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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871화 (87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71화>

재벌 회장에게 요플레를 스틸 당했다!

커진 눈과 일그러진 얼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대표님!?”

“알바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 숙이는 장민 대표!

그러나 미안한 말과 표정과는 달리 손에 들린 스푼은 멈추지 않았다!

휙, 휘휘휘휙-

잔상을 만들어 내며 움직이는 스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30년 경력의 예절 선생님처럼 기품있고 우아하게!

장민 대표는 요플레를 먹었다!

천문석 자신의 요플레를!

“……!”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특급 헌터의 탄식과 장민 대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알바! 내가 빨리빨리 해야 한다고 했잖아! 장민 앞에서는 절대 방심하면 안 되는 건데……!”

“맞아요!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요! 제 앞에서는 방심하면 안 된답니다! 후흐흐흐흣-!”

어느새 깔끔하게 요플레를 다 먹고 실크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기품있는 미소를 짓는 장민 대표.

너무나 큰 갭에 천문석과 한경석, 류세연 모두가 눈을 비비는 순간.

장민 대표는 씩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히 손을 뻗었다.

“세연 조심해!”

특급 헌터의 외침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휘잉- 바람을 일으키며 류세연의 요플레를 낚아채는 장민 대표!

“앗!”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장민 대표의 손은 허공을 가르고 류세연은 소파 위에 나타났다!

평소처럼 비스듬히 누운 모습으로!

“……!”

“……!”

“……!”

류세연에게 경악한 시선이 모이는 순간 특급 헌터는 외쳤다.

“각성! 세연 누나 각성했구나!?”

이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각성몽!

류세연이 꾼 어젯밤 꿈은 각성몽이었다!

국가 핵심인재, 국가 공인 천재 류세연이 각성했다!

* * *

한경석은 손을 뻗어 세연의 이마와 심장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한경석은 무공 각성자 중에서도 상급.

대략적인 각성 계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석아 어때? 각성인 거 맞아?”

천문석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한경석.

“맞아…….”

환호성을 터트리려는 순간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

“그런데 좀 이상한데?”

“응? 뭐가?”

“각성몽은 마치 직접 겪은 일인 것처럼. 또렷이 기억나거든? 이렇게 완전히 잊는 경우는 듣지 못했는데…….”

“역시! 초천재인 나는 뭔가 다른가 봐! 흐흐흐-!”

의기양양한 류세연.

“그보다 쟤 무슨 계통이야? 방금, 네 점멸 이동이랑은 좀 다르던데…… 순간 이동? 혹시 초능력 계통?”

한경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초능력은 아닌 거 같아! 육체, 마탄, 오러도 아니고…….”

초능력, 육체, 마탄, 오러를 제외하면 주요 6 계통 중에 남은 건 둘뿐이다!

무공 그리고 마력!

유달리 각성자가 많은 한국에서도 특히 많은 무공 각성자!

되는 순간 최소 연봉 1억에서 시작하는 마력 각성자!

헌터계의 평민과 귀족!

후천적 동수저와 금수저!

류세연의 앞날이 이 순간 결정된다!

모두의 바짝 긴장한 시선이 모이고.

한경석의 입이 열렸다.

“모르겠어! 무공이랑은 좀 다른데 그렇다고 마력 각성자 같지도 않거든? 이건 정밀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아.”

허탈감에 웃는 순간.

장민 대표가 바로 끼어들었다.

“세연아 오늘 시간 돼? 광화문 헌터 부대에서 바로 검사받는 게 어떠니? 회사 이름으로 긴급 검사 예약 가능한데?”

“난 괜찮아! 시간 많아! 세연! 내가 같이 가줄게! 나 각성 검사 많이 받아서 완전 익숙하거든!”

“나도 같이 갈게! 마력 각성자면 완전 대박이야!”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묻기도 전에 대답했다.

“나는 시간 괜찮은데…….”

세연은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돌려 천문석을 바라봤다.

장민 대표는 바로 확인했다.

“알바씨는 오늘 약속 있나요?”

“그게 사실 어제 말한 그 일 때문에 북한산에 가야…….”

“북한산!”

특급 헌터의 깜짝 놀란 외침!

“뭐야? 넌 또 왜 놀라?”

특급 헌터는 거실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수백 가지 색으로 물든 산과 이 산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이 보이고 화면 아래로 자막이 나타났다.

[북한산 단풍 절정!]

천문석, 장민 대표, 류세연, 한경석.

네 사람은 특급 헌터의 입에서 다음에 나올 말을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 그대로의 말이 튀어나왔다.

“완전 운 좋아! 단풍놀이! 우리 북한산에 단풍놀이 갔다가 광화문에서 세연 각성 검사받으면 될 것 같아!”

* * *

하루 전도 아닌 당일 아침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단풍놀이.

천문석은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장민 대표.

같이 청소하고 요플레를 먹었지만,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쓰는 재벌 회장이다!

한경석.

동네 백수 같은 차림이지만 암살검은 대형 길드의 메인 딜러! 보통 년 단위로 스케줄을 잡는 랭커다!

특급 헌터.

엄마에게 엉덩이를 맞고 자유를 찾은 것 같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밀어 둔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류세연!

국가 핵심인재이자 현역 고3 여고생…….

‘아니, 잠깐만! 얘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문득 시계를 보니 시간은 7시 30분!

“야! 너 학교 안 가!?”

류세연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웃었다.

“초천재 류세연님은 이미 재금 아카데미 입학이 결정돼서 학교에서 방치 중이랍니다! 흐흐흐-.”

“세연 잘 됐어! 우리 얼른 준비하자! 단풍놀이는 처음이야! 꾹꾹 뭉쳐서 낙엽 던질 거야! 카카카- 앗! 친구들!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거복이! 니케! 니케 어디 있어!? 우리 단풍놀이가! 엄청 재밌을 거야! 앗! 냠냠이! 북한산이면 냠냠이네 엄마…….”

천문석은 옥상으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를 낚아챘다.

“……?”

그리고 의문 가득한 특급 헌터에게 말했다.

“야! 안 돼. 대표님이랑 경석이 바빠서 단풍놀이는…….”

“뭐!? 진짜야! 장민! 바쁘구나! 에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녀석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리가 없는데!?’

“그래 잘 생각했…….”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때 환희 어린 외침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단풍놀이 가야겠어! 그렇지?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쉽다! 장민 빼고 우리끼리만 가야겠어!”

환한 웃음, 들썩이는 어깨,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까지!

후히히히힛-

특급 헌터는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장민 대표를 보는 순간 어쩐지 쓸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급 헌터. 엄마 없이 혼자 단풍놀이를 가려고?”

“한국 사람은 열심히 일해야 해! 장민은 열심히 일해! 내가 장민 몫까지 열심히! 아주 열심히 놀아줄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

전혀 아쉽지 않은 얼굴!

“엄마랑 주말에 가면 어떨까? 오늘 목요일이니까. 내일모레. 두 밤만 자면……!”

특급 헌터는 말을 자르고 외쳤다.

“난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알바랑 갔다 올게!”

“…….”

장민 대표가 침묵하는 순간 흥미진진하게 티키타카를 바라보던 모두는 숨을 죽였다!

결정적 순간이다!

장민 대표는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띠리, 딸깍-

-네! 대표님 황 비서입니다!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특급 헌터는 다다닥 달려가 스마트폰에 외쳤다.

“황 비서 누나! 장민 일하러 간데 얼른 준비해!”

-네? 네! 그럼 바로 준비…….

“그럴 필요 없어요.”

말을 끊은 장민 대표는 특급 헌터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장민! 한국 사람은 열심히 일해야 해! 나는 걱정할 거 없다니까! 괜찮으니까 일하러 가! 아쉽지만 난 알바랑 세연이랑 단풍놀이 갈게!”

무언가 느낀 특급 헌터가 반사적으로 말을 쏟아 낼 때.

장민 대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 비서. 오늘 약속 모두 취소하세요.”

꿀꺽-

특급 헌터 마른침을 삼키며 바짝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장민 지금……?”

장민 대표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 우연이네! 마침 엄마도 오늘 약속이 모두 취소됐어요!”

“……네?”

특급 헌터가 귀를 파바밧- 비빌 때.

장민 대표는 환하게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짠! 오늘 북한산 단풍놀이에는 특급 헌터 엄마! 장민 대표도 참가한답니다!”

북한산 단풍놀이 당일.

분 단위로 스케줄을 잡는 재벌 회장 장민 대표의 참가가 결정됐다!

“나도 갈게! 후식이 요즘 바빠서 나 신경 못써! 크크킄-!”

그리고 당연하단 듯 여기에는 암살검 한경석도 끼어들었다.

* * *

처음 전생을 각성한 이래. 아니, 스승님을 따라 천문사를 물려받은 이래로 생각대로 일이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돌발 사건·사고 변수에 강했다.

사실 단풍놀이는 핑계일 뿐 북한산에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동 병참 도시의 워커 실트7과 엘프, 두 사람과 한 약속!

지구의 워커 실트에게서 회수한 크리스털 병을 보내 주는 게 진짜 이유였다!

북한산은 서울 안정화 권역 안에 있는 산!

게다가 세기말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산 북쪽에는 헌터 부대가 쫙 깔려 있고 곳곳에는 한탕을 노린 심마니 헌터, 용역 헌터들이 있었다!

북한산 단풍놀이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 단풍놀이에 몇 사람 추가되는 정도는 사건 축에도 끼지 못했다.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하, 하하-

천문석은 거실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알바! 웃을 때가 아냐!”

“알바씨 김밥 어때요? 단풍놀이면 역시 김밥인 거 같은데?”

“난 찬성! 김밥 오랜만에야! 철수 오빠! 김밥 엄청 좋아하잖아! 철수 오빠도 부를까!?”

“단풍놀이 처음이야! 재밌을 거 같아! 캠프파이어! 우리 캠프파이어도 하는 거야!? 내가 후식이 마도구 빌려 올까? 30미터짜리 불기둥 만들 수 있는데!?”

“30미터! 불기둥!? 찬성! 난 완전완전 찬성이야! 우리 엄청! 엄청엄청 커다란 캠프파이어 만들자!”

“단풍놀이에선 불은 절대 안 돼! 낙엽에 불붙으면 큰일 난단 말야!”

“아…… 그렇구나.”

“앗! 후식이한테 얼음 불꽃 마도구도 있는데! 그걸 가져올까!? 30미터짜리 얼음 불꽃 기둥 만들 수 있어!”

“으앗! 30미터! 얼음 기둥! 찬성찬성찬성!”

“얼음 기둥도 안 되는 거 아냐?”

……

천문석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가는 거실을 바라봤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추적기가 가리키는 장소를 찾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크리스털 병을 보낼 생각이었다.

헛된 꿈이었다.

특급 헌터, 류세연, 한경석!

이 녀석들이 얽힌 이상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감이 왔다!

짝-

이때 박수 소리와 함께 장민 대표가 움직였다.

“그럼 우리는 장 보러 갔다 올게요! 알바씨는 돗자리랑 찬합, 가방 꺼내 주세요! 세연이 경석이 마트 같이 가자! 특급 헌터?”

“난 알바 도와주면서 집에 있을게!”

장민 대표와 류세연, 한경석이 우르르 현관을 지나 사라지는 순간 손을 흔들던 특급 헌터는 다급히 외쳤다.

“알바! 큰일이야! 큰일! 장민이 따라온데잖아! 내 특급 쌩쌩이! 세연 누나 각성 검사하고! 특급 쌩쌩이 찾아야 하는데! 장민 오면 큰일 나!”

“아! 너 그래서 막으려고 했구나!”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장민 오면 말해! 한국 사람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회사원은 직장 가야 하니까! 단풍놀이는 안 된다고 알바가 말해야 해!”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반문했다.

“특급 헌터 너도 한국 사람이잖아?”

“당연하지! 나 완전 한국 사람이야?”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그럼 너도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 아냐? 장민 대표님이 그렇게 말하면 뭐라고 대답해?”

특급 헌터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난 학교 안 가서 괜찮아! 나 같은 어린애는 노는 게 할 일 이거든! 카카캌-.”

“특급 헌터! 넌 언제나 계획이 있구나!”

“당연하지! 특급 헌터는 언제나 계획이 있어야 해!”

카카카카캌-

카캬카카캌-

특급 헌터가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도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특급 헌터의 엉망진창 대답이 마치 미래를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북한산 단풍놀이.

류세연 각성 검사.

특급 쌩쌩이 인수.

금괴 궤짝 회수.

한경석 공방 방문.

오늘 하루해야 할 일들!

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된 미래를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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