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76화>
“어.”
“…….”
천문석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넓게 뻗은 너비와 풍부한 유량!
하늘 고래호는 사막에 흐른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강 위에 있었다.
그리고 이 강 좌우로는 초지와 숲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초지와 숲만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
주위 어디를 살펴도 도시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위신은 하늘을 가리키며 확신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야, 걱정 마. 이제 곧 정오, 태양이 하늘에 걸릴 때잖아? 슬슬 과열된 도시가 올 때가 됐어! 봐봐! 주위에 동물들 안 보이지?”
‘뭐지? 이 녀석 정신이 나간 건가!? 과열? 도시가 물을 마신다고!? 게다가 뭐? 몸을 식히러 온다고!?’
지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불쑥 의혹이 생겨나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도망친 렉카와 이종족!
스카라베 38사기동대가 나타났을 때 한발 먼저 도망친 녀석들!
그 녀석들이 도시가 나타날 거라는 강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함정인가!?’
천문석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야, 우리보다 한발 먼저 도망친 녀석들. 렉카랑 이종족 아무도 안 보이잖아!? 여기에 도시가 나타나는데 왜 우리만 있는 건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위신.
“이종족이야 당연히 자기 도시 갔겠지! 그리고 렉카는 해 떠 있는데 당연히 돌아올 리 없잖아?”
“……당연하다고?”
“그래 당연하지! 공과금에 렌트비, 엄청난 전기요금까지 내야 하는데 한번 허탕 쳤다고 벌써 돌아올 리 없잖아? 아마…….”
위신은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당연하단 듯 외쳤다!
‘공과금, 렌트비? 전기요금!? 이건 또 뭔 소리야!?’
이세계의 신비한 여우 수인이 아닌 한국의 짠내나는 최저시급 알바생과 대화하는 듯한 이 느낌!
황당함에 뭐라 입을 열지 못할 때 위신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걔네들 모래 속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스카라베 애들 사라진 거 확인하고 다시 기어 나왔을걸? 지금쯤이면 조공할 고물 줍고, 사고 난 사람들 찾고 있겠네.”
“조공? 고물? 사고 난 사람들이라고?”
“조공은…… 복잡하니까 도시 들어가서 설명해 줄게. 여기 열사의 사막은 차원 준위가 낮아서 균열이 자주 열려. 그 균열로 온갖 물건, 사람들이 흘러들어오고 말야. 너희도 균열에 휩쓸려서 이곳에 떨어진 거 아냐?”
“…….”
균열이 아니라 용권풍에 휩쓸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이었다!
그러나 마치 생명체처럼 움직이던 용권풍을 생각하면 이동 중에 무언가 사고가 터졌을 가능성이 컸다!
갑자기 나타난 균열에 빠지는 것 같은!
“우리도 비슷해. 원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라 마하바나……!”
대답하던 중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여우 수인, 위신!
위신은 이 이상한 사막의 현지인이다!
즉, 조폭 마혁진이 기절해서 묻지 못한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위신! 너 혹시 열사의 사막이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돌아온 대답.
“장난하냐? 여기가 열사의 사막이잖아!”
“뭐!? 여기가 열사의 사막이라고!? 그럼 관문 도시 마하바나!? 너 혹시 마하바나도 들어 봤어!?”
“관문 도시 마하바나? 그건 처음 들어 보는데?”
열사의 사막을 아는데 사막 입구, 관문 도시 마하바나를 모른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천문석은 시선을 돌려 하늘 고래호 선원들을 훑었다.
천문석과 위신의 대화에 이목을 집중하던 선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갑판장과 선장도 마찬가지로 굳은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이런 오아시스와 거대한 강이 열사의 사막에 있다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거대한 강철의 도시, 산을 옮기는 거대 괴수 이야기는 들었는데…… 뱃사람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야. 나도 열사의 사막에는 몇 번 왔지만, 깊게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이곳 열사의 사막 깊은 곳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감이 안 온다.”
이때 갑판에 주저앉은 바람잡이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열사의 사막 어딘가에 신기루 경계가 있고. 그 너머에 바람조차 돌아올 수 없는 마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바람잡이들에게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라…….”
우론, 소니아, 파티마도 마찬가지.
압둘라와 오마르 장로는 노를 젓다가 체력이 소진돼 갑판에 널브러져 기절하듯 잠들었다.
정보가 나올 구석은 위신밖에 없었다.
“야, 다른 단서 없어!? 다른 도시나. 이 사막에서 나가는 방법 그런 거 말야!?”
천문석의 물음에 위신은 어깨를 으쓱였다.
“공중 카지노, 지하 묘지, 바위굴 성채, 유랑하는 섬…… 도시는 많아. 돈이 없어서 문제지. 그리고 사막에서 나가는 방법은…… 음, 제일 간단한 건 균열, 탑에 들어가면 된다.”
“탑? 그 하늘로 뻗은 탑?”
“어, 그 탑. 저기 서쪽으로 해가 질 때면 보이는 탑이 있는데…….”
위신이 서쪽 하늘을 가리키는 순간 폭음이 들려왔다.
포아아아아앙-
파도를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강 위를 가로지르는 특급 헌터와 퐁퐁이.
특급 헌터는 무언가를 번쩍 든 채 강변을 가리키며 외쳤다.
“왼쪽! 모두 왼쪽 봐! 엄청엄청 커다랗고 완전완전 멋진 악어 거북이가 오고 있어!”
“……!”
하늘 고래호의 모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고 열기가 느껴졌다!
윙윙, 윙윙위윙-
바람 소리도 마수의 울음소리도 아닌 기괴한 소리가!
후우우우우우웅-
사막의 열기조차 밀어내는 찌는 듯 이글거리는 열기가!
‘보이진 않지만,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모두가 직감하는 순간 보였다!
새 부리를 닮은 거대한 머리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뒤이어 거대한 바위 절벽 같은 짧고 굵은 다리가 나타났다!
쿵, 쿵쿵, 쿵쿵-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숲이 흔들리고 강이 요동칠 때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악어 거북!?”
모습을 드러낸 건 초거대 악어거북이었다!
그리고 곧 악어거북의 등껍질 위에 세워진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단과 지붕, 지붕과 베란다, 베란다와 도로가 연결된 건물들!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레고 블록처럼 모든 게 하나로 뒤엉킨 도시가 나타났다!
이 거대한 도시 전체에서 숨이 턱 막히는 이글거리는 열기와 기괴한 울림이 느껴졌다!
윙윙, 윙윙위윙-
도시 전체가 거대한 솥이 되어 이글이글 대기를 달궜다!
“……!”
이 순간 천문석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세계 던전 안, 초거대 악어거북이 위에 세워진 도시에서 익숙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 열기, 이 소리 모두 너무나 익숙했다!
재빨리 내력을 집중해 자세히 살피려는 순간.
강가에 나타난 초거대 악어거북이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쿠르르르르-
워터 슬라이드를 타고 풀로 뛰어드는 꼬맹이처럼!
“어, 어어어!?”
“저, 저! 저것!”
“파도! 파도가 온다!”
기겁한 외침이 터지는 순간!
콰아아아아아-
강물이 욕조 물이 넘치듯 일어나 하늘 고래호를 향해 밀려 왔다!
촤아아아아아-
엄청난 물벼락이 갑판을 휩쓸고!
쿠르르르르릉-
거센 파도에 하늘 고래호는 나뭇잎처럼 뒤로 밀려났다!
“버텨! 아무거나 붙잡고 버텨!”
정신없이 난간, 밧줄, 돛대를 붙잡고 버티길 잠시!
갑판을 휩쓴 물벼락이 빠져나가는 순간 홀딱 젖은 모두의 귀에 소리가 들려왔다.
첨벙, 첨벙, 첨벙-
꼬맹이가 물장구치는 듯한 소리가!
“……!”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굳어 버렸다!
초거대 악어거북은 새 부리를 닮은 입을 벌려 벌컥벌컥 강물을 마시고, 첨벙, 첨벙 거대한 바위 같은 다리로 물장구쳐서 등에 짊어진 도시에 물을 뿌렸다!
쏴아아아아-
산산이 부서진 강물이 비가 되어 등 위의 도시에 쏟아지는 순간.
치이이이이익-
뜨겁게 달아오른 솥에 물을 뿌리듯하얀 증기가 무럭무럭 솟아 올랐다!
위신은 진실만을 말했다.
도시가 물을 마시고, 몸을 식히고 있었다!
수많은 건물이 뒤엉켜 만들어진 도시를 짊어진 초거대 악어거북이!
포아아아아앙-
이때 하늘을 가로지르는 폭음과 함께 신나는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앗! 엄청 멋진 악어 거북이잖아! 커다란 집도 있어! 거복아 혹시 네 친구야!?”
특급 헌터는 작은 거북이를 번쩍 든 채 퐁퐁이를 타고 악어 거북이를 향해 날아갔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초거대 악어거북은 물장구를 치며 강을 따라 내려가는 상황! 넋을 놓고 있다가는 놓친다!
“위신! 바로 접근하면 되냐? 저 도시 어떻게 들어가냐!?”
“크레인 있어! 가까이 붙이면 내가 크레인 내리라고 신호할 게!”
“선장님!”
“알았다! 전원 노를 잡아라! 바로 따라붙는다!”
선원들과 동료들!
하늘 고래호의 모두가 선측 난간에 설치된 노에 달라붙었다!
촤아, 촤아아아-
하늘 고래호는 초거대 악어거북이 만든 파도를 뚫고 빠르게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이 접근하자 너무나 눈에 익은 것들이 보였다!
윙윙, 위이잉-
날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열풍과 진동을 쏟아 낸 네모난 상자들!
“……에어컨 실외기!?”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위신이 씨익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뭐야? 너 에어컨 처음 보냐? 흐흐흐- 건물 안에 들어가면 더 깜짝 놀랄걸? 우리가 괜히 조공을 바치는 게 아니지. 저 에어컨은 정말 놀라운 마도 공학 발명품……!”
“너…… 방금 뭐라고!?”
천문석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외쳤다.
“놀라운 마도 공학 발명품이라고! 건물 안에 들어가면 더 놀랄 거야! 다른 세계 온 것 같은…….”
“잠깐! 그게 아니라! 너 방금 저걸 뭐라고 불렀어!?”
천문석은 말을 끊고 물었고.
위신은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에어컨?”
“……!”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고 머리가 멍해졌다!
위신은 ‘에어컨’이라고 말했다.
던전에 들어온 순간 각인된 통역 회로를 거친 해석이 아니라 정확히 ‘에어컨’이라고 발음했다!
마치 한국 사람인 것처럼!
‘세계 어디나 엄마, 아빠를 부르는 단어는 비슷한 것처럼 우연인가!?’
순간 벼락 치듯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한 번이 아니다!’
급박한 상황과 너무 자연스러워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단어!
전 세계에서 한국인만 쓰는 그 단어를 정확히 그 의미로 사용했었다!
천문석은 홀린 듯이 위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위신. 아까 ‘렉카’를 뭐라고 말했지?”
“야! 위에 크레인 나야! 위신, 우흔(雨欣)! 손님 모셔 왔어! 얼른 크레인 내려 줘! 뭐……?”
위신은 크레인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렉카? 렉카가 렉카지. 렉카를 뭐라고 말해?”
위신은 이번에도 ‘렉카’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처럼 정확히 ‘렉카’라고 발음했다!
“……!”
한번은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에어컨’에 ‘렉카’까지 두 번이나 우연일 수 있을까!?
게다가 지구에서 보던 에어컨 실외기와 똑같이 생긴 실외기가 이세계 도시에 설치됐다!
그것도 끝없이 모래가 펼쳐진 사막을 걷고 거대한 강에서 물장구치는 이세계의 초거대 악어거북이 등 위의 도시에!
순간 천문석은 오래전 봤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우주 비행사가 불시착한 원숭이 행성에서 찾은 문명의 흔적!
원숭이 행성의 정체가 사실은 아득한 시간이 지나 인간의 문명이 사라진 미래라는 이야기!
쿵-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쿠우우웅-
거대한 크레인이 하늘 고래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천문석은 알 수 없는 직감에 가까워지는 도시를 홀린 듯이 바라봤다!
중앙이 볼록 솟은 언덕 형태의 도시!
가장자리에는 대형 크레인이 늘어선 부두와 창고 건물들이 자리하고.
그 뒤로 판잣집과 벽돌집. 5층 건물과 높게 솟은 빌딩이 틈 하나 없이 붙어 있다.
무한히 증축을 반복해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 아파트 단지처럼.
건물과 건물, 벽과 계단, 지붕과 베란다, 도로가 모두 하나로 붙어 뒤엉킨 도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윙윙, 윙윙위윙-
도시 전체를 울리는 에어컨 소리와 진동이 점점 커지고!
치익, 치이이이익-
비처럼 쏟아진 강물이 증발한 새하얀 증기와 숨이 턱, 턱 막히는 열기가 갑판으로 쏟아졌다!
도시가 가까워지자 선원들과 동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무사히 도착했다.”
“이거 열기가 엄청난데. 괜찮은 거야?”
“그래도 사막보다는 낫겠지!”
“그러게 말야. 처음에 사방에서 밀려 올 때는 끝장인 줄 알았는데. 휴우-.”
“야, 다 왔는데. 너 얼굴이 왜 그래?”
“고생했다. 너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무사히 못 왔을 거다.”
……
안도하는 선원들과 동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천문석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 채 홀린 듯이 새하얀 증기가 피어오르는 도시를 살피고 다시 살폈다!
렉카에 에어컨까지!
이 도시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
이때 퐁퐁이를 타고 날아올라 한발 먼저 도시에 도착한 특급 헌터가 외쳤다.
“알바! 에어컨 엄청 많아! 앗 여기에 만든 회사 이름도 적혀 있어! 에비시디이에프지…….”
“……!”
특급 헌터가 알파벳을 노래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마침내 찾던 무언가가 보였다!
몇 번이나 봤으면서도 무심결에 넘긴.
에어컨 실외기에 선명하게 새겨진 회사 이름!
[W. S. indu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