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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870화 (87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70화>

“오빠!”

다시 환번 불렀지만, 나타나지 않는 옥탑방 오빠!

‘원래 이럴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나타나야 하는데!’

내심 탄식한 류세연은 다시 외쳤다.

“오빠! 오빠!”

딱밤을 맞을 각오를 하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역대급으로 좋은 컨디션, 날아갈 듯한 기분이 팍 가라앉고 어째선지 오기가 끓어올랐다!

‘나타날 때까지 외쳐주마!’

“오빠! 옥탑방 오빠! 야, 야! 천문석!”

이때 덜컹 돌아가는 문고리!

‘왔구나!’

잽싸게 이불을 뒤집어쓰는 순간 문이 열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림보 세연! 빨리 일어나! 약수터 가서 물 떠왔어! 세연! 빨리 냉수 먹어!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일어나야지!”

다다닥- 달려와 이불을 흔드는 작은 손길.

류세연은 이불을 슬쩍 내려 얼굴만 내밀고 말했다.

“약수터? 혹시 오빠랑 약수터 갔다가 지금 온 거야?”

“아니 중간에 통통 할아버지한테 들려서 요플레 받아왔어!”

“통통 할아버지?”

“3층에 빵야빵야 관장님!”

“아, 대한 정통 무당파!”

고개를 끄덕이던 류세연은 문득 깨달았다.

“뭐!? 내가 쓰러졌는데 약수터를 갔다 왔다고!?”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바로 이어지는 목소리.

“내가 세연한테 약수 줘야 한다고 먼저 가자고 했어! 얼른 나와서 약수 먹어 그래야 요플레 먹는단 말야!”

순간 류세연의 눈에 빛이 번뜩이고 승부사의 감각이 움직였다.

기절하듯 쓰러졌다가 이튿날에야 깨어난 자신.

자신을 걱정해 이른 아침부터 약수터에 다녀온 옥탑방 오빠, 천문석.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는 법!

지금이 바로 잘 못 끼워진 첫 단추, 삼촌이란 호칭을 정정할 기회다!

류세연은 특급 헌터의 귓가에 속삭였다.

“특급 헌터 부탁이…….”

“요플레 뚜껑은 안 돼! 줄 수 없어! 뚜껑이 제일 멋있단 말야!”

“야! 그런 거 아냐! 부탁 들어 주면 내 요플레도 너 줄게.”

“안 돼! 빵야빵야 관장님이랑 약속했어! 요플레는 한 사람당 한 개란 말야!”

‘뭐지, 이 꼬맹이 녀석!?’

이해할 수 없는 외침에 정신이 아득해지려 했다.

그러나 국가 핵심인재 류세연은 답을 찾아냈다!

“……뚜껑! 요플레 뚜껑 줄게!”

“요플레 뚜껑을 준다고!?”

“맞아! 내 뚜껑 줄게!”

특급 헌터는 환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응! 알았어! 뭐든지 말해!”

“밖으로 나가서 오빠한테 이렇게 말해. ‘큰일 났어! 세연 누나! 엄청! 완전! 아픈 거 같아! 알바 얼른 들어가 봐!’ 알았지?”

“세연 누나 아프다, 알바가 와서 봐야 한다? 이렇게 말하라고?”

“맞아! 특급 헌터 부탁한다! 60까지 세고 나가서 바로 하면 된다!”

“걱정 마 세연 완벽하게 해낼게! 카카캌-.”

짝-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손바닥이 부딪치는 동시에 둘은 움직였다.

파파팟-

흐트러진 머리카락, 축 저진 눈매와 입가.

스마트폰 셀카 모드로 스스로를 살피며 병약 미소녀를 연기하는 류세연.

“……오십팔. 오십구. 육십! 시작할게!”

숫자를 다 세자마다 다급히 문밖으로 나가며 외치는 특급 헌터.

“알바! 큰일 났어! 세연 누나! 엄청! 완전! 아파! 얼른 와서…….”

특급 헌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뭐지?’

살짝 실눈을 뜨자 나가다 멈춰 선 특급 헌터와 반쯤 열린 문이 보였다.

“왜 끝까지 말을 안……?”

순간 소리 없이 방문이 열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세연아 몸은 어때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장민 언니.

“……세연 완전 아픈가 봐! 친구! 얼른 들어가 봐!”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다급히 외치는 경석 언니.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방 안으로 성큼 걸어들어오는 옥탑방 오빠, 천문석!

‘설마, 전부 들은 건가!?’

바짝 긴장하는 순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연아! 너 괜찮아!? 너 정말 아파 보여!”

“……뭔가 으으브븝!”

‘못 들었구나!’

이 순간 국가 핵심인재 류세연은 승부수를 던졌다!

‘순간 기억능력으로 드라마 속 비운의 여 주에 빙의해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전신의 힘을 빼고 파리한 표정을 지은 채 끊어질 듯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왔어? 어제 기절하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1차 시도!

밑밥을 까는 순간 이마로 다가오는 손!

‘설마!? 환자한테도 딱밤부터 날리는 거야!?’

움찔 놀라는 순간 손은 이마를 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열은 없는데? 아마 계속 신경을 썼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 왔나 보다. 푹 쉬면 나아질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느끼는 순간 직감했다.

‘먹히고 있다!’

“……맞아. ‘오빠’ 사라지고,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

2차 시도!

힘없이 말하며 콜록 기침을 터트리고 아련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

눈과 눈이 마주치자 쿵쿵 심장이 뛰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이 순간 선명히 느껴지는 감정들!

걱정, 미안, 후회, 아련, 애잔……!

지금이다!

마지막 3차 시도로 쐐기를 박고 기나긴 호칭 문제를 여기서 마무리 짓는다!

류세연은 온 힘을 다해 연기를 펼쳤다.

가쁘게 쉬는 숨.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현기증이 온 듯 비스듬히 처진 머리.

힘없는 손으로 단단한 손을 마주 잡는 순간.

아련한 표정, 절절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어디 가면 안 돼 알았지……? 오빠?”

마지막 3차 시도!

승부의 화살이 쏘아졌다!

류세연은 방심하지 않았다!

잔심(殘心)!

쏘아진 화살을 바라보며 마음을 갈무리하듯!

조금의 방심도 없이 눈으로 얼굴로 손으로 절절한 감정을 전했다!

다시는 삼촌이라는 어이없는 호칭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오빠라고 불렀다고 딱밤을 날리는 일이 없도록!

이 순간 류세연의 눈을 바라보는 천문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됐다! 먹히고 있다!’

내심 환호하면 더욱더 절절한 마음을 전하려는 순간.

휙-

천문석의 손이 움직이고 얼굴 앞에 대접이 나타났다.

냉수가 가득 담긴 대접이.

“……?”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가볍게 뻗은 손이 툭- 어깨를 건드리고 근사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연. 시원한 냉수 마셔.”

“……!”

류세연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물이 담긴 대접을 내민 천문석의 어깨너머로 보였다!

“으브븝-.”

입이 가려진 채 무언가 외치는 특급 헌터!

“……?”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는 경석 언니!

“…….”

한 손은 특급 헌터의 입을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입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는 장민 언니!

‘설마, 설마! 설마!?’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리자 보였다!

감정의 폭풍우가 몰아치던 오빠의 얼굴에 생겨난 뚜렷한 감정!

비웃음!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는 순간 어깨를 톡, 톡- 건드렸던 손이 한발 먼저 움직였다!

꾸욱-

단단한 집게처럼 어깨를 당겨 몸을 대접으로 끌어당긴다!

아앗-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꾀병? 네가 꼬맹이냐? 자 얼른 냉수 먹고 정신 차리자! 류세연 꼬맹이!”

“잠깐! 아앗! 아파! 꾀병 아니라니까! 나 진짜 기절했었다니까! 꿈! 아주 이상한! 정말 신기한 꿈도 꿨어!”

“신기한 꿈? 무슨 꿈 꿨는데?”

“……그러니까! 내가! 내가? 내가…… 어, 뭐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꿈이었는데! 정말정말 엄청난 꿈이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

류세연의 경악한 외침에.

천문석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믿어 주는구나!”

순간 심각한 얼굴에 다시금 떠오른 웃음!

“그건 네가 구라를 쳐서란다!”

앗, 앗, 으아앗-

꾹, 꾹 어깨를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한 감각!

“야, 너 구라치려는 거! 처음부터 다 들었어! 내가 너랑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꾀병도 구분 못할 것 같냐? 자 그 꾀병에 넘어가서 새벽부터 떠온 약수니까! 얼른 마시자 류세연 꼬맹이!”

“알았어! 알았다니까!”

꿀꺽, 꿀꺽-

류세연은 대접에 가득 담긴 약수를 다 맛이 고셔야 풀려 날 수 있었다.

세 대접이나!

“그만! 배불러서 더 못 마시겠다니까!”

“야! 너 때문에 새벽부터 약수터까지 갔다 왔어! 이거 전부 다 마셔야 풀어 준다!”

* * *

짧은 소동 후 아침 식사가 끝나고 모두가 요플레를 하나씩 들고 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을 때.

류세연은 머리를 갸웃했다.

“진짜 이상하네? 정말 엄청 신기한 꿈이었는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뭐야? 너 아직도 그 이야기야? 하-.”

천문석이 어이없다는 듯 웃자.

특급 헌터가 불쑥 끼어들어 외쳤다.

“난 세연을 믿어! 세연은 분명히 완전, 엄청 신기한 꿈을 꿨어!”

“특급 헌터! 역시! 넌 나를 믿어 주는구나!”

“당연하지! 모두 빨리 요플레 먹어! 오늘 우리 엄청 바빠! 할 일 많아!”

“특급 헌터! 이거 받아야지!”

“고마워! 세연! 세연은 훌륭한 누나야!”

특급 헌터의 신나는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천문석, 장민 대표, 한경석의 시선이 움직였다.

요플레 뚜껑을 핥는 특급 헌터.

류세연의 손에 들린 뚜껑 없는 요플레.

“훕-.”

무언가 짐작한 장민 대표가 입을 가리고.

“지금 요플레 뚜껑을 준 거야?”

한경석이 고개를 갸웃할 때.

하아아-

천문석은 긴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너 지금 요플레를 다 주는 것도 아니고, 뚜껑으로 얘를 매수 한 거야? 꿈꾼 거 믿는다고 말하라고!? 와, 류세연! 이건 진짜 상상도 못했다!”

“아니거든! 이건 아까 구…… 그냥 준거야! 특급 헌터는 완전한 자유의지로! 정의감으로 진실을 말한 거고!”

확인하는 건 간단하다!

찌이익-

천문석은 요플레 뚜껑을 따서 특급 헌터에게 내밀었다.

“앗! 알바! 이거 나 주는 거야!? 고마워!”

번개같이 요플레 뚜껑을 낚아채 싹, 싸악- 핥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툭 던지듯이 질문했다.

“특급 헌터 나 믿냐?”

“당연하지! 난 알바를 완전 믿어!”

천문석은 류세연을 향해 ‘봤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특급 헌터?”

류세연의 얼굴에 의혹이 떠오르는 순간.

찌이익-

한경석이 요플레 뚜껑을 따서 내밀었다.

“경석형! 역시 형이야! 난 형을 완전히 믿었다니까!”

“특급 헌터!”

류세연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천문석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완전한 자유의지? 정의감으로 진실을 말해? 훗-.”

“아직 장민 언니가 남았어!”

류세연, 천문석, 한경석.

세 사람의 시선이 장민 대표에게로 향했다!

장민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어 찌이익- 요플레 뚜껑을 땄다.

그리고 요플레 뚜껑을 핥고 있는 특급 헌터에게 내밀었다.

결과가 뻔한 승부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류세연!

“제발제발제발!”

세연의 절박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모두의 흥미진진한 시선이 쏟아질 때.

특급 헌터는 요플레 뚜껑을 핥다 말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

그리고 요플레 뚜껑을 든 장민 대표를 보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다다다닥-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고 쪼그려 앉아 뚜껑을 핥으며 외쳤다.

“특급 헌터는 속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모두의 말문이 막혔을 때.

이 모습을 본 천문석은 불현듯 생각나는 기억이 있었다.

오래전 특급 헌터와 나눴던 이야기!

///

“장민 대표님도 요플레 뚜껑 핥냐? 장민 대표님은 아니지?”

자신의 물음에 깜짝 놀라 대답하던 특급 헌터!

“장민 장난 아냐! 내가 조금만 늦게 핥아도 장민이 내 뚜껑 뺏어서 다 핥아 먹어!”

///

반사적으로 장민 대표를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눈가를 스치는 진한 아쉬움!

‘진짜로 요플레 뚜껑을 노린 건가요!?’

황당함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뒤늦은 환호성이 터졌다.

“봤지? 봤지! 봤지!? 특급 헌터는 아무렇게나 말한 게 아냐! 난 어젯밤에 엄청 신기한 꿈을 꾼 게 맞아!”

류세연이 환호하는 순간.

천문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 같네.”

“……어? 잠깐, 지금 뭔가 이상한데…….”

이상하단 듯 고개를 갸웃하는 세연을 보며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켰다.

‘이렇게 간단히 낚이다니!’

세연은 여전히 어렸다!

어젯밤 세연이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돌멩이’라 부를 때.

그 눈빛과 분위기에 압도당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의 인생 장르가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했음을!

갑자기 튀어나온 증거와 가능성으로 잠 못 이룬 지난 밤!

천문석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우선은 모든 것을 덮어 두는 걸 택했다!

그리고 특급 헌터의 도움으로 장르 전환에 성공했다!

“알바! 경석형! 빨리빨리! 요플레 먹어! 느리면 장민한테 뺏겨!”

파파팟-

번개같이 요플레를 퍼먹는 특급 헌터.

하아-

아쉬운 듯 눈을 반짝이는 장민 대표.

후르륵-

요플레를 단숨에 마시는 한경석.

‘뭐지? 뭔가 좀 이상한데!?’

라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류세연.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했던 인생 장르는 어느새 시트콤으로 돌아왔다!

계획대로!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장민 대표에게 요플레를 스틸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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