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09화>
다다다다닥-
번개같이 달리는 특급 헌터!
그러나 특급 헌터는 몇 걸음 달리지 못했다.
하늘에서 휙 떨어진 손이 특급 헌터의 몸을 번쩍 하늘로 들어 올렸다!
으아앗-
기합과 함께 팔다리를 휙휙, 휙휙휙- 움직였지만, 나아가지 않는 몸!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세연 놔줘! 나랑 니케 빨리빨리 가야 한단 말야! 후식이 아저씨랑 알바 도와줘야 해!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니까!”
특급 헌터가 한껏 고개 들어 외치는 순간.
부드럽게 웃으며 끄덕이는 류세연.
“세연! 역시 세연……!”
특급 헌터의 환호성이 미처 끝나기 전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응, 안 돼.”
류세연은 유리 벽 너머를 봤다.
용역 헌터 수십, 수백 명과 정신없이 싸우며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는 최후식 이사!
돌진 대형으로 인파를 뚫는 오리온 길드 헌터들!
[용역 헌터 vs 최후식 이사 + 오리온 길드 헌터.]
이 구도에 구경 중이던 일반 헌터들이 끼어들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들어 주먹을 날리고 각성력을 터트리는 헌터들!
마치 축제가 참가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는 것처럼 패싸움은 규모를 빠르게 키워 가고 있었다!
환호와 탄식!
함성과 기합!
둥둥, 둥둥둥둥-
수백, 수천의 인파가 내지르는 소리에 성채 빌딩의 두꺼운 강화 유리 벽이 북이 된 것처럼 진동하고 있다!
추수가 끝나고 바짝 마른 짚단이 가득한 논에 불을 붙인 것처럼 광화문 거리 전체로 불이 옮겨붙고 있었다!
이 난장판 속으로 옥탑방 오빠가 달려갔다.
그런데 어린 특급 헌터까지 끼어든다고!?
순간 기시감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있었다!
‘절대 안 될 말!’
내심 고개를 젓는 순간 오른손에 낀 반지 두 개가 보였다.
딱 맞는 작은 반지와 헐렁한 큰 반지.
“……괜찮겠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허공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안 괜찮지!”
“안 괜찮다고?”
“응, 응. 응응!”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외치는 특급 헌터.
“세연! 감이 와! 나랑 니케가 도와줘야 해! 안 그러면 파국이야! 엄청난 파국이 와!”
“파국? 그런 단어는 어떻게 안 거야?”
“당연히 지식인의 물어봤지! 나 지식인 등급 엄청 높은…… 앗!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세연 당장 나랑 니케가 출동해야 한다니까! 이대로면 알바 큰일 나! 니케 그렇지!?”
키, 키키킼킼-?
“진짜? 정말로 오빠한테 큰일이 난다고!? 너 저 난장판에서 오빠 찾을 수 있어!?”
“그렇다니까! 얼른 놔줘! 니케가 순식간에 알바 찾을 수 있어! 그렇지. 니케!?”
킥, 키키키킼-!
모자 위, 당당히 외치는 하늘다람쥐!
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특급 헌터가 환호하고 달리려는 순간 돌아온 대답.
“응! 안 돼! 특급 헌터는 아무데도 못가! 크크큭-.”
“…….”
…… -
당황, 불신, 이게 뭐지!
글씨로 또박또박 쓴듯한 표정이 지나가고 괴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왜 고개 끄덕이면서 안 된다는 건데! 그러지 말란 말야! 헷갈리잖아! 안 되겠어! 긴급 사태야! 강제로 출동이야! 니케! 나 데리고 파팟-! 얼른 파팟으로 벽 뛰어넘어!”
키킼 키키킼-
순간 니케는 번쩍 손을 들고 크게 울었다.
타닥, 타다닥
정전기가 튀듯 새파란 불꽃이 튀는 순간.
빙글빙글-
세연의 왼손이 무의식중에 허공에 원을 그렸다.
니케의 몸에서 생겨난 마력 불꽃은 피뢰침에 빨려 드는 번개처럼 세연이 그린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류세연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니케의 머리, 목, 배를 톡, 톡- 두들기고 쓱, 쓱- 문지르더니 눈앞에서 회전했다!
니케의 검은 눈동자는 손가락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했다.
곧 픽- 쓰러져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니케!
“앗, 아앗! 안 돼! 니케 일어나! 여기서 자면 어떡해!? 퐁퐁검! 아니지! 빨리 하늘이어서 깨우면…….”
특급 헌터는 재빨리 하늘을 이으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어느새 세연의 손가락이 겨드랑이 귓가, 목, 등, 발바닥에 닿았다!
쓰슥, 쓰스슥-
세연의 부드러운 손이 스치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몽실몽실, 간질간질한 기운!
우히헤헿히헤헿-
특급 헌터는 웃음이 터져 단숨에 제압됐다!
류세연은 피식 웃으며 왼손을 봤다.
왼손 소지에 끼워진 붉은 구리반지.
붉은 반지에서 살아 있는 생물을 만지는 듯한 맥동이 느껴졌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슴으로 마음으로 느껴졌다.
지금은 옥탑방 오빠를 따라갈 때가 아니다.
자신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류세연은 스마트폰을 꺼내며 옥탑방 오빠가 달려간 골목을 바라봤다.
“그럼 조금 이따가 봐. 돌멩이 오빠.”
* * *
타다다다닥-
천문석은 엄청난 속도로 종로 뒷골목을 달렸다.
윙윙, 위윙윙윙-
톡톡, 톸톡톡톡-
3D 입체 진동과 공간 음향이 울려 퍼지는 스마트폰을 흔들면서!
“야, 내려 줘! 나는 왜 데리고 가는 건데!? 아니, 그 스마트폰이라도 꺼! 쟤들 그 소리 듣고 계속 쫓아…….”
어깨에 걸쳐진 바람잡이가 버둥거리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등 뒤에서 쏟아졌다.
“저기다!”
“찾았다! 이쪽이야!”
“이 소리, 진동! 소리를 쫓아라!”
……
두두두두두-
골목 곳곳에서 쏟아져 나와 전력으로 달려오는 용역 헌터들!
“와! 도대체 몇 명을 고용한 거야!? 없는 곳이 없네!”
바람잡이는 버럭 소리 질렀다.
“감탄하지 말고! 스마트폰 끄라니까! 아니, 내려 줘! 나 내려 달라고! 난 여기서 빠질 거야!”
천문석은 힐끗 바람잡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 진짜로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내려 주면 쟤들이 널 그냥 보내 준다고?”
“…….”
순간 말문이 컥- 막히고 가슴에 돌덩어리가 굴러 와 쿵- 박힌 듯 갑갑해졌다!
고용주가 NTM_CHS을 찾기 위해 들인 엄청난 돈과 노력!
게다가 자신은 이미 NTM_CHS, 이세기를 아는 사람이라고 용역 헌터 앞에서 말해 버렸다!
당연히 고용주에게 보고가 올라갔을 거고 자신도 타겟이 됐을 거다!
광화문 광장에 수천명의 용역 헌터를 깔 정도의 재력과 권력을 가진 고용주의 타겟이 된 거다!
고용주의 타겟에서 벗어날 방법은 한 가지뿐.
이세기, NTM_CHS가 고용주에게 잡혀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바람잡이는 힐끗 이세기를 봤다.
순식간에 포위망을 뚫더니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끝없이 알림음을 토해 내는 스마트폰을 흔들며 복잡하게 얽힌 골목을 달리는 이세기!
이세기는 자신을 어깨에 걸친 채로 4, 5블록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런데도 용역 헌터들은 이세기를 잡기는커녕 속도조차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세기는 절대 못 잡는다!’
신동대문 난장판에서 이미 겪었다!
이세기 이 미친놈은 삼합회, 야쿠자, 칠성파 대형 조폭 길드 셋을 입만 가지고 박살 내고!
신동대문 중앙 광장에서 1세대 헌터 염동력자 마혁진과 깃발전까지 벌인 놈이다!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홀리는 말빨!
1세대 헌터와 깃발을 꽂고도 버티는 실력!
말빨과 실력도 대단하지만, 이세기의 진정한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무 맥락 없이 깃발전 중인 광장에서 튀어나온 거대 괴수!
거대 괴수에 휩쓸린 마혁진! 이태성 길드장에게 찍히고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1세대 헌터 마혁진이 거대 괴수에 휩쓸려 실종됐고!
신서울과 신동대문을 잇는 지하 터널이 생겨나 신동대문 부동산을 팔고 떠난 사람들이 망했다!
게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헌터 부대 감사팀에 걸려 자신의 길드와 신동대문 헌터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여기에 더해 그 전에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까지!
자신이 아는 것만 한 번도 아닌 네 번이다!
이성이 아닌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이세기 이놈과 얽히면 망한다!
당장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힐끗 뒤를 보자 살기등등하게 쫓아오는 용역 헌터들이 보였다!
이세기에게서 도망쳐도 용역 헌터들에게 잡히면 있지도 않은 정보를 토해 내야 한다!
이 일이 이세기가 얽힌 것을 알았다면 절대 이 일에 끼어들지 않았을 텐데!
‘미친놈! 그냥 직선으로 달렸으면 벌써 도망…… 어!’
내심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바람잡이는 깨달았다.
4, 5블록! 이세기는 같은 장소를 계속 돌고 있다!
알림음을 토하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잡힐 듯 말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설마!’
불현듯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장마철 홍수처럼 골목, 건물에서 쏟아져 나와 뒤를 쫓는 용역 헌터들!
처음 보다 그 수가 수십 배로 늘었다!
당연했다!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니까!
이 순간 깨달았다.
이세기 이 녀석 일부러 용역 헌터들을 끌어모아 달리고 있다!
‘도대체 왜!?’
의문을 품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눈치챘지?”
“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세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천으로 가린 얼굴 위 반짝반짝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세기!
이세기의 반짝이는 눈을 보는 순간 바람잡이는 얼어붙었다.
신동대문 난장판!
말빨에 홀려 신동대문의 난장판. 그 불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들어갈 때와 같은 눈빛이다!
그리고 천천히 열리는 입!
‘악마의 속삭임이 튀어나온다! 절대 들어선 안 된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으려는 순간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안전 호텔 본점에서 일해 볼 생각 없냐?”
안전 호텔.
안전 호텔?
안전 호텔!
……
머릿속에서 종을 치듯 울려 퍼지는 소리!
온갖 도망자, 수배자, 현상범을 보호하는 안전 호텔!
신분증을 만들어 주고 엄청난 거물이 뒤를 봐줘서 더는 원한과 추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 안전 호텔 본점!
안전 호텔에서 일하면!
이제 전도하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
국가 헌병대에 잡혀 던전 노역장에 처박힐 걱정도 없다!
마침내 도망자 생활이 끝나고 정착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
찰나의 순간 떠오른 수많은 장밋빛 환상이 폭풍처럼 머리를 휩쓸었다!
악마의 속삭임에 홀리지 않겠다고, 절대 듣지 않겠다던 철석같든 다짐은 어느새 스르륵 무너졌다!
아니, 이건 악마의 속삭임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지옥에서 만난 지장보살이다!
이세기는 재앙이 아니라 구원자다!
바람잡이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구원자에게 물었다.
“이세기님.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뭐든지 말해 주십시오!”
바람잡이의 열의로 이글거리는 눈동자!
천문석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돼.”
“네? 지금 뭐라고……?”
“저기 용역 애들이 알아서 할 거거든. 넌 그냥 이렇게 말하면 돼.”
천문석은 뒤를 쫓는 용역 헌터를 가리키며 바람잡이 목소리를 흉내 냈다.
“NTM_CHS에 대한 정보가 있어요! 급합니다! 빨리! 빨리 고용주에게 ‘직접’ 전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