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02화>
“와!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골목에서 대로로 나오는 순간 바다가 펼쳐지듯 나타난 인파!
지금까지 지나온 종로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금 빌딩 앞 광화문 광장과 그 일대는 현피 상대를 확인하는 용역 헌터와 싸움 구경 온 헌터와 일반인, 취재진, 유튜버들로 가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리 곳곳에 놓인 매대들!
솜사탕과 핫바, 달고나 같은 먹거리와 가면, 경광봉, 부부젤라까지 잡다한 소품을 파는 노점상이 쫙 깔렸다!
핫바와 솜사탕을 먹고 부부젤라를 불면서 기대로 번뜩이는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사람, 사람, 사람들!
평소에도 붐비던 광화문 거리는 어느새 할로윈 이태원 거리처럼 변했다.
인파가 말 그대로 파도치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재금 빌딩 앞도 마찬가지!
재금 빌딩으로 이어진 인도에는 사람과 매대, 불법 주차한 차와 바이크가 가득했다!
“알바! 길 막혔어! 내가 친구 부를까!? 냠냠이 불러서 데리고 들어가달라고 할까!?”
냠냠이는 미등록 각성 고양이!
냠냠이가 나타나 공간이동을 하는 순간 지금보다 더한 난장판이 펼쳐지게 된다.
“아냐! 됐어! 참아!”
천문석은 세 단어로 대답하고 재빨리 앞장섰다.
“내가 길 열게 특급 헌터! 세연 데리고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와라!”
“알았어! 내가 세연 손잡고 따라갈 게!”
“류세연! 들었냐!?”
“어, 알아들었어!”
여전히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류세연.
천문석은 바로 인파를 밀어내며 길을 열었고 특급 헌터는 류세연의 손을 잡고 재빨리 뒤를 따라 달렸다!
순식간에 길을 뚫고 도착한 재금 빌딩 입구!
“먼저 들어가라! 특급 헌터!”
“알았어!”
다다다다닥-
다람쥐처럼 잽싸게 몸을 숙여 재금 빌딩 입구를 통과하는 특급 헌터와 류세연.
천문석이 안으로 들어가자 보안 직원이 다가왔다.
“13층 김철수 사무실 직원입니다.”
신분증을 보여 주며 평소처럼 설명을 붙이려는 순간 보안 직원은 반색했다.
“아! 김철수 사무실 분이시군요! 귤 잘 먹고 있습니다. 바로 게이트 통과해 올라가시면 됩니다.”
보안 직원은 호의가 가득 담긴 얼굴로 바로 길을 열어 줬다.
‘귤? 이게 뭔 소리야!?’
의아했지만 나쁜일은 아니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 류세연 셋은 게이트를 통과해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으로 올라갔다.
삑, 삑-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도 스마트폰을 두들기는 류세연.
“야. 스마트폰 그만해. 안 급해. 천천히 살려도 돼.”
“아냐 거의 다 됐어. 깔린 앱 복구 중이니까. 1, 20분? 그쯤이면 수리 끝날 거야!”
안전 호텔에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녀석 묘한 데서 고집이 있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복도를 가로질러 김철수 사무실로 걸어갔다.
익숙한 A4지 명패가 붙은 철문이 나오고.
언제나처럼 특급 헌터가 제일 먼저 뛰어들어갔다.
“철수형! 나 놀러 왔어! 안녕안녕안녕! 앗! 내 자리! 그리웠어!”
다다다닥-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달려가 특급 사원 종이 명판이 놓인 부사장 책상을 껴안고.
류세연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올렸다.
“잠시만 컴퓨터 좀 쓸게. 앱 좀 다운받아야 해서.”
“그 컴퓨터 비밀번호…… 어, 잠깐 비밀번호가 뭐더라!?”
하도 밖으로 돌다 보니 사무실 컴퓨터 비밀번호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탁탁탁탁-
그러나 류세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스마트폰을 연결했다!
“야, 내 컴퓨터 비밀번호를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류세연은 말없이 씩 웃었다.
이때 비품이 가득 쌓인 사무실 구석에서 힘없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서류를 한가득 들고 걸어오는 진교은.
“어, 있었네? 말 편하게 해. 김철수 사장님은 오늘도 안 보이네?”
진교은은 묵직한 서류 더미를 쿵- 책상에 내려놓고 털썩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김철수 사장님. 금성 길드, 허무인 길드장 미팅 가셨습니다.”
“금성 길드? 허무인 길드장!?”
천문석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금성 길드는 금성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대형 길드로 급성장한 길드!
허무인 길드장은 한국 헌터 업계의 차세대이자 금성 그룹 오너 일가, 로열패밀리였다!
그런 금성 길드 허무인과 미팅한다고!?
“철수형이 허무인이랑 만나다고!? 왜? 아니지, 어떻게!?”
“사장님께서 금성 길드와 거래 뚫으셨습니다. 김철수 사무실에서 일부지만 마수 부산물 처분을 대행하기로 했습니다…… 하아-.”
“철수형!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이런 대박을!”
이미 재금 그룹, 장강 유통과 거래하고 있지만, 금성 길드를 뚫은 건 커다란 호재였다!
재금 그룹은 추이린 수석 연구원, 장강 유통은 장민 대표의 호의로 거래를 뚫은 반면, 금성 길드는 실력으로 새롭게 뚫은 거래처니까!
이렇게 거래처를 하나둘 넓혀가고 헌터 포인트를 차근차근 쌓으면 길드 설립도 먼 꿈이 아니었다!
“와! 역시 철수형 금성 길드는 어떻게 뚫은 거야!?”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진교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고 계셨어요? 제주도 휴가 왔을 때 같이 만나셨다면서요?”
“같이 만나? 누굴 같이 만나?”
“김철수 사장님이 만나는 분 이름이 허세인이잖아요?”
순간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름.
“금성 그룹! 허세인!”
“네. 금성 길드. 허세인 그분이 소개해 주셨어요. 허무인 길드장이 사촌이라고 하시네요. 아. 그리고 저기 저건 강화영 씨가 주선해 주셨어요.”
“주선?”
진교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무실 구석, 높게 쌓인 박스가 보였다.
[임옥분 농업 법인]
“감귤을 보내 줬다고?”
고개를 젓는 진교은.
“아뇨. 감귤 유통권을 받았어요…… 매주 쏟아질 감귤을 어디에 팔아야 할까요? 분명 여기는 헌터업 사무실인데…… 왜 저는 감귤 판로를 찾고 있는 걸까요……?”
“…….”
“손가락이 노랗게 변할 정도로 귤을 먹고 또 먹는데 줄지를 않아요…… 1층 보안실부터, 급식실, 옥상 헌터 부대까지 귤을 끝없이 돌리는데도 계속계속 귤 상자가 쌓이네요…… 과연 임옥분 여사님. 제주도에 있을 때랑 같아요…… 끝없이 귤을 먹어야 해요…….”
진교은은 책상 위에 놓인 귤을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아, 이래서! 입구 보안 직원이 김철수 사무실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깨달음의 순간 천문석은 문득 고개 돌려 철수형 책상을 바라봤다.
사무실 깊숙한 곳에 놓인 텅 빈 책상.
올 때마다 자리를 비운 철수형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같이 대학을 다니고 알바를 뛴 철수형은 농땡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까.
조별 과제에선 자료조사, 분석, PPT, 발표까지 홀로 끝내는 비운의 에이스고.
알바 현장에선 가장 먼저 와서, 더 무겁고 더 힘든 일을 하고는, 가장 늦게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철수형은 사장님이 되는 순간 한 차원 도약했다!
대리 4인조!
최설과 진교은.
그리고 자신까지!
사무실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김철수 사장님은 해내고 있었다!
새로운 일 거리 찾기!
금성 그룹의 허세인!
임옥분 농업 법인의 강화영!
철수형은 두 사람과 현실판 러그 시그널을 찍으며, 새로운 일 거리를 찾아 김철수 사무실을 급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허세인과 강화영!
집안, 재력, 능력, 외모!
그리고 성격까지 모든 게 상위 0.1%!
평범한 사람은 말을 붙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허세인과 강화영 두 사람이 역으로 철수형에게 대시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한 번쯤은 꿈꿨을 상황!
그러나 허세인과 강화영을 직접 보고 겪은 천문석은 알고 있었다.
허세인과 강화영 두 사람은 평범한 재벌가 아가씨가 아니다!
금성 그룹 오너 일가, 허세인!
임옥분 여사님의 손녀, 강화영!
냉철함! 계획을 세워 용의주도하게 접근하는 허세인!
오직 직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돌진하는 강화영!
생각만으로도 그 모습이 눈에 보였다!
철수형이 허세인과 강화영 두 사람 사이에 껴서 괴로워하는 모습이!
러브 시그널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핑크빛인 이유는 텔레비전 속 예능이기 때문이다!
현실 러브 시그널은 달달한 예능이 아닌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사파리 활극이었다!
사자 허세인.
호랑이 강화영.
그리고 판다 철수형!
철수형은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 끼어 치이는 판다 역할이다!
‘철수형 힘을 내십쇼!’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잘됐네! 다른 사람들은? 대리 4인조는 제주도 내려간 거야? 임옥분 농업 법인?”
“아뇨. 오늘 아침 갑자기 의뢰가 들어와서 나갔습니다. 좀 특이한 의뢰인데 의뢰한 곳 이름이…… 잠시만…… 아!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에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귀에 익은 이름인데…… 특이한 의뢰라고?”
“네. 서울 시내 주요 전광판과 버스, 지하철에 절대 추적당하지 않을 익명 광고를 내는 의뢰하고. 중국어 가능한 인원을 모아 텔레마케터 사무실을 차려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추적당하지 않는 광고? 텔레마케터 사무실?”
뜬금없는 이야기에 반문하자 진교은은 눈을 반짝였다.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바이두, 텐센트에 전방위적인 바이럴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남중국 연방 의회 선거에 한발 걸치려는 생각 같습니다.”
바이럴 마케팅!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번쩍 떠올랐다!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악당 4인조를 감쪽같이 낚았던 바이럴 마케팅!
이 바이럴 마케팅을 했던 정보상이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이었다!
남중국 연방 선거 뉴스가 뜬게 오늘 아침이다!
그런데 벌써 중국 포탈에 바이럴 마케팅을 하고 텔레마케터 사무실을 차리고 있다!
이 결단력과 추진력에 가슴이 절로 웅장해졌다!
바이럴 마케팅으로 대리 4인조를 낚았던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이번에는 더 큰물에서 한국의 바이럴 마케팅 기법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남중국 연방 선거에서!
정보가 아닌 후보를 팔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진교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금 현대 정보 컨설팅 대표는 서울로 오고 계시고. 직원 셋이 남중국 푸젠성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대리 네 분은 광고 알아보러 나갔고, 최설은 사무실 구하고 텔레마케터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 요구한 광고 내용이 특이한데…….”
천문석은 감탄했다.
김철수 사장님부터 대리 4인조, 최설 대리, 진교은 사원까지 모두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지금 놀고 있는 건 휴가 중인 자신밖에 없었다.
천문석은 힐끗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을 봤다.
가방 안에 담긴 1kg 골드바 112개!
‘오늘 안에 골드바 처리하고 월요일부터 출근한다!’
“됐어. 자세한 내용은 내일은 출근해서 들을게. 오늘은 얼른 일 보고 들어가야겠다.”
천문석은 마음의 결정을 하는 즉시 말을 끊고 외쳤다.
“특급 헌터. 류세연! 경석이 공방같이 갈거야?”
“당연히 가야지!”
“어 잠깐만…… 됐어! 다운로드 걸어 놨어. 들어가자!”
* * *
“이건 누가 막아 놓은 거야?”
공방 재배실로 이어지는 문은 비품과 박스, 선반으로 틈 하나 없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앞을 막은 물건들을 치우고 문을 열었다.
순간 문 앞에 나타난 거대한 괴물 선인장!
‘누군가 선인장을 옮겨 놨다!’
“기다려! 나 혼자 들어간다!”
말하는 즉시 바닥에 엎드려 땅을 박찼다!
주르르르륵-
빙판 위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몸!
단숨에 선인장 가지가 뻗은 재배실을 지나는 순간.
팟-
가볍게 바닥을 미는 동시에 일어나 공방 문에 달라붙었다!
소리조차 없는 움직임!
천문석은 바로 공방 문에 귀를 대고 손을 뻗어 짚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인기척도 소리도 없다!
손끝에서 뻗은 내력은 무언가에 막혀 나아가지 못한다!
뒤로 손을 펼치고 류세연과 특급 헌터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
그러나 어느새 재배실 바닥을 파바밧- 기어 와 찰싹, 찰싹 벽에 귀를 붙이는 두 사람!
“……!?”
“……!?”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을 보는 순간 떼어 놓고 가는 게 불가능한 단 걸 깨달았다.
‘쉿-’
입가에 손을 올려 입 모양으로 말하고.
천천히 손을 뻗어 공방 문을 열었다.
부드럽게 문고리가 돌아가고 기이익-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공방 문이 열렸다.
순간 천문석은 공방 안으로 뛰어들어가 휙 주위를 돌아봤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한경석 공방의 벽 철망 뒤!
숨겨진 금고가 활짝 열려 있었다!
골드바와 희귀 금속, 정제 마석으로 가득 차 있던 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