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93화>
워커7과 엘프는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물건’이 사건·사고를 불러일으킨다고 확신했다.
그 예상이 맞았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눈덩이가 커지려면 눈이 필요한 법!
난장판, 사건·사고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난장판이 일어나려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얽혀야 했다.
천문석과 특급 헌터.
워커7과 엘프.
네 사람이 만나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인과가 엮인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동 성채 도시를 끌고 오는 수백에 달하는 모래 탈것!
고속 갤리선이 꼬리에 달고 있는 스카라베 출입국 관리!
그러나 정작 이 모든 위험을 예측한 워커7은 다가오는 위험은 상상도 못한 채 탄식했다.
[흐어어- 말도 안 돼!]
카카카카캌-
특급 헌터는 두 팔을 번쩍 들고 웃음을 터트렸고.
천문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틀비틀 물러서며 외쳤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천문석의 시선은 땅바닥에 그려진 하얀 원에 박혀 있었다.
그 안에 놓인 모든 구슬이 튕겨 나가고 원 안에는 단 하나의 구슬만 남았다!
특급 헌터의 구슬!
그렇다!
천문석은 구슬치기에서 패배했다!
“내가 졌다고!? 내가 구슬치기에서도 졌다고!”
[야! 내가 계속 말했잖아! 뭔가 이상하다고! 이제 감이 와! 저 구슬! 저 구슬이 보통 구슬이 아니었던 거야!]
“당연하지! 이건 내가 엄청 힘들게 딴 앙꼬 대장 구슬이야! 카카카캌-.”
공정한 승부를 위해 무공을 봉인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진다고?
그것도 템빨에 밀려서!?
그럴 리 없었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
자신이 템빨에 밀려서 질 리 없었다!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특급 헌터! 아직 구슬 남았다! 모든 걸 걸고 마지막 승부하자!”
“황제는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쓰으으으윽-
특급 헌터가 새하얀 돌멩이로 새로 원을 그리고.
후두두두둑-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모든 구슬이 이 원 안에 쌓였다.
“선공을 정하자!”
“내가 양보할게! 알바가 먼저 해.”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롭게 말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거부하지 않았다.
결과로 보여 주면 될 뿐.
신중히 구슬을 겨누고.
후, 하- 후, 하-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하나로 모았다!
하나로 모인 정신으로 내력 아닌 모든 것을 모아 구슬에 담는다!
호흡, 정신, 힘.
그리고 눈으로 관한다!
바람의 결, 대지의 굴곡, 수북이 쌓인 구슬의 형태를!
후, 하-
그리고 들숨과 날숨에 천지가 호응하는 순간.
파아앙-
구슬이 쏘아졌다!
명궁은 화살을 놓는 순간 적중 여부를 아는 법!
천문석은 구슬이 쏘아지는 순간 직감했다.
‘제대로 걸렸다!’
“좋았어!”
[됐어! 완벽한 경로야! 반 이상 튕겨 나온다!]
천문석과 워커7이 환호하는 순간!
파아아아아-
단숨에 직선으로 날아간 구슬은 원 안으로 들어갔다!
탁-
그리고 구슬에 닿기 직전 돌부리에 걸린 듯이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어?”
[어……?]
천문석과 워커7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순간.
툭-
구슬은 조용히 원안에 떨어져 멈췄다.
단 하나의 구슬로 날려 버리지 못하고!
“이게 뭐야!?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맞아! 내가 스캐너로 몇 번이나 훑었어! 아무것도 없었다!]
워커7은 다급히 달려가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다시 확인했다.
[역시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구슬은 저절로 튀어 오른 거야!]
“……아니 귀신이 막은 것도 아니고 구슬이 어떻게 저절로 튀어 올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외치는 순간 주위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
“하아, 그냥 부탁하시라니까…….”
[하- ……합니다.]
엘프와 인공 정령 아수라 비서가 동시에 한숨 쉴 때 당당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럼 이제 내 차례지!”
특급 헌터는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 하, 하- 입김을 불어 쓱쓱 닦았다.
“이번에는 앙꼬 대장 구슬로 만든 신기술을 보여 주겠어! 이야압! 특급 회오리 샷!”
빙글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빠르게 회전하는 팔!
팔이 멈추고 손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 팟- 쏘아지는 구슬!
파츠츠츠츷-
엄청난 회전이 먹힌 구슬은 구비구비 구렁이처럼 땅바닥에 ‘S’ 자 곡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
그러나 구슬에 담긴 힘과 회전력을 깎아 먹는 쓸모없는 움직임이었다!
[됐어! 저대로 들어가면 제대로 구슬 못 튕겨 낸다!]
워커7이 외치는 순간 구슬이 원 안에 들어갔다.
핑그르르르르-
이 순간 구슬은 가속하며 흙먼지를 피어올렸다!
[저게 왜 가속해!?]
따다다다다닥-
순간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미친 듯이 구슬이 튕겨 나왔다!
“……!”
[말도 안 돼!]
그러나 이 일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천문석과 워커7은 즉시 모든 마음을 모아 외쳤다.
“제발! 하나만! 제발 하나만 남아랏!”
[역전할 수 있어! 하나만! 하나만 남아!]
“……하아-.”
“하늘님! 땅님! 제게 힘을 주세요!”
[보석과 강철! 철과 돌! 보고 있지!? 도와줘! 하나만 남게 도와줘!]
천문석과 워커7은 모든 마음을 모아 외쳤다!
딱지치기, 공기놀이, 땅따먹기에서 이미 패했다!
구슬치기가 마지막 승부고 이 마지막 승부에 마도 엔진이 걸렸다!
그러나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원안에 남은 구슬은 이번에도 하나뿐이었다.
앙꼬 대장 구슬!
“내가 이겼어! 역시 앙꼬 대장 구슬은 무적이야! 카카캌-.”
천문석은 엄청난 심적 고통에 휘청였다.
“알바! 구슬 없지? 이제 그만…….”
“기다려! 엘프 혹시 구슬 없어!”
[그래! 이번엔 가능성이 보였어! 엘프 구슬 꺼내봐! 어서!]
“……제가 구슬이 어디에 있어요?”
[…… 베어링 있잖아! 기관 보수용 강구 베어링 꺼내!]
“베어링! 그렇지! 그걸로 승부하면 되겠다!”
이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이기니까 재미없어. 이제 그만해야지.”
“뭐……?”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순간 재빨리 다가와 구슬 주머니를 받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쓱쓱 닦아주는 아수라 비서!
특급 헌터는 진짜 황제처럼 천천히 걸어가 테이블 위에 비스듬히 누웠다.
퐁, 퐁, 퐁-
순간 그 앞에 퐁퐁이와 거북이가 내려앉고.
탁탁탁-
아수라 비서는 물이 담긴 접시 2개와 빨대가 꽂힌 컵을 내밀었다.
쪼르르르륵-
“으아- 시원하다!”
특급 헌터의 탄성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아수라 비서가 허리를 굽히며 나긋하게 말했다.
“사장님. 호텔을 준비했습니다. 바로 모실까요? 맛있는 목욕과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목욕!? 혹시 장난감도 있어!”
“당연하죠! 하늘 고래, 거북이, 고양이, 개 장난감을 준비했습니다!”
“앗! 사슴이, 반짝이가 빠졌잖아!”
“사슴이, 반짝이요? 말씀해 주시면 바로 준비…….”
멍하니 이 모습을 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대로면 특급 헌터는 호텔로 떠나 버린다!
“……특급 헌터. 잠깐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급히 외치고 엘프에게 사정했다.
“야, 나 완전히 감 잡았어! 다시 승부하면 이길 수 있어! 저 이상한 일들을 막을 방법이 있어!”
[맞아! 나도 감이 왔어! 마지막에는 정말 아슬아슬했어! 그리고 나도 막을 방법이 있다!]
“…….”
엘프는 눈을 번뜩이는 워커7과 이세기를 번갈아 봤다.
워커7이 도시를 날렸을 때와 똑같은 눈을 한 이세기!
“……마도 엔진과 아수라의 협조를 얻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니까!”
[맞아! 마도 엔진, 아수라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
“네, 드릴게요…….”
엘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좋았어!]
“결계! 이번에는 결계를 치고 대결하는 거다!”
[난 바닥에 마력 회로 그릴게! 뭔가 이상한 힘이 작용하고 있어! 마력 회로로 그 힘을 막아야 해!]
천문석과 워커7이 신나게 외칠 때.
엘프의 말이 이어졌다.
“……단. 조건이 있어요.”
“조건?”
[뭔데 빨리 말해 봐!]
엘프의 손이 테이블 아래 쪼그려 앉은 특급 헌터를 가리켰다.
“새로운 마스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제 조건이에요. ‘마도 엔진이랑 아수라 비서 도움이 필요한데 빌려줄 수 있어?’.”
[야! 너도 봤잖아! 저 마스터 꼬맹이 엄청 철저해! 안 된다니까!]
워커7이 외칠 때 천문석은 이미 성큼성큼 특급 헌터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어차피 안 될 테지만, 1분도 안 걸릴 간단한 일이다.
바로 말하고 구슬을 받아 승부하면 된다!
특급 헌터는 아수라 비서와 함께 테이블을 등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어때 맛있지? 이거 엄청 좋은 거야!”
“가슴이 콩콩 뛰고 몸이 찌릿저릿해요? 이게 맛일까요?”
“처음이라 그런가? 조금 더 핥아 볼래……?”
천문석은 바로 특급 헌터를 불렀다.
“특급 헌터 할 말이 있다. 그 상자 안에 있는 마도 엔진…….”
쪼그려 앉아 있던 특급 헌터와 아수라 비서가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
천문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
특급 헌터의 손에 들린 새하얀 돌멩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새하얀 돌멩이를 핥는 인공 정령 아수라!
“……너 지금 뭐 하냐?”
“아아 비서 누나가 목욕이랑 음식 준비했다고 했거든! 그래서 내가 엄청 맛있는 한우만큼 맛있는 음식 있냐고 물어봤어! 그러니까 아아 비서 누나가 자기는 뭘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맛을 잘 모르겠다는 거야!”
“……그래서?”
“맛을 모르다니! 계속계속 고등어만 먹은 나 본다는 조금이지만 불쌍하잖아!? 그래서 내가 엄청엄청 귀한 이거 맛보라고 꺼냈어!”
특급 헌터는 ‘알겠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린 새하얀 돌멩이를 흔들었다.
새하얀 돌멩이는 눈에 익었다.
“……그거 아무데나 선 그려진다는 돌멩이 아냐? 방금 구슬 놓는 원 그린?”
“맞아! 이거 엄청 잘 그어져!”
쓱쓱, 쓱쓱-
순식간에 바닥에 별과 사각형을 그린 특급 헌터.
“앙꼬 대장한테 딴 7점짜리 공기돌?”
“앙꼬 대장이 앙꼬한테 준 공깃돌! 앙꼬한테 딴 거라니까! 그리고 7점이 아닌 8점짜리! 7점이랑 8점은 엄청엄청엄청 큰 차이가 있어!”
특급 헌터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화를 냈다.
“아, 미안이 아니라!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돌멩이를 핥으라고 주면 어떡해!?”
버럭 외치는 순간 아수라 비서의 탄성이 들려왔다.
[어쩐지! 혀에 닿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이게 8점짜리 돌이었군요! 엄청나요! 사장님! 저 맛이 뭔지 이제 감이 오는 거 같아요!]
‘……돌을 핥고 맛을 느껴!? 아니, 이 무슨 장금이 육두구 먹는 소리야!?’
“그렇지! 역시 아아 비서 누나는 알 줄 알았어! 편식하지 않고 뭐든지 잘 먹어야 튼튼하게 자라는 거야!”
의젓하게 말하고 탁, 탁- 아수라 비서의 어깨를 두들기는 특급 헌터.
“…….”
할 말이 너무나 많았으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천문석은 바로 용건을 꺼냈다.
“특급 헌터. 그 상자 안에 있는 마도 엔진, 아까 이렇게 생긴 금속 상자 좀 빌려줄래? 아, 옆에 아수라 비서님 도움도 필요한데 같이…….”
순간 벌떡 일어나 양손을 번쩍 드는 특급 헌터.
‘봤지?’라는 얼굴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이야야압! 휘잉휘잉 상자 나와랏! 얼른 나와랏!”
“뭐……?”
순간 나무 상자에서 툭 튀어나와 데굴데굴 두 바퀴 테이블 위를 굴러.
팟-
섬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마도 엔진!
“특급 헌터?”
[마스터 꼬맹이?]
특급 헌터는 씨익 웃으며 인공 정령 아수라에게 말했다.
“아아 누나! 임무야! 알바를 도와줘!”
“특급 헌터!?”
[마스터 꼬맹이!?]
경악한 두 사람이 외치는 순간.
엘프는 어느새 하늘에 드리워진 노을을 바라보며 한숨 쉬었다.
“하아- 처음부터 그냥 부탁하시지…….”
“내가! 내가 삽질을 한 거라고!? 특급 헌터! 너 이런 아이 아니잖아! 공과 사가 철저한 아이였잖아!? 그런데 이 모든 걸 공짜로 해 준다고!?”
천문석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지! 검사 할아버지가 항상 말했어! 공짜로 사탕, 젤리 준다는 어른을 경계해라!”
[그러면 그렇지! 승부지? 대결해서 이겨야 해 주는 거 맞지!?]
워커7의 다급한 외침에 특급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야! 승부는 끝났어! 아아 비서 누나!”
인공 정령 아수라는 앞으로 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도시의 마스터 사장님께서는 공물 시스템에 큰 감명을 받으셨습니다.]
“맞아! 맞아!”
특급 헌터가 고개를 끄덕일 때.
아수라의 손이 테이블 위의 마도 엔진과 스스로를 가리켰다.
[마도 엔진과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공물을 바치시면 됩니다. 제가 점수로 환산해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특급 헌터는 눈을 빛내며 외쳤다.
“이제 공물 점수를 확인할 시간이야! 카카캌- 앗! 아아 비서 누나 밖에 형이랑 할아버지, 누나도 들어오라고 해야 해! 공물 바친다고 했거든!”
[네! 알겠습니다! 아, 방금 도시에 도착한 외부인의 공물 접수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들도 부를까요?]
“당연하지!”
특급 헌터는 당당히 선언했다.
“공물 점수 1등인 사람에게 엄청엄청엄청난 선물 줄 거야!”
[됐어! 이런 거면 내가 1등이다! 크카카- 꼬맹이 마스터! 잠깐만 기다려라!]
“아니…… 갑자기 왜 이렇게…….”
워커7이 한달음에 달려가고 엘프가 머리를 부여잡을 때.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일주일이란 긴 시간이 남아 있고 이곳은 안전한 기동 병참 도시 안이다!
예측불허의 인생에 이런 여흥 또한 나쁘지 않았다.
최후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인 법이고.
자신에게는 공물 점수에서 1등이 예정된 치트키가 있었으니까!
대환단!
“좋다! 이 경쟁 받아들인다! 카캬카-.”
천문석은 승리의 확신을 담아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였다.
치이, 치이이-
이동 성채 도시의 반란군 장군과 장로는 반전능 옥좌행 기차를 탔고.
부우우우웅-
스카라베 출입국 관리는 거대한 강을 타고 내려가는 고속 갤리선을 발견했다.
인생은 예측불허.
천문석의 말 그대로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도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