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77화>
영문으로 적힌 제조사 이름, ‘W. S. 인더스트리’!
천문석은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에어컨 실외기에 적힌 이름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W. S. industry]
길, 외벽, 베란다!
이 거대한 도시 곳곳에 설치된 모든 에어컨 실외기에는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미국의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
‘아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재금 그룹이었으면 오히려 납득 했을 거다!
한국의 초거대 기업, 재금 그룹 오너에 관한 음모론 중 하나가 게이트를 넘어온 이세계 마법사였고. 렉카, 에어컨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를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이세계의 사막에 나타난 초거대 악어 거북이가 짊어진 도시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에 [재금 그룹]이 새겨졌으면 그러려니 했을 거다!
그런데 뜬금없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상징하는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가 튀어나왔다!
한국어 단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주민들과 미국의 초거대 기업이 생산한 에어컨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이 이뤄졌다!
조선 시대에 떨어졌는데 금발, 푸른 눈의 서양인이 소머리 국밥을 먹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
‘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
W. S. 인더스트리는 나이트 아머와 각성 헌터용 무기를 만드는 방위 산업체! 거기서 에어컨을 만들 리 없었다!
그럼 지금 눈앞에 있는 실외기들은 뭐지!?
혹시 그냥 이름만 같은 건가?
지구랑 이세계가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는 게 가능한 건가?
“아니, 뭐가 이렇게 맥락이 없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순간 어깨에 느껴지는 손길.
탁, 탁-
위신은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천문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 너 우리 도시 보고 놀랐구나? 하긴 우리 도시 처음 보면 전부 놀라더라고. 흐흐흐- 야,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위신이 으쓱대며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머릿속에서 몰아치는 의문을 모조리 쏟아 냈다.
“저 에어컨 어디서 난 거야!? 혹시 균열에서 떨어진다는 고물 중에 에어컨이 있던 거야!?”
“아니지 한두 개도 아니고 이 정도 수량이 가동 가능한 상태로 쏟아질 리 없어! 게다가 전기…….”
“맞아 전기! 전기가 더 중요하지! 저 에어컨 돌릴 전기는 어떻게 얻는 거야!?”
“여기 발전소가 있는 거야!? 아니, 잠깐만 발전소로 전기를 얻어도 전압은?”
“전압을 어떻게 맞춘 거지!? 그렇지! 전압 차이! 한국과 미국은 전압이 다르지!”
“여기 전압 얼마야? 220, 110!? 몇 볼트……!”
……
“야, 잠깐, 잠깐만!”
위신은 당황한 표정으로 질문을 끊고 대답했다.
“저 에어컨. 이 도시 보스, 도시 관리인에게 공물 바치고 대가로 받은 거야. 전기는 원래부터 이 도시에 있던 거 요금 내고 쓰는 거고. 전압? 전압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대답을 들었으나 오히려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도시 관리인? 공물? 전기가 원래부터 이 도시에 있었다고?”
천문석이 다시 질문하자.
위신은 이상하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알겠다는 듯 탄성을 터트렸다.
“그런데 왜 이런 걸 묻는데? 이건 우리 도시 출신 아니어도 다 알…… 아! 그렇지! 너희들 균열 넘어서 열사의 사막에 방금 들어왔지!? 그럼 당연히 모르지!”
위신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초거대 악어 거북이 등 위에 세워진 도시를 가리켰다.
“저 악어 거북이는 ‘마도 제국의 병사’야. 저 등 위의 도시는 마도 제국의 병참 도시 위에 수백 년 동안 집과 건물을 올려서 만든 거고. 전기는 원래 마도 제국에서 만들어 낸 걸 도시 관리인에게 요금을 내고 사용하는 거고…….”
“마도 제국? 병사?”
“어. 나도 열사의 사막에 떨어진 지 십 년 정도밖에 안 돼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마도 제국은 아득히 오래전에 차원을 넘어 타대륙에 나타난 마도 황제가 세운 제국이다. 이 도시는 그 마도 제국 때 세워진 이동 병참 도시고, 전기도 그때 만든 거래. 저 악어 거북이는 그 마도 제국의 군인이다. 계급도 있는데…… 뭐라고 했더라…….”
기억을 되뇌던 위신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
“병장!”
“……!?”
“맞아! 병장이라고 했어! 마도 제국 때부터 대대로 이 도시에 살았다는 드워프 들은 쟤를 ‘말년 병장’이라고 불렀어! 아까 공간의 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거 봤지? 공간의 틈에 기가 막히게 짱박힌다고 ‘말년 병장’이라고 부른데. 흐흐흐-.”
위신이 웃을 때.
천문석의 얼굴은 굳어졌다.
다시 한번 들려온 너무나 한국적인 단어 사용, 말년 병장!
렉카, 에어컨, 말년 병장까지!
너무나 한국적인 단어들이 계속 튀어나오고 있다!
이제는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진짜로 이 세계는 지구가 멸망한 후의 세계라고 된단 말인가?
그러나 자신이 본 모든 것이 이 가정을 부정했다.
도시를 짊어지고 이동하는 초거대 악어거북이.
사이버 펑크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슬럼과 고층 빌딩이 하나로 합쳐진 메가시티.
모래사막을 달리는 거대 곤충과 모래 배, 썰매, 뗏목들.
그 위에 탄 인간, 이종족, 수인, 몬스터 종족 출신 렉카와 자해 공갈단, 강매 상인.
스카라베 곤충 종족과 신기루 게이트, 하늘에 거꾸로 드리워진 거대한 강철 도시.
……
이렇게 세상이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윙윙- 거리며 멀쩡히 작동하는 수천 대의 에어컨이라고!?
말도 안 됐다!
차라리 이 모든 게 소설이라는 게 더 그럴싸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이 모든 게 말이 될 가정이 하나 떠올랐다.
초거대 악어거북이, 사이버 펑크 도시와 전기!
에어컨을 제외한 이 모든 것은 마도 제국의 유산이다!
그리고 마도 제국은 아득히 오래전 차원을 넘어 타대륙에 나타난 마도 황제가 세웠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말이 될 가정.
마도 황제가 한국인이면 말이 된다!
이세계 진입 소설처럼 아득히 오래전 한국인인 마도 황제가 차원을 넘어 이세계에 떨어진 거다!
한국인 마도 황제는 거대한 마도 제국을 세우고.
초거대 악어 거북이를 군대에 입대시켜 계급을 주고.
그 등위에 전기, 상하수도 설비가 갖춰진 도시를 만들고.
렉카, 에어컨, 말년 병장 같은 한국 문화를 퍼트린 거다!
“……!”
순간 전신을 관통하는 전율과 소름!
천문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외쳤다!
“에라이!”
한국인이 차원을 넘어 ‘우연히’ 이세계에 떨어져 마도 황제가 되고 마도 제국을 세워 한국 문화와 기술을 퍼트렸다고!?
게다가 자신이 용권풍에 휩쓸려 ‘우연히’ 오게 된 사막에 그 유산이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우연이다!
차라리 재벌가에 입양돼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맞선에 나간 철수형이 알고 보니 더 엄청난 재벌가의 후계자라는 막장 드라마 전개가 오히려 말이 됐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쌓여만 갈 때.
기잉, 기이이이잉-
크레인에 걸린 하늘 고래호는 허공으로 뻗은 텅 빈 부두에 가까워졌다.
“꼬마야 위험해!”
“저거 어떻게 나는 거야!?”
“도시 안에선 마법이 무효화 될 텐데!?”
익숙한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익숙한 폭음과 꽈배기처럼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오는 둘이 보였다.
포아아아아앙-
로켓 비행하는 퐁퐁이와 그 위 다리로 꼭 조인 채 손을 번쩍 들고 있는 특급 헌터!
포아앙-
뱃머리를 지나는 순간 특급 헌터는 폴짝- 뛰어내려 다다닥- 달려와 손을 내밀고 외쳤다.
“알바! 여기 봐봐! 거복이! 등껍질 완전 별처럼 예쁜 거복이 강에서 발견했어!”
특급 헌터는 검게 빛나는 등껍질을 가진 작은 거북이를 내밀며 신나게 외쳤다.
“이 거북이는 어디서 데려온 거야?”
“아까아까부터 열심히 배 따라오더라고! 그런데 느려서 점점 멀어지길래 내가 데려왔어! 잘했지!?”
특급 헌터의 자랑스러운 외침에, 위신은 피식 웃으며 거래를 제안했다.
“와! 정말 멋진 거북이네! 누나한테 사탕 열 개에 팔래?”
히이, 히이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거북이가 바람 빠지는 울음소리를 내는 순간.
특급 헌터는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뭐!? 이 거복이는 파는 거 아냐!”
“그럼 왜 데려왔는데?”
“당연히 별처럼 예쁜 등껍질 보여 주려고 데려왔지! 봐봐!”
퉤, 퉤퉤-
특급 헌터는 갑자기 작은 거북이 등껍질에 침을 뱉고는 옷소매를 들어 검은 등껍질을 미친 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밧-
흥미, 황당함, 어이없음!
뜬금없는 상황에 수많은 시선이 모여드는 순간.
“다 됐어!”
특급 헌터는 번쩍 작은 거북이를 들어 올렸고 모두는 깜짝 놀랐다.
검은 등껍질에서 반짝이는 칠색의 빛!
거북이의 등껍질에선 수많은 별이 칠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빛을 받은 검은 오팔처럼!
“와!”
“저거 뭐야!?”
“별갑(星甲)! 저 거북이! 별갑 거북이잖아!”
“별갑 거북이를 발견했다고!? 와 꼬맹이 뭔 재수가 저렇게 좋아!”
……
-끼이, 끼이이!?
번쩍 빛나는 자신의 등껍질에 거북이조차 깜짝 놀랄 때.
특급 헌터는 거북이를 번쩍 들고 갑판을 달리며 외쳤다.
“어때? 거복이 엄청 멋지지!? 보니까 기분 좋아지지!? 모두 가까이서 봐!”
카카카카카캌-
특급 헌터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갑판에 울려 퍼질 때.
천문석은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던 의문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머릿속에 가득한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의문의 해답을 찾는 게 아닌 정보다!
동료들이 올 관문 도시 마하바나의 정보!
천문석은 위신을 봤다.
“위신. 우리 마하바나로 갈 정보를 얻어야 한다. 여관이나 술집으로…….”
홀리듯 거북이를 보던 위신이 기겁했다.
“야, 이 도시 손님으로 들어오면 바가지 엄청나! 너희 사정은 짐작하니까. 나한테 맡겨! 숙박, 정보까지 한 번에 해결해 줄게.”
‘뭐지, 이 녀석? 왜 갑자기 적극적이야!?’
천문석이 의아해하자, 위신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스카라베한테 잡힐 뻔한 거 구해 줬잖아. 이번에 잡혀갔으면 강제 노역을 몇 년이나 했을지 몰라. 그리고 이 도시에 처음 온 사람들이 도시 관리인에게 첫 공물을 바치면 엄청난 혜택이 있거든! 너희 공물 바칠 때 일행으로 있으면, 나도 그 혜택 같이 본다!”
“도시 관리인한테 첫 공물을 바치면 혜택을 본다고……? 아, 그 숙박이랑 정보!?”
문득 무언가 머리를 스치는 순간.
위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생각대로야. 도시 관리인에게 ‘첫 공물’을 바치면 일종의 외교 사절이 된다. 공물 가치에 따라 다른데. 최소 일주일은 숙박비, 공과금 등 대부분이 면제야! 게다가 공물 가치, 점수에 따라서 그 이상도 얻을 수 있어!”
위신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정보, 면세, 부! 그리고 이 도시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까지! 바하바나라는 도시를 찾아간다고 말했지? 제대로 된 공물만 바치면 간단히 해결된다. 어때 내 계획 괜찮지? 잠시 일행으로 고용해 줄래?”
위신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웃었다.
“딜?”
가볍게 앞으로 내민 가늘고 긴 손!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위신을 봤다.
제대로 정보를 말하지 않고, 대화 중에 파편화된 정보만 건넸다.
그것만으로도 위신은 순식간에 윈-윈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딜을 걸었다!
이 도시의 정점, ‘도시 관리인’을 만나 정보를 얻고 마하바나로 간다는 핵심을 찌르는 계획을!
지금은 최대한 빨리 마하바나의 정보를 얻고 동료들을 만나러 가야 할 때!
그러나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천문석은 시선을 돌려 자신과 위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을 봤다.
하늘 고래호의 선장, 갑판장, 바람잡이, 선원들.
어쩌다 보니 얽힌 우론, 소니아, 파티마.
그리고 압둘라와 오마르 장로까지.
긴말은 필요 없었다.
천문석은 동료들에게 물었다.
“괜찮은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혹시 다른 생각 있는 사람 있어?”
“나, 나나! 엄청 좋은 생각 있어! 거복이가 맡겨만 주면 풀코스로 우리 모신데! 엄청 재밌을 거 같아! 거복이랑 놀러 가는 거야! 어때!?”
기이, 기이이-
상기된 얼굴로 신나게 외치는 특급 헌터와 고개를 끄덕이는 별갑 거복이.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알바! 우리 놀러…….”
“기각!
“으앗! 왜왜왜, 왜!?”
주저하지 않고 특급 헌터의 의견을 기각하고 시선을 돌리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료들.
천문석은 위신의 손을 잡았다.
“잘 부탁한다. 위신.”
이세계 렉카, 여우 수인 위신은 환하게 웃으며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고맙다! 이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