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17화>
아득히 오래전 상(上)께서 영혼육백을 태운 빛으로 키워 낸 세계의 나무.
세계의 나무의 가지 하나하나는 서로 다른 선택과 가능성, 인과를 이어 자라났다.
아득한 시간이 흘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와 차원에 가지를 뻗었지만, 처음 세계의 나무에 담긴 기원은 여전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그렇기에 정명한 자가 올바른 방법으로 세계의 나무 위를 걷는다면 소원하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다.
마도 황제는 세계의 비의를 깨닫는 순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의 나무를 걸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후회를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마도 황제는 세계의 비의를 관통하는 깨달음과 지혜로 진정한 신위에 닿은 존재.
온전한 힘을 가지고 세계의 나무에 오르는 순간 그 격과 존재의 무게에 나뭇가지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다.
마도 황제는 세계의 나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만들어 냈다.
-칭지드 봉우리, 끝없는 계단산에 건 대마법 인연(因緣).
-세계의 나무를 가로질러 세워진 차원 엘리베이터, 천공탑.
-천공탑을 허브 삼아 수많은 세계와 차원을 연결하는 차원 통신망.
그리고 마침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차원 안테나, 마탑으로 ‘대마법 인연’을 펼치고, 차원 통신망으로 자신과 인과가 얽힌 원래 세계를 찾아내 천공탑을 올라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격과 존재의 무게를 돌아갈 원래의 세계, 지구가 버티지 못한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마도 황제는 쌓아 올린 힘과 업 대부분을 승천의식으로 전능 옥좌에 놓아두고 원래 세계의 차원 준위를 낮췄다.
그리고 돌과 철, 최초의 마탑의 머릿돌과 타이탄 강철 약간의 명운(命運)과 함께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마도 황제가 사라진 타대륙은 마도 전쟁이 일어났고 전능 옥좌가 추락하고, 대협약이 깨지며 모든 마탑과 타이탄이 빛을 잃었다.
그 결과 타대륙에서 마도 제국은 사라졌지만, 마도 황제의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세계의 나무를 가로질러 세워진 ‘천공탑’.
천공탑을 허브 삼아 차원을 연결하는 ‘차원 통신망’.
천공탑과 차원 통신망을 관리하는 주체, 마도 제국은 사라졌지만, 인공 정령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인공 정령들은 천공탑과 차원 통신망을 유지했고, 수많은 차원과 세계의 종족들과 초월자들은 차원 통신망을 은근슬쩍 빌려 쓰고 있었다.
스카라베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마도 제국의 차원 통신망과 인공 정령을 이용해 스카라베 왕국의 도시, 식민지, 회사, 변경, 직원…… 그리고 금력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원의 체계적인 관리와 효율적인 배분!
‘시스템’은 스카라베 왕국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모든 일은 반면이 있는 법!
일대 혁신을 일으킨 ‘시스템’이 워커 실트의 정보를 ‘차원 통신망’에 전하고 있었다!
저 빛의 기둥으로!
강철 도시의 시장이 홀린 듯 창밖 빛의 기둥을 바라볼 때 수화기에선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시장님! 이게 사실 제가 하려던 게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긴급 점검하다가 발견한 건데. 혹시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 출입국 관리소 직원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통제실장의 변명.
그러나 이미 시장은 전화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띧디디디디-!?
‘아니, 시바! 저게 왜 쏘아져!?’
삡비비빕핏-!?
‘어, 어어!? 시장님! 정보 보류했다면서요!?”
……
시장은 회의실에 모인 사장들의 경악한 외침을 흘려 들으며 계속 창문 밖을 바라봤다.
허공을 꿰뚫은 빛의 기둥!
강철 도시의 시스템과 차원 통신망이 연결돼 동기화되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에 선했다!
시스템이 쏘아 올린 정보, 빛의 기둥은 차원 방벽을 뚫고 천공탑에 닿았고.
통신 허브 천공탑은 전해진 정보를 수많은 세계와 차원으로 뻗은 차원 통신망으로 퍼트린다!
보류했던 정보는 짧고 간단했다.
-마도 제국의 기동 도시 등장.
-마도 제국의 영수(靈獸) 출현.
그러나 이 정보만으로도 차원 통신망에 슬쩍 촉수를 박아 넣은 허신, 마룡, 악신과 초월자들의 주의를 끌게 된다.
주의가 끌려 이 세계를 주시하게 되면 곧 진실을 깨달으리라!
멈춰 선 마도 제국의 기동 도시를 깨울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니까!
“워커 실트.”
강철 도시 시장이 입을 열어 재앙의 화신의 진명을 말하는 순간 사장들은 경악했다.
띠디딛딛-!
피핏피핏핖-!
기익, 기기긱-!?
시장은 손을 들어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이미 늦었다.’
쿠릉, 쿠릉, 쿠르릉-
어느새 자욱하게 몰려들어 해를 가린 먹구름과 하늘을 긁는 듯한 우렛소리!
쩡-
거대한 빙하가 쪼개지는 굉음이 터지는 순간 허공이 쩍- 갈라지고 시선이 느껴졌다!
인간, 수인, 엘프, 노움, 드워프, 마수와 몬스터!
그 무엇도 아닌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는 초월적인 시선!
허신, 악신, 마룡, 신마!
초월자의 시선이 사막을 이동하는 거대한 도시에 닿았다!
초월자들은 보는 순간 깨달았다.
마도 제국의 기동 도시다!
‘아직 움직이는 기동 도시가 남아 있다고!?’
초월자들은 깜짝 놀랐지만, 하늘에 드리워진 신기루 벽과 스카라베의 도시를 보는 순간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스카라베는 초월자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대.
스카라베 총독과 채권 추심원이 밀려 오면 혼돈에 반쯤 걸친 마룡이라도 무사할 수 없다!
급격히 흥미를 잃은 초월자들의 시선이 거둬지고 허공에 생겨난 균열이 닫히려 했다.
이때 문득 보였다.
기동 도시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눈에 익은 영수(靈獸) 병사
거둬지던 시선이 되돌아오고 곧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초거대 악어거북!
영수 병사 말년 병장이다!
말년 병장이 짊어진 기동 도시는 하나뿐이다!
기동 병참 도시!
기동 병참 도시는 차원 방벽을 뚫고 도망친 허신과 고대신들을 추적 격멸하던 마도 제국 군단의 거점이다!
마도 제국의 기동 병참 도시가 부활했다!
기동 병참 도시를 부활시킬 수 있는 건 둘 뿐!
그러나 살아 있는 마도의 신 마도 황제는 이미 승천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사람뿐이다!
순간 모든 초월자는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저주받을 강철의 기사 타이탄을 만들어 낸 타이탄 마스터!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던 마도 제국에 막타를 때린 재앙!
차원 수배자, 워커 실트!
워커 실트가 나타났다!
초월자들은 마도 황제와 제국이 건재한 동안에는 감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마도 황제는 승천했고 권능의 상징 전능 옥좌는 추락했다!
그리고 마도 황제를 상징하는 돌과 철, 마탑과 타이탄은 빛을 잃었다!
게다가 이곳은 차원 준위가 낮은 마경 열사의 사막이다!
모든 상황이 말하고 있다.
‘복수의 날이 왔다!’
쩌쩌저저쩡-
순간 굉음과 함께 허공이 찢기고 수십 개의 균열이 생겨났다!
이 균열에서 혼돈에 오염된 마력과 사기, 사념파가 뭉친 덩어리가 촉수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초월자들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현현체!
궁궁, 궁궁궁-
현현체에서 혼돈이 파동이 되어 밀려 왔다!
이 파동에 닿는 순간 빛은 사라지고 공간은 뒤틀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철렁 내려앉는 가슴과 무게를 가진 듯 어깨를 내리누르는 공기!
엄청난 위압감에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이 순간 하늘과 지상의 모두가 홀린 듯이 현현체를 바라봤다!
사막을 달리며 격전을 벌이던 스카라베 경비대와 사슴이.
하늘을 누비며 고유마법을 펼치던 스카라베 마술사와 반짝이.
빗자루, 밀대를 든 주민들.
압류 딱지를 떼던 용역 헌터.
정신없이 물풀을 던지던 카즈빈, 오마르, 3천여 병사.
스카라베 마술사를 몰아내던 우론과 소니아. 이원, 여량위, 아카린, 섬초.
중앙 통제실 옥상에 자리한 파티마, 허준, 최설, 진교은, 한호석.
천문석과 특급 헌터.
강철 도시의 시장과 사장들.
이 모든 이들의 시선이 현현체에 닿는 순간.
천문석과 시장은 동시에 외쳤다.
“현현체? 현현체가 여기서 왜 나와!?”
‘초월자들이 알아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명령했다.
“야, 계획변경이다! 긴급 사이렌 울려! 모두 버티기만 해라!”
‘귀환한다! 당장 압류팀, 경비대 전원 귀환시킨다! 사이렌 울려라!’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위이이잉-
하늘과 지상!
강철 도시와 기동 병참 도시에서 동시에 사이렌이 울렸다!
하늘, 부두, 거리, 사막!
혼돈에 물들어가는 공간을 바라보던 모두는 사이렌 소리를 듣는 순간 번쩍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혼돈에 물든 촉수, 현현체가 차원 방벽을 뚫고 공간을 오염시키며 기동 병참 도시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기동 병참 도시는 엄청난 속도로 사막을 달리는 중!
현현체에 다가오는 속도보다 달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됐다! 이대로 도망치면 된다!”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현현체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현현체는 난로 위에 올라간 바짝 마른오징어 다리처럼 오그라들어 거대한 원을 만들어 냈다.
이 원에서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검은 사기!
검은 사기가 하늘로 치솟는 순간 그 안에서 검은 덩어리들이 우박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사막에 쫙 깔리는 수십 수백의 덩어리들!
크아아아아아아-
검은 덩어리들이 부르르 떨다 포효하는 순간 그 본모습이 드러났다.
트롤, 오우거, 외눈 거인!
키메라, 강철 뿔 멧돼지, 일각 코뿔소!
빙글빙글 눈이 돌아가는 거대 도마뱀, 촉수를 넘실거리는 거대 슬라임!
상급 마수와 최상급 몬스터가 포효하고.
그 사이사이 거대 괴수가 몸을 일으켰다!
10, 30, 70, 100, 170, 200…….
순식간에 백 단위를 넘어가는 머릿수!
하나로 뒤엉켜 난장판을 만들던 사람들과 스카라베 모두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어느새 검은 사기가 태양을 가리고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의 무리가 사막을 덮었다!
“…….”
“…….”
…… -
…… -
위이잉, 위이이잉-
시끄럽게 사이렌이 울리는 강철 도시와 기동 병참 도시의 모두가 침묵할 때.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드디어! 출동할 때가 왔어! 아수라! 휘잉휘잉! 특급 쌩쌩이 합체야!”
조각상을 꺼내 들어 특급 쌩쌩이 보닛에 쾅 내려찍고 액셀을 밟으려는 순간.
탁-
천문석은 특급 쌩쌩이 앞을 막았다.
“알바! 같이 출동하려고!? 얼른 타! 우리 얼른 출동하자!”
상기된 얼굴로 용감하게 외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현현체에서 뿜어지는 사기와 뒤틀린 혼돈에 오러 각성자 허준, 초절정의 무인 파티마도 안색이 변했다.
그런데 특급 헌터 이 꼬맹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달려가려 한다!
천문석은 특급 쌩쌩이 보닛을 통, 통- 두들기며 웃었다.
“특급 참모! 너에겐 다른 임무를 주겠다!”
“넵! 지휘관님!”
벌떡 일어나 척- 경례하는 순간 천문석은 주위를 가리켜.
“모두를 지켜 줘. 부탁한다. 특급 참모.”
“넵!”
특급 헌터가 다시 한 번 척 경례하는 순간.
천문석은 빙글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옥상 가장자리, 마수와 거대 괴수가 밀려 오는 방향을 향해서!
“야, 너 지금 뭘 하려고!?”
“당장 피해야 해! 위험해!”
심상치 않은 기색에 다급히 달려와 손을 뻗던 동료들은 경악했다.
바로 앞을 걸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아무리 뛰어도 따라잡을 수 없다!
마치 잡히지 않는 허상처럼 빠르게 멀어지는 존재감!
반면에 거대한 산을 바라보듯 급격히 커지는 위압감!
천문석은 어느새 꺼낸 강철봉으로 가볍게 어깨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툭, 툭, 툭-
이 순간 물결치듯 파문이 퍼져 나왔다.
이 파문이 닿는 순간 혼돈은 사라지고 휑한 바람 소리가 가슴속에서 들려왔다.
휘잉, 휘이이잉-
어느새 천문석은 옥상 가장자리에 멈춰 서서 도시를 뒤쫓는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의 해일에 시선을 뒀다.
그러나 그 눈은 적이 아닌 하늘과 땅에 닿았고, 그 마음에는 천기와 용맥을 담았다.
그리고 이미 도달했으나 행하지 않은 경지, 여의(如意) 뜻을 담아 말했다.
“이어져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천기(天氣).
대지에서 솟구치는 용맥(龍脈).
대지의 용맥과 하늘의 천기가 하나로 이어져 길(道)이 되는 순간.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의 극 하늘의 끝과 극을 넘어서는 극 그 너머 정점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적을 바라봤다.
천지의 틈을 비집고 기어 나와 혼돈의 촉수를 드리우는 마신!
마신이 쏟아 낸 권속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무저갱의 마굴을 걸으며 찢어발기고 박살 냈던 존재들이다!
전생 천마의 무를 잃었어도 다를 것은 없다!
일 수로 안 되면 십 수로!
맨손으로 안 되면 강철봉으로 짓이기면 될 뿐!
이들은 스카라베와는 다른 반드시 피를 봐야 하는 생사 대적이다!
전생 천마는 주저하지 않고 천기와 용맥이 이어진 길을 향해 진일보(進一步) 발을 내디뎠다.
이 순간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부르르를르, 터러러럴럴-!
“어? 잠깐 이 소리……!?”
너무나 익숙한 진동에 천문석은 멈칫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화물차에 시동을 거는 듯한…….
“……!”
전신에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이 흐르는 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단어!
“시동!”
이 순간 누군가 중앙 통제실 옥상으로 뛰어오르며 외쳤다.
[드디어! 시동 걸었다! 카카칵…… 컥!?]
[마수, 몬스터! 거대 괴수!? 어, 어어!? 저거, 저 촉수 현현체잖아!? 현현체가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