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80화>
“……엘프!?”
위신이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파티마와 오마르 장로는 깜짝 놀랐다!
사막 엘프는 자신들의 도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 엘프가 갑자기 열사의 사막 깊은 곳에 있는 도시에 나타났다!
모두의 말문이 막힌 순간.
엘프 승무원의 시선이 일행을 훑었다.
깜짝 놀란 오마르, 파티마, 위신.
고개를 갸웃하는 하늘 고래 퐁퐁이.
반짝이는 등껍질의 별갑 거북이.
그리고 천문석 자신을 지나.
눈을 반짝이는 특급 헌터에게 멈췄을 때.
엘프 승무원은 가볍게 허리 숙여 시선을 맞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 아주 오래 사는 엘프거든요. 오래 살면 이것저것 잔재주가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앗!? 그럼 오래 살아서 날 잡았다는 거야!? 으앗! 그러고 보니 제주도 할머니도 나 엄청 잘 잡았던 거 같아! 막막 달리다가도 정신 차려 보면 할머니 등에 업혀 있었다니까!”
“뭐 노인의 지혜 같은 거죠. 후후훗- 자 그럼 도시 관리인을 만나러 출발할까요?”
“출발!”
“그 전에 질문! 병아리는!?”
엘프 승무원이 기습적으로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삐약삐약!”
“강아지!?”
“왕왕왕왕!”
“하늘 고래!?”
구으, 구으으응-!
“관리인 알바 거복이!?”
기이, 기이이익-!?
“우리가 탄 기차는!?”
“치이, 치이이이?”
특급 헌터가 대답하는 순간.
엘프 승무원은 손을 허공에 뻗어 튕겼다.
딱-
“정답입니다! 그럼 출발!”
치이, 치이이이이-
순간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뭐야!? 기차가 왜 벌써 출발해!”
“기다려! 짐 싣고 있잖아!”
“잠깐만! 아직 승객 타고 있어요!?”
“야, 매달려! 기차 출발한다!”
당황한 철도 직원과 경비대원, 상인과 손님들이 다급히 외쳤지만, 기차는 멈추지 않았다!
치이, 치이이이이-
기차는 기적 소리를 내며 천천히 가속해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차가 왜 벌써 움직여……!?”
위신이 깜짝 놀라 엘프 승무원을 보는 순간.
천문석의 시선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플랫폼의 당황한 직원들과 승객들.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파티마와 오마르.
등받이에 매달려 창밖을 보며 환호하는 특급 헌터.
그리고 손가락을 한 번 튕겨 열차를 출발시키고 장난스레 웃는 엘프 승무원.
엘프 승무원에게 시선이 멈추는 순간.
천문석은 알 수 없는 직감에 물었다.
“승무원님. 아니, 엘프님 혹시 이 도시에서 맡은 직위가……?”
엘프 승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 내밀었다!
엄지를!
“……!”
“……!”
“……!”
모두가 경악할 때 재빨리 달려온 특급 헌터는 외쳤다.
“승무원 누나! 누나가 이 도시 대장이었어!? 진짜로?”
순간 슬그머니 펴지는 검지!
2인자!?
“2등! 콩 황제! 누나도 콩 황제……!”
하나 더 펴지는 손가락.
“어……?”
특급 헌터가 멍하니 입을 벌리는 순간에도 손가락은 계속 펴졌다.
“…….”
“…….”
어느새 오른손 다섯 손가락이 모두 펼쳐지고, 슬그머니 왼손이 올라와 손가락이 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양손의 열 손가락이 모두 펼쳐지는 순간.
엘프 승무원의 어쩐지 아련한 눈빛이 느껴졌다.
‘아니, 이 엘프 지금 뭐 하는 거야!?’
천문석이 황당함에 바라볼 때.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특급 헌터는 엘프 승무원 옆에 서서 양손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몇 개나 펴야 해? 발가락도 펼까?”
“아뇨. 7개만 펴시면 돼요.”
나란히 선 엘프 승무원과 특급 헌터가 펼친 손가락 개수, 17개.
“…….”
“…….”
침묵이 감도는 특별 열차 객실 안.
천문석은 어색한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러니까. 엘프님 이 도시에서 서열이 17위라고요?”
“네…….”
엘프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아래에서 17위는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죠! 위에서 17위예요!”
“이 커다란 도시에서 17등이면 엄청 높은 거잖아! 아래에 부하들도 엄청 많고! 누나 힘을 내! 난 맨날 2등이었지만, 친구들이랑 힘을 내고 있어!”
특급 헌터가 등을 토닥이며 씩씩하게 외치는 순간 기어들어가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이에요.”
“한 사람? 뭐가 한 사람?”
“……제 밑에 한 명 있어요. 저 평의회 18명 중에 서열 17위…….”
“…….”
특급 헌터조차 말문이 막히게 만든 엘프 승무원.
처음 만나는 이세계 엘프는 뭔가, 뭔가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
* * *
멍하니 엘프 승무원을 바라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뻐금, 뻐금뻐금!
입을 뻐금거리며 강렬한 눈빛과 손짓을 보내는 특급 헌터!
전음처럼 머릿속에서 소리가 재생됐다!
‘알바!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러나 천문석 또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엘프 승무원의 직위가 낮아서가 아니라, 너무 높아서!
이 거대한 도시에 18명 밖에 없는 평의회 의원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위신의 반응을 보니 평소에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평의원이 아무 목적도 없이 이렇게 나타났을 리 없다!
순간 머릿속에서 의혹이 파바밧 떠올랐다.
-왜? 평의원이 직접 마중을 나왔을까?
-어째서? 일행이 타자마자 기차를 출발시켰을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술한 모습을 보여 경계를 누그러트릴까!?
……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혹과 바짝 올라가는 경계심!
천문석은 슬쩍 특급 헌터 앞으로 끼어들며 은근슬쩍 인사말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이세기라고 합니다. 하하- 날씨가 참 맑네요!”
엘프 승무원은 시선을 마주치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날씨가 정말 맑네요! 이세기님. 제 이름은…….”
쏴아아아아아, 덜컹, 덜컹-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차는 터널로 들어갔다.
깜깜해진 객실에 어색한 침묵이 감도를 때.
천문석은 너무나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익숙한 거지 같은 타이밍!?’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오려는 순간.
“퐁퐁이! 반짝반짝!”
특급 헌터의 외침이 터지고.
포그르르르륵-
퐁퐁이가 쏟아 낸 반짝이는 물방울이 객실을 밝혔다.
하하, 하하하하-
밝아진 객차 안 엘프 승무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도 제국의 기동 병참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 이 도시의 관리인이자, 평의회 최고 서열. …… 님의 명령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러 왔습니다!”
‘이 엘프 승무원 방금 이름을 얼버무렸다!’
신경을 곤두세운 천문석은 바로 알아채고 확인했다.
“방금 이름이 뭐라고?”
“자, 자! 이제 곧 직접 만나시게 될 거예요! 그전에 이 놀라운 마도 제국의 기동 병참 도시의 모습을 봐주세요!”
엘프 승무원의 창밖을 가리키며 딱-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촤아아아아, 덜컹, 덜컹-
열차는 터널에서 빠져나왔고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쨍한 태양이 떠 있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
이 폭우를 맞는 순간 달아오른 벽과 지붕에서 치이, 치이이- 뿜어지는 새하얀 증기!
새하얀 증기는 주상절리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과 건물, 도로와 빌딩을 휘감았다.
열차는 길게 늘어선 집 사이, 도로 아래, 빌딩 가운데를 달려 비스듬히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불과 창밖 1, 2미터 거리!
안전거리랄게 없이 도심을 그대로 통과하는 열차 창밖으로 이 거대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생히 보였다!
지붕 위 몸에 쓱쓱- 비누칠을 하더니 쏟아지는 폭우로 씻어 내는 곰 수인.
사다리를 들고 건물을 오르고 옥상을 척척 건너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
철도 위에 걸린 장대에 매달려 손을 흔들다 번개같이 열차에 쌓인 상자를 낚아채 도망치는 고양이.
인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이종족과 몬스터 종족.
도로를 줄줄이 이동하는 거대 개미, 딱정벌레가 끄는 마차와 수레.
언덕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장거리 짚라인을 타고 빠르게 미끄러지는 사람들.
……
도시는 밖에서 볼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탁 트인 개방감과 건물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초거대 악어거북이 등 위에 있는 게 아닌 운해가 흐르는 고원지대에서 세워진 도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때 엘프 승무원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왼쪽 창문 위를 봐주세요! 저곳이 도시 관리인이 계시는 곳! 이곳 기동 병참 도시의 핵심! 컨트롤 룸이자 중앙통제실! 반전능(半全能) 옥좌입니다!”
‘반전능 옥좌?’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십 개의 짚라인이 뻗어 나오는 곳.
하얀 수증기에 덮인 언덕 정상이 보였다!
딱-
엘프 승무원의 손가락이 소리를 내는 타이밍.
휘이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와 하얀 수증기를 날려 버리고.
곧 정상의 건물, 반전능 옥좌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도넛 같은 외형에 유리로 이뤄진 외벽.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쏟아지는 비로 무지개가 걸려 있는 건물.
이 건물 지붕에는 눈에 익은 그러나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보였다.
오목한 접시와 그 가운데 볼록 튀어나온 기둥!
‘전파 망원경!?’
“……위신. 저 건물! 저기 지붕에 저거 너도 보이냐!?”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엘프 승무원을 살피던 위신은 힐끗 창밖으로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 저거 안테나야.”
“…….”
‘뭐지, 이게 대수롭지 않은 건가!?’
천문석은 다시금 반전능 옥좌 위에 세워진 안테나, 전파 망원경을 봤다!
하나둘셋넷다섯여섯! 여섯 대다!
전파 망원경이 한두 개도 아닌 6개나 보였다!
여기선 보이진 않는 반대쪽을 생각하면 저 건물 주위에는 모두 12대의 전파 망원경이 설치 돼 있다!
‘설마, 외계인이라도 나오는 거 아냐!?’
후흐흣-
순간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장난스러운 물음이 들려왔다.
“설마, 저기 반전능 옥좌에서 외계인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엘프 승무원은 정곡을 찔렀다!
‘설마 마음을 읽는 거야!? 진짜 외계인이 나오는 거야!?’
경악하는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엘프 승무원의 은근한 목소리.
“그럴 리가요? 당연히 전 마음을 못 읽죠! 뒤에 계신 분이 이렇게 말해 주시고 계세요.”
‘입 모양으로!’
엘프 승무원이 말없이 입 모양으로 말하는 순간 벼락 치듯 떠오른 이름!
특급 헌터!
번개같이 고개를 돌리자 좌석 위에 앉아 입 모양으로 말하는 특급 헌터가 보였다.
‘외계인이 나오는…….’
“앗! 알바!”
“특급 헌터! 너구나!”
모든 걸 깨닫는 순간 뜬금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외계인이라면. 지금 이세기님 옆에도 있잖아요?”
“네……?”
“세계의 나무가 경계를 그은 수많은 세계. 그 하나하나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랍니다.”
엘프 승무원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천문석과 특급 헌터를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나 게이트, 던전, 균열 너머나 지구 밖의 외계(外界)인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이 순간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묘한 뉘앙스와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뭐지……?’
이때 머리를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엘프 승무원이 가리킨 사람은 자신과 특급 헌터뿐이다!
파티마와 오마르 장로, 사막 출신과 위신, 균열을 타고 넘어온 다른 세계의 여우 수인은 가리키지 않았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엘프 승무원을 바라봤다.
뾰족한 귀와 빛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이는 금발.
친절과 호의를 담은 푸른 눈과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입가.
직접 마주하는 순간 새겨지는 사람의 첫인상.
엘프의 첫인상이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 논리와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깨달았다.
W. S. 인더스트리!
눈앞의 엘프는 자신과 특급 헌터가 W. S. 인더스트리가 있는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외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질문이 잘못됐단 걸 깨달았다.
천문석은 동료들을 봤다.
퐁퐁이를 업고 별갑 거북이를 머리에 쓴 특급 헌터.
홀린 듯이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는 파티마와 오마르 장로.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엘프 승무원을 힐끗힐끗 살피는 위신.
그리고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엘프 승무원!
엘프 승무원에게 시선이 닿는 순간 핵심을 관통하는 ‘바른’ 질문이 떠올랐다.
천문석은 입을 열어 질문했다.
“반전능 옥좌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도시 관리인……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