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97화>
키키킼키-!
분노한 외침과 함께 총알처럼 쏘아진 니케!
“……!”
벼락 같은 전율이 흐르고 거대 괴수가 돌진하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 왔다!
찰나의 순간!
천문석은 느려진 시간 속 가속된 사고로 움직였다!
스치기만 해도 끝장이다!
폭풍처럼 단숨에 몰아붙여야 한다!
반사적으로 소파를 빠져나와 내력을 모조리 끌어올리는 순간!
욱씬-
전신을 달리는 통증과 멈칫 멈춰 서는 몸!
‘아차! 환몽 속에서 얻어터진 후유증!’
이 타이밍 니케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형체가 흐릿해졌다.
공간도약!
‘물렸다!’
직감하는 순간 휙- 한발 먼저 니케를 낚아채는 작은 손이 있었다.
“니케!”
-……!
어느새 번쩍 눈을 뜬 특급 헌터가 분노를 터트렸다.
“엄청 재밌는 꿈 꾸고 있었는데! 거의 다! 거의 다 찾았는데! 못 찾고 깼잖아! 니케! 내가 착한 다람쥐 돼야 한다고 맨날 말했지!? 알바는 집주인이란 말야! 물면 어떻게!? 니케가 사고 치면 우리 방 빼야 한단 말야!”
-……
경악으로 얼음처럼 굳어 버린 니케!
그러나 곧 니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손발을 파닥이며 항의했다.
킥, 키키킼키킼키키킼-!
“어?”
분노하던 특급 헌터가 고개를 갸웃하자 사슴이, 반짝이, 창문 너머 탱탱이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도토리?”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머뭇머뭇 말했다.
“알바. 그 도토리. 니케가 말하는데. 자기가 도둑맞은 도토리라는데?”
* * *
“……뭐? 도둑맞은 도토리?”
천문석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문득 시선을 내려 손에 쥔 도토리를 봤다.
‘꿈속 스승님께 받은 도토리가 니케의 도토리라고?’
“말도 안 되는……!”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눈물이 글썽글썽한 어린 하늘다람쥐 니케가 보였다!
다짜고짜 꿈으로 불러 불운을 털어 낸다고 쥐어팬 스승님.
눈물을 글썽이는 귀여운 새끼 하늘다람쥐 니케.
한 사람과 한 다람쥐가 머릿속 신뢰의 저울에 올라갔다.
[스승님 <<<<< 니케]
‘설마……!’
이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스승님이 도토리를 가리키며 했던 말!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얻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천신만고!
그냥 도토리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니케한테 이 도토리를 훔쳤다면 천신만고가 맞다!
귀여운 외모의 새끼 하늘다람쥐 니케!
그러나 니케는 바다의 재앙 용용이조차 한번 물어 기절시킨 각성 동물이다!
‘스승님! 그 천신만고가 니케의 도토리를 훔치느라 한 고생인 겁니까!?’
마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특급 헌터의 미안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내가 절대 의심하는 건 아닌데. 니케가 알바 도토리 한 번만 확인해 보면 안 될까? 니케가 지금 알바한테 엄청 열심히 부탁하는데?”
문득 시선을 내리자 보였다.
꺾일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폭군.
깡패 다람쥐 니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연신 손을 비비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 * *
천문석과 특급 헌터.
사슴이, 반짝이, 창문 너머 탱탱이까지!
모두의 시선이 모인 거실 한 가운데.
니케는 양손으로 도토리를 들고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
-……!
사슴이와 반짝이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부두목 니케를 봤다!
니케 부두목은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이 보물이라고 부를 도토리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께서 세계의 나무를 키우기 위해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태웠을 때 나온 빛!
케페니안의 빛이 담긴 도토리다!
차원 용병, 황금 다람쥐 일족에게 용서는 없다!
특히 그게 케페니안의 빛과 관련된 거라면 더더더 용서는 없다!
저게 진짜 니케 부두목의 도토리로 밝혀지는 순간 거실은 전쟁터가 된다!
니케 부두목과 대두목의 총애를 받는 인간 간의 처절한 격전이 벌어지는 거다!
이때 대두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니케 네 도토리 맞아?”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동시에 번쩍 고개를 드는 니케!
은연중에 내력을 끌어올릴 때.
툭-
니케의 손에서 도토리가 떨어져 내렸다.
-……?
-……?
“……?”
“니케……?”
킥, 키이이-
“에휴- 그러니까 내가 항상 잘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잖아!”
힘없이 대답하고 풀썩 쓰러지는 니케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에휴- 자기 도토리 아니래. 니케가 빛을 담아둔 도토리보다 훨씬! 훠어얼씬! 오래된 도토리래. 니케! 알바한테 사과해야지!”
킥, 키-
킼, 키이-
쓰러진 채로 힘없이 고개를 까닥이는 니케.
“알바. 도토리 받아.”
도토리를 주워 건네는 특급 헌터의 손을 따라 이동하는 니케의 시선.
천문석은 도토리를 받는 즉시 유심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갈색의 도토리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스승님이 사고를, 니케의 도토리를 슬쩍한 게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올 때.
특급 헌터는 쓰러진 니케에게 버럭 소리쳤다.
“니케! 내가 맨날 말했잖아! 잘 알아봐야 한다고! 아무나 물고 다니면 안 된다고! 니케 자꾸 그러다가 장민처럼 무서운 사람 만나면 큰일 나는 거야! 고등어! 아, 그게 아니지…….”
두리번거리다가 현관 옆 화분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앗! 앙꼬 대장 나무! 저 나무에 달린 엄청엄청엄청 쓴 나뭇잎! 저 나뭇잎 맨날맨날 구박받으면서 먹게 되는 거야!”
순간 풀썩 쓰러져 있던 니케가 번쩍 일어나 팔다리를 휘저으며 억울함을 토로하듯 길게 울었다.
킥, 키이이-!
“어……?”
캌키키키킼키키키킼키킼키킼킼킼-!
“아…… 그래서 그랬구나…….”
니케의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질 때.
특급 헌터는 탄성을 터트리며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니케가 뭐라고 했는데!?”
특급 헌터는 슬픈 눈으로 대답했다.
“니케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데.”
“뭐? 사기!?”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거대 괴수와 재앙급 마수조차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니케가 사기를 당했다고!?
“어. 처음 니케 고용한 사람이 의뢰비 안 주고 먹튀 해서 빚쟁이 됐고. 다음에는 집 사려고 열심히! 완전 열심히 보물 도토리 143개 모았는데. 도둑놈이 보물 도토리 전부 훔쳐 갔데. 에휴-.”
특급 헌터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물 도토리 143개?
예상외의 디테일이 담긴 이야기를 듣자 니케의 모습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축 늘어진 털과 힘없이 처진 꼬리.
언제나 초롱초롱 빛나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당당히 사고를 치고 다니던 새끼 하늘다람쥐 니케의 슬픈 모습에서 깊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집 사려고 모아둔 보물 도토리를 모두 날리고 빚쟁이까지 됐다니!
어린 시절부터 빡세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힘을 내라. 언젠가 꼭 잃어버린 보물 도토리 찾아서 빚 다 갚고 집도 살 수 있을 거다!”
천문석은 진심으로 위로했다.
특급 헌터는 니케의 등을 쓱쓱 문지르며 외쳤다.
“힘을 내 니케! 우리 같이 보물 도토리 도둑 꼭 잡자! 알바도 도와줄 거지!?”
“당연하지! 찾기만 하면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붙들게!”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들!
구으으-
띠딛디-
왕, 왕왕-
“좋았어! 모두가 도와준 데! 나도 이 퐁퐁검으로 도둑 마구마구 때려줄게! 힘을 내 니케!”
킥, 키키킼키킼-
니케는 작은 손을 번쩍 들고 용맹하게 울었다!
이 순간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하늘로 치켜들며 선언했다.
“우리는 반드시 니케의 보물 도토리를 찾을 거야!”
킥키키킼-
구으, 구으으-
띠디디딛딛딛-
왕왕, 왕왕왕-
.”우리는 할 수 있다!”
천문석은 함께 함성을 지르며 새삼 감탄했다.
특급 헌터와 동물 친구들!
겉으로 보기에는 꼬맹이와 사슴벌레, 황금 풍뎅이, 다람쥐, 강아지가 맹세하는 별것 아닌 광경이다.
그러나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의 정체는 상상을 초월한다!
구으으-
신동대문 터널을 뚫은 초거대 사슴벌레, 사슴이!
띠디디디-
고유 마법을 사용하는 황금 풍뎅이, 반짝이!
왕, 왕왕-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든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탱탱이!
여기에 보물 도토리의 주인은 바다의 재앙 용용이조차 일격에 기절시킨 악마 다람쥐 니케!
랭커, 대기업, 대형 길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힘!
초거대 괴수도 1초 컷으로 끔살 낼 각성 동물들이 맹세하고 있었다!
니케의 143개의 보물 도토리 도둑을 잡겠다고!
니케의 보물 도토리를 훔쳐 간 도둑의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누가 니케의 ‘도토리 보물 143개’를 훔쳐 갔는지 몰라도 잡히는 순간 처절하고 끔찍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도토리 도둑! 고통 없이 한방에 기절하기를!’
천문석은 정체 모를 도토리 도둑의 명복을 빌었다.
이 순간 기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보물 도토리 143개? 이거 숫자가 희한하게 입에 착 달라붙네? 내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나……?”
생각날 듯 말 듯 간질간질한 뇌리!
천문석은 기억을 되짚으려다 피식 웃었다.
지금 니케가 찾는 건 그냥 도토리가 아니다. 꿈속의 스승님도 천신만고 끝에 얻었다는 보물 도토리다!
그런 보물 도토리 143개랑 자신이 얽혔을 리는 없었다.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 냈다.
이걸로 스승님의 환몽과 니케의 도토리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제 다음 일을 처리할 차례다!
천문석은 빙글 몸을 돌려 소파를 봤다.
소파 위에 엎드려 새근새근 잠든 류세연.
류세연은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는데도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깨워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천문석은 씩 웃으며 외쳤다.
“특급 헌터 출동! 게으른 류세연을 깨워라!”
* * *
“출동! 세연! 해 떴는데 왜 안 일어나! 얼른 일어나! 아침이야! 친구들 세연을 얼른 깨워!”
포그르르-
퐁퐁검에서 물방울이 쏟아지고.
파슥, 파스슥-
사슴이와 반짝이가 등 위를 기었다.
그러나 파들파들- 몸을 떨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류세연!
“알바! 이상해! 세연 누나 깬 거 같은데 안 일어나!”
“니케 잠시만.”
천문석은 니케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킥-?
고개를 갸웃하는 니케를 들어 올려 세연의 귓가를 가져갔다.
스륵, 스르륵-
니케의 솜털 같은 꼬리가 귓불을 간지럽히는 순간.
으으으으으-
이를 악물고 몸을 뻣뻣하게 경직시키면서까지 버티는 류세연!
“아니, 이게 뭐라고 버티는 거야? 하-.”
헛웃음이 터지는 순간 맞닿은 손을 통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니케에게 뜻을 보냈다.
-핥아라!
싸사삭-
니케의 혓바닥이 세연의 귓가를 핥는 순간.
우히헿히헤헿헤-!
류세연은 빵 터져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삼촌! 이건 반칙이지!”
순간 천문석은 잽싸게 소파에 누워 담요를 얼굴 아래까지 덮었다.
“……삼촌?”
“나 어젯밤 꿈에서 너무 힘들었다. 난 좀 쉬워야 해. 세연아 네가 특급 헌터랑 같이 아침 청소해라.”
“뭐? 꿈에서 힘들어? 와 이제는 그냥 입만 열면 자동으로 구…….”
세연은 힐끗 눈치를 살피더니 세 걸음 물러서서 버럭 소리 질렀다.
“와! 이제는 입만 열면 자동으로 구라가 튀어나오네! 아직도 내가 꼬맹인 줄 알아! 누가 그런 거짓말을 믿는다고!? 하-.”
코웃음 치는 류세연.
천문석은 대답하지 않고 특급 헌터를 봤다.
“특급 헌터?”
“난 알바를 믿어! 알바가 꿈에서 힘들었다면 힘든 거야! 나도 어젯밤에 꿈에서 엄청 힘들게 찾아다녔단 말야! 그러니까 아침 청소는 우리 몫이야! 얼른 움직여! 세연!”
다다다닥-
번개같이 달려가 창문을 열고 청소 밀대를 가져와 세연의 손에 쥐여 주는 특급 헌터.
“……말도 안 돼! 그걸 믿는다고!? 넌 지금 삼촌 구라에 속는 거야!”
천문석은 씩 웃으며 손을 들었다.
“믿을지 말지 투표로 정하자.”
“뭐야! 이런 걸 왜 투표로…… 어, 설마!”
순간 세연의 머리를 스치는 기억!
단풍놀이 불고기 김밥 투표 사건!
사람만 천문석에서 류세연으로 바뀌었을 뿐 그때와 같은 상황이다!
“잠깐……!”
세연이 상황을 눈치채고 다급히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비열한 악당 같은 미소를 머금고 손을 번쩍 들었다.
“나 믿는 사람 손!”
“나, 나나나! 난 항상 알바를 완전 믿어!”
“……난 반대야! 완전 반대! 믿을 수 없어! 그리고 삼촌은 이해관계자야 투표권 없어!”
세연이 판을 엎으려 했지만, 지금 이 거실에는 세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특급 헌터의 조직표가 있었다.
구으으-
띠딛디-
왕, 와왕-
킥, 킼키킥-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니케!
“오 대 일! 네 패배다 세연!”
“세연 얼른 움직여! 청소하고 아침 먹어야지! 오늘 일요일이야! 일요일은 재밌는 날이라 다른 날보다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간단 말야! 우리 열심히 빨리빨리 청소해야! 재밌게 놀 수 있어!”
한국에서 제일 성질 급한 꼬맹이 특급 헌터의 외침과 함께 일요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