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90화>
.”……!”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실제 증거를 보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직 5개의 금괴가 더 있다!’
한경석은 이를 악물고 재빨리 움직였다.
쿵쿵, 쿵쿵쿵-
모루 위에 줄줄이 놓이는 5관 금괴 다섯 개!
팟팟, 팟팟팟-
검기가 맺힌 쿠크리 단검이 다섯 번 떨어져 내렸다!
쩡-
마지막 5관 금괴가 둘로 쪼개져 떨어지는 순간 한경석은 재빨리 단면을 확인했다.
두 동강 난 5관 금괴 6개.
6개의 금괴가 모두의 단면이 똑같았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직사각형!
가운데 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롤케이크 단면처럼.
겉을 둘러싼 24k 황금 표피 안에는 하나같이 광택 나는 회백색 단면이 있었다!
“……!”
손을 뻗어 회백색 단면에 올리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중석(重石), 텅스텐!
반사적으로 벽을 보자 금속 비중표가 눈에 박혔다.
[금 19.3]
[텅스텐 19.25]
이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다.
-오감이 일치했던 이유?
겉을 둘러싼 두꺼운 황금 표피 때문이다!
-비중에서 1.5544%의 차이?
금과 텅스텐의 미약한 비중 차이 때문이다!
-잡는 순간 느껴진 기이한 위화감?
텅스텐은 자주 사용하던 금속, 각성력이 닿는 순간 무의식중에 느낀 거다!
결론.
친구의 5관 금괴 6개 112.5kg은 전부 가짜다!
* * *
한참 동안 멍하니 금괴를 보던 한경석은 문득 말했다.
“……어떻게 하지!?”
친구는 금괴가 가짜인 것은 까맣게 모른 채 건물을 사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가짜 금괴라는 진실을 말하는 순간 친구의 꿈, 건물주는 날아간다!
문득 고개를 들자 재배실 안 선인장이 보였다.
친구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에게 저 귀한 선인장을 넘겨줬다!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다!
‘1kg 골드바 112.5개가 필요하다!’
한경석은 재빨리 벽 금고를 열고 골드바를 꺼냈다.
골드바는 17개뿐!
112.5개의 골드바에는 턱도 없다!
문득 시선을 돌리는 순간 금고 한쪽에 쌓인 재료들이 보였다.
‘이 재료들을 판다면!?’
한경석은 재빨리 금고 속 재료를 눈으로 훑었다!
진은, 강화 강철.
마력으로 제련한 금속괴들.
천둥 기린 뿔 같은 부산물들.
……
-모두 팔아서 금괴를 사면!?
급매로 넘기면 50개도 건지기 힘들다!
-미리 제작해 둔 단검들을 팔면!?
마력 회로가 깔린 단검들은 이미 모두 넘겼다!
남은 단검 대다수는 강도가 좀 높은 평범한 단검들이다!
-안전 호텔 지분을 팔면!?
지분을 건드는 즉시 총지배인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 거다!
바로 집으로 끌려가 끝없이 이어지는 잔소릴 들어야 한다!
-어디서 돈을 빌릴 곳 없을까!?
생각나는 곳은 한곳 뿐이다!
오리온 길드!
3년 연장 계약을 한다고 말하면 즉시 금괴 112.5개를 내어 줄 거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는 12월 31일에 친구 사무실로 옮길 계획을 세운 상태!
3년 연장 계약이라니 말도 안 된다!
“으으으- 방법! 방법이 있을 텐데!? 생각해 내! 넌 할 수 있어! 경석아!”
순간 번쩍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이 있었다!
극검의 왕관!
칠채 마력 팔찌!
이지스 방패 세트!
나이트 아머 슈트!
하나같이 엄청난 가격의 레이드 메인 탱커용 1 티어 장비들!
이 장비들이 있는 위치, 금고 번호, 현금화할 전당포 모두 알고 있다!
훔치는 게 아니다!
잠깐 빌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오래 빌릴 필요도 없다!
한경석은 시선을 돌려 재배실을 봤다.
건조한 열기가 흘러나오는 재배실 안에는 거대한 선인장이 그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친구가 선물한 선인장!
고블린 독침을 맞고 변이를 일으킨 만세 선인장이다!
변이를 일으킨 선인장을 살려내 이렇게 거대하게 길러 내는 데 성공했다!
선인장 독 가시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체액은 고블린 마비독!
내성이 생기지 않는 고블린 마비독은 지금까지 누구도 인공 합성에 성공하지 못한 독이다!
그 성공이 눈앞에 있었다!
정제 수율을 높이고 선인장 농장을 세워 순도 99.9%의 고블린 마비독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잠시 빌렸던 장비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건 일도 아닐 정도로 엄청난 수익이 쏟아진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친구는 건물주의 꿈을 이루고.
자신은 장비를 찾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된다!
문제는 하나, 장비 주인을 설득하는 거다.
오리온 길드 이사.
탈모약을 슬쩍했던 NTM_CHS.
후식이 삼촌, 최후식을 설득해야 한다!
한경석은 쓰고 있던 문자를 모두 지우고, 장비 주인, 후식이 삼촌에게 보낼 새 문자를 작성했다.
[후식이 삼촌. 극검의 왕관 좀 빌릴 게!]
“……좀 버릇없어 보이나……?”
한경석은 문장 마지막 느낌표를 고쳤다.
[후식이 삼촌. 극검의 왕관 좀 빌릴 게?]
“…….”
어째서일까?
느낌표를 공손한 물음표로 바꿨는데도…….
후식이 삼촌은 이 문자를 보는 순간 미친 듯이 분노할 것 같았다!
한경석은 계속 문장을 수정했다.
[잘생긴 후식이 삼촌님!]
[잠깐! 아주 잠깐 빌려 갈게요!]
[완전 멋진 우리 삼촌! 부탁이 있습니다!]
……
한경석은 깊은 고뇌를 하며 수없이 문자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어떤 문자도 팟하고 오는 게 없었다!
미친놈처럼 분노하는 최후식 이사, 후식이 삼촌의 모습만 보였다!
“으으- 어떡하지!?”
머리를 부여잡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내가 엉덩이 많이 맞아 봐서 알아! 괜찮아! 이미 저질렀으니까 어쩔 수 없어!’
방금 전 특급 헌터의 외침!
“……!”
그렇다! 허락을 받는 것보다 저지르고 용서를 받는 게 더 쉽다!
게다가 지금 후식이 삼촌은 연합 레이드 팀이 나가리 된 것 때문에 정신없이 헌터 부대를 쫓아다니는 상황!
후식이 삼촌은 자리를 비운 지 한참이 지났고 언제 레이드를 가게 될지도 기약이 없었다!
즉, 애써 구한 레이드 메인 탱커용 1 티어 장비를 당장 쓸 일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잘만하면 없어졌다는 걸 눈치채기도 전에 다시 장비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우선 저지른다!”
한경석은 마음의 결심을 하고 바로 움직였다.
헌터용 배낭을 꺼내 귀금속과 마석을 쓸어 담고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을 담았다.
단검과 점멸 반지를 착용하고 강화 전투복을 입고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친구의 가짜 금괴를 안전 상자에 넣어 공방 구석 벽 철망을 열어 비품 사이 깊숙한 비밀 공간에 숨겼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저지르면 된다!
찌이익-
은신 망토 지퍼를 끝까지 올리는 순간 인기척이 사라지고 흐릿한 실루엣만 남았다.
암살검 한경석은 소리 없이 공방을 빠져나와 최후식 이사의 방으로 향했다.
* * *
옥탑방 건물로 이어지는 급경사의 언덕길.
천문석은 외쳤다.
“모두 준비됐냐!?”
“알바! 준비됐어!”
“삼촌! 나도 준비됐어!”
“부스터 기동! 이야아아압!”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탄 특급 쌩쌩이 3호를 밀고 언덕을 달렸다!
위이이이잉-
마치 엔진이 되살아난 듯 빠른 속도로 언덕을 거슬러 오르는 어린이 자동차, 특급 쌩쌩이 3호!
말이 어린이 자동차지 특급 쌩쌩이 3호는 제대로 된 엔진까지 장착돼 더럽게 무거웠다!
게다가 좌석에는 특급 헌터와 류세연 두 사람까지 타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문석은 불평 한마디 없이 언덕 위를 향해 특급 쌩쌩이 3호를 밀고 달렸다.
특급 쌩쌩이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건 자신의 업보였으니까!
‘전부 내 업보다! 미안하다! 특급 헌터!’
천문석은 마음속 사과와 함께 어린이 자동차를 밀고 언덕을 달리고 달려 마침내 옥탑방 건물에 도착했다!
헉, 허억, 헉-
가쁜 숨을 몰아쉴 때 한껏 신이 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우리 한 번 더 달릴까? 시동 안 걸려도 나름의 맛이 있는 것 같아! 앗! 내려갈 때는 알바도 같이 타!”
“삼촌 맞아! 인간 엔진이 미는 어린이 자동차 나쁘지 않아! 흐흐흣-.”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번에는 키즈카페로 목표 삼는 게 어떨까!?”
“오! 특급 헌터 아주 좋은 생각이야! 나 삼촌이 일했다는 키즈카페 꼭 가보고 싶었어! 같이 가자!”
“그럼 얼른 전화해서 친구들 부를게! 내 시계! 아, 아앗! 시계 안 꺼내냈잖아! 잠깐만 세연! 얼른 시계 꺼낼게!”
‘뭐지? 이 녀석들 지금 사람을 말려 죽일 생각인가!?’
던전에서 나온 게 수요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그렇다!
자신은 던전에서 나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던전에서 나오면 늘어지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겠다는 생각과 달리 정신없이 움직였다!
해운대에서 구른 어제는 말할 것도 없다!
오늘만 해도 단풍놀이, 크리스털 병 돌려보내기, 김철수 사무실 벽간소음, 한경석 공방까지 가는 곳마다 난장판이 됐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지금!
이제는 진짜로 좀 쉬워야 할 때였다!
천문석은 소리 없이 천천히 뒤로 빠져 두 꼬맹이를 놔두고 현관으로 움직였다.
“……!”
하나, 둘, 셋, 넷, 다섯!
살금살금 다섯 걸음 걷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앗! 알바? 알바 어디 있어!?”
“삼촌!? 앗! 현관! 특급 헌터 현관이야!”
천문석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수고했다! 그럼 여기서 해산이다!”
“……뭣!”
“잠……!”
천문석은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전력으로 계단을 뛰어 옥탑방으로 달렸다!
모든 일이 끝났다!
이제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골드바 제련이 끝나고 즐겨 찾기 한 부동산을 보러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쉰다!
고무줄을 계속 당기면 탄성을 잃고 힘없이 끊어지듯.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쉬는 거니까!
“삼촌! 키즈카페 가야지!”
“알바! 내가 맛있는 어린이 젤로 줄게! 놀러 가자!”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옥탑방에 뛰어올라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옥탑방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천문석은 샤워 중이었다!
그리고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천문석은 거실 러그에 찰싹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특급 헌터의 감정에 호소하는 절실한 외침에도.
“알바! 키즈카페 친구들이 알바 엄청 보고 싶데! 앙꼬! 앙꼬도 알바 보고 싶어해!”
“나중에, 나중에 보자. 앙꼬? 아주 나중에 보자!”
-류세연의 힘을 앞세운 채근에도.
“삼촌! 거실에 누워 있지만 말고 좀 움직여!”
“세연아 난 지금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충전 중이야. 무선 충전 알지? 지금 대지의 기운을 받아서 무선 충전 중이야. 지난 일주일 동안 너무 빡세게 살았다.”
두 꼬맹이가 팔다리를 잡아끌고 몸통을 흔들며 외쳐도.
“알바! 일어나! 소 된다니까!”
“삼촌! 일어나! 나 곧 학교 가야 해!”
천문석은 거실 러그에 찰싹 달라붙어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목요일, 금요일이 지나가고 화창한 토요일 오전까지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시간이 됐다.
토요일이 저녁 8시 45분!
이 순간 거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인간 찹쌀떡 천문석이 번쩍 눈을 떴다!
천문석의 배를 베고 누워 있던 특급 헌터가 제일 처음 이변을 알아챘다!
‘앗! 숨소리!?’
특급 헌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깜짝 놀랐다.
“세연! 알바가 살아났어!”
천문석은 빙글, 빙글- 두 바퀴 바닥을 굴러 거실 텔레비전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삼촌? 마침내 살아났구나!”
환호하며 달려오는 류세연과 등에 매달리는 특급 헌터!
그러나 천문석은 두 꼬맹이의 외침에 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능숙하게 소파 쿠션 아래 손을 넣어 리모컨을 꺼냈다.
삣삣삣-
번개같이 텔레비전 전원을 켜고 채널을 돌리는 순간 바로 진행자 멘트가 나왔다.
[그럼 지난 당첨 소식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토요일 오후 8시 45분!
로또 추첨 방송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