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91화>
아직 태양이 쨍쨍한 늦은 오후.
고속 갤리선 한 척이 짙은 안개 속을 달리고 있었다.
하늘에선 태양이 이글거리고 문득 불어오는 바람은 뜨거운 열기를 담은 열풍!
그런데도 주위의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만져질 듯 선명한 안개는 고속 갤리선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철검장의 정예 무사가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조장님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더운데 안개가 사라지지 않아요!”
“야! 난 네 정신머리가 더 신기하다! 분위기 파악 안 되냐? 입 닥쳐!”
기겁한 조장은 재빨리 부하를 제지하고 힐끗 시선을 돌려 눈치를 봤다.
이번 일의 책임자.
철검장주 주호의 심복 왕체!
“…….”
그러나 왕체는 석상처럼 서 있을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못 들었나? 휴-’
조장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재빨리 부하를 끌고 갑판 구석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왕체는 모든 것을 들었다.
단지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해서 평소처럼 부하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왕체는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거센 바람에 부풀어 오른 돛.
배와 함께 빠르게 흐르는 안개.
안개 사이 사이로 얼핏 보이는 모래.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배는 사막 위를 항해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사막을 달리는 배.
그리고 그 배 위에 자신이 타고 있다니!
직접 겪어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아니, 자신만이 아니다.
고뇌 어린 표정으로 서 있는 최림.
방금 조장이 끌고 간 조원 같은 칠성파의 정예 10여 명.
임시 동맹을 맺은 조폭 김기철과 그 부하들.
그리고 만약을 위해 고용한 100여 명의 용역 헌터까지!
100명의 훌쩍 넘는 헌터들이 사막을 달리는 고속 갤리선 갑판에 흩어져 있었다.
“…….”
“…….”
“…….”
망망대해 무인도에 표류한 조난자들처럼 허망한 눈빛을 한 채로!
“집에 가고 싶다…….”
누군가 말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용역 헌터들.
왕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정말로 집에 가고 싶었다!
처음 상해에서 주호 장주님의 명령을 받아 최설과 대환단을 찾아 제주도로 출발했을 때는 빠르면 하루, 길어야 일주일이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단추, 최설의 행방을 아는 진교은이 있는 제주도에서 예상외의 일이 터졌다.
갑자기 등장한 진교은의 뒷배에 두들겨 맞고, 도망치듯 서울로 떠나야 했다.
그리고 현지의 용역 헌터를 대규모로 고용해 이동한 강릉.
강릉에서 너무나 재수 없게 엮인 한 놈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됐다!
이세기!
순간 머릿속에 지난 며칠 동안 겪은 일들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강릉, 계단산, 적염성, 시가지, 강, 바나항, 그리고 이곳 사막까지!
가는 곳마다 난장판이 됐고 쉴 새 없이 구르고 구르다가 간신히 한숨 돌렸을 때.
이 모든 일의 원흉!
이세기 실종이라는 사건이 터졌다!
‘빌어먹을 이세기!’
왕체가 마음속으로 울분을 터트리는 순간.
갑판 곳곳에서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런 의뢰는 받지 말았어야 했어.”
“강릉이 난장판이 됐을 때 튀었어야 했다니까!”
“시바! 안정화 권역 안에 생긴 던전이 징조였어! 그때라도 튀었으면 이 꼴은 안 됐는데!”
……
100여 명의 용역 헌터들은 후회와 분노로 점철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왕체도 이들의 말에 공감했다.
처음 한국에 온 목적은 대환단과 최설이다.
그러나 대환단과 최설을 확보하기는커녕, 개같이 구르다가 실종된 이세기를 찾아 배를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세기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녀석들 말썽부리면 그냥 버리세요!’
이세기 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그리고 이 고속 갤리선의 주인도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때 후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마치 자신의 내심을 말하는 듯한 목소리에 흠칫 놀란 왕체!
왕체는 바로 목소리가 들려온 장소를 살폈다.
멀찍이 선 최림!
길 안내를 맡은 최림은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후미 갑판을 보고 있었다.
‘후미 갑판?’
문득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한국에 온 목적 중 하나. 최설이 보였다.
차양이 쳐진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최설!
하루 한 번 갑판에 나와 해를 보는 자신들과 너무나 다른 처지에 분통이 터졌다!
최설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일행 셋과 이원이라는 무인 곳곳에 흩어진 호위 무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상석에 비스듬히 앉아 탁, 탁- 황동 곰방대를 터는 여자가 보였다.
사람이 아닌 호랑이가 앉아 있는 듯한 위압감!
눈이 스치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곰방대를 털며 웃고 있는 저 여자가 이 고속 갤리선과 무사들의 주인!
초절정의 강자, 여량위였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여량위는 이세기의 제자였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아니, 초절정의 강자가 왜 이세기를 스승으로 모시는데!’
여량위가 있는 한 최설은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한다!
아니, 사실 여량위가 없더라도 최설을 건드릴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세기!
최설은 갑자기 사라진 이세기의 동료고 이세기가 없으면 자신들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만약 이세기가 돌아왔는데 자신의 동료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된다면?
이세기 놈의 무력과 잔머리.
게다가 저 무시무시한 여량위란 제자까지!
힘, 머리, 영향력, 제반 상황!
모두 이세기의 압도적인 우위!
이세기가 손가락만 한번 까닥이면 100명이 훌쩍 넘는 용역 헌터는 단숨에 어딘지도 모르는 이세계의 사막에 던져지게 된다!
그 순간 끝장이다!
이곳은 한국 헌터들은 있는지도 모르는 이상 던전 안이고 사방에 상상도 하지 못한 강자들이 득실득실한 세계다!
적염성의 호랑이 일족의 전각에서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처럼 그냥 말라 죽게 될 거다.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뿐이다.
타겟이었던 최설을 최선을 다해 지키며, 원수 이세기가 무사 귀환해서, 지구로 데려다준다는 약속을 지키기를 빌어야 했다!
혹시 이세기가 자신들을 깜빡하기라도 하면 바로 끝장인 상황이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하긴 한두 명도 아니고 100명이 넘는데 깜빡할 리는 없을 거야! 맞아 그럴 거야!’
‘적의 무사 귀환, 약속, 기억력에 의존하는 이런 병신 같은 상황이라니!’
하아아-
끓어오르는 울분을 깊은 한숨과 함께 날려 보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툭 튀어나왔다.
“하- 이세기 새끼…….”
순간 비슷한 탄식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시바…… 이세기! 하-.”
“이세기 미친놈…… 하아-.”
“하아- 이 새끼! 어디 간 거야! 하-.”
“그때 엮어서는 안 됐는데…… 시바, 시바-.”
최림, 김기철, 철검장의 정예와 멍하니 앉아 있는 용역 헌터 모두가 비슷한 탄식을 흘렸다.
이 순간 왕체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이세기!
이 모든 사고와 불운은 이세기 그놈 때문이다!
이세기는 사고와 불운을 몰고 다니는 재앙신 그 자체였다!
순간 왕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뱉었다.
퉤퉤퉤-
* * *
“하아- 이세기!”
최설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걱정하지 마라. 스승님한테 이 정도 난장판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이원이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여량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개 길잡이 10여 명 덕분에 시간을 확 줄였어. 이제 곧 열사의 사막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들어가면 곧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맞아. 시차가 하루도 나지 않으니 흔적이 남아 있을 거다. 밤새 달려야 할 줄 알았는데. 해가 지기도 전에 도착하다니! 출발 직전에 정보를 얻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엉뚱하게 마하바나에서 시간 낭비를 할뻔했으니까 말야.”
여량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수 갑판에 모인 안개 길잡이들을 바라보며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을 생각했다.
바나항에서 관문 도시 마하바나로 출발하기 직전, 대륙 상단과 거래하는 마하바나의 작은 상단에서 마력석 통신으로 정보가 들어왔다!
길잃은 용권풍 하나가 관문 도시 마하바나를 지나 열사의 사막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는 정보!
별생각 없이 넘기려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이세기 스승님 일행이 탄 배와 이동 성채 도시를 삼켜 서쪽으로 이동한 길잃은 용권풍!
‘혹시!?’
바로 지도를 펼치고 시간과 경로, 각지에서 나타난 용권풍 정보를 모두 취합해 분석한 결과!
열사의 사막으로 들어간 길잃은 용권풍과 스승님 일행을 삼킨 길잃은 용권풍이라는 같은 용권풍이라는 결론이 났다!
열사의 사막 깊은 곳은 바람조차 돌아오지 못한다는 마경!
스승님 일행이 마경에 들어갔다면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여량위는 즉시 안개 길잡이 10여 명과 마경에서 돌아왔다는 길잡이를 태우고 고속 갤리선을 출발시켰다.
열사의 사막의 ‘경계’ 너머에 있을 스승님과 그 일행을 찾기 위해서!
안개 길잡이 10여 명의 힘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고속 갤리선은 3일 거리를 한나절 거리로 줄여, 해가 지기도 전에 관문 도시 마하바나를 지나 열사의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여량위는 돛대 위 망루에 눈길을 줬다.
망루 위에는 견시수와 열사의 사막의 깊은 곳에서 돌아왔다는 길잡이 있었다.
이때 외침이 들려왔다.
“아지랑이가 하늘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지랑이가 거대한 벽처럼 좌우로 뻗어 있습니다!”
‘길잡이가 말한 마경의 경계다!’
여량위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안개 길잡이!”
“모두 준비해라! 안개길에서 나간다!”
뱃머리의 하누만 노인이 갈라진 지팡이를 드는 순간 일제히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안개 길잡이들!
파스스스슥-
뜨거운 태양과 열풍에도 끄떡도 없던 안개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곧 고속 갤리선을 감싼 안개가 모두 흩어지고, 멀리 아지랑이가 거대한 벽이 되어 서 있는 게 보였다!
일렁이는 아지랑이 벽 위에는 마치 신기루처럼 상이 맺혀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신기루 벽!
열사의 사막 깊은 곳 마경으로 들어가는 경계!
그리고 길잡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맞습니다! 저기가 제가 들어갔던 신기루 벽입니다! 저 벽은 바람과 모래를 빨아드립니다! 열사의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온 용권풍은 하나같이 저 신기루 벽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단주님!?”
여량위는 바로 명령했다.
“우선 접근한다!”
가볍게 고개 숙인 선장은 바로 명령했다.
“노잡이! 주술사! 바람잡이! 장대잡이! 전원 급속 기동 준비해라!”
갑판에 나와 있던 용역 헌터들이 소개되고.
고속 갤리선의 선원들은 순식간에 갑판 곳곳으로 흩어졌다.
“언제든 호풍(呼風), 류사(流沙)의 주술을 펼칠 수 있습니다!”
주술사들은 마석과 주술 도구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
쿵쿵, 쿵쿵쿵쿵-
노잡이들은 노를 위로 들어 올려 가볍게 선체와 부딪혀 준비됐음을 알렸다!
“바람 아직 양호합니다!”
바람잡이들은 깃털 지팡이와 풍석을 들고 돛 뒤에서 외치고.
“모래 흐름! 문제없습니다!”
장대잡이는 장대를 들고 좌우 선측에 서서 외쳤다.
촤아, 촤아아아-
고속 갤리선은 모래 위를 질주해 신기루 벽으로 접근했다!
파아아아앙-
바람이 거세질 때 선장이 외쳤다.
“단주님!?”
여량위는 신기루 벽에 시선을 둔 채로 명령했다!
“신기루 벽을 따라 이동한다!”
“좌현 90도 급속회전! 신기루 벽을 따라 움직인다!”
선장이 외치는 순간.
복창 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좌현 90도 급속회전!”
“좌현 90도 급속회전!”
……
푹푹푸푸푸푹-
좌현 난간에 붙은 장대잡이의 장대가 모래에 박히고!
팡, 팡, 파아아-
우현으로 높게 솟은 노가 모래를 가르고 움직였다!
촤아아아아-
폭발하듯 모래가 치솟는 순간 고속 갤리선은 어느새 신기루 벽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신기루 벽에 가까워지자 거대한 인력(引力)이 느껴졌다!
휘잉, 휘이잉-
허공을 달리던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고!
촤아, 촤아아-
사막을 흐르던 모래가 거칠게 꿈틀거리며 쏟아져 들어갔다!
쿠르르, 쿠르르릉-
어느새 고속 갤리선은 폭풍우라도 만난 듯 요동치며 신기루 벽으로 조금씩 끌려가고 있었다!
“좌현 15도! 비스듬히 달린다!”
노련한 선장의 외침에 돛이 걸린 활대가 움직이고, 좌현과 우현에서 노를 젓는 속도가 변했다!
이때 여량위와 이원, 최설과 허준 네 사람은 신기루 벽에 비치는 풍경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라봤다!
검은 모래가 소용돌이치고 치솟는 모래 호수!
거대한 바위가 둥둥 떠 있는 암석 대지!
얼음 기둥이 줄줄이 늘어선 사막!
……
이글이글 공기를 굴절시키는 신기루 벽 위로 수많은 풍경을 스쳐 지나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네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이 안은 마경!
무작정 들어가서는 안 된다!
단서!
마경 안을 비추는 거울 신기루 벽에서 이세기 일행과 관련됐을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아야 했다!
이때 선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단주님! 전방에 암석지대가 있습니다! 우선 이탈…….”
이 순간 신기루 벽에 오아시스 풍경이 비췄다.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과 여기서 쏟아지는 엄청난 폭포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하고.
이 호수 주위를 넓은 풀밭과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호수까지 일직선을 뻥 뚫린 길이 보였다!
마치 커다란 배가 밀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
“……!”
“……!”
“……!”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량위, 이원, 최설, 허준 네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이세기!”
그리고 여량위가 명령하는 순간.
“바로 여기다! 안으로 들어간다!”
촤아아아아-
고속 갤리선은 우현으로 급선회해 단숨에 신기루 벽을 뚫고 열사의 사막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잔잔한 호수에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신기루 벽에서 일어난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파문은 너무나 당연히 스카라베 출입국 관리소에 관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