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88화>
“……마스터? 너희 지금 뭐라고!?”
천문석은 웃다 말고 깜짝 놀라 돌아봤다.
워커7과 엘프! 두 사람은 특급 헌터를 향해 허리 숙이며 외치고 있었다!
“마스터? 알바! 나 마스터 된 거야!?”
특급 헌터가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워커7과 엘프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
[……!]
“……!”
이미 긴 대화를 나눴고 갑자기 튀어나온 마도 엔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본 상황!
두 사람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왔다!
그리고 그건 워커7과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서로의 상황을 짐작했다.
워커7과 엘프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특급 헌터의 마도 엔진이 필요하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 동료들과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두 사람의 협조가 필요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순간.
천문석, 워커7, 엘프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동시에 외쳤다.
“특급 헌터! 이제 넌 마스터다!”
[인간 꼬맹이! 도시의 마스터 권한을 넘기겠다! 부하 시켜 주라!]
“마스터. 부하로 받아주시면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특급 헌터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좋아! 이제 두 사람은 내 부하야! 하지만 마스터는 별로야! 음…… 부하 생겼으니까! 사장님! 앞으로 특급 헌터 사장님이라고 불러줘!”
“사장님?”
천문석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특급 헌터.
“어, 철수형이 그랬는데. 사무실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사장님이라며! 난 이제 특급 헌터 사장이야!”
첫 번째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인공 정령의 기계음이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 승인됐습니다. 기동 병참 도시 #KCS-007의 마스터 권한은 즉시 넘어갔습니다. 각인작업을 하겠습니다. 마스터는 손을 위로 올려 주십시오.]
특급 헌터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양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난 특급 헌터 사장이야! 잘 부탁해!”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휘이, 휘이이-
민들레 솜털 같은 작은 빛이 바람에 날아와 손에 닿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앞으로 사장님을 모실 인공 정령…….]
“앗! 누나가 날 모신다고!? 비서! 좋아! 이제부터 누나는 비서 누나야!”
[…… 제가 누나요? 그리고 비서라고요?]
“맞아! 비서 누나 이름이 뭐야!? 빨리빨리!”
[#KCS-007 인공 정령…….]
“완전 별로잖아! 내가 멋진 이름 지어 줄게! 무슨 이름이 좋을까!?”
멍하니 바라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특급 헌터의 파멸적인 작명 센스!
하늘 고래 퐁퐁이.
흰색 고양이 냠냠이.
서리 늑대 탱탱이!
“야, 잠깐……!”
다급히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특급 헌터는 이미 손에 쥔 조각상을 보더니 환한 얼굴로 외쳤다.
“아수라! 누나 이름은 아수라야, 아수라 비서 누나야! 줄여서 아아 비서 누나! 아아! 아아! 탄성 같아서 완전 멋져! 앗! 내가 이름 지어 준 기념으로 아수라파천무 도장도 찍어 줄게!”
이얍, 얍얍얍-
특급 헌터는 민들레 솜털 같은 빛을 손 위에 올려 두고 조각상을 쿡쿡쿡- 세 번 내려찍었다.
“아아 비서 누나는 내가 특별히 3번 찍어 줬어!”
“아아 비서 누나? 이렇게 이름이 결정된다고! 진짜로!?”
천문석이 황당한 눈으로 워커7을 보는 동시에 어이없어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뭐!? 이름을 바꾼다고!? 크카카캌- 마스터 꼬맹이! 인공 정령 이름은 그렇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냐! 인공 정령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냐? 바로…….]
[네. 특급 헌터 사장님. 접수했습니다! ‘아수라 비서’. 약칭 ‘아아 비서’. 이름 변경 승인됐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인공 정령의 대답에 워커7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 뭐 승인!? 어떻게? 아니, 이름이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거였어!? 야, 인공 정령! 내가! ‘위대한 워커 세븐 주니어’라고 이름 지어 주니까 안 된다며! 7단계 결재! 제작자 아니면 이름 못 바꾸는 거라며!?]
[…… ]
분노한 워커7의 외침에 인공 정령 아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휘이이이-
문득 불어온 바람에 민들레 솜털 같은 빛이 날아올라.
팟-
섬광과 함께 폭발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빛이 되어서 뿌려졌다.
휘이, 휘이이이이-
직경 100여 미터의 원형 공간에 몰아치는 빛의 소용돌이!
소용돌이는 순식간에 테이블 위 허공으로 모였고, 곧 사람 형상을 만들어 냈다.
[구현화? 현현체!? 이게 된다고!?]
워커7이 다시 한번 경악하는 순간 빛으로 된 사람 형상에서 진짜 사람이 튀어나왔다!
흰색 블라우스.
검은색 H라인 스커트.
단정히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안경.
그야말로 비서라고 생각할 복장!
그러나 어째선지 손에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발에는 하얀색 런닝화를 신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특급 헌터를 전담 마크하던 사람!
마수가 나타났다고 구라를 쳐서 울리고, 몰래 강릉행 KTX를 타며 따돌렸던 비서!
황 비서!
얼굴과 체형은 다르다!
하지만 저 복장과 특급 헌터를 쫓기 위한 런닝화!
특급 헌터에게 고통받던 장강 유통의 신입 비서, 황 비서와 똑같았다!
이때 특급 헌터의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앗! 아아 비서 누나!? 황 비서 누나랑 옷이랑 신발이 똑같잖아!?”
[네. 사장님의 표층 심리를 읽어 복장에 반영해서 구현했습니다.]
[뭐!? 그런 것도 되는 거였어? 야, 나한테는 다 안 된다며! 구현화 기능 봉인됐다면서!]
워커7이 분통을 터트렸지만, 아아 비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케치북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 앞으로 도시를 운영할 기본 방침을 정하셔야 합니다.]
“앗! 나 이런 거 잘해. 우선 고등어는 금지야!”
[고등어는 금지…….]
[야! 대답하라니까! 인공 정령!]
“구이, 조림 전부 금지야! 특히 고등어 젤리는 완전완전 금지야! 이건 말하는 것도 금지야!”
[고등어 젤리는 말하는 것도 금지…….]
[무시하지 마! 무시하지 말라고!]
“그리고 모두 신나고 재밌게 놀아야 해!”
[모두 신나고 재밌게 논다.]
[야! 너 지금 들리잖아!? 대답해!]
워커 7은 형체를 구현한 인공 정령 아수라에게 달라붙어 악을 썼다.
그러나 워커7이 아무리 악을 써도 인공 정령 아아 비서는 반응하지 않고 특급 헌터와 대화를 계속했다.
[혹시 어떻게 놀지 구체적인 방법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있지! 번갈아 가면서 대회를 열어야 해! 닭싸움, 딱지치기, 구슬치기, 말뚝 박기, 팽이치기. 앗 경주! 경주는 꼭 넣어야 해!”
[…… 말뚝 박기요?]
“내가 직접 보여 주면서 설명해 줄게! 이리로 와! 퐁퐁이, 거복이 얼른 와! 우리 아아 비서 누나한테 설명해야 해!”
다다다닥-
특급 헌터가 달려가고.
포아아앙-
퐁퐁이와 거복이가 날아가고.
성큼성큼-
아수라 비서가 그 뒤를 따라 멀어지는 순간.
워커7은 폭발했다.
으아,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달리며 외쳤다.
[기다려! 무시하지 말라니까! 야, 대답해! 대답하고 가라니까!]
탁-
그러나 워커7은 어느새 달려온 엘프의 손에 잡혀 공중에 번쩍 들어 올려졌다.
“지금 이럴 때 아니에요.”
[뭐가 이럴 때가 아냐! 내가! 바로 이 워커7님이! 지금껏 인공 정령에게 농락당했다고! 당장 가서 이 분노를…….]
엘프는 대답 없이 양손으로 들어 올린 워커7을 옮겼다.
“…….”
‘얘들이랑 진짜 협상을 해야 하는 거야?’라는 눈으로 워커7을 바라보는 이세기 앞으로!
[…… 흠, 흠. 너 거기 아직 있었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워커7은 겸연쩍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피했다.
엘프는 워커7을 내려놓고 정중히 고개 숙였다.
“우선 감사드립니다. 마도 엔진만 있으면 저희 숙원 대부분이 해결돼요. 숙원이 해결되면 어차피 저희 둘은 이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기 결과 대로 이 도시는 넘겨 드리겠습니다.”
[잠깐만! 타이탄 한기! 아니, 시동이 걸린 마도 엔진 하나만이라도…….]
워커7이 다급히 외치자.
엘프는 고개 저으며 물었다.
“조병창의 봉인을 풀고 타이탄을 꺼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2년, 3년?”
“1년! 아니 9달 안에 꺼낼 수 있어!”
“…….”
엘프는 말없이 워커7을 바라봤다.
“그래 10달은 걸릴 거야!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1년은 안 걸려!”
“하아- 의장님도 이제 돌아가야 할 때라는 걸 아시잖아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마도 엔진을 꺼내도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잖아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못 가져간다니!]
엘프는 짧게 대답했다.
“시간 오류.”
[아…….]
엘프는 문득 고개를 들어 뻥 뚫린 지붕 너머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열사의 사막에 오게 된 이유가 이 기동 병참 도시에 시동을 걸어 넘겨 드리기 위해서인지도 몰라요. 아시잖아요? 우리가 떠나가고 사막에 오실 분들을요.”
[…… ]
부드럽게 말한 엘프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주치는 시선.
엘프는 담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세기님. 도시는 언제라도 원하실 때 넘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건 자신과 특급 헌터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
이 거대한 도시를 받는다고 해도 결국 놓아두고 지구로 떠나야 한다.
“아니.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저기 사장도 집으로 돌아가서 고기 구워 먹자고 하면 앞장서서 신나서 달려갈 거고.”
순간 천문석과 엘프, 워커7의 시선이 이 거대한 도시를 딱지치기로 딴 마스터, 특급 헌터 사장에게로 향했다.
“……아아 비서 누나! 꼭 한발로 움직여야 해! 간다! 구구쿠쿸-!”
기합을 지르며 손으로 발을 잡고 한발로 폴짝폴짝 뛰어 접근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어느새 인공 정령 아수라에게 닭싸움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네, 정말 그러실 것 같네요.”
천문석과 엘프의 입가에 동시에 미소가 걸렸다.
두 사람은 다시금 깨달았다.
엘프와 워커7에게 이 도시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임시 거점이고.
천문석과 동료들에게도 이 도시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임시 거점이자 수단.
도시의 초대형 마도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마탑과 조병창이 움직여도 이건 달라지지 않는다.
곧 더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될 도시는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니었다.
병 속의 움켜쥔 주먹은 손을 펼쳐 가진 것을 놓지 않으면 뺄 수 없는 법.
과정일 뿐인 이 도시에 집착해선 진정한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천문석과 엘프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걸로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
기동 병참 도시라는 ‘과정’이 아니라 지구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각자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는 계획을 세우고 움직일 때!
천문석은 바로 머리를 굴렸다.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는 방향. Win-Win 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운다!’
천문석은 머릿속에 담긴 모든 정보를 정리해 빠르게 큰 그림을 그렸다.
1. 마도 엔진을 건네 도시에 시동을 걸게 한다.
2. 워커7과 엘프는 시동이 걸린 도시로 고향으로 길을 뚫고.
3. 자신은 관문 도시 마하바나에 있을 동료들을 데려온다.
4. 동료들과 함께 두 사람이 열어 준 게이트로 지구로 돌아가서.
5. 지구의 워커 실트에게서 ‘물건’을 회수해서 두 사람에게 보내 준다.
6. 워커7과 엘프는 회수한 물건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한쪽으로 기울어졌지만,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건 나중일.
천문석은 우선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큰 그림을 그리고 엘프와 워커7에게 바로 설명했다.
“……우선 이렇게 계획을 세웠어. 혹시 빠진 게 있을까?”
[하- 그 개고생을 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다니…… 에휴- 어쩔 수 없지!]
“핵심을 잘 짚으셨네요. 스카라베와 문제가 있긴 한데…… 그건 저희가 처리할 일이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바로 세부 사항조율로 들어가죠. 그때 기울어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성의도 보이겠습니다.”
척하면 척.
엘프는 기울어진 균형, 워커 실트에게 회수할 ‘물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 바로 세부 사항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