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813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중앙 통제실 옥상.
천문석은 망원경을 들고 도시를 확인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돌아가는 중!
사슴이는 빛의 기둥을 뚝, 뚝 잘라 내 스카라베들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반짝이는 수증기 폭발로 시야를 가리고 스카라베들의 균형감각을 흐트러트린다!
주민들은 스카라베를 빗자루로 쓸고 밀대로 밀어 커다란 술통에 담아 도시 밖으로 던졌고.
104인의 헌터들은 미친 듯이 도시를 달리며 스카라베를 밀어내고 압류 딱지를 모으고 있었다!
천문석은 이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스카라베를 빗자루로 때리고 밀대로 밀어내며 물불 안 가리고 압류 딱지를 떼어 내는 헌터들!
망치를 내려쳐 폭탄을 해제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빡친 스카라베가 거대화하거나, 고유 마법을 사용하면, 간신히 만들어 낸 이 장난 같은 난장판이 순식간에 피와 살이 튀는 격전으로 변한다!
그러나 거대화하거나 고유 마법을 쓰는 스카라베는 없었다.
하늘을 향해 더듬이를 뻗고 당황한 몸짓을 보이다가 힘없이 타닥, 타닥- 다음 압류 물품으로 이동할 뿐이다!
특급 헌터의 해석을 거친 반짝이의 말 그대로다!
‘강철 도시 시청은 엄청난 짠돌이라서! 일반 직원이 한두대 맞은 거로는 절대 금력 안 내줄 거라는데? 그런데 금력이 뭐야? 먹는 거야!? 앗! 아수라 조각상처럼 금 먹는 거야!?’
‘이걸로 이번 전투의 난관 하나를 지났다!’
거대화하거나 고유 마법을 쓰지 않고 벌금만 차곡차곡 쌓이는 건 상관없다!
어차피 용역 헌터들은 지구로 돌아갈 테니까!
압류 딱지를 떼는 건 용역 헌터들에게 맡겨 두면 된다!
하-
천문석은 망원경을 떼고 전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기동 병참 도시 전체는 어느새 난장판이 됐고 여기에 휩쓸린 모두는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사슴이, 반짝이, 주민들, 104인의 헌터!
어느새 이들 모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1차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있다!
천문석은 빛의 기둥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자욱하게 깔린 수증기를 뚫고 하늘에 거꾸로 드리워진 강철 도시로 연결된 빛의 기둥!
빛의 기둥을 타고 쏟아지던 스카라베의 수가 어느새 확연히 줄었다.
감이 왔다!
이제 곧 1차 웨이브가 끝난다!
즉, 일반 직원들이 아닌 제대로 된 병력이 동원된 2차 웨이브가 시작된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부두 방향을 바라봤다.
고속 갤리선, 하늘 고래호, 성채 도시가 정박 중인 부두!
이 부두에 2차 웨이브를 막기 위해 대기 중인 동료들이 있다.
이원, 여량위.
데이몽 발도, 아카린, 섬초.
우론, 소니아.
압둘라와 오마르 장로.
3천 명의 병사들!
2차 웨이브를 막을 계획은 심플하다!
열사의 사막 경계에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 1시간 30분!
이 1시간 30분 동안 2차 웨이브를 막으며 할 일은 넷이다!
1. 도시의 주 엔진에 시동을 걸고 지구와 연락해 게이트를 연다.
2. 게이트가 열린 순간 자신과 동료들, 104인의 헌터들은 지구로 귀환한다.
3. 그 즉시 기동 병참 도시는 경계를 넘고 고속 갤리선, 하늘 고래호, 이동 성채 도시는 난장판이 된 도시에서 이탈한다.
4. 마지막으로 기동 병참 도시와 초거대 악어거북이 차원 도약으로 튀면 모든 계획은 마무리된다!
자신이 이 계획에서 할 일은 전체를 조율하며 땜빵을 하는 것!
그전에 미리 확인할 게 있었다.
“최설, 허준, 파티마 준비됐냐?”
중앙 통제실 중앙 공터를 향해 외치는 순간 최설, 허준, 파티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세 사람과는 이야기가 끝난 상황.
세 사람은 중앙 통제실에 대기 중인 동료들, 진교은과 한호석 교수님, 특급 헌터를 챙기기로 돼 있었다.
“특히 저기 특급 헌터 잘 봐야…….”
부아아아아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친 엔진음이 들려왔다.
중앙 통제실 중앙 공터를 단숨에 달려온 부가티 헌터 미니!
끼이이익-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빙글빙글 회전해 착- 멈추는 순간 운전석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방금 나 불렀어!?”
“너, 어떻게 들었냐?”
“당연히 듣지! 이 특급 쌩쌩이에는 엄청난 기능이 있거든!”
특급 헌터가 두 팔을 들고 자랑하는 타이밍!
기회를 노리던 진교은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특급 헌터를 낚아채려 했다.
그러나 가까이 가기도 전에 부가티 헌터 미니는 출발했다!
부앙, 부아앙-
“특급 헌터! 위험해! 내려서 누나랑 같이 있자!”
“아냐! 특급 쌩쌩이 타면 하나도 안 위험해! 내가 잘 설명해 줄게!”
다급히 뛰어가며 외치는 진교은.
잡힐락 말락 절묘하게 속도를 조절하며 대답하는 특급 헌터.
이미 몇 번이나 봤던 광경이 다시 펼쳐졌다.
천문석은 부가티 헌터 미니를 탄 특급 헌터를 가리켰다.
“특급 헌터. 저 어린이 자동차 타면 어지간하면 못 잡는다. 그냥 오라고 말해. 그게 차라리 낫다.”
“야! 나 오러 각성자야! 신체 능력으로는 육체 각성자 바로 아래야! 당연히 꼬맹이는 잡을 수 있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도련님은 우리가 챙길 테니까! 걱정 마.”
“…….”
피식 웃는 허준과 최설, 말없이 고개를 갸웃하는 파티마.
천문석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접 겪으며 알게 될 일이다.
지금도 눈에 선했다.
컨테이너가 공깃돌처럼 날아다니고 수천의 해양 마수가 쏟아진 제주도.
특급 헌터는 난장판이 된 제주도를 저 특급 쌩쌩이를 타고 자유롭게 달렸다.
특급 쌩쌩이를 탄 이상 특급 헌터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2차 웨이브를 막는 거다!
천문석은 수증기 사이로 보이는 강철 도시를 바라보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언제든 와라!”
* * *
천문석이 투지를 끌어올리는 순간 흩어져 대기 중인 동료들도 투지가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원과 여량위.
내력을 움직이던 두 사람은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상생상극 수련에 성공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영육과 혼백 사이 심상 공간에 담긴 내력의 질이 변화하고 있었다!
상생(相生), 상극(相剋)하는 내력에 정중동(靜中動)의 이치가 담겼다!
태산처럼 멈춰 선 내력이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 폭풍처럼 몰아친다!
이원과 여량위는 전율했다!
단순한 수련법으로도 이 정도다!
일기공과 일원공을 합치고 시동을 걸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엄청난 무공을 전해 주신 스승님이 돌아가실 길을 열어드리는 거다!
어찌 소홀함이 있을까!
이원과 여량위는 하늘을 바라보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데이몽 발도, 아카린, 섬초.
데이몽과 아카린은 금괴 상자를 보며 외쳤다.
“금괴 상자! 역시! 이세기 대인! 이 엄청난 배포라니!”
“맞아!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금괴 상자뿐만 아니라! 엄청난 술까지 주고 갔다!”
“과연 이세기 대인은 물욕이 없으시다니까! 대인 제가 최선을 다해 대인의 앞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이세기!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
하하하하하-
크카카카카-
데이몽과 아카린이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릴 때.
금괴 상자 위에 웅크린 섬초는 눈을 번뜩였다.
분명 차원 방벽을 넘어 도약한다고 들었다!
이 금괴만 있으면 여비는 충분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차원 도약하는 이 도시와 함께 엄마를 찾으러 간다!
사고로 차원의 균열에 떨어져 온갖 고생을 하고 있을 과거의 엄마, 우흔(雨欣)을 찾아 언니에게 돌아가는 거다!
처음 세계의 나무를 여행할 때 다짐했던 것처럼 과거를 바꿔 엄마와 언니를 만나게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무사히 차원 도약하는 게 필수!
섬초는 고개를 번쩍 들어 하늘에 드리워진 스카라베의 도시를 보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앞을 막는 놈들은 그 누구라도 치워 버리겠다!’
-우론, 소니아.
하늘 고래호 갑판 위 우론과 소니아는 거울에 비친 한 사람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벽돌 금괴를 들어 옷자락에 쓱쓱, 쓱쓱슥- 문지르고 홀린 듯이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터져 나오는 탄성.
“흐어- 이세기! 멋진 새끼!”
“흐아-, 시바! 이세기 하! 이 새끼!”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고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여비가 뚝 떨어져 시장에서 차력 쇼, 서커스를 펼쳤던 두 사람!
그러나 이제 그런 과거와는 영원히 결별이다!
한 냥, 두 냥짜리 금편도 아닌 5관 금괴가 이 손에 들려 있다!
게다가 손에 쥔 이것 하나가 전부도 아니다!
순간 우론과 소니아의 시선이 다리 앞으로 향했다.
뚜껑이 열린 나무 궤짝 안에서 번뜩이는 5관 금괴들!
이세기 이 녀석은 5관 금괴 6개가 들어 있는 궤짝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 주고 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배포!
우론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사자심검을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
바로 공국으로 돌아가 부하들에게 금괴 다섯 개를 던져 주고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재빨리 도망치는 거다!
밑 빠진 독 그 자체!
우론 대공위를 마침내 벗어 버리고 자유롭고 평안하고 한가하게 사는 거다!
소니아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5관 금괴 6개면 여행 경비로는 차고도 넘친다!
게다가 천공탑에 들어가는 방법까지 너무나 쉽게 알아냈다!
이제 할배가 깨어나길 기다려 금괴를 가지고 천공탑으로 들어가면 가문의 숙원을 이룰 수 있다!
‘부자 되는 마나심법 완성!’
오대공에게 마나심법을 전한 ‘그분’을 직접 만나 마침내 마나심법을 완성하는 거다!
이 순간 우론과 소니아는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세기! 친구! 내가 길을 열어 주마!”
“하, 이세기! 나만 믿어라!”
5관 금괴 6개가 우론과 소니아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카즈빈, 오마르 장로.
부유석 부두에 고정된 성채 도시의 성벽 위,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봉인된 편지를 보고 있었다.
1, 2, 3. 숫자가 적힌 세 장의 편지!
“그러니까 이 편지 아수라 비서가 준거라고요?”
오마르 장로의 물음에 카즈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할아버지랑 이야기 벌써 다 끝났다면서 이 편지 줬어! 순서대로 하나씩 펼쳐 보라던데?”
오마르 장로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동 성채 도시를 끌어올릴 때 도시의 절대자, 인간 아이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 세 번 명령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이 세 장의 편지에 든 것은 그 세 번의 명령이다!
오마르 장로는 떨리는 손을 뻗다가 곧 거뒀다.
“안 열어 보려고? 내가 열까?”
바로 1번 편지를 열려는 카즈빈.
오마르 장로는 카즈빈의 손을 잡고 슬쩍 주위를 눈짓했다.
성벽 뒤 바짝 긴장한 채로 도열한 3천여 명의 병사들!
난장판이 된 도시와 거대한 신기루 벽이 드리워진 하늘!
오마르 장로는 소리 죽여 말했다.
“여기서 무사히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
바람검 파티마는 스스로 이세기와 함께 떠났고 이제 곧 격전이 시작된다!
카즈빈이 제대로 된 지휘로 3천여 병사들의 마음을 사면 완전히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다!
지금은 모든 힘과 정신을 여기에 쏟아야 할 때다.
편지를 열고 약속에 따라 명령을 따르는 건 그 후의 일이다!
카즈빈과 오마르 장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이렇게 기동 병참 도시의 모두가 투지를 끌어올리며 2차 웨이브를 기다릴 때.
신기루 너머 강철 도시 시청 회의실은 난리가 났다!
띠딛디디디디딛디-!
‘뭐야!? 재들 왜 저렇게 잘 싸워!?’
* * *
시장과 사장들은 기동 병참 도시에서 벌어진 전투를 믿기지 않는 눈으로 봤다!
압류팀으로 내려간 건 무급으로 소집된 일반 직원들!
마도 제국 일곱 재앙의 보스 워커 실트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끝장날 줄 알았다!
그때 재빨리 귀환시켜 도망칠 예정이었다!
그래서 금력(金力) 사용도 막아놨는데…….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투가 진행됐다!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고 밀대로 밀고 달려 통에 넣고 사막에 집어던진다!
사막에 떨어진 순간 허리를 잡고 드러눕는 스카라베 압류팀원들!
근거리 통신망은 구조팀, 보험사를 부르는 외침으로 가득 찬 상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미친 듯이 압류 딱지를 붙이고 떼는 어이없는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저걸 왜 손으로 떼고 있어!?’
‘그냥 워커 실트가 다 쓸어버리면 끝인데!?’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도 아닌 아슬아슬하게 압류 딱지를 떼고 붙이는 상황이라 강제로 소환할 수도 없다!
시장과 사장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피핏피피피피핏-!?
‘어, 어어!? 이렇게 오래 끌면 안 되는데!?’
누군가 외친 대로였다.
시스템을 보류해 놓은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대로 전투가 계속되다가 보류한 정보가 차원 통신망으로 넘어가면?
워커 실트에게 이를 가는 초월자들이 몰려 온다!
강철 도시가 난장판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다!
‘워커 실트 왜 안 나와!?’
‘혹시 저 도시에 워커가 없는 거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도 제국 유산을 살릴 수 있는 건 워커 실트! 타이탄 마스터밖에 없어!’
‘그런데 도대체 왜 나오지 않는 거야!?’
‘게다가 저기 저 빗자루, 밀대, 술통은 또 뭐야?’
‘일곱 재앙의 보스가 저렇게 싸운다고!?’
……
회의실 곳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질 때.
시장이 더듬이를 번쩍 세우고 외쳤다.
띠딛디디딛디딛-!
‘일반 압류팀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더 강한 팀을 보내면 됩니다!’
순간 시장과 사장들의 눈이 마주치고 각자의 머릿속에서 이름들이 떠올랐다!
시청 기동대, 경비대대, 보안팀, 용역!
일반 스카라베 직원과는 차원이 다른 전문가들!
띠디딛디디딛딛-!
‘이번에는 금력을 일부 제공해야 합니다!’
회의실 안의 모두는 일제히 더듬이를 까닥였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차원 통신망으로 보류해 둔 정보가 전해지기 전에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직원들을 소환하고 튀어야 한다!
순식간에 결정이 나고 모두는 바로 움직였다!
구으으으응-!
띠디딛딛딛-!
일반 직원이 아닌 기동대, 보안팀, 용역들이 출동 준비를 하고 빛의 통로로 몸을 던졌다!
워커 실트를 불러내 패배하기 위해서!
이유는 좀 다르지만, 천문석이 예상했던 대로 2차 웨이브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