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06화 (90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06화>

기운이 맑다고?

‘뭐지? 이 익숙한 멘트는!?’

천문석이 멈춰 서는 순간 빠르게 이어지는 이야기.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게 조상님이 공덕을 많이 쌓으셨나 봐요! 잠시만 이야기 좀 나눌까요? 저희 길드가 지금 확장 중이라 아주 좋은 제안을 드리고…….”

어디선가 들었던 내용!

게다가 목소리까지 익숙하다!

기시감에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으며 한 걸음 다가오는 상대.

틀어 올린 쪽 머리.

블라우스에 H라인 스커트.

목에 걸린 출입증 카드 목걸이.

광화문에서 흔히 보이는 직장인 차림, 단정한 인상의 여성 헌터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 같은데…… 왜 이리 낯이 익지!?’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여성 헌터는 힐끗 뒤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헌터님 관심 있으시구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우리 길드는…….”

‘뒤?’

여성 헌터의 시선이 향했던 곳을 보자 스마트폰을 든 용역 헌터 3인조가 보였다!

순간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됐다.

‘눈앞의 여성 헌터는 현피 상대를 찾는 용역 헌터가 고용한 바람잡이다!’

광화문 광장은 성채 빌딩이 즐비한 곳!

당연히 거물 헌터들도 잔뜩 있다!

용역 헌터 놈들은 혹시 모를 불똥이 튀는 걸 막으려고 바람잡이 겸 몸빵을 세운 거다!

어이없게도 몸빵으로 세운 용역 헌터가 다시 한 번 몸빵을 세웠다!

하청에 재하청을 반복하는 건설 회사처럼!

정체를 파악한 천문석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리려는 순간 바람잡이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원래 처음 가입하면 아이언 등급에서 시작하는데. 지금은 특별 가입 기간이라 지금 가입하면 실버 등급으로 시작…….”

이 멘트를 듣는 순간 벼락 치듯 눈앞의 바람잡이 헌터가 누군지 떠올랐다!

그리고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야기.

“신동대문! ‘도를아십니까’ 길드!?”

“…….”

매끄럽게 이어지던 말이 멈추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어. 어? 어! 너, 너너!”

핏기가 사라져 하얗게 질린 얼굴!

말문이 컥- 막혀 이어지지 않는 목소리!

바람잡이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얼어붙었다!

천문석은 바람잡이의 어깨를 툭 쳤다.

“와! 너 이제 좀 먹고살 만한가 보다! 깔끔한 정장! 신동대문 때 거지 같은 전투복보다 훨씬 보기 좋네! 혹시 플래티넘 회원 승급했냐?”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렸고.

“…….”

바람잡이는 멍하니 앞에서 웃고 있는 헌터를 바라봤다.

카캬카카캌-

수천, 수만 번! 꿈속에서 들었던 웃음소리가 현실에서 들려오는 순간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

단숨에 얼어붙은 몸이 녹아내리고 목소리가 트였다!

“이세기!”

“너 내 이름 기억하고 있었구나!”

이세기의 얼굴에 떠오른 반가움!

순간 반사적으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신동대문! 신동대문 난장판! 네가 일으킨 그 난장판 때문에 우리 길드가 어떤 개고생을 했던 줄 알아!”

으아아악-

* * *

으아아악-

단정한 직장인 차림으로 괴성을 지르며 미친놈처럼 달려드는 바람잡이!

‘뭐야, 이녀석 갑자기 왜 달려들어!?’

완전무장한 레이드 탱커의 기습공격도 맨몸으로 맞받아친 게 자신이다.

대놓고 달려드는데 당할 리가 없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팔을 낚아채는 동시에 발목을 후렸다.

으악-

비명과 함께 휘리릭- 공중에서 3바퀴 회전해 떨어지는 바람잡이!

보도블록에 처박히기 직전 잡은 팔을 낚아채 일으켜 세웠다.

“놔! 이거 놓으라고! 빌어먹을 젠장! 으아악!”

“뭐야, 이 녀석? 너 왜 그래?”

순간 의아해하는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아는 사람이야!?”

“삼촌? 무슨 일이야? 그 여성분은 왜?”

“아 별거 아냐. 뒤로! 아니 재금 빌딩 안에서 잠시 기다려. 전에 잠깐 얽혔던 다단계 사기꾼…….”

“다단계 사기꾼 아니라니까! 네트워크 마케팅은 마케팅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마케팅…….”

천문석은 말을 끊었다.

“겸. ‘도를아십니까’라고 사이비 겸. 헌터 길드도 같이 하는 녀석들이야. 그러고 보니 너희 진짜 정체가 뭐냐? 다단계, 사이비, 헌터 길드?”

다단계 + 사이비 + 헌터 길드!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란 말인가!?

“너희 요즘도 그러고 다니냐?”

천문석이 황당한 눈으로 보자.

순간적으로 말문이 컥- 막힌 바람잡이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열심히 먹고 살려는 사람을 왜 괴롭혀! 너 때문에 우리가 신동대문에서 얼마나 개고생한 줄 알아!?”

“뭐?”

“우리 길드 신동대문에서 쫓겨났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너! 네 계획대로 움직였다가 온갖 고생을 다 했단 말야…….”

바람잡이가 본격적으로 감성을 팔려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어디서 개수작을! 이거 왜 이래! 개고생!? 하-! 너희가 개고생했다고!? 진짜 개고생! 개개개고생 한 건 바로 나야!”

“뭐……?”

“야! 솔직히 너희는 소문만 퍼트렸지! 결국, 삼합회! 야쿠자! 칠성파! 걔네들 전부 누가 처리했어!? 나야 나! 결국, 내가 다 처리했잖아! 기억 안 나냐! 신동대문 광장에서 내가 염동력자 마혁진이랑 깃발 꽂은 거! 마혁진 미친놈이 염동포탄 비 오듯 쏟아붓는 광장에서 미친 듯이 구른 게 나야! 그리고 그걸로 끝났냐? 그때 광장에서 거대 괴수 튀어나와서 뒤질뻔했어! 이게 어디서 진짜 개고생 사람 앞에서 감성팔이를 해! 하, 이 녀석- 딱밤 마렵네!”

폭풍처럼 말을 쏟아붓고 손가락을 딱- 튕기는 순간.

쿵-

북을 치듯 요동치는 대기!

바람잡이는 흠칫 놀라 부르르 떨었다.

채찍과 당근!

신동대문 때와 같다!

길거리 홍보 중에 이세기 놈에게 잡혀 사무실로 이동!

빌어먹을 딱밤에 연신 쥐어박히고!

정신없이 쏟아진 말발에 홀려 이세기의 계획에 한발 걸쳤다!

길드 전체가!

그리고 난장판이 정리된 후 이어진 수사에서 걸리는 바람에 개박살이 나서 신동대문에서 쫓겨났다!

이 모든 게 눈앞의 이세기 이 녀석 때문이었다!

다시 만나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는데…….

몇 번 말을 주고받자마자 말문이 막히고!

손을 딱, 딱- 튕길 때마다 오금이 저렸다!

잠시 잊고 있었다.

‘다단계 + 좋은 말씀 + 헌터 길드 시스템’ 이걸 모두 융합한 길드가 저 말빨에 홀려 망할 뻔했다.

이세기는 말빨, 무력, 감성팔이 모두 먹히지 않는 상대였다!

‘시바, 시바! 빌어먹을 이세기!’

마음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문득 보이는 얼굴들!

어느새 몰려든 인파 너머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보는 용역 헌터들이 있었다!

“……!”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지금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신동대문에서 도망친 길드를 고용한 조직!

광화문 광장과 종로 일대에 수천명의 용역 헌터를 깔 수 있는 엄청난 힘과 재력을 지닌 조직이 자신의 뒤에 있었다!

그 조직과 이세기는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다.

자신은 일개 고용인, 불똥이 튀는 걸 막는 몸빵일 뿐 그 조직을 움직일 힘도 없었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단 한마디만 외치면, 이세기 놈에게 복수 할 수 있다!’

바람잡이는 바로 소리치려다가 멈칫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던 신동대문 난장판!

이세기는 타이머가 고장 난 폭탄이다.

보이는 순간 바로 도망치지 않고 잘 못 얽히면 휩쓸려 개같이 멸망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장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바람잡이는 찰나의 순간 수백 번 고뇌했다.

이때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언니 바닥에서 뭐하는 거야?”

“쉿 보면 안 돼. 다단계, 사이비에 빠져서 그래. 불쌍한 언니야……!”

“……!”

불쌍한 언니야.

불쌍한 언니야…….

불쌍한 언니야…….

……

머릿속에서 같은 문장이 메아리칠 때.

툭- 어깨를 짚는 손길과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잘 좀 하지 이게 뭐냐.”

‘미친놈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마음속에서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 손에 쥐어지는 무언가.

“……?”

문득 시선을 내리니 로또 한 장이 손에 놓여 있었다.

“4등 당첨된 로또다. 그 기운 받아서 열심히 살아.”

툭, 툭-

어깨를 두 번 두들기고 멀어지는 이세기.

“…….”

순간 깊은 자괴감이 밀려 왔다.

자신을 완전히 잊고 있던 이세기가 아무렇지 않게 로또를 건네주며 열심히 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갑작스러운 현타에 멍하니 로또를 보고 있을 때 위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길드를 몸빵으로 고용한 용역 헌터.

바람잡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는 헌터예요. 찾고 있는 그 사람 아니에요.”

“하- 이게 건방지게 어디서!”

“우리가 찍어 주면 넌 확인이나……!”

용역 헌터들이 위협하듯 외치는 순간 멀어지던 이세기가 우뚝 멈춰 서더니 빙글 몸을 돌려 뛰어왔다.

“저…….”

방금과 달리 쭈뼛쭈뼛- 망설이는 모습.

“……왜?”

“내가 실수를 좀 했는데…….”

“실수?”

‘이 녀석 사과하려는 건가!?’

깜짝 놀라 집중하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아까 로또 말야…….”

“이 로또? 이건 왜?”

팔랑팔랑 흔들리는 로또 용지.

“어, 맞아. 미안한데. 그 로또 이거랑 바꾸면 안 될까? 무심결에 그걸 줬네.”

이세기가 내민 손에 쥐어진 5만원권 지폐.

“…….”

문득 시선을 돌려 로또를 보니 동그라미가 쳐진 번호들이 보였다.

[5, 7, 8, 35]

[5, 7, 8, 35]

[5, 7, 8, 35]

[5, 7, 8, 35]

[5, 7, 8, 35]

한 줄마다 처진 동그라미 4개. 4등 당첨 5개가 나온 로또 용지.

5만원 x 5=25만원.

이세기의 손에 들린 5만원권 지폐.

25만원 vs 5만원.

하, 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오자.

하하, 하하하-

따라 웃는 이세기.

“그럼 바꿔 간다. 이런 실수를 미안하다! 하하-.”

이 순간 바람잡이는 폭발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녀석에게 감동 받았다니!

“야, 이 쌍- 그게 지금 할 말이냐! 당장 내 감동 물어 내!”

번개같이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윙-

진동과.

톡-

알림음이 울렸다.

이세기의 주머니에서.

“…….”

바람잡이는 알 수 없는 직감에 고개를 돌렸다.

인파 사이에 숨은 용역 헌터는 경악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용역 헌터의 손이 스마트폰을 터치했다.

윙, 톡-

그 즉시 이세기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과 알림음!

“어? 재부팅 끝났나 보네?”

이세기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순간.

용역 헌터 셋이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터치했다.

윙, 윙, 윙-

톡, 톡, 톡-

연이어 진동과 소리를 토해 내는 스마트폰!

“뭐야? 무슨 알림이 이렇게 많이 왔어?”

이세기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경악한 시선이 하나둘 사방에서 날아오고 다급히 스마트폰을 누르는 손길이 이어졌다!

윙윙, 윙위위윙-

톡톡, 톡톡톡톡-!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

천문석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이 감각!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바람잡이!

그리고 인파 곳곳에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용역 헌터들!

“……!”

“……?”

“……!?”

용역 헌터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익숙한 감각의 정체를 깨달았다.

옷에서 튀어나온 재봉실.

이 실을 잡아당기면 올이 풀리듯!

줄줄이 이어지는 사건·사고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뭔지 몰라도 당장 튀어야 한다!’

결심과 동시에 머리를 굴리는 순간.

바람잡이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졌다.

“너, 너! 설마! 네가 헌터 나라! NTM_CHS! 그게 너였던 거야!?”

“……!”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상상조차 하지 못한 질문!

‘이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아!?’

천문석은 조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언제나 준비 상태인 천문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결백 그 자체인 순도 99%의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구라의 달인이 펼치는 혼신의 연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윙윙, 위윙위이윙-

톡톡, 토토토톸톸톸-

완벽하게 수리된 스마트폰은 세연이 장담한 대로 3D 입체 진동, 공간 음향으로 헌터 나라 메시지 수신을 넓고 멀리 알렸으니까!

‘구라다!’

‘저건 구라다!’

‘완벽한 구라닷!’

……

10. 17, 30, 52, 83, 113……!

용역 헌터뿐만 아니라 일반 헌터와 구경꾼까지 쏟아지는 시선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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