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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783화 (78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83화>

엘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천문석은 이미 인과의 흐름 위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느껴졌다.

하늘에선 천기가 흩날리고.

대지에선 용맥이 솟구쳤다!

하늘(天)의 천기와 대지(地)의 용맥이 그 사이에 있는 사람(人)을 향해 뻗어 나갈 때!

문득 엘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능 옥좌가 떠 있는 차원이 어디인지 아시겠죠?”

질문을 듣는 순간 직감했다.

엘프의 입을 빌려 하늘과 땅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천기와 용맥.

이 인과를 잇겠냐고?

천문석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지구.”

그리고 엄청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전능 옥좌가 지구에 있다고? 그게 사실이냐!?”

“너 지금 그 말! 설마, 지구에 그분이 계시다는 말이야!?”

“혹시 증거 있냐? 무엇이든 좋다! 아주 작은 증거라도 있냐!?”

경악한 동료들의 외침이 쏟아지는 순간.

처음 이 거대한 도시로 올라올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

이 모든 것이 말이 될 가정.

마도 황제가 한국인이면 말이 된다!

이세계 진입 소설처럼 아득히 오래전 한국인인 마도 황제가 차원을 넘어 이세계에 떨어진 거다!

한국인 마도 황제는 거대한 마도 제국을 세우고.

초거대 악어 거북이를 군대에 입대시켜 계급을 주고.

그 등 위에 전기, 상하수도 설비가 갖춰진 도시를 만들고.

렉카, 에어컨, 말년 병장 같은 한국 문화를 퍼트린 거다!

///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가정은 모두 사실이었다.

이세계의 마도 황제는 지구인, 그것도 한국 사람이었다.

너무나 명확한 증거가 서울에 있었다.

건물도 아닌 공원과 시가지가 있는 거대한 섬이 통째로 서울 하늘에 떠 있었다!

천공의 섬!

부유도(浮游島)!

일본 정부에서 1000엔에 먹튀한 섬!

……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전능 옥좌!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전능 옥좌를 이렇게 불렀다.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섬!

순간 스파크가 튀듯 머릿속에서 생각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열린 게이트!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

게이트 마력장의 영향으로 생겨난 균열과 던전, 마경!

기다렸다는 듯 각성몽을 꾸고 이능력을 깨닫는 각성자들!

전 세계에서 시작된 게이트 전쟁!

게이트 전쟁의 흐름을 바꾼 마탄!

반격의 서막을 알린 게이트 안정화 장치!

그리고 서울 상공에 떠 있는 천공의 섬, 전능 옥좌!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게이트 전쟁이 터진 이래 일어난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이름을 가리켰다!

재금 그룹!

이 순간 천문석은 마도 황제의 정체를 깨달았다.

게이트 전쟁의 판도 자체를 바꾼 재금 그룹.

독보적인 기술력을 순식간에 초거대 기업이 된 재금 그룹의 오너가 마도 황제였다!

“……!”

음모론이 맞았다!

재금 그룹 오너는 이세계에서 건너온 마도사. 아니 마도 황제였다!

‘음모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전부 진짜였다고?”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불쑥 머릿속에 의문이 튀어나왔다.

에어컨, 특별 객차, 도시 곳곳에 보이는 이름!

그리고 백곰권 꼬맹이가 운용하던 나이트 아머!

W. S. industry!

이 모든 곳에 새겨진 이름은 마도 황제의 ‘재금 그룹’이 아닌 나이트 아머 개발사 ‘W. S. industry’다!

자신이 혼란에 빠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단서가 가리키는 답과 답지에 적힌 정답이 서로 달랐다!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엘프에게 물었다.

“W. S. 인더스트리는……!?”

이때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젠장! 못해 먹겠네! 도대체 왜 안 넘어가는 거야!? 으아아악-!]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특급 헌터의 외침!

“내 차례지? 이야압- 하늘을 잇는다-!”

따아악, 휙-!

“카카카카캌-! 내가 또 이겼어! 23연승이야! 이제 딱지 없지? 그럼 그만하고 선물 대결…….”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야, 기다려! 얼른 접을 테니……! 이런 젠장! 종이가 없잖아! 야! 종이! 빨리빨리! 종이 꺼내!]

딱-

엘프 승무원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허공에서 종이가 와르르 쏟아졌다.

[잠깐만 기다려라! 꼬맹이! 내가 진짜 실력을 보여 줄……! 그렇지! 내기! 아무것도 안 걸어서 긴장감이 떨어진 거야!? 꼬맹이! 그냥 하지 말고 뭐 걸고 하자!]

백곰권 꼬맹이는 번개같이 딱지를 접고 발로 쾅쾅- 밟으며 외쳤다.

이글이글 승부욕으로 불타는 눈으로!

딱지치기에 목숨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재금 그룹의 엄청난 비밀을 깨달은 순간 일어난 어이없는 일에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저분 괜찮은 건가요?”

엘프 승무원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외쳤다.

“관리인님! 상황 설명 끝났어요! 직접 소개하시고 이야기하신다면서요!?”

[됐어! 네가 해! 지금 이게 더 중요해! 반드시 이겨야 해! 내 명예와 긍지가 달렸어!]

이야아아아악-!

백곰권 꼬맹이는 기합을 지르며 딱지를 내려쳤다!

“……지금 딱지치기 말하는 거 맞지?”

“나도 그렇게 들었다.”

“저분이 평의회 최고 의장님이라고……?”

생각과는 다른 상황에 일행 모두가 황당해할 때.

엘프 승무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하아- 의장님 승부욕에 불이 붙어서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파티마, 오마르, 위신의 주위에 반투명한 빛의 장막이 생겨났다.

“이 이야기는 다른 분들이 들어선 안 됩니다. 밖에 있는 카페로 보내 드릴게요. 거기서 기다려 주세요.”

“잠깐만……!”

“마도 황제 폐하……!”

“야, 나도 당사자……!”

파티마, 오마르, 위신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딱- 손가락이 튕겨지고 섬광과 함께 셋은 사라졌다.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초절정에 발을 걸친 파티마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강제로 이동했다!

‘이게 가능한 거야!? 겉모습과 달리 엄청난 마법사인……!?’

천문석의 놀란 시선이 닿자 엘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힘이 아니라. 이 반전능 옥좌와 반마탑의 힘이에요. 제가 손가락을 튕기는 건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인공 정령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

딱-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허공에서 튀어나와 손에 잡히는 리모컨.

“이 리모컨을 누르는 거랑 같아요. 중요한 건 리모컨이 아닌 텔레비전이죠.”

가볍게 허공으로 리모컨을 던지자 팟- 섬광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핵심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기동 병참 도시의 관리인이자, 평의회 최고 의장님이며, 대륙 유일의 타이탄 마스터! 예정인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엘프 승무원은 딱지를 치는 백곰권 꼬맹이를 양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워커 실트7이십니다.”

“네? 지금 뭐라고…….”

어이없는 칭호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번쩍 섬광이 머리를 스쳤다!

워커 실트!

W. S. industry!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이니셜!

‘W. S.가 워커 실트였던 거야!?’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W. S. 가 워커 실트!? 맞습니까!? 워커 실트 인더스트리라고요!?”

“네 맞아요. W. S. 인더스트리의 풀네임은 워커 실트 인더스트리입니다!”

“……!”

재금 그룹 오너가 마도 황제란 걸 알게 된 게 불과 몇 분 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직접 눈앞에 나타났다!

백곰권 꼬맹이!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저 꼬맹이가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였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

세계를 양분하는 두 초거대 기업!

마탄과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재금 그룹.

나이트 아머의 W. S. 인더스트리.

재금 그룹 오너, 마도 황제가 얼마나 대단하던 어차피 모르는 사람, 자신과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저 백곰권 꼬맹이는 달랐다!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 절벽에서 격전을 벌이고 협공을 펼쳐 멀리 만 년설로 던져 버렸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특급 헌터가 딱지치기로 계속계속 털어먹고 있었다!

백곰권 꼬맹이. 아니, 초거대 기업의 오너를!

천문석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입니까!? 지금 저기서 딱지 치는 저 꼬맹. 아니 저분이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라고요!?”

엘프 승무원은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죠.”

“역시…… 네? 지금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엘프 승무원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도시 관리인님은 워커 실트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아니세요.”

“……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W. S. industry의 이니셜, 워커 실트!

도시 관리인의 이름 워커 실트!

‘그런데 아니라고!? 설마……!?’

문득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워커 실트가 아닌 건가요!? 혹시 동명이인이거나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질문과 동시에 고개를 젓는 엘프 승무원.

“아뇨.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는 ‘워커 실트’가 맞아요. 이미 확인했어요.”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이 엘프 뭐지!?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워커 실트’인 건 맞는데!

저기서 혼을 불사르며 딱지를 치는 ‘워커 실트’는 오너가 아니라고!?

“아니, 지금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자신도 모르게 버럭 외치는 순간.

엘프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손가락으로 허공에 생겨난 허상, 게이트를 가리켰다.

“저 게이트 너머, 지구에 있는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는 ‘워커 실트’ 님이세요.”

게이트를 가리키는 엘프의 손가락이 움직여 딱지를 양손을 번쩍 들고 미친 듯이 외치는 백곰권 꼬맹이를 가리켰다.

“……제발제발제발! 하늘, 땅! 천지신명! 친구들아! 나에게 힘을 줘! 이야아아악-.”

“……저기서 혼을 불사르며 딱지를 치시는 도시 관리인님은 ‘워커 실트7’이세요.”

“……!?”

‘뭐지!? 이거 무슨 신종 사기 수법인가!?’

“아니! 동명이인도 아니고! 워커 실트로 이름이 똑같은데 무슨……!”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아뇨. 뒤에 7을 붙여야죠. ‘워커 실트 7’!”

“……네? 숫자 칠이요?”

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한숨 쉬었다.

“하- 이게 전후 사정에 얽힌 이야기를 모두 설명하려면 소설책 23권으로도 모자라 2부도 필요해요. 게다가 저희 조직의 규율상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도 없고요. 그래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면…….”

엘프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외쳤다!

“저기 의장님! 머리에 난 상처 보이시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머리카락 한 점 없이 빡빡 밀린 머리에 난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보이긴 하는데. 그게 무슨…… 어, 설마!?”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드라마, 만화, 영화! 온갖 매체에서 너무나 남발되어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소재!

천문석과 엘프는 동시에 외쳤다.

“기억상실!?”

“반(反) 기억상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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