십 대의 장갑 진압차가 천천히 전진하며 슬라임 마탄을 연사했다!
빵빵, 빠빠빠빵-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발음!
발당 100만원! 세금이 눈 녹듯이 허공으로 뿌려지고 있었다!
이 모습에서 국가 헌병대의 단호한 결심이 느껴졌다!
반드시 태성 빌딩을 털겠다는 결심이!
‘하, 시바! 어떻게 탈출하지!?’
탄식하며 머리를 굴릴 때 태성 빌딩 입구가 보였다!
들어가고 나오는 헌터들이 뒤엉켜 입구가 막혔지만, 문제없다!
“내가 길 뚫을게!”
자동차 문짝을 방파처럼 들고 전진하는 최후식 이사 레이드 탱커가 있었으니까!
두두두두두둑-
레이드 탱커의 돌진에 헌터들이 튕겨 나가며 순식간에 길이 열린다!
[저기 저놈들! 도망 못 치게 입구에 슬라임 마탄 쏟아부어라!]
빵빵, 빠빠빵-
연속해서 슬라임 탄이 쏟아졌지만, 어느새 5미터가 훌쩍 넘어간 팀장 방패에 모조리 막혔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연속해서 슬라임 마탄에 맞아 5미터가 훌쩍 넘어간 팀장 방패는 빌딩 입구를 통과하지 못한다!
고민은 짧았다!
이야압-
천문석은 기합을 지르며 반전!
부우우우웅-
구인창의 경력을 밀어 넣으며 등에 메고 달린 팀장 방패를 던졌다!
“야! 그럼 이제 작별이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5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슬라임 마탄에 파묻혀 한쪽 팔과 얼굴만 툭 튀어나온 팀장이 하늘을 날아간다!
“최후식……!”
허공을 날아 광장에 충돌하는 순간 튕겨 오른다!
탱탱, 탱탱탱-
탱탱볼처럼 튕기며 광장을 가로질러 전진하는 장갑 진압차를 향해 떨어지는 초대형 슬라임 덩어리!
“이게 왜 날아와!”
“피해! 달라붙는다!”
국가 헌병대 군인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히 피해지만 이미 늦었다!
천문석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슬라임 덩어리 안에 밀어 넣은 구인창의 경력이 폭발했다!
촤아아아아-
거대한 슬라임 덩어리는 결집력을 잃고 물처럼 쏟아져 장갑차와 군인들을 덮쳤다!
“소해 용액!”
“얼른 소해 용액 가져와!”
“사람 말고 장갑차에 먼저 뿌려라!”
“각성력 일으키면 안 된다! 마력 불꽃 튄다!”
“빨리 움직여! 완전히 경화되면 분해 제거해야 한다!”
경악한 외침과 장갑 진압차들이 줄줄이 멈춰 섰다!
그리고 절절한 분노와 억울함이 담긴 외침이 들려왔다!
“최후식! 야! 나 진짜 외교관이라고!”
‘카캬카카카-’
천문석이 내심 웃음을 삼킬 때 최후식 이사는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뭐야? 쟤는 아까부터 왜 자꾸 나를 불러?”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이사님! 위로! 바로 태성 길드로 올라가죠! 분명 다른 탈출로 있을 겁니다!”
최후식 이사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렇지! 당연히 탈출로가 있을 거야! 관리직 직원은 남아 있다! 걔들에게 확인하면 된다! 이쪽이다!”
최후식과 천문석은 단숨에 로비를 가로질러 비상계단을 향해 달렸다!
이 순간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슬라임 탄 제거 정지! 장갑차는 우선 포기한다!]
[전원 집중해라! 드디어 이날이 왔다!]
[태성 빌딩에 숨어 있는 수배자 놈들을 일망타진할 순간이 왔다!]
[수배자 한 명당 걸린 현상금의 3배에 달하는 상점, 감형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곳 태성 빌딩 옥상에 도착하는 선착순 100명에게는 특별 포상이 있다!]
돌연 외침을 멈추고 광장을 돌아보는 지휘관!
최후식 이사를 따라 달리던 천문석은 문득 지휘관을 바라봤다.
유리 벽 너머 수백 미터 거리!
그러나 대번에 눈이 마주쳤다!
지휘관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1년! 태성 빌딩 옥상에 도착한 선착순 100명은 12개월 감형을 약속한다!]
우와아아아-
폭발하는 듯한 환호성이 터지고.
두두두두두-
광장이 요동치고 강화 유리 벽이 진동했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장갑 진압차, 방패 벽 사이사이에서 노역형을 치르는 헌터들이 해일처럼 밀려 왔다!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
망치와 모루!
장갑 진압차, 방패 벽을 세운 정예.
국가 헌병대 체포조와 헌터 부대 특임대.
태성 빌딩 주위를 철통같이 둘러싼 포위망이 ‘모루’.
지금 해일처럼 밀려 오는 헌터들이 ‘망치’!
태성 빌딩에 숨은 수배자들과 우왕좌왕하는 헌터들.
최후식 이사와 자신은 모루에 놓인 ‘검’이다.
모루에 놓인 검을 향해 망치를 내려찍는 상대는 전투 예지 능력자!
마지막 승부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곳은 광장과 다르다.
문득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이는 천장과 벽, 계단과 문!
이곳은 온갖 장애물이 뒤엉킨 거대한 성채 빌딩 안, 자신의 전장이다!
천문석은 전투 예지 능력자, 국가 헌병대 지휘관 김태희 대령을 바라보며 웃었다.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