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96화>
천문석과 특급 헌터 일행이 탄 기차가 떠난 직후.
부두에서 출발한 기차가 중앙 통제실, 반전능 옥좌에 도착했다.
치이이-
기차에서 내린 이동 성채 도시의 장로와 수행원은 바로 중앙 통제실로 안내됐다.
“바로 관리인님께 연락하겠습니다.”
보안 요원의 대답에 두 사람은 중앙 통제실 로비 의자에 앉았다.
장로와 수행원은 혼이 나간 듯한 얼굴로 로비 창밖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봤다.
이동 성채 도시 수십 개가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도시가 초거대 악어거북 등 위에 실려 움직이고 있었다!
밖에서 볼 때도 경악했는데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놀라움은 몇 배로 커졌다.
몇만! 아니 어쩌면 수십만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살아가는 거대한 도시!
장로 자신이 이동 성채 도시의 관리자이기에 이 거대한 도시의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이 도시는 마도 제국의 유산이다!
그것도 그냥 유산이 아니라 기차, 부유석 부두, 대형 크레인, 마법의 불 같은 마도 제국의 마도구가 사방에 널려 있는 제대로 기능하는 도시였다!
이 도시를 움직이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엄청난 부가 절절히 느껴졌다.
‘제대로 작동하는 마도 제국의 유산이 있다니!’
이제 곧 이 모든 것을 소유한 관리인이란 이름의 영주를 만난다!
이 도시의 영주는 적당한 공물만 바치면 그 무엇이든 대가로 주는 존재!
영주의 도움만 얻는다면 지얀데의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가고 가슴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장로는 결심했다.
‘그 무엇을 바쳐서라도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10분, 20분이 지나도 관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수행원이 다시 한 번 보안 요원에게 확인했지만, 보안 요원은 받지 않는 전화에 고개를 저었다.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장로님. 내일 다시 오는 게…….”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권력자는 변덕스러운 법.
약속을 미뤄 심기를 거스른다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만날 때까지 기다린다!”
장로는 단호히 말했다.
구르르르르르-
이때 복도 안쪽에서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번쩍 고개를 드는 동시에 들려오는 기괴한 외침!
[야! 보안……!]
“의장님! 충…….”
[됐고! 엘프랑 꼬맹이! 아니지, 사장님! 사장님 어디 갔어!?]
바퀴 셋 달린 탈것을 탄 꼬맹이가 나타나 정신없이 외쳤다.
“네? 사장님이요!?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서열 17위! 걔랑 같이 움직인 꼬맹이 못 봤어!?]
“서열 17위요? 의원님이라면 중앙 구역에…….”
[내가 방금 거기서 왔어! 내 회심의 역작! 우레 폭풍호! 이거 공물로 바쳐야 하는데 아무도 없잖아! 꼬맹이 못 봤어!? 보안! 이거 엄청 중요한 일이야! 빨리 기억해! 하늘 고래랑 별갑 거복이 데리고 다니는……!?]
“앗! 방금 호텔로 가는 열차가 출발…….”
[호텔! 거기구나! 바로 간다!]
“잠깐만! 관리인님 저기 공물을 바치러 오신 분들이……!”
보안 요원은 다급히 외치며 로비를 가리켰다.
생각지도 못한 어린아이!
이 아이가 관리인, 도시의 영주구나!
멍하니 보던 장로는 반사적으로 뛰어나가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이 도시에…….”
그러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외침이 들려왔다.
[나 관리인 그만뒀어! 관리는 아수라 비서가 하고! 도시 주인은 이제 사장님이다!]
“……네?”
허리를 드는 순간.
휘이이잉-
엄청난 속도로 장로 앞을 스쳐 지나가는 세 바퀴 탈것!
구르르르르르-
워커7은 단숨에 로비를 가로질러 달리며 외쳤다!
[앞에 문 열어! 급해! 급하다고!]
“잠시만……!”
“의장님이다! 빨리 열어!”
“문 부서진다! 얼른 열고 피해!”
다급한 외침과 함께 정문이 개방되고.
워커7은 문을 지나 통제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야아악- 최고 출력!”
그리고 기합과 함께 가속!
단숨에 언덕 정상을 가로질러 철로에 올라섰다!
휘이이이잉-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철로를 미끄러져 사라졌다.
워커 실트7의 등장부터 사라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적막이 감도는 로비에는 장로와 수행원, 보안 요원만 남겨졌다.
“……방금 저분이 관리인, 이 도시 영주시라고?”
장로의 질문에 보안 요원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그랬는데.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의원님께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의원님이 계실 때 오시는 게?”
“아닙니다!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는데 기다리겠습니다.”
보안 요원의 권유에 장로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도시의 새로운 관리인, 사장님이 이곳에 다시 나타날 일은 없었다.
이 순간 사장님은 환호성을 터트리고 있었으니까.
* * *
기차가 호텔이 있는 역에 멈췄을 때 내린 건 천문석, 특급 헌터, 아수라 셋과 퐁퐁이, 거북이뿐이었다.
“그럼 전 하늘 고래호의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환불…….”
파티마와 혼이 나간 오마르 장로는 하늘 고래호가 정박한 부유석 부두로 떠났고.
“전 주요 길드의 길드장 들을 만나 바로 퀘스트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마하바나의 동료분들은 내일, 늦어도 모레에는 이곳에 도착하실 거예요.”
엘프는 도시의 주요 길드장을 만나기 위해 시가지로 이동했다.
“그럼 이따가 보자!”
“잘 가! 안녕! 얼른 와!”
손을 흔들어 준 천문석과 특급 헌터, 퐁퐁이와 거복이는 아수라 비서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이동했다.
구불구불 도로와 숲을 지나 호텔이 나타난 순간 천문석의 어깨 위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으앗! 그러니까 이 호텔이 다 내 꺼라고!?”
[네. 이 호텔 전체. 그리고 이 도시의 부동산 63%가 사장님…….]
특급 헌터는 외쳤다.
“알바! 이 호텔 내 거래!”
“와! 너 뭐가 이렇게 운이 좋냐? 그 나이에 벌써 건물주가 됐다고!?”
천문석은 점점 가까워지는 호텔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호텔.
이 호텔은 돌로 만든 성채나 목조 건물이 아니었다.
통짜 유리로 된 전면과 환하게 밝혀진 조명!
외벽에는 엘리베이터가, 정원에는 물을 뿜는 분수가 자리했다!
당장 서울에 가져다 놔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현대식 건물.
그게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20층 호텔이었다!
그리고 호텔에 다가갈수록 더욱 감탄이 터졌다.
유리로 된 호텔에 드리워진 검붉은 노을!
문득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정원 너머 펼쳐진 도시가 보였다.
도시에 드리워진 수천까지 색이 뒤섞인 낙조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 한 폭의 그림은 정물이 아니었다.
도로, 지붕, 창문, 언덕, 사다리, 베란다, 시장!
그 어느 곳을 봐도 사람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한 도시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생동감과 활기로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결이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그림!
“…….”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서서 홀린 듯 노을이 지는 도시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목마를 탄 특급 헌터의 질문이 들려왔다.
“알바! 이 도시 맘에 들어!? 내가 줄까?”
“뭐……?”
문득 고개를 들자 이어지는 외침.
“아아 비서 누나! 여기서 내 건물이 어디야?”
아수라 비서는 딱- 손가락을 튕기고 손을 움직였다.
그 손끝이 닿는 순간 마술처럼 팟, 팟- 불이 밝혀지는 건축물들.
20층 호텔을 시작으로 정원, 도로, 철도, 역사, 건물, 빌딩에 줄줄이 불이 밝혀졌다.
아수라 비서의 손이 멈췄을 때는 도시의 2/3 이상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특급 헌터의 신난 외침 울려 퍼졌다.
“알바! 이거 다 줄게! 우리는 엄청엄청엄청 친한 친구잖아!”
“…….”
받는다고 지구로 가져갈 수도 없는 선물이다.
그러나 특급 헌터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호의에는 호의로!
“고맙다. 특급 헌터. 너 혹시 뭐 바라는 거 없냐?”
순간 눈을 번뜩이는 특급 헌터.
“당연히 있지! 우리 돌아가면 박스 성 세우는 거야!”
“철거당한 박스 성? 그거 다시 세우자고?”
“맞아! 이번에는 더 크게! 10배로 크게 세울 거야! 내가 장소도 생각해 뒀어!”
“10배로 크게……? 그럼 거실은 안 되고, 옥상에다가 세우면 금세 젖을 테니 집이 커야 하는데…….”
“옥상은 경주장 있잖아! 당연히 안 되지!”
“……!”
순간 머리를 스치는 이름!
번쩍 고개를 드는 순간 생각 그대로의 이름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장민 집에 세우는 거야!”
장민 대표의 집!
타워팰리스 최상층 펜트하우스!
100평이 훌쩍 넘어가는 탁 트인 거실!
수백억이 넘어갈 초고가의 펜트하우스 거실에 박스성을 세운다고!?
상상하는 순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에서 끓어올랐다!
“와! 너 언제부터 생각한 거야!?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천문석이 감탄하는 순간.
의기양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박스 성 철거당하고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그리고 깨달았어!”
“뭘!?”
“장민이 박스성이 얼마나 멋진지 알 수 있게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박스 성은 맨날맨날 철거당해!”
“와! 기발한 녀석! 그래서 장민 대표님 집에 박스 성을 만들자고? 장민 대표님이 얼마나 멋진지 알 수 있게!?”
“맞아!”
특급 헌터의 대답을 듣자마자 수많은 문제점이 머리를 스쳤다.
천문석은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특급 헌터! 너도 알겠지만, 이건 보통 프로젝트가 아냐! 시작부터 많은 난관이 있을 거야.”
“당연하지! 나도 쉽지 않을 건 알아! 하지만 벌써 도와줄 사람을 둘! 아니 셋이나 모았어!”
“셋? 한경석, 장철 헌터님? 마지막은 혹시 황 비서 누나?”
“당연히 아니지!”
“제임스 경호원?”
“제임스는 바로 장민한테 일러! 절대 안 돼!”
“그럼 누군데?”
“드래곤 형!”
“드래곤 형? 그게 누구…….”
순간 벼락 치듯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
“이태성!?”
“맞아! 드래곤 형이 도와줄 거야!”
순간 전율이 전신을 휘감았다!
서울 수복 작전의 영웅!
세계 탱커 랭킹 부동의 1위!
한국 길드 랭킹 1위 태성 길드의 길드장!
개인 재산이 조 단위인 이태성이 박스성을 만든다고!?
“정말로!?”
특급 헌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꺼낸 압착 딱지를 자랑스레 흔들었다!
“……!”
압착 딱지를 보는 순간 기억 속 외침이 되살아났다.
저 압착 딱지를 만들 때 도와줬다는 사람들!
‘드래곤 형이 불꽃 주먹으로 쿵쿵- 때리고!’
드래곤 형 = 이태성 길드장!
팟- 머릿속에서 섬광이 튀고 순식간에 계획이 얼개를 갖췄다.
[2차 박스 성 건설 계획!]
-장소 : 장민 대표의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
-감독 : 특급 헌터.
-인원 : 암살검 한경석, 강철 해머 장철, 이태성 길드장, 전생 천마 천문석!
어지간한 레이드에도 동원하기 힘든 인력을 가지고 박스성을 세운다는 황당한 계획!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번 계획은 이 정도 인력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었다!
박스성을 세우는 장소가 장민 대표의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니까!
이 타워팰리스는 장강 유통의 경호팀이 철통같이 지키는 성채 빌딩이다!
게다가 장민 대표는 장강 유통의 대표이자 엄청난 카리스마와 인맥을 지닌 거물!
보안이 철저한 성채 빌딩 안!
그것도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들키지 않고 박스를 옮기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한경석, 장철, 이태성, 천문석, 특급 헌터!
이 정도 인원을 가지고도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불가능’에 가까운 계획이다!
그러나 원래 ‘불가능’만큼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불가능’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도전은 시작된다!
‘불가능’ 한 에베레스트 등정!
‘불가능’ 한 세계 일주 항해!
‘불가능’ 한 남극점 도달!
‘불가능’ 한 달 착륙!
그리고 ‘불가능’ 한 장민 대표 펜트하우스에 초대형 박스 성 짓기!
가슴이 뛰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장민 대표가 출장에서 돌아와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지을 허탈, 황당, 어이없음이 뒤섞인 그 표정이!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순간 자신이 할 대답은 이미 정해졌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계획 찬성한다! 길어야 일주일이면 돌아가니까! 돌아가면 바로 시작하자!”
목마를 탄 특급 헌터는 손을 내밀고 외쳤다.
“역시! 알바야! 알바라면 이게 얼마나 멋진 계획인지 알 줄 알았어!”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손을 맞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카캬카캌-
카캬카캌-
이때 아수라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호텔 안 들어가세요? 음식이…….]
“앗! 늦었다!”
“으앗! 알바 고속 기동!”
천문석은 번개같이 몸을 돌려 호텔로 정문으로 달렸다.
천문석, 특급 헌터, 아수라 비서, 퐁퐁이, 거북이가 줄줄이 달려오는 순간.
호텔 정문에 두 줄로 도열한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 숙이며 외쳤다.
“오너! 환영합니다!”
“오너! 환영합니다!”
……
쉴 새 없이 터지던 사건·사고도 이제 끝이다!
마도 엔진에 시동을 걸고, 마하바나의 동료들이 도착해, 지구행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이 안전한 호텔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파티마를 가르치면 생각지도 못한 이세계 표류기도 끝이다!
천문석은 느긋한 마음으로 호텔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