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93화>
“대대대환단? 이 환약을 아아 비서 누나가 줬다고?”
류세연이 고개를 갸웃하자.
특급 헌터는 신난 얼굴로 말을 쏟아 냈다.
“나 알바랑 같이 던전 놀러 갔잖아! 거기서 노움 형이랑 딱지치기해서 완전 커다란 도시 땄거든! 아아 비서 누나는 나 대신 그 도시 관리하는 아수라 비서 누나야! 나 집에 간다고 하니까. 아아 비서 누나가 선물 엄청엄청 많이 줬어!”
“…….”
짧은 침묵 후 탄성을 터트리는 류세연.
“아, 그렇구나! 딱지치기로 도시를 땄구나! 그 도시 관리해 주는 비서가 대대대환단을 선물로 준거구나!”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
‘특급 헌터! 꼬맹이 녀석! 허풍 좀 치는데?’
류세연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세연! 내가 다른 것도 보여 줄게! 신기한 거 엄청 많이 얻었어! 나와랏! 이야압- 얍얍얍-.”
특급 헌터는 신나서 외치더니 나무 상자를 다시 흔들었다.
툭툭, 후두두둑-
팽이, 고무줄, 유리 조각, 하얀 돌멩이…….
나무 상자에서 계속계속 튀어나오는 잡동사니들!
튀어나오는 물건보다 끝없이 물건을 쏟아 내는 ‘나무 상자’가 오히려 더 신기했다!
‘나무 상자’를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특급 헌터가 단풍놀이 때 맸던 ‘배낭’처럼 공간 확장 마법 회로가 새겨진 상자다!
공간 관련 마법 회로가 깔린 마도구 가격도 가격이지만 인맥이 없으면 구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상위 0.1% 귀족 헌터의 상징이다!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나는 이런 모습을 볼 때면.
특급 헌터가 재벌 2세이자 1세대 헌터의 조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역시 장민 언니 아들! 장철 헌터님 조카구나!”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툭- 한 손에 잡힐 듯한 검은 정육면체가 튀어나왔다.
“나왔다!”
특급 헌터는 환호하며 검은 정육면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보이지? 사슴이, 반짝이, 퐁퐁이가 나한테 준 돌이야! 엄청 멋지지!? 좋아 보이지!? 이렇게 이렇게 돌릴 수도 있어!”
검은 정육면체는 특급 헌터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류세연은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이 물체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한 면이 3x3, 9칸으로 나뉜 큐브다!
은은한 광택 나는 검은 돌로 만들어진 큐브는 얼핏 봐도 비싸 보였다.
“대단한데! 특급 헌터 이번에 부자 됐구나!”
“전부 알바 덕분이야! 알바 완전 대단했잖아! 알바 덕분에 이거 다 얻은 거야!”
특급 헌터는 크게 외치고 대환단이 담긴 곽과 검은 큐브를 텔레비전 진열장에 놓인 잡낭 안에 집어넣었다.
“그 잡낭 삼촌 거잖아? 왜 거기에 넣는데? 이번에 얻은 보물이라며?”
“알바 줄 거거든!”
“……그걸 삼촌 준다고? 왜?”
특급 헌터는 너무나 당연하단 듯이 대답했다.
“알바랑 나는 친구잖아!”
“…….”
류세연은 말없이 특급 헌터를 바라봤다.
문득 며칠 전 기억이 떠오른다.
특급 헌터는 던전에서 얻은 구리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건네줬다.
손을 내밀어 달라고만 하면 그 어떤 보물이라도 선뜻 내어 줄 아이.
‘그렇지. 특급 헌터는 그런 아이었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고개가 끄덕여질 때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내 선물 보면 좋아하겠지? 엄청 신나 하겠지!? 우리 내일 고기 먹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삼촌 엄청 좋아할 거야! 슈퍼에서 돌아오면 말해 줘! 그런데…… 아깝지는 않아?”
“전혀!”
단호히 외치고 허리춤의 나무 막대기를 뽑고, 목에건 목걸이를 휙 벗어 내미는 특급 헌터.
“알바는 나한테 퐁퐁검도 빌려 주고 이 목걸이도 줬잖아! 특급 로봇 강철이가 자는 목걸이! 앗! 맞아 이것도 알바 덕분에 구했어!”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주머니를 뒤져 손을 내밀었다.
“단풍놀이 갔을 때 알바 덕분에 주운 돌이야! 엄청완전최고로 좋은 돌이야!”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외친 특급 헌터의 손에는 평범한 작은 돌멩이를 놓여 있었다.
“최고로 좋은 돌?”
“10점짜리 돌멩이야! 내 2번째 보물이야! 이런 건 처음 봤다니까! 장난 아냐!”
특급 헌터는 뭐가 특별한지 알 수 없는 돌멩이를 자랑스레 내밀었다.
후후훗-
순간 웃음이 터지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류세연은 깜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우와! 그게 10점짜리 돌이야!? 2번째 보물!?”
“맞아! 내 2번째 보물! 엄청 좋아! 이런 건 진짜진짜로 처음 봤다니까! 처음 봤을 때 나 기절할 뻔했잖아! 꿈인 줄 알고 눈 엄청 비볐어!”
“그랬구나! 어쩐지 완전좋아 보여! 진짜진짜 멋진 돌멩이야!”
류세연은 연신 탄성을 터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세연?”
“그 완전멋진 10점짜리 돌 누나 줄래?”
“……?”
“누나 줄 거지?”
“…….”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특급 헌터.
생각지도 못한 반응!
류세연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특급 헌터?”
“앗! 세연! 러브 시그널! 우리 러브 시그널 봐야지!”
특급 헌터는 재빨리 외치더니 소파 쿠션 아래에서 리모컨을 꺼내 채널을 돌렸다!
“몇 번이지!? 몇 번에서 나오더라! 시언형 에리나 누나랑 잘돼야 하는데! 그치!?”
쉴 새 없이 요동치는 눈동자로 정신없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횡설수설한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말을 돌리고 있다!
“오늘 러브 시그널 하는 날 아닌데?”
“앗, 아앗-.”
깜짝 놀란 특급 헌터가 리모컨을 뚝 떨어뜨리는 순간.
류세연은 와락 달려들어 특급 헌터를 꼭 껴안았다.
“세연……?”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
류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특급 헌터! 누나는 실망했어!”
그리고 번개같이 손을 움직였다!
귓가, 목 뒤, 겨드랑이, 배, 발바닥!
류세연의 간질간질, 나긋나긋한 손길이 스치는 순간 폭발하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후히힣힝히히히힣힛-
“누나한테 돌 줄 거지?”
“후히이히힣- 안 돼! 후헤헿-.”
“10점짜리 돌멩이 줄 거지!?”
“후힣힣헤헤히힣- 다른 거! 후헤힛- 다른 거 줄게!”
10살 넘게 차이 나는 꼬맹이를 간지럽히는 류세연.
간지럼에 자지러지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특급 헌터.
이 모습은 한참 후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너희 지금 뭐 하냐?”
천문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특급 헌터는 사력을 다해 외쳤다.
“알바! 구해해히힣힣- 구해줰! 크히히힣힣-.”
“삼촌 왔어? 줄 거지? 누나한테 줄 거지? 후흐흐-.”
“아냐! 후히헿헿- 안 돼! 히힣헿- 이건 안 된다고! 후헤헤헿헿-.”
진짜 친 오누이처럼 뒤엉켜 장난을 치는 류세연과 특급 헌터!
천문석은 씩 웃으며 두 사람의 모습을 세연의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장민 대표님께 보내 주면 최고의 선물이 될 거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사진을 전송했다.
그리고 슈퍼에서 사 온 메로나를 냉동실에 넣고 메로나를 하나 물고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냉장고에 메로나 있어. 재밌게 놀다가 먹어라.”
“후히히히힣힣- 알바! 노는 거 아니라곸! 히헿헤히히힣- 도와줰-.”
“줄 거지! 누나 줄 거지? 얼른 준다고 말해! 포기해라! 특급 헌터! 크크큽-.”
특급 헌터의 자지러지는 웃음과 류세연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질 때.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러브 시그널 재방송이 시작됐다!
로또 1등이 좌절된 밤.
미처 깨닫기도 전에 대환단과 검은 큐브, 적염성 마탑의 머릿돌은 천문석의 잡낭에 들어갔다.
그러나 천문석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잡낭에 넣은 꼬맹이와 그 모습을 본 세연.
이야기를 해 줄 두 사람은 간지럽히고 간지럼 당하느라고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토요일 밤이 천천히 깊어 갔다.
* * *
천문석은 짙은 안개에 휩싸인 산속에 홀로 서 있었다.
휘이이-
손을 뻗어 안개를 휘젓고.
흐으흡-
가슴을 부풀려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손가락에 닿는 바람의 질감!
깊은 호흡에 담기는 짙은 습기!
이 생생한 감각!
전에도 겪었던 너무나 현실 같은 꿈, 환몽(幻夢)이다!
“설마!?”
문득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익숙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아-
짙은 안개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전생의 스승님이다!
이렇게 빨리 꿈에서 만나다니!
기다리던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천문석은 가슴속 분노를 단숨에 토해 냈다.
“로또 번호!”
“스승님! 로또 번호 어떻게 된 겁니까!?”
“번호를 가르쳐 주려면 제대로 가르쳐 주셔야지! 하나 틀렸잖아요!”
“그것 때문에 꽝…… 아니 3등 됐어요! 3등! 이거 꽝이나 마찬가집니다!”
“이거 사깁니다! 완전한 사기!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
한참 동안 짙은 안개 속 보이지 않는 스승님을 향해 삿대질하며 격렬하게 감정을 쏟아 냈다.
“…….”
그러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벅, 저벅-
축축한 흙 위를 걷는 발걸음 소리와.
하아아아아-
땅이 꺼질듯한 깊은 한숨만 계속 들려왔다.
‘어, 뭐지? 아무리 꿈이라도 스승님이 저렇게 한숨만 쉴 분이 아닌데? 설마? 아닌가!?’
문득 의심을 품는 순간 거센 바람이 불어와 안개를 날려 버렸다.
휘이이이잉-
흩어진 안개 사이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낡은 가사와 지팡이.
긴 수염과 긴 머리카락.
전혀 스님 같지 않은 스님.
자신에게 천문사를 물려주신 스승님이 맞다!
“맞네! 스승님 맞아! 스승님! 로또 어떻게 책임지실……!”
다시 한 번 분노를 토하는 순간 지팡이가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는 순간 그림자처럼 공간을 넘어 따라붙는 지팡이!
“……!?”
따아악-
경악하는 순간 지팡이가 이마를 때리고 눈앞에 별이 번뜩였다!
으아악-
현실 같은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번쩍 떴지만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어, 어어어!? 스승님……? 아차 이거 환몽이었지!”
순간 벼락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떠먹여 줘도 먹지를 못하냐! 그 불운! 내가 ㅁㅁ에 ㅁ걸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지!?”
“네? 뭐를 걸지 말라고요!? 지금 무슨 말을……!”
“됐어! 어차피 금기에 걸려 말해도 전해지지 않아! 답답해서 안 되겠다! 그냥 맞자! 그놈의 불운 내가 떼줄 테니까! 그냥 맞아!”
하아- 따악-!
“으악! 잠깐! 불운이요!?”
하아아- 따악, 따아악-!
“잠시만 타임! 아니 정지! 으악! 스승님 뭔가 잘못 아셨어요! 저 운 좋아요! 금괴! 5관 금괴 6개! 초대박 터졌어요! 아악- 좀 멈추세요!”
아무리 외쳐도 스승님은 멈추지 않았고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지팡이가 끝없이 날아왔다!
천문석은 네 번 맞는 순간 감을 잡고 다섯 번 맞자 깨달았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은 스승님의 지팡이에는 법칙이 담겨 있었다.
전법륜인, 뜻을 전하는 수인을 지팡이로 변화해 풀어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게 지금은 보였다!
“와, 이게 되네!? 으악-.”
현실 같은 환몽 속 천문석은 감탄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스승님의 지팡이를 맞고 또 맞았다!
“이거 왜 이래? 불운이 왜 이렇게 안 떨어져!?”
* * *
“마침내!”
한경석은 저울 위에 놓인 금반지, 금목걸이, 장신구, 골드바를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저울에 드러난 숫자 11kg!
그리고 저울 옆에는 전기 고로에서 녹여 뽑아낸 주물금괴 102kg이 쌓여 있었다!
극검의 왕관과 칠채 마력 팔찌를 전당포에 맡긴 돈으로 종로 귀금속 거리를 훑고 헌터 나라 앱으로 금을 사들여 주물금괴로 만들었다.
그 결과 총 113kg! 목표로 하는 112kg을 넘어서는 금을 모을 수 있었다!
저울 위 11kg의 금붙이를 녹여 주물금괴를 만들고 프레스 작업으로 1kg 골드바 112개를 찍어 내면 목요일에 시작된 작업은 모두 끝난다!
한경석은 바로 움직였다,
‘시간이 없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종로 귀금속 거리 금 품귀현상을 다룬 9시 뉴스에 자신의 모습이 얼핏 찍힌 것이다!
평범한 후드티를 깊게 눌러썼기에 자신을 아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단 한 사람! 매일매일 뉴스를 빼놓지 않고 보는 엄마를 제외하고!
엄마는 자신을 한눈에 알아봤을 거다!
엄마가 자랑한다고 후식이 삼촌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눈치 빠른 후식이 삼촌이 모든 걸 알아채는 건 시간문제!
얼른 골드바를 찍어 내고 튀어야 한다!
한경석은 금붙이를 녹이는 동시에 주물금괴를 압연해 일정한 두께로 뽑아냈다.
그리고 단검을 내리찍어 커팅하고 프레스로 찍어 골드바를 만들었다!
정신없이 움직여 1kg 골드바 112개를 만들었을 때는 이미 새벽 3시!
세연에게 줄 반지와 특급 헌터에게 줄 동물 친구들 이름표를 만들 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부르르-
무심코 본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
[NTM_CHS]
후식이 삼촌이다!
한경석은 전화를 무시하고 마무리 작업을 계속했다.
류세연의 반지에 마력으로 정제한 보석을 박아넣고,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 이름표에 마법 회로를 새겨넣었다.
그러나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부르르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순간 바로 다시 울렸다!
끝없이 이어지던 전화가 23번째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순간.
톡톡, 톡톡톡톡-
문자가 주르륵- 쏟아졌다.
“……!”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전율!
‘후식이 삼촌이 알아챘구나!’
한경석이 직감하는 순간.
쿵-
누군가 공방 문을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