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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889화 (89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89화>

맞잡은 손을 흔들고.

한경석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1kg 골드바로 제련할게. 제련이 끝나 봐야 정확한 개수가 나오겠지만 아마 1kg 골드바 112개에. 500g 내외로 남을 거야. 500g은 어떻게 해 줄까? 장신구나 주화로 만들어 줄까?”

“500g? 그건 너 공임으로…….”

천문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언니! 반지 만들어 줘! 디자인은 여기 화면 보이지? 이렇게 심플하게 무광으로 치수는…….”

“난 완전 멋진 이름표! 니케, 사슴이. 반짝이, 퐁퐁이, 탱탱이, 냠냠이, 거복이, 휘잉휘잉! 내 친구들 이름표 만들어 줘!”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천문석은 재빨리 류세연과 특급 헌터를 밀어내고 외쳤다.

“경석아! 500g! 그건 네 공임으로 받아. 아니지, 혹시 공임 모자라냐? 내가 이쪽은 시세를 잘 몰라서 그러면 골드바를 몇 개 더…….”

“아냐. 전혀 모자라지 않아! 충분해! 그럼 난 바로 작업 시작할게.”

한경석은 씩 웃으며 방열 앞치마를 몸에 둘렀다.

“어? 바로 제련 시작하게? 급하지 않아. 천천히 해도 괜찮아. 우선 저녁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저녁? 고기!? 경석형! 알바가 고기 산데! 얼른 밥 먹으러 가자!”

금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상황.

고기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그래 고기 쏜다! 아니, 경석아 너 먹고 싶은 거로 먹자! 급한 거 아니니까. 제련은 천천히 해도 돼.”

“맞아! 언니 천천히 해. 삼촌 전혀 안 급해! 첫 건물인데 신중하게 골라야지! 아마 내년…… 아니 내년 말이나 돼야 결정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련해 줘!”

한경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서 그래. 제련은 천천히 할 거야. 며칠 걸릴 테니까. 제련 끝나면 연락할게. 먼저 들어가. 지금 오리온 길드 연합 레이드 팀 나가리 돼서 분위기 안 좋아. 이쪽 비밀 문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

한경석은 공방을 가로질러 재배실 문을 열었다.

후우웅-

재배실의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훅 불어왔다.

친구를 배웅하는 모습.

이 모습에서 왠지 모를 조급함이 느껴졌다.

“……?”

알 수 없는 직감에 물으려는 순간.

특급 헌터가 한발 먼저 외쳤다.

“앗! 선인장! 경석형 선인장 독 정제하는 거 보여 주기로 했잖아!”

“……선인장 독 정제하는 건 나중에 일 끝내고 보여 줄게. 그때 특급 헌터 1번으로 보여 줄게. 약속.”

“뭔가! 뭔가 이상한데!? 경석형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은데!?”

“……!”

흠칫 놀란 한경석이 시선을 피하는 순간.

휙휙 고개를 돌리던 특급 헌터의 눈이 한곳에서 멈췄다.

공방 유리 격벽 너머에 놓인 냉장고!

“냉장고! 경석형 우리 가면 혼자 맛있는 거 먹으려고 하는구나! 요플레! 그렇지 요플레지!?”

타다닥-

번개같이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여는 순간 텅 빈 냉장고 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

“…….”

“아, 아니구나…… 미안 경석형.”

특급 헌터가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특급 헌터 배낭에 먹을 거 아직 남았지. 냉장고 채워라.”

“앗! 그렇지! 내가 가득 채워 줄게!”

특급 헌터가 신나게 음식을 채워 넣을 때.

류세연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언니. 진짜같이 안 가게? 제련 급한 거 아니라는데 천천히 하지. 저녁 먹고 천천히 해.”

“아냐. 진짜 볼일 있어서 그래.”

“무슨 볼일인데? 뭔가 의심스러운데……? 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 응, 응? 언니?”

한경석의 등에 달라붙어 귓가에 입을 바짝 붙이고 소곤거리는 류세연.

“간지러워! 크크큽- 간지러 세연아! 진짜 아냐!”

“뭐가 진짜 아닌데? 나한테만 말해 보라니까! 언니! 후후훗-.”

음흉한 웃음과 함께 세연의 손이 한경석의 배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어간지럽혔다.

후으흐으흐후힣-

한경석은 자지러지는 웃음과 함께 파들파들 몸을 떨었다.

“야, 그만해. 경석이 쓰러지겠다!”

그러나 당연히 류세연 꼬맹이는 멈추지 않았다.

“삼촌은 끼어들 지마! 이건 여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언니 반지, 반지 만들어 줄 거지? 심플한 스타일로 세련되게 사이즈는…….”

후우, 후우웃-

귓가에 거친 입바람을 밀어 넣으면 은근한 목소리로 사심을 속삭이는 류세연.

“항복! 항복! 후흐흫- 반지 만들어 줄게! 심플한 디자인! 세련되게 만들게! 후히힣히히-.”

류세연은곧 한경석의 항복을 받아 냈다!

“와! 날강도 같은 녀석!”

천문석이 탄식하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경석형! 나도! 나도!”

냉장고에 한가득 음식을 채워 넣은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달려와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여기에 친구들 이름이랑 그림 그렸어! 이거 보고 친구들 이름표 만들어 줘! 나 돈 엄청 많아! 의뢰비 낼게! 주머니! 내 동전 주머니가 어디 있지!?”

특급 헌터는 배낭을 탈탈 뒤집어 잡동사니에서 동전 주머니를 찾았다.

후히흐힣힣히-

이 순간에도 한경석은 간지럼에 몸을 파들파들 떨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언니! 비밀이 뭐야!? 얼른 불어!”

반지를 약속받았는데도 귓가에 바람을 불어 넣고 머리카락으로 목을 쓱쓱 문지르는 류세연.

“찾았다! 앗 잠깐! 상자에 휘잉휘잉이 먹던 금 남았어! 그걸로 만들면 될 거 같아! 이야압, 얍얍얍-.”

한경석의 얼굴 앞에서 정신없이 공간 상자를 흔드는 특급 헌터.

암살검 한경석은 정신 연령 꼬맹이 류세연, 진짜 꼬맹이 특급 헌터 둘에게 잡혀 고통받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 경석이 쓰러지겠다!”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바로 움직였다.

쿵-

가볍게 바닥을 밟고 뛰어들며 활짝 펼친 손가락에 내력을 담아 긁어 내렸다.

교룡(蛟龍)의 강철 같은 비늘조차 꿰뚫어 찢어발기는 조법, 용조수(龍爪手)!

그러나 지금 용조수에 담긴 내력은 강철을 찢는 경력이 아닌.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봄날의 아지랑이같이 간질간질한 내력이었다.

스으으윽-

다섯 손가락에서 전해진 간질간질한 내력이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등을 훑는 순간.

잔뜩 얼어붙은 땅이 봄날 햇살에 어느새 녹아내리듯 찌릿, 찌릿- 간질, 간질- 참을 수 없는 간지럼이 전신에 몰아쳤다!

히헹헤힣히힛-

우히힣힣힣힣-

두 꼬맹이는 단숨에 무력화됐다!

천문석은 재빨리 류세연과 특급 헌터를 양손으로 낚아채 어깨에 걸쳤다.

“그럼 경석아 나중에 연락 줘! 먼저 갈게!”

“후흐흫- 알았어! 연락할게! 나중에 봐! 친구!”

한경석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언니! 반지……! 삼촌 잠깐만……!”

“으앗! 경석형! 재료 줘야 해! 알바 잠깐만……!”

“너희 두 꼬맹이의 야망은 좌절됐다!”

천문석은 잡은 손으로 간질간질한 내력을 밀어 넣었다.

“히힣에히힣- 그만…… 히에헿-.”

“우히히힣히히힣- 알바! 우히힣-!”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자지러지는 웃음과 함께.

천문석은 단숨에 재배실을 지나 김철수 사무실행 창고 문을 열고 작별 인사했다.

“경석아 안녕!”

“히에엫- 언니!”

“우히힣히- 경석형!”

“친구 안녕! 특급 헌터, 세연이 잘 가! 곧 연락할게!”

웃음기 가득한 인사와 함께 창고 문이 닫히는 순간.

한경석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기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 * *

“…….”

굳은 얼굴의 한경석은 바로 몸을 돌려 선반으로 달렸다.

선반 위에 피라미드 모양으로 놓인 친구의 5관 금괴 6개!

“설마! 아니겠지!”

한경석은 정밀 저울을 꺼내 선반 위에 올리고 5관 금괴 하나를 들어 정밀 저울 위에 올렸다.

“……!”

숨소리조차 죽이고 살피길 잠시, 5관 금괴 무게가 화면에 떴다.

[18,750.0000g]

18.75kg

무게는 정확했다!

스으으윽-

한경석은 재빨리 각성력을 끌어올린 손으로 5관 금괴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훑었다.

단검을 만들며 수백 번 새겨 넣었던 마법 회로!

마법 회로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가성비 귀금속이 ‘금’이다!

수없이 금을 제련하고 만지고 다뤘기에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진위를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친구에게 금괴를 건네받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금괴 안으로 스며든 각성력에서 작은 껄끄러움과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바로 지금처럼!

쿵-

심장이 크게 뛰고 천천히 금괴를 훑던 손이 파르르 떨린다!

금 특유의 질감과 밀도, 무게감은 일치한다!

그런데 미묘한 위화감과 기묘한 직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갈 때 등골이 서늘해졌다!

“……!”

처음 친구가 건네준 금괴를 잡는 순간 느낀 작은 껄끄러움, 미묘한 위화감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크지는 않다.

그러나 무시할 정도도 아니다.

일반적인 거래라면 거래를 미룰 정도의 위화감이다!

한경석은 선반 위에 놓인 5관 금괴를 바라봤다.

이 금괴는 그냥 금괴가 아니다!

친구가 이상 던전에서 개고생해서 얻은 보상이다!

‘확실하게! 일말의 의문도 남지 않게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한경석은 단검이 걸린 벽 철망을 옆으로 밀었다.

그르르륵-

벽 철망이 문처럼 밀려나고 금고가 나타났다.

금고 안쪽 깊숙한 곳 1kg 골드바 이십여 개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한경석은 5관 금괴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 금고에서 꺼낸 1kg 골드바를 잡고 다시 한 번 각성력을 일으켰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한없이 예리해진 오감으로 5관 금괴와 1kg 골드바를 비교한다!

눈으로 살피고!

두들겨 귀로 듣고!

손으로 훑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핥았다!

매끄러운 표면, 퍼지지 않고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

묵직한 촉감과 은은히 올라오는 온기, 특유의 금속 냄새와 혀끝에 남는 아릿함!

모든 게 같았다!

그런데 여전히 가슴이 빠르게 뛰고 소름이 등골을 달린다.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비중을 확인한다!’

마음을 먹는 순간 한경석은 바로 움직였다.

5관이면 18.75kg!

1kg 골드바 19개를 꺼내고, 마지막 금괴를 모루에 올리고 단검을 내리찍었다!

팟-

1kg 골드바 1/4 지점이 정확히 잘려 떨어졌다!

0.75kg!

한경석은 1kg 골드바 18개와 잘린 골드바를 정밀 저울에 올렸다.

[18,750.0000g]

친구의 5관 금괴 18.75kg과 정확히 같은 무게의 골드바!

5관 금괴가 진짜 순금이면 둘의 비중이 완전히 같아야 한다!

즉, 5관 금괴와 18.75kg 골드바의 비중을 확인하면 진짜 순금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경석은 바로 물통을 꺼내 18.75kg의 골드바의 비중과 5관 금괴의 비중을 하나하나 비교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5544% 차이!

5관 금괴 6개 하나하나와 18.75kg 골드바의 비중은 하나같이 1.5544%씩 차이가 났다!

순간적으로 돌린 시선에 벽에 붙여 놓은 금속 비중 표가 보였다.

기준이 되는 물의 비중은 1.

금의 비중 19.3.

납의 비중 11.34.

구리의 비중 8.96.

……

보통의 가짜 금괴는 납이나 구리에 도금해서 만든다.

이 금괴가 납과 구리로 만든 가짜 금괴라면 이 정도로 차이가 미세하게 날 리 없었다!

너무나 미약한 차이 1.5544%!

보통이라면 사소한 측정 오차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금괴 6개의 측정 오차가 모두 똑같다고!?

그렇다고 가짜라고 단정하기도 애매하다!

무게, 크기, 비중, 질감, 표면에 새겨진 문양!

납, 구리로 만든 보통의 가짜 금괴와 달리 5관 금괴 6개의 만듦새는 완벽했다.

가짜 금괴를 만드는데 이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그것도 5개 전부 다 똑같이 만들어 냈다고!?’

이 정도로 완벽한 가짜 금괴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제대로 설비를 갖춘 장소에서 제대로 된 장인이 품을 들여 제련한 금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완벽한 금괴를 만들 수 있는 개인, 단체, 조직은 가짜 금괴를 만들어 얻는 이익보다 들켰을 때의 손해가 더 크다!

위험이 큰 반면에 수익은 크지 않다!

지구에서도 이런 품질로 제련하는 건 쉽지 않다.

친구가 금괴를 얻은 장소는 이상 던전 안!

이 정도 가짜 금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 장비, 시설과 비용이 지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결론은 간단하다.

1.5544%의 차이는 금괴를 만들 때 들어간 미세한 이물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합리적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어째선지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친구가 얻은 5관 금괴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

한경석은 흠칫 놀라 고개를 저어 생각을 흩어 버렸다.

친구가 개고생해서 얻은 금괴다!

그런 금괴를 섣불리 가짜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공방의 설비가 아닌 제대로 된 장비로 완벽하게 검증해야 한다!

한경석은 금괴 6개를 안전 상자에 담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안전 호텔 본점에는 신변 보호를 받기 위해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런 사람들 상당수가 금을 비상금처럼 가지고 온다!

당연히 안전 호텔에는 금의 진위, 함량을 확인하기 위한 정밀 측정 장치가 있었다.

거기서 친구의 금괴를 검사하면 된다!

[금괴 긴급 품질 검사 필요함! 바로 준비할 것! 지금 이동]

한경석은 안전 호텔 총지배인에게 문자를 찍으며 달려가려는 순간 멈칫했다.

문득 보이는 게 있었다.

선반 위에 놓인 4분의 1토막 난 1kg 골드바.

잘린 골드바 단면은 매끄러운 금색이었다.

“단면!”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안전 호텔에 갈 필요는 없다.

더 빠른 확인 방법이 있었다!

어차피 친구의 금괴는 모두 녹여 1kg 골드바로 제련할 예정!

금괴에 손상이 가도 골드바를 만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 금괴를 그냥 잘라서 직접 눈으로 내부를 확인하면 된다!

한경석은 5관 금괴를 모루에 고정하고 쿠크리 단검을 뽑아 들며 각성력을 일으켰다!

파스스슥-

쿠크리 단검에서 실처럼 하늘하늘 풀려나온 빛이 하나로 얽혀 검기로 화하는 순간.

팟-

한경석은 단숨에 쿠크리 단검을 내리찍었다!

5관 금괴는 소리 없이 반으로 잘리고 그 단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직사각형이 보였다.

금으로 이뤄진 노란색 표피 직사각형 테두리 안쪽, 광택 나는 회백색 직사각형 단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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