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05화>
“하, 시바…… .”
문득 시선을 돌려 골드바를 보는 순간 무심코 흘려버린 단서들이 뇌리를 스쳤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한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던 한경석.
-뉴스에 보도된 종로 귀금속 거리 금 품귀현상.
-사라진 최후식 이사의 레이드 장비.
이 모든 단서를 하나로 잇는 결론!
한경석은 5관 금괴가 가짜인 걸 알아채자 최후식 이사의 레이드 장비를 금으로 바꿔 골드바로 제련했다!
천문석이 깨닫는 순간.
최후식 이사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챘다.
“한경석…….”
“경석이 녀석…….”
두 사람은 동시에 탄식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결정적인 한가지가 빠져 있었다.
‘왜?’
한경석은 ‘왜?’ 가짜 금괴를 진짜 골드바로 바꿔치기했을까?
순간 천문석과 최후식 이사의 시선이 마주치고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같은 단어, 같은 대답이 떠올랐다.
‘친구.’
‘친구.’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경석은 ‘친구’가 실망할까 봐 말도 없이 가짜 금괴를 진짜 골드바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한두 개도 아닌 30관, 112.5kg의 금괴 전부를 1kg 골드바 112개로 제련한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해결방법이다.
그러나 천문석과 최후식은 이게 진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일을 한 사람은 암살검 한경석이었으니까.
“…….”
“…….”
천문석과 최후식 이사 두 사람이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하- 경석 언니…….”
같은 사실을 깨달은 류세연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고.
특급 헌터는 씩씩하게 외쳤다.
“알바! 이 안에 알바 금괴 더 있어! 니케가 찾았데! 내가 꺼내 올까!?”
“……괜찮아. 특급 헌터.”
“진짜로? 이 안에 4개나 있는데!? 알바 금괴 엄청 좋아하잖아!?”
천문석은 반 토막 난 금괴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가짜 금괴야.”
“가짜 금괴라고? 가운데 하얀 심지 있어서 완전 예쁜데!? 이게 진짜로 가짜 금괴라고!?”
깜짝 놀라 외치는 특급 헌터.
이 모습을 보자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 이건 가짜 금괴다!
‘이걸 가져오느라 그 고생을 했다니!’
하-
절로 탄식이 터지고 이 가짜 금괴를 빼내려 했던 개고생이 떠오른다.
적염성 강 위 수백척의 배가 뒤엉켜 불타는 난장판.
불타는 적월 상단 기함의 금고실! 거기서 금괴 10상자나 빼내려고……!
아차!
천문석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금괴 10상자!”
그렇다!
자신이 빼낸 금괴 상자는 10상자다!
지구로 가져온 금괴는 한 상자뿐!
남은 9상자는 이상 던전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나눠 줬다!
데이몽, 소니아, 우론!
아카린, 섬초!
자신의 금괴만 가짜일 리 없다!
자신과 같이 정신없이 굴렀던 동료들에게 주고 온 적월 상단의 금괴 궤짝들!
그 궤짝에 담긴 5관 금괴도 모두 가짜다!
‘이런 젠장!’
적월 상단 미친놈들이 가짜 금괴로 그 난장판을 만들었던 거다!
당종 상단주! 그 녀석 처음 볼 때부터 어쩐지 사기꾼 냄새가 났었다!
눈앞이 핑 돌고 현기증이 확 올라왔다.
가짜 금괴에 휩쓸린 건 지구의 경석이뿐만이 아니다!
이상 던전 안 동료들까지 가짜 금괴에 휩쓸렸다!
순간 동료들의 황당해하는 얼굴과 외침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세기 대인……?’
‘가짜 금괴? 미친놈아!’
‘시바, 시바! 시바아앗!’
‘내 양조장의 꿈이! 으아악-’
‘엄마 찾으러 가야 하는데. 가짜 금괴라고!?’
……
대상인의 꿈을 꾼 데이몽 발도!
돈이 떨어져 차력 약장수를 하던 소니아!
홀로 접시 돌리기를 보여 주던 우론!
양조장 차리는 게 꿈인 과수원 주인 아카린!
엄마 찾아 가출했던 섬초!
너무나 생생하게 귓가에 맴도는 동료들의 절규!
지구의 한경석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몽, 소니아, 우론, 아카린, 섬초는 방법이 없다!
이상 던전은 사라졌고 동료들과 다시 만날 방법은 없었으니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한가지뿐이었다.
진심으로 동료들의 행운을 빌어 주는 것!
‘미안하다. 친구들! 나도 눈탱이 맞았다! 가짜 금괴! 절대 내 본의가 아니었다! 꼭 목적을 이뤄라!’
이 말도 안 되는 우연과 황당한 불운이라니!
천문석은 마음으로 외치며 결심했다.
이제 금괴, 로또, 대환단 같은 일확천금은 노리지 않는다!
김철수 사무실!
급격히 성장 중인 김철수 사무실에 집중한다!
벽돌 한 장, 시멘트 한 포대까지!
김철수 사무실에서 차근차근 번 돈으로 건물을 올린다!
‘이제 하늘님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맹세하는 순간.
특급 헌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알바! 집에 알바 허리 가방에도 금괴 있잖아! 그건 진짜일지도 몰라!”
당종 상단주와 대면했을 때 받은 금괴!
그 사기꾼 놈이 그럴 리가!
천문석은 단호히 대답했다.
“나 오늘부터 금괴 끊었다!”
* * *
최후식 이사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너 진짜 괜찮냐?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확실히 정해지면 그때 돌려줘도 괜찮다…….”
하아-
최후식 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슬픈 얼굴로 골드바가 담긴 가방을 바라봤다.
“이 골드바를 받아도 극검의 왕관, 칠채 마력 팔찌는 돌아오지 않아…….”
천문석은 최후식 이사의 말을 바로 이해됐다.
1티어 레이드 탱커용 아이템은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상급 던전, 마경으로 갈수록 탱커의 요구 조건은 엄격해진다.
딜러의 실력이 처지면 공략 시간이 길어지지만, 탱커의 실력이 부족하면 파티 전체가 박살 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탱커의 능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은 가격과 수요 모두 높았다.
지금 당장 골드바 112개를 회수해도 극검의 왕관과 칠채 마력 팔찌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즉, 최후식 이사의 말대로 한경석을 찾고 어떻게 된 건지 실체적 진실을 확인한 후에 골드바를 넘겨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천문석은 112개의 골드바를 바로 돌려줬다.
이건 최소한의 성의이자 예의였다.
사고를 친 건 한경석이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건 가짜 5관 금괴를 건넨 자신에게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최후식 이사에게 다시 가방을 내밀며 웃었다.
“이사님. 그럼 거꾸로 하죠.”
“거꾸로?”
“이사님이 우선 이 골드바 보관하셨다가. 경석이 돌아오고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지면 소유권을 정하는 거로요.”
“…….”
최후식 이사는 가방과 천문석을 번갈아 보다가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고맙다.”
“네?”
어깨를 툭 치며 웃는 최후식 이사.
“경석이랑 친구 해 줘서 고맙다.”
“…….”
“이 골드바는 경석이 돌아오고 확실해질 때까지 내가 잠시 맡아 두고 있을게. 입구 CCTV 돌리고 추적 시작하면 금방 찾을 거다. 혹시 너한테 경석이 연락 오면 삼촌 별로 화 안 난 것 같다고 꼭 말해 주고. 잠깐. 연락처 줄게. 어, 내가 스마트폰을 어디에 뒀더라…….”
“전에 연락처 주셨습니다. 걱정 마세요. 경석이한테 연락 오면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 숙이고 외쳤다.
“이제 집에 돌아가자!”
“후식이 아저씨 안녕! 나중에 봐!”
구석 구멍에서 파파팟 기어 나와 손을 휙휙 흔들고 달려오는 특급 헌터.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류세연.
천문석, 특급 헌터, 류세연 세 사람은 재배실을 지나 김철수 사무실을 거쳐 복도로 나왔다.
가벼운 걸음으로 경쾌하게 복도를 걷는 천문석.
“…….”
“…….”
말없이 뒤를 따르던 특급 헌터가 툭 다리를 건드렸다.
“응? 왜?”
“……이거 줄까?”
특급 헌터는 벨벳 주머니를 내밀었다.
경석이가 만든 황금 펜던트 이름표가 담긴 주머니.
“이름표? 경석이가 너한테 준 선물이잖아? 그건 왜?”
“생각해 보니까 친구들 이름표 하면 갑갑할 것 같아. 니케 그렇지?”
킥, 키키킼-!?
모자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냐! 내 말이 맞다니까! 알바 받아! 이거는 진짜 금이야! 알바 줄게!”
특급 헌터는 환하게 웃으며 휙휙 손을 흔들었다.
순간 스마트폰을 두들기던 류세연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삼촌! 언니가 준 반지 두 개니까. 하나 삼촌 줄게! 이 반지는 진짜 금에 보석까지 박혔어! 엄청 비싸! 손 내밀어! 내가 직접 끼워 줄 게!”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특급 헌터와 류세연.
두 사람의 마음이 잡힐 듯 느껴지는 순간.
묵직하게 가라앉던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어깨를 짓누르던 112개의 골드바 전부를 최후식 이사에게 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건 아니다.
자신에게는 가짜 금괴를 모른 척 진짜로 바꿔치기해 건네주는 친구, 암살검 한경석이 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건네주는 특급 헌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름 주워 먹으려는 류세연이 있었다.
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두 사람의 내민 손을 밀어냈다.
“야! 나 로또 3등 된 사람이야! 그리고 김철수 사무실 지분, 나랑 철수형이랑 같아! 골드바?”
풉-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당당히 외쳤다.
“1kg 골드바 112개는 아무것도 아냐! 이대로 사무실이 성장하면! 1, 2년 안에 건물 올린다!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아! 집에 가는 길에 삼겹살 사 가자! 내일부터 출근이니까! 오늘 저녁은 삼겹살 구워 먹는 거다! 아 저기 엘리베이터네!”
천문석은 성큼성큼 복도를 지나 벽을 훑으며 당황했다.
“어, 여기 엘리베이터 버튼 어디 갔지!? 뭐야!? 갑자기 엘리베이터 버튼이 없어졌어!”
“…….”
“…….”
황당하게도 비상계단 입구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찾는 천문석.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시선이 마주치고 두 사람은 마음으로 대화했다.
‘알바가…….’
‘오빠가…….’
‘완전 안 괜찮구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구나!’.
* * *
재금 빌딩 1층 로비.
류세연은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외쳤다.
“다 했다! 끝났어!”
“이제 끝난 거야? 수고했다.”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스마트폰을 건네는 류세연.
“수리 다 됐고 지금 재부팅 중이야. 앱이랑 데이터도 전부 살렸고. 안에 들어가는 진동 모터하고 스피커도 내가 만든 거로 바꿨어! 진동이랑 소리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3D 입체 진동, 공간 음향을 느낄 수 있거든. 재부팅만 끝나면 사용 가능해!”
“고맙다. 그럼 바로 집에 가자.”
세연 어깨를 툭 두들기며 몸을 돌리는 순간 성채 빌딩 앞에 가득한 인파가 보였다.
“뭐야?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잖아? 아직도 깃발 안 꽂은 거야!?”
“저 정도면 버스도 안 들어오겠는데?”
세연의 말대로다.
어느새 인도뿐 아니라 차도에까지 사람이 넘쳐 흘렀다.
이 정도 인파가 모였으면 안전사고 때문에 버스뿐 아니라 지하철도 정차하지 않을 거다.
“안 되겠다. 아까처럼 종로 쪽으로 빠져서 버스 타야겠다. 세연! 특급 헌터 잘 챙겨서 따라…… 어, 특급 헌터는?”
문득 주위를 살피자 등을 보이고 쪼그려 앉아 벗은 모자를 보고 있었다.
“쟤는 저기서 뭐하는 거야? 야, 특급 헌터!”
성큼 다가가자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휴- 큰일 날뻔했어! 후식이 아저씨가 깜빡깜빡해서 완전 다행이야! 니케 앞으로는 조심하란 말야! 그렇게 아무나 막 물면 고소당해! 보물 도토리 찾기도 전에 감방 간단 말야! 한국에서는 그래서는 살아남지 못해! 용의주도! 정정당당! 고독하고! 은밀하게!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
엉망진창 코치가 이어지고.
모자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킥, 키킼-!
니케!
그러고 보니 니케가 최후식 이사를 물었던 일이 운 좋게도 얼렁뚱땅 넘어갔다!
‘하- 꼬맹이 녀석!’
천문석은 슬쩍 말을 걸었다.
“너 지금 뭐 하냐?”
파파팟-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모자를 쓰고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응? 알바 왔어?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세연을 봤다.
“세연아. 특급 헌터 챙겨라. 밖에서 잘못하면 미아 되겠다.”
“알았어! 걱정 마!”
세연이 대답하는 동시에 당당히 외치는 특급 헌터.
“알았어! 걱정하지 마! 세연! 얼른 내 손 잡아! 사람 많으면 위험해! 미아 되면 큰일 나!”
특급 헌터는 류세연의 손을 꼭 잡고 앞장섰다.
“야, 내가 앞에서 길 열어야지! 너희는 뒤에서 따라와라.”
“앗! 그런 게 어디 있어! 불공평하잖아 나도 앞에서 길 열고 싶단 말야!”
“크크크- 꼬맹이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란다!”
천문석은 악당 같은 웃음과 함께 로비를 가로질렀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몸과 마음 모두가 가벼워진 상황!
하지만 괜찮다!
오늘 재금 빌딩 13층에서 미래의 비전을 봤으니까!
임옥분 농업 법인의 감귤 유통권!
금성 길드의 허무인 길드장과의 미팅!
김철수 사무실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 중이다!
하늘님의 도움은 필요 없다!
이제 로또, 금괴, 환몽 같은 요행은 모두 끊는다!
김철수 사무실에 올인해 스스로 건물주가 되는 거다!
“잘 따라와라!”
심기일전!
천문석은 당당히 재금 빌딩 출입구를 지나 광화문 거리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순간 생각지도 못한 탄성이 들려왔다.
“와, 정말! 기운이 맑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