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57화>
“…….”
고깃집 2층 난간.
천문석은 멍하니 입구를 바라봤다.
딸랑딸랑딸랑-
쉴 새 없이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줄줄이 들어오는 헌터들!
“어서 오세요! 자 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얼른 손님 안내하고! 숯불 올려라! 빨리빨리 움직여!”
고깃집 사장님의 환희 어린 외침!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헌터들의 목소리.
“이 인원한테 한우를 산다고!?”
“와! 알바라는 사람 혹시 재벌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길드장이 돈으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지!”
“장철 헌터도 움직인 거 보면…… 그 PC방 공격대 멤버 아냐?”
“그게 뭐가 중요하냐. 간만에 숨 돌린 게 중요하지.”
“맞아. 사람이 좀 쉬기도 해야지. 레이드 안 가고 수색하니까 좋네.”
“그러게 말야. 간만에 숨 좀 돌렸다. 하-.”
“일주일 수색하고 한우면 나쁘지 않네. 하하하-.”
“사장님! 고기 미리 넉넉히 준비해 주세요!”
“우선 맥주부터 테이블마다 짝으로 쫙 깔아 주세요!”
……
“네! 바로 맥주부터 깔겠습니다!”
쿵쿵, 쿵쿵쿵-
맥주 짝이 줄줄이 날라져 테이블마다 놓이고 고깃집 사장님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제 동생이 대형 정육점 합니다! 고기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바로 연락해서 한우 트럭 출발시키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기를 드는 사장님!
‘한우 트럭!?’
멍하니 이 모습을 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바로 감이 왔다.
지금 눈앞의 헌터들은 태성 길드 레이드 팀이다!
마수, 몬스터뿐만 아니라 거대 괴수 사냥에서도 탑 티어인 한국 최고의 레이드 팀 헌터들이다!
이 정도 헌터들이면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흡입한다!
고깃집 사장님의 한우 트럭 이야기가 허풍이 아닌 거다!
대참사가 일어나려 한다!
직감하고 움직이려는 순간 의문이 먼저 들었다.
한 명 한 명의 몸값이 상상을 초월하는 태성 길드 헌터들!
‘어떻게 고용한 거야!?’
생각과 동시에 떠오르는 이름, 장민 대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마주쳤다.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까닥이는 장민 대표와!
장민 대표는 자신과 특급 헌터를 찾기 위해서 이태성 길드장과 태성 길드 길드원들을 움직인 거다!
탱커 랭킹 1위, 이태성 길드장과!
한국 길드 랭킹 부동의 1위, 태성 길드 레이드 팀을!
‘대표님 이분들은 어떻게 움직이신 겁니까!?’
천문석이 마음으로 절규하는 동안에도 태성 길드 헌터들은 끝없이 쏟아져 들어와 1층 홀에 놓인 테이블을 채웠다.
‘아니, 뭐야!? 언제까지 들어오는 거야!? 설마! 길드원을 전부 다 데려온 건가!?’
특급 헌터, 최설, 진교은, 허준, 파티마 동료들!
철수형과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김철수 사무실 식구들!
장민 대표, 암살검 한경석, 장철 헌터, 이태성 길드장! 그리고 태성 길드 헌터들까지!
텅텅 비었던 고깃집 1층이 어느새 가득 차고 2층까지 사람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은 정신없이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숯불을 올리고 상을 차리고 맥주와 소주를 나르고.
고깃집 사장님은 대박의 예감에 입이 귀에 걸릴 듯 환하게 웃었다.
딸랑딸랑딸랑-
그런데도 아직도 계속 헌터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만…… 제발 이제 그만 멈춰……!’
마음으로 절규하는 순간 마침내 종소리가 멈추고 문이 닫혔다.
딸랑-!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피로가 겹겹이 쌓인 얼굴로 서류철을 든 회사원이었다.
어쩐지 낯익은 회사원은 천문석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네요.”
인사를 하는 순간 회사원이 누군지 기억났다!
예전에 이태성 길드장 지시로 특급 헌터에게 알루미늄 깡통을 배달했던 태성 길드 직원!
특급 헌터 대신에 대리 사인하다가 걸려서 하수구 던전 광산에 발령받을뻔한 김 비서였다!
천문석은 마주 고개 숙이는 동시에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김 비서님! 혹시 더 들어올 헌터 있나요!?”
“제가 끝이에요.”
천문석은 절정에 달한 무인의 감각과 공간 지각으로 고깃집 전체를 훑었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67명!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고깃집 안에는 67명이 있었다!
일반인도 아닌 각성 헌터 67명이 한우 회식을 하게 된 거다!
“한우 트럭 빨리 한 대 더 보내! 당연히 한 트럭으로는 부족하지! 씨름부? 야, 비교도 안 되지! 지금 고깃집에 각성 헌터들이 가득 찼어! 바로 트럭 출발시키고 계속 고기 준비해라!”
고깃집 사장님의 싱글벙글한 외침이 현실을 드러냈다!
‘……이게 도대체 얼마야!?’
반사적으로 계산을 시작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노란 광채가 있었다.
30관, 112.5kg의 황금!
순간 한겨울에 물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은 예전의 비정규직 알바, 신입 헌터가 아니다!
모든 헌터들이 원하는 초대박을 터트린 대박 헌터다!
아이가 자라나면 작아진 옷을 버리듯.
자리가 변하면 태도도 변해야 하는 법!
새로운 자리에 앉으면 그에 합당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문득 시선을 돌리자 장철 헌터, 이태성 길드장과 대화하는 장민 대표가 보였다.
느긋한 몸과 부드러운 표정.
시선의 중심에 서는 존재감과 분위기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무공에만 절정, 초절정의 벽이 있는 게 아니다.
삶에도 벽이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67명의 헌터들!
지금 고깃집에 가득한 이 사람들은 자신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을 위해 움직인 사람에게 한우를 쏘는 건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였다!
이때 이태성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모두 조용히 해 봐라.”
시끌벅적하던 고깃집이 단숨에 조용해지는 순간.
이태성 길드장은 가볍게 걸어와 천문석 옆에 섰다.
“여기 이 헌터분이 우리에게 오늘 회식을 쏘실 분이다. 우리 메뉴 뭐로 시킬까? 한우? 삼겹살? 아니면 그냥 국밥 돌릴까?”
우우우우우-
사방에서 야유 소리가 터져 나올 때.
이태성 길드장은 피식 웃으며 메뉴판을 건넸다.
천문석은 메뉴판을 펼치지 않았다.
메뉴판을 번쩍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쓱 훑어봤다!
태성 길드 헌터들.
철수형,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장철 헌터, 장민 대표.
암살검 한경석.
최설, 진교은, 허준, 파티마.
특급 헌터.
모두의 열망이 담긴 시선이 모여드는 순간 마음으로 되뇌었다!
‘나에겐 30관, 112.5kg의 황금이 있다!’
빵빵하다 못해서 터질 지경인 재정 상황이 든든한 자신감이 되는 순간.
천문석은 고깃집 안의 모두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외쳤다!
“당연히…….”
딸랑-
이때 종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고 다급히 외침이 들려왔다.
“오빠!”
‘류세연?’
느긋하던 평소 모습과 달리 혼이 나간 듯 정신없이 주위를 훑는 류세연.
류세연은 집에서 입는 트레이닝복에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테이블 사이를 달려 얼굴을 확인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생경하나 동시에 낯익은 감각과 함께 문득 기억난 이름.
적예(赤芮)!
“……!?”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는 순간.
다다닥 달려온 특급 헌터가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세연 누나! 여기야! 2층! 나랑 알바 자리 여기야! 얼른 올라와서 고기 먹어!”
류세연과 천문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
“…….”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벼락 맞은 듯한 전율이 흐르고.
류세연은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와 크게 외치며 달려왔다!
“오빠!”
‘타이밍을 놓쳤다!’
실종됐다가 일주일만에 갑자기 나타난 상황!
절박하게 외치는 세연의 이마에 평소처럼 딱밤을 날릴 수는 없다!
찰나의 순간 천문석은 고뇌하고 생각하고 움직였다!
휘이이잉-
공간을 뛰어넘어 섬전같이 움직이는 손!
“으앗-!”
“아아앗-!”
거의 동시에 울려 퍼지는 두 번의 깜짝 놀란 외침!
천문석은 번개같이 특급 헌터를 들어 올려, 두 팔을 펼치고 달려드는 류세연의 품에 안겼다!
커다란 곰 인형을 안은 사람처럼 특급 헌터와 류세연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타이밍!
천문석은 고깃집 안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내력을 실어 외쳤다!
[당연히 한우입니다! 무제한! 오늘 제가 무제한으로 쏩니다! 한우, 맥주, 소주 가리지 말고 마음껏 시키세요!]
우와아아아아아-
이 순간 고깃집이 떠나갈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고다!”
“저 녀석 배포가 맘에 드네!”
“와! 각성한 터에 한우를 산다고!?”
“과연 인간 재해를 움직일 만하다! 하하하-.”
“당장! 한 트럭 더 보내! 오늘 초대박이다! 으하하하하!”
……
동료와 친구들, 헌터와 사장님의 외침이 고깃집을 뒤흔드는 순간.
천문석은 두 팔을 번쩍 들고 무수한 환호와 갈채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슬그머니 시선을 움직였다.
“세연. 빨리 일어나! 우리 한우 등심 먹어야지!”
류세연의 품에 곰 인형처럼 안긴 특급 헌터.
하아-
어째선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는 장민 대표.
“…….”
그리고 특급 헌터를 품에 안은 채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류세연.
어느새 전율과 위기감은 씻은 듯 사라지고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스릴러 가 시트콤이 된 상황!
‘기회다!
천문석은 성큼성큼 다가가 류세연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야, 너 신발 짝짝이다! 카캬카카캌-.”
“오빠!”
류세연의 날카로운 외침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뻗으며 외쳤다!
“특급 헌터! 한우 등심! 출동!”
“넵! 한우 등심! 출동!”
다다다닥-
번개같이 달리는 꼬맹이와 어른!
특급 헌터와 천문석은 재빨리 테이블에 앉아 한우 등심을 불판에 올렸다!
치이이이이익-
1인분 150g, 49,000원의 한우 등심이 황홀한 소리와 함께 익어 갔다!
“류세연! 빨리 와라! 늦으면 한우 등심 없다!”
“맞아! 세연! 한국 사람은 빨라야 해! 느린 한국 사람에게 한우 등심은 허락되지 않아!”
“오!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당연하지! 난 한국 사람이니까!”
카캬카카-
카카카캌-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웃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류세연은 벌떡 일어나 의자를 들고 두 사람 사이로 파고들었다.
“와, 와! 둘이 같은 편 먹고 이러기야!? 내가 가운데 앉을 거야! 등심 모조리 파괴해 주겠어!”
파파파파팟-
번개같이 움직인 류세연의 젓가락에 꼬치처럼 줄줄이 등심이 꿰였다!
특급 헌터는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아앗! 안 돼! 이건 반칙이야! 세연! 익으면 먹으란 말야! 익으면!”
피날레는 화려하게!
그 말 그대로 특급 헌터의 분노한 외침이 터지는 지금.
천문석과 특급 헌터, 최설, 진교은, 허준, 한호석 교수의 모험은 끝났다!
헌터 67인의 한우 고깃집 회식이라는 화려한 피날레와 함께!
그리고 화려한 피날레가 늘 그렇듯이 그 끝에는 긴 청구서가 건네졌다.
“자 계산 다 됐습니다! 손님! 하하하- 와, 이런 건 저도 처음 봅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초대박을 터트린 고깃집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청구서를 출력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카운터에서 바닥까지 길게 이어진 청구서 끝에는 아주 긴 숫자가 적혀 있었다.
[35,975,000원]
“…….”
천문석은 청구서를 보는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리온 길드 최후식 이사님.
360개월 할부로 나이트 아머 슈트를 긁으신 분.
청구서에 적힌 숫자를 보자 어째선지 최후식 이사님이 이해가 갔다.
천문석은 카드를 내밀며 슬프게 말했다.
“36개월 할부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