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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772화 (77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72화>

으아아아아아-

처음 ‘이세기’란 외침 후에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든 괴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처음 ‘이세기 새끼!’라는 외침만으로도 충분했다!

천문석은 한눈에 염동력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이세기란 이름으로 원한을 산 녀석이다!’

순간 이세계 쿠팡맨 이래 싸우고 굴리고 굉천수를 먹인 사람들의 이름이 파바밧-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여량위, 이원, 주호, 최평, 최설……!

‘뭐가 이렇게 많아!?’

짚이는 사람, 떠오르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눈앞의 사람의 누군지 특정이 안 됐다!

천문석은 언제든 대응할 수 있게 내력을 끌어올리며 재빨리 염동력자를 살폈다.

엄청난 염동력자라는 데서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지만, 겉모습이 너무 다르다!

방풍 고글과 해지고 빛바랜 누더기!

금 간 고글 너머로 보이는 눈빛과 누더기 안에 담긴 몸에서 느껴지는 짠 내!

눈앞의 염동력자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이세기’를 알고 있다고!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매칭되는 사람, 기억나는 이름이 없었다!

‘그냥 솔직히 물어볼까?’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발목을 잡았다.

마도, 사파뿐만 아니라 정파까지.

자신이 이름을 묻기만 하면 발작하듯 분노하던 사람들!

이름 물어봤다가 생사결을 벌인 상대가 하나둘이 아니다!

‘차라리, 기억 안 나는 친구를 만났을 때처럼 은근슬쩍 스스로 이름을 말하게 유도한다!’

대응 방침을 세우는 순간 염동력자는 괴성을 뚝 그쳤다!

으아악-

그리고 방풍 고글과 몸에 걸친 누더기 망토를 벗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기회!

얼굴과 체형을 보면 이름이 기억날 거다!

천문석은 온 정신을 집중해 상대의 얼굴과 체형을 살폈다.

하얗게 센 머리!

형형하게 빛나는 검은 눈!

기름기 하나 없이 날카로운 얼굴!

검붉게 타들어 간 피부와 터진 입술, 주름진 눈가!

바짝 말라붙어 뼈와 근육만 남은 몸과 팔다리!

처음 보는 5, 60대 염동력자가 나타났다!

‘뭐야, 이 녀석 누구야!? 진짜 나를 아는 건가!?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때 염동력자가 입을 열었다.

“이세기! 과거의 일은 이제 잊자!”

‘아니, 뭐 기억나는 게 있어야 잊지!?’

그러나 생각과 달리 반사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입에선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과거의 원한은 잊자!”

“좋아!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냐? 아니, 그보다 나갈 방법은!? 이 빌어먹을 사막에서 나가는 길은 당연히 있지!? 혹시, 모래 산? 소용돌이 협곡? 부유석 대지!?”

염동력자는 기대감으로 번뜩이는 눈과 흥분으로 떨리는 몸으로 연신 지명을 외쳤다.

하나같이 처음듣는 지명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나갈 방법이 어디 있어!?’

생각 그대로 말했다간 난장판이 된다!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보다 네 이야기부터 해 봐라. 이곳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냐?”

“하아- 너랑 헤어지고 무작정 사막을 달리다가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아시스에 들어갔다가…… 저놈들을 만났다!”

염동력자는 호수 위 하늘에 펼쳐진 황금 풍뎅이를 가리키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스카라베! 저 미친놈들이!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시고! 풀을 밟고! 나무를 꺾은! 모든 비용을 청구했다! 말도 안 되는 비용을! 당연히 거부하는 순간! 악마 같은 채권 추심이 시작됐다! 시바! 강철 도시에서 그 개고생을……!”

분통을 터트리던 염동력자는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강철 도시! 이세기! 이럴 때 아냐!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 언제 오아시스 관리인이 대금 청구하러 올지 몰라! 관리인한테 대금 지급을 못하면 채권추심원이 움직인다! 채권추심원! 그 녀석들에게 걸리면 끝장이다! 지구! 지구까지 쫓아온다! 맞아! 처음 만났을 때도 채권 추심하러 온 거였어! 이 세계는 미쳤어! 강철 도시는 마쳤어! 안 돼! 다시 잡혀갈 수는 없어! 으으윽- 빌어먹을 스카라베! 악마 같은 돈 귀신 놈들……!”

염동력자는 어느새 미친놈처럼 횡설수설하기 시작했고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쟤 괜찮은 거야?’

‘너 아는 사람 맞아?’

‘저놈 미친놈 같은데?’

‘……!?’

……

우론, 소니아, 압둘라.

그리고 선원들과 다른 동료들의 의아한 시선.

천문석이 눈으로 대답하려는 순간.

퐁, 퐁, 퐁-

특급 헌터는 퐁퐁이를 거꾸로 탄 채 다가가 위로하듯 절규하는 염동력자의 등을 두들겼다.

“아저씨 이거 먹고 힘을 내!”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어린이 젤리가 염동력자의 손에 쥐어졌다.

“……!”

염동력자는 홀린 듯이 어린이 젤리를 보다가 뚜껑을 열고 쪽 빨아먹었다.

순간 굳어 버린 염동력자!

“젤리…… 젤리가 이런 맛이었구나…….”

염동력자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주룩- 흘렸다.

다 큰 어른이 흘리는 눈물에서 너무나 선명한 감정이 전해졌다.

깊은 회한과 한없는 그리움 그리고 애절함.

염동력자를 미친놈 보듯 보던 모두는 순간적으로 말을 잊었다.

“…….”

“…….”

하늘에는 반짝반짝- 황금 풍뎅이 전광판이 명멸하고, 호수에는 쏴아아아- 부서진 폭포수가 비 오듯 내릴 때.

하늘 고래호 갑판에는 어린이 젤리가 만들어 낸 애잔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 타이밍 거꾸로 매달린 특급 헌터는 어린이 젤리를 하나 더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젤리 맛있지? 힘을 내 아저씨! 난 특급 헌터야.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생각지도 못한 기회!

‘잘했다! 특급 헌터!’

천문석이 내심 환호하는 순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염동력자는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마혁진이다.”

* * *

“마혁진! 너 마혁진이었구나!”

염동력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1세대 헌터!

염동력자 마혁진!

칠성파 조폭 길드 두목 마혁진!

염동포탄을 봤을 때 알아채야 했는데!

마혁진의 쓰던 주특기가 바로 염동포탄이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잊고 있었지!?’

내심 의아해하는 순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완전히 변한 얼굴과 분위기!

‘마혁진 이 녀석 왜 이렇게 삭았어! 게다가 이 짠 내는 뭐야!?’

기억 속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지금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2, 30대 초반으로 보이던 얼굴!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한 1세대 헌터의 위용!

졸부 느낌이 물씬 나던 분위기와 조폭 보스의 카리스마!

이 모든 게 완전히 사라졌다!

세월의 폭탄을 맞은 듯 20년은 삭은 얼굴과 몇 년 동안 노숙하며 빌어먹은 듯한 겉모습과 진한 짠 내!

얼굴과 체형, 분위기가 완전히 변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이름을 들은 지금도 기억 속 예전 모습과 매칭이 안 됐다!

‘마혁진 이 녀석 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거야!?’

순간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신동대문 광장에서 깃발을 꽂고 벌인 1대 1 승부!

광장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초거대 사슴벌레 등 위에 격전을 펼치며 지하터널을 달렸다!

그리고 갑자기 지하 터널과 이어진 사막으로 날아갔었다!

사막!

그렇다! 사막이다!

마혁진은 사막으로 떨어졌다!

“……!”

순간 천문석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머릿속이 번쩍 깨어났다!

마혁진이 있는 이곳!

이 사막이 그때 신동대문 지하터널에서 마혁진이 날아간 그 사막이다!

천문석은 마혁진이 지구로 돌아간다고 외쳤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 사막 어딘가에 신동대문 지하터널과 연결되는 장소가 있다!

[사막 - 신동대문 지하 터널 - 신서울 - 게이트 - 옥탑방 집!]

순간 머리에 도식이 그려지고, 순식간에 계획이 세워졌다.

1. 이 사막에서 신동대문 지하 터널로 이어지는 장소를 찾는다!

2. 여량위의 배를 타고 마하바나로 올 동료들과 합류!

3. 신동대문 지하 터널로 들어가 게이트를 넘으면 집으로 돌아간다!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지금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는 것!

“마혁진! 야, 여기 어디야!? 정확한 위치가 어떻게 되냐!? 아니지! 너, 혹시 마하바나라고 알아!? 관문 도시 마하바나!”

천문석은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 낸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

어린이 젤리를 손에 움켜쥔 채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자신을 보는 마혁진의 모습을!

“야, 왜 그래? 정신 나갔어!? 정신 차려!”

딱, 딱, 따닥-

눈앞에서 연신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마혁진의 얼굴에 표정이 생겨나고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세기 새끼야! 너 나 까먹고 잊던 거야!? 야, 새끼야! 내가 너 때문에 어떤 고생을 했는데! 얼마나 악마 같은 채권추심을 당했는데! 내 이름조차 잊고 있었다고!?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아차!”

“뭐? 아차? 아차라고!? 시바, 시바아아아-!”

“……야, 야! 그런 거 아냐!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지! 놀라서 그런 거야! 놀라서! 이거 감탄사야!”

천문석이 다급히 변명하는 순간.

마혁진은 분노로 완전히 눈이 돌아가 염동력장을 휘감고 달려들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죽기 살기로 달려들던 전생의 무인들처럼!

‘하, 시바 이럴 것 같더라니!’

콰아아아아-

“죽어라! 이세기!”

콰드득-

염동력장이 촉수처럼 몸을 옭아매고!

팡, 팡, 휘이잉-

사방의 호수에서 치솟은 물이 회전하며 압축됐다!

신동대문 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염동력!

1세대 헌터이자 최고등급 염동력자인 마혁진의 엄청난 각성력이 쏟아졌다!

그러나 상대는 천문석이었다.

처음 만나는 순간 이름부터 구라를 치는 난전과 기습, 기만과 속임수의 달인.

그리고 근접 개싸움의 달인 중의 달인!

“콰아아앙!”

벼락같이 입으로 외치며 박수를 치는 순간.

짝-

이 지옥에 갇히게 된 원인, 신동대문 전투를 수도 없이 복기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린 마혁진은 깨달았다!

‘눈뽕!’

깨닫는 순간 수없이 시뮬레이션 돌린 그대로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즉시 염동력장을 폭발시키며 뒤로 뛰었다!

마혁진은 그야말로 본능에 따라 찰나의 순간에 대응했다!

그러나 거리를 주고 페이크 굉천수에 반응한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됐다.

천문석은 이미 미끄러지듯 접근해 허공으로 주먹을 뻗고 있었다!

순간 허공에서 생겨나는 와류!

와류가 폭발하려는 염동력장을 흐트러트리며 쏘아졌다!

콰드드득-

마혁진의 공중에 뜬 몸이 와류에 휩쓸려 빙글 비틀리는 순간.

흐트러진 염동력장을 뚫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풍 같은 연타가 쏟아졌다!

파파파파파파팟-

염동력장의 트리거를 건드리지 않는 아무 위력도 없는 가벼운 주먹이었다.

그러나 주먹이 닿는 순간 기이한 힘이 마혁진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감각을 무너뜨렸다!

‘어떻게!? 아이템도 안 꺼냈는데!?’

감각이 무너지는 순간 염동력은 무력화되고.

마혁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정신줄을 놓고 털썩 갑판에 쓰러졌다!

“……하, 새끼 눈치는 빨라서는 시껍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걔한테 정보 얻으려던 거 아니었느냐?”

“어……?”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사막의 정체.

관문 도시 마하바나의 위치.

신동대문 지하터널에서 나온 장소.

이 모든 걸 말해 줄 사람.

염동력자 마혁진은 게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은 채 갑판에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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