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42화>
“워커 실트 이 재수 없는 녀석…….”
나이트 아머 기습 공격을 받고도 살아났는데 엔진이 폭발하다니!
절로 탄식이 터지는 상황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워커 실트를 구하는 거다!
쿵쿵, 쿵쿵쿵-
천문석은 내력을 담아 격벽을 두들겼다.
[야! 그 빌어먹을 이세기가 구하러 왔다! 워커! 들리면 대답해!]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어, 잠깐!? 이 진동 뭐지!? 설마!? 이세기! 이세기가 왔다고!? 야! 격벽에 깔아 놓은 마법 회로가 맛이 갔어! 목소리 안 들려! 이세기 맞으면 벽 두 번 두들겨라!]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지만, 진동을 알아챈 워커 실트의 외침이 돌아왔다.
쾅쾅-
천문석은 두 번 벽을 두들겨 신호하고 메고 있던 강철봉을 뽑아 금속 격벽을 긁었다.
그르르르륵-
거친 진동과 탄성이 돌아오고 불꽃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강화 강철 이상의 강도와 탄성!
인공 반발장이 사라졌지만, 자신의 내력도 간당간당한 상태다.
강철봉으로 뚫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방법은?’
팟-
머리에서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 눈에 들어온 헌터용 단검.
단검의 예기를 빌려 유형화된 강기를 만들어 뚫는다!
천문석은 단검을 꺼내 금속 격벽 위에 원을 그리며 주먹을 연신 내리쳤다.
그르르르르르륵-
쾅쾅, 쾅쾅쾅-
[뭐 하는 거야!?]
[원? 원이라고…… 앗! 설마!?]
단검으로 세 번 원을 그렸을 때.
워커 실트는 의도를 알아채고 외쳤다.
[구멍! 그 위치에 구멍 뚫겠다고!? 알았어! 준비할게! 바로 뚫어!]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단검에 밀어 넣었다.
부르르-
진동하는 검신에서 실타래처럼 풀려나온 내력이 뒤엉켜 검기가 되고.
파스스-
검기가 압축되어 빛을 뿜어내는 강기로 변해 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우도(右道)가 아닌 좌도(左道), 의(意)가 아닌 형(形)으로 강기를 유형화한다!
빌려 올 형은 원!
음양이 꼬리를 물고 회전해 태극이 되듯, 순수한 기를 모아 임계점을 넘는다!
천문석은 단검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단검이 원을 그리는 순간 강기에 담긴 빛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파슥, 파스슥-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강기의 빛!
단검이 원을 그리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강기에 담긴 빛도 점점 더 빠르게 점멸했다!
츠츠츠츠츠측-
어느 순간 단검은빛의 원으로 변했고 단검에 맺힌 강기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빠르게 점멸했다!
멈춘 바람은 작은 나뭇잎 하나 띄우지 못하나, 태풍이 되어 몰아치는 바람은 거대한 나무조차 뿌리 뽑아 하늘로 던져 버리니!
요결은 하나!
줄일 축(縮)!
강기(剛氣)를 압축하고 압축하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도약한다!
유형화된 파괴의 빛, 강기(罡氣)로!
팟-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단검에 맺힌 강기가 폭발하듯 솟아 올랐다!
유형화된 강기, 검강!
억지로 쥐어 짜낸 검강이기에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찰나이다!
그러나 이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하다!
빙글-
금속 격벽 위에 원을 그리는 검강!
쿠웅-
그리고 그 중심에 박혀 드는 단검!
쩌어어엉-
검강을 담았던 단검이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동시에 금속 격벽에 직경 1미터의 구멍이 뻥 뚫렸다!
“워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멍에서 튀어나온 워커 실트는 외쳤다.
“이세기!”
“역시 이세기 너였구나!”
“나는 믿었다! 이세기! 네가 구하러 올 줄 알고 있었어! 카카카카캌-.”
깊은 빡침을 담아 전부 이세기 탓이라고 외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절로 실소가 지어졌지만, 지금은 탈출이 우선이다!
“우선 여기서 탈출하자! 엔진 폭발…….”
워커 실트는 말을 끊고 다급히 외쳤다.
“바로 빠져나가자! 엔진 리미트 해제했다! 곧 초재생 시작하고, 광전사 모드 돌입한다! EMP 마력 폭풍도 세팅했다! 카카캌-.”
“초재생? 광전사 모드, EMP 마력 폭풍? 야! 그게 다 무슨 말이야!? 엔진 폭발 아니었어!?”
“어? 엔진 폭발하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앗!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얼른 위로 뛰어! 초재생 시작했다! 이대로면 갇힌다!”
외침과 동시에 뒤를 가리키는 워커 실트!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생체 조직이 보였다!
생체 조직이 차올라 쩍 갈라진 가슴 부위를 메우고 있다!
해파리 괴수가 보여 준 초재생과 같은 모습!
그리고 구멍이 뚫린 금속 격벽 안에서 쇠를 갈아내는 듯한 불길한 진동이 전해졌다!
쿠르르르르르-
“워커! 너 뭐한 거야!?”
대답은 머리 위에서 돌아왔다.
“이세기! 빨리 따라와! 위다! 이 초재생 표피! 겉에서부터 재생한다! 벽을 박차고 목, 머리통으로 빠져나가야 해!”
워커 실트는 생체 조직을 벽처럼 밟고 뛰어 머리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엄청난 재생력!
어느새 표피가 붙고 살이 차올라 메워지기 시작했다!
높은 우물에 떨어진 듯 거대 괴수 머리까지 이어진 수직 통로가 보였다!
‘이대로면 워커 말대로 생체 조직에 삼켜진다!’
천문석은 좌우 벽을 박차고 뛰어올라 단숨에 워커 실트를 따라잡았다.
“야! 초재생은 왜!? 어차피 끝났는데 이게 뭔 개고생이야!”
“승리!”
“뭐?”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폭풍처럼 쏟아지는 외침.
“나이트 아머!”
“내 미궁 악어 13호에 검을 내려찍은 나이트 아머한테 복수 해야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타이탄 마스터는! 나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초재생이 끝나면 광전사가 된 미궁 악어 13호가 나이트 아머 뒤통수를 갈기고! EMP 마력장을 터트린다!”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 나는 승리한다! 카카카카카캌-.”
‘와, 이 미친놈.’
천문석은 긴박한 상황도 잊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엔진이 터지려는 로봇 안에 갇혀 있었는데 승리를 생각했다고!?
이 강렬한 승리에의 집착은 낯익었다.
딱지치기에 기동 병참 도시를 걸었다가 한방에 날린 워커 실트7!
역시 두 사람은 동일인이 맞았다!
이때 워커 실트가 외쳤다.
“됐다! 20미터! 와이어 거리에 들어왔다! 얼른 내 공구 벨트 잡아! 한 번에 올라간다!”
반사적으로 공구 벨트를 잡는 순간.
파아아앙-
워커 실트의 손목 토시에서 발사된 와이어 가 입구에 걸렸다!
위이이이이잉-
빠르게 감기는 와이어를 따라 단숨에 끌려 올라가는 워커 실트와 천문석!
초재생하는 머리통 위로 튀어나오는 순간 사념이 담긴 진동이 쏟아졌다!
쿠르르르르릉-
해파리 괴수의 고통이 담긴 사념!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직감했다.
‘나이트 아머!’
‘나이트 아머!’
“막타를 때렸구나!”
“미친 파일럿 놈!”
천문석과 워커 실트는 동시에 외치고 고개를 돌렸다가 굳어 버렸다.
“…….”
“…….”
나이트 아머가 해파리 괴수 본체에 거검을 박아넣은 채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바다가 아니라 올록볼록 바다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솟아나는 바닷물 기둥을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오르는 바닷물 기둥을!
“아니, 시바! 저게 뭐야!? 바닷물이 왜 저래!?”
워커 실트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돌아봤다.
빠르게 멀어지는 공격헬기와 부산 함대!
어느새 텅 비어 버린 해운대 모래사장!
다급히 빌딩 안으로 달리는 헌터와 군인들!
어느새 저지선을 펼쳤던 모두는 후퇴하고 해운대 앞바다에 남은 건.
나이트 아머.
해파리 괴수.
악어 괴수 로봇.
도마뱀 괴수와 슬라임 괴수 사체.
자신과 워커 실트뿐이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 주위에서 바닷물 기둥이 치솟고 있다!
굉음도 위압감도 없다!
슬그머니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물기둥 수십 개가 아득한 높이까지 치솟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닷물로 이뤄진 기둥과 기둥이 만나 거대 괴수가 작아 보이게 만드는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누가 어디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지 않아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각성자는 전 세계에 단 하나, 유일했으니까.
-서해에 거대한 바닷물 장벽을 만든 한반도 어장과 공기 질의 수호자.
-항모 전단을 장난감 공처럼 한라산 꼭대기에 올려놓은 바다의 재앙.
-카지노 나이트가 끝나는 순간 불쑥 튀어나와 이태성 길드장의 ‘솔의 눈’을 스틸 한 스틸범.
-기상청 일기예보 적중률을 확 떨어뜨린 비바람, 폭풍, 기온마저 조종하는 천외천의 각성자.
……
이 모든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
“바다의 재앙…….”
천문석이 입을 여는 순간.
워커 실트는 바닷물 벽으로 가려진 게이트를 바라보며 절규했다.
“용용이! 미친 돌고래! 게이트를 왜 막아!”
* * *
“더는 접근 할 수 없습니다!”
고속 보트를 모는 W. S. 타격 대원의 외침에 로롤로 의장은 탄식했다.
“하필이면 용용이라니!”
고속 보트 앞을 바닷물 기둥으로 이뤄진 벽이 막고 있다!
불과 2, 3미터!
투명한 바닷물 벽 너머로 오너가 만든 괴수형 로봇, 미궁 악어 13호가 보였다!
2, 3미터 두께의 바닷물 벽쯤 단숨에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바닷물 벽을 만든 존재는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다!
바다의 재앙 용용이!
수백 미터로 치솟은 바닷물에 실린 상상을 초월하는 수압!
이 바닷물 기둥에는 마력장 방어막을 펼친 군함조차 반으로 쪼개는 엄청난 힘이 실려 있다!
고속 보트로는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오너가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라는 것뿐!
로롤로 의장은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오너! 평소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으십시오!’
이 순간 해운대와 육지에 겹겹이 저지선을 펼친 헌터와 군인 전원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들의 머릿속에선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용용이가 나타났다!’
이름을 제외한 나이, 종족, 겉모습 모든 게 베일에 가려진 재앙급 각성 동물, 용용이!
당연히 용용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바다의 재앙 용용이의 각성력은 너무나 유명했다!
마치 생명을 얻은 것처럼 바다속에서 튀어나오는 바닷물로 이뤄진 가오리, 고래, 문어 같은 생명체들!
눈앞의 바다에서 바닷물 기둥이 치솟는 순간 저지선을 펼친 모든 헌터와 군인들은 깨달았다.
‘용용이!’
출현 경보가 뜨는 순간 항모 전단조차 방향을 돌리는 바다의 재앙, 용용이가 해운대 앞바다에 나타났다!
“용용이가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누군가 외치는 순간 정신없이 달리는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바닷물 벽에 갇혀 있는 존재들!
도마뱀, 슬라임, 해파리 거대 괴수!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거대 괴수들이 용용이를 불렀다!
깨달음의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서 같은 장면이 재생됐다.
게이트 전쟁 당시 전남 해안가에서 일어났던 일.
7개의 던전이 연쇄적으로 터지는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이 던전 브레이크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 웨이브의 규모는 20만을 훌쩍 넘었다.
호남 평야를 상실할 최악의 위기의 순간.
하늘 끝까지 솟은 듯한 거대한 파도의 벽이 밀려 와 20만에 달하는 웨이브를 단숨에 박살 냈다!
용용이가 한 일이었다.
그 장면이 지금 상황에 오버랩됐다.
아득한 높이로 치솟은 바닷물 기둥들!
이 정도 높이와 규모의 바닷물은 그 자체로 질량 무기나 마찬가지다!
바닷물이 쏟아지는 순간 쓰나미가 휩쓸리 듯 장갑 버스, 간이 방벽, 레이저 와이어 할 것 없이 모조리 박살 난다!
‘최대한 멀리 그리고 높은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헌터와 군인들, 사방으로 흩어진 용역 헌터들은 정신없이 내륙으로 달리고 높게 솟은 빌딩 위로 올라갔다!
이 모습을 산 정상의 최설과 진교은, 허준, 한호석 교수, 파티마가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멍하니 지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줄줄이 솟아나는 바닷물 기둥에 갇힌 거대 괴수들과 나이트 아머.
이세기가 퐁퐁이를 타고 들어간 장소다!
“설마…….”
“……혹시?”
“아니겠지?”
“당연하지!”
“맞아! 이세기 때문에 용용이가 나타났다고? 말도 안 되지!”
하하하-
흐흐흐-
카하하-
모두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세계에서 정신없이 구른 모두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세기가 원인이구나!’
‘이상 던전 폭발할 때도 그러더니!’
‘하- 이 거지 같은 불운!’
‘아니,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스승님…….’
……
모두가 황당함과 어이없어할 때.
특급 헌터는 보글보글 구슬을 손에 쥔 채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하고 있었다.
“솟아라! 높게 높게 솟아서 악당 로봇을 혼내주는 거야! 카캬카카카캌-.”
기이이, 기이이익-!?
별갑 거복이가 특급 헌터와 바다에 솟은 물기둥을 번갈아 보며 경악할 때.
구으으-
띠디띧-
사슴이와 반짝이는 물기둥에 갇힌 마이너 타이탄과 대두목을 번갈아 보며 어째선지 슬프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