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771화 (77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71화>

휘이이이잉-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밧줄을 끌면서도 홀린 듯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봤다.

‘이 물기 어린 바람!’

모래 언덕에 가려져 호수 일부만 보이던 오아시스!

모래 언덕 정상에 오르자 오아시스의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

아득히 높게 솟은 절벽과 여기서 쏟아지는 엄청난 폭포수!

산산이 부서진 폭포수가 비가 되어 뿌려지는 드넓은 숲과 호수, 강이 언덕 아래 펼쳐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보는 순간 방금 세운 계획은 머리에서 사라졌다.

황금 풍뎅이가 어떤 존재인지 몰라도 겉모습은 풍뎅이다!

호수로 들어가 폭포수가 쏟아지는 저 절벽을 방패 삼아 버티면 된다!

“저기가 목표다! 호수에 배를 띄우고!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로 들어간다!”

천문석의 외침을 듣는 순간 같은 풍경을 본 모두는 바로 계획을 알아챘다!

20미터 남짓!

정상을 움직여 미끄러지면 숲 그리고 호수다!

밧줄을 끄는 우론, 소니아, 파티마.

장대로 배를 밀어내는 압둘라와 오마르, 선원들은 악을 쓰며 힘을 끌어냈다!

으악, 으아아악-

악을 쓰는 소리가 합창하듯 울리고.

촤아, 촤아아아-

하늘 고래호는 비탈을 향해 모래를 가르고 나아갔다!

“모두 힘을 내! 우리는 할 수 있어! 이얍, 얍얍얍!”

구으으, 구으으으응-!

퐁퐁이를 탄 특급 헌터가 돛대를 밀며 화이팅을 외칠 때.

하늘 고래호는 마침내 급경사의 모래 언덕 끝에 멈춰 섰다!

“됐다! 호수 방향으로 돌리고 모두 배 위에 올라가!”

으악, 으아아악-

악을 쓰며 선수를 오아시스 방향으로 돌리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오아시스는 안 돼!

후갑판에서 뱃머리로 달려온 여우 아가씨, 위신!

“멈춰! 오아시스에는 절대 가면 안 돼!”

잡동사니 썰매를 타고 모래 언덕을 오르는 염동력자!

‘뭐지? 이 반응은!? 오아시스에 뭔가 있는 건가!?’

내력을 실어 살폈으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이세기! 어떡하냐!?”

“이대로 오아시스로 가냐!?”

갑판 위 압둘라와 밧줄을 잡은 소니아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느껴졌다.

가늘게 떨리는 팔다리와 가쁜 숨을 내쉬는 동료들!

기절한 듯 잠들었다가 깨어나 머리는 맑았지만, 엄청난 허기가 느껴지고 근육이 찢어질 듯 아리다!

이미 동료 모두는 한계에 달했다!

항구도시 바나에서 이곳까지 몇 번이나 난장판을 헤쳐 나왔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이곳은 바람도 모래도 제대로 흐르지 않는 알 수 없는 사막!

이런 곳에서 식량과 물자가 담긴 배를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 오아시스에 무슨 위험이 있던지 호수에 배를 띄우고 폭포 아래로 들어가는 것!

“어쩔 수 없다! 오아시스로 간다! 모두 배 위로 올라타! 내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트릴게!”

우론, 소니아, 파티마가 바로 배 위로 올라가고.

염동력자와 위신의 다급한 외침이 다시 터지는 순간.

“미친! 멈춰! 오아시스는…….”

“야, 안 된다니까! 그 오아시스는 스카라베…….”

으아아아악-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밧줄을 당겼다!

쿠릉, 촤아아아아-

하늘 고래호는 모래 언덕을 미끄러져 오아시스를 향해 질주했다!

* * *

쏴아아아아아-

하늘 고래호가 모래 언덕을 미끄러지는 순간 동료들은 일제히 밧줄을 끌어당겼다!

파아아앙-

천문석은 밧줄에 힘이 실리는 타이밍 그 탄력을 이용해 단숨에 갑판에 올랐다!

“모두 충돌 대비해! 특급 헌터 위험하다! 이리로……!”

“알바! 나 불렀어!?”

포아아아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퐁퐁이를 타고 순식간에 날아온 특급 헌터!

“어, 잠깐……?”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지금 뭔가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이때 훅 품 안으로 안겨드는 여리한 몸, 가는 손가락, 풍성한 꼬리!

“……!”

반사적으로 반격하려는 순간 파르르- 떨리는 손이 느껴졌다!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옷깃을 잡고 덜덜덜 떠는 여우 아가씨, 위신!

“야, 야! 야아아!”

위신은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발을 구르고 몸을 덜덜 떨며 오아시스를 가리켰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야, 왜 그래? 저 오아시스가 뭔데 그래!?”

“여우 누나! 후, 하- 후, 하- 숨 숴! 퐁퐁이 이 누나 등 좀 두들겨줘!”

탁탁, 타타타탁-!

퐁퐁이의 지느러미가 등을 두들기는 순간.

위신이 말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친놈아! 저 오아시스 유료라고! 유료, 유료, 유료!”

“…….”

“…….”

“…….”

난간과 돛대에 매달린 사람들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툭-

천문석은 여우 아가씨의 어깨들 두들기고 잡낭을 열어 5관 금괴를 꺼냈다.

“야, 걱정할 거 없어! 나 금괴 있다! 나 부자다! 카캬카카카-.”

“맞아! 나도 상자 있어! 나도 엄청 부자야! 카카카카캌-.”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경쾌한 웃음이 울려 퍼지고.

“금? 야! 스카라베는……!”

위신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외치려는 순간.

파앙, 파아앙-

염동포탄이 연달아 날아와 터지고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방향 틀어! 오아시스로 가면 안 돼! 스카라베 놈들 함정이야! 저 오아시스 가면 빚쟁이 된다!”

거지가 될지언정 빚은 지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천문석은 흠칫 놀랐다.

“빚쟁이……?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그러나 염동력자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부우우우우웅-

황금 풍뎅이 구름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로 솟구치고, 호수 주위를 둘러싼 숲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숲으로 들어간다! 충돌 대비해라!”

콰르르르르-

하늘 고래호는 모래 언덕을 미끄러진 관성 그대로 숲을 뚫었다!

후우우우우웅-

이 순간 황금 풍뎅이 구름은 무너지듯 잡동사니 썰매로 쏟아지고!

“빌어먹을! 제에엔장!”

잡동사니 썰매는 숲에 뻥 뚫린 길을 따라 호수로 질주했다!

하늘 고래호 - 잡동사니 썰매 - 황금 풍뎅이.

셋은 직선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선두를 달리는 하늘 고래호 뱃머리.

천문석은 강철봉으로 와류를 쉴 새 없이 쏘아냈다!

콰득, 콰아앙-

굵은 나무줄기가 밀려나고 부러져 길이 열릴 때!

어느새 달려온 우론이 같이 와류를 쏘아내고 소니아의 검과 파티마의 곡도에서 날아온 검기가 주위를 훑었다!

후득, 후드드득-

길게 자란 나뭇가지가 잘려 나가 갑판에 떨어지는 순간 선원들은 갑판 위에 납작 엎드렸고 위신은 겁먹은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여기 유료라니까! 이거 전부 돈 내야 한다고! 미친놈아! 유료라고! 유료!”

그러나 비명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숲이 뚝 끊기고 넓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 위로 나아간다! 충격 대비!”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특급 헌터 앞을 가렸다.

붕, 쿠르르릉-

짧은 부유감과 거센 진동!

촤아, 촤아아, 촤아아아-!

새하얀 파도가 높게 솟아 비가 되어 쏟아졌다!

하늘 고래호는 물수제비처럼 호수 위로 튕기며 빠르게 나아갔다!

곧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 촤아, 촤아아-

호수 위로 미끄러지며 분해되는 잡동사니 썰매!

방풍 고글을 쓰고 누더기로 전신을 가린 남자가 악을 썼다.

“미친놈아! 오아시스 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빚쟁이 된다고! 시바 간신히 도망쳤는데! 우리는 망했어! 모두 망했다고! 시바아!”

이 순간 황금 풍뎅이 구름이 숲에서 튀어나왔다!

후우우우우웅-

그러나 황금 풍뎅이 구름은 호수 위로 날아오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넓게 퍼지더니 일제히 점멸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띠디띠딛, 띠디디딛디디딛디디-!

황금 풍뎅이 구름은 곧 처음 보는 문자를 만들며 기계음을 냈다.

마치 초거대 전광판처럼!

천문석은 기시감을 느꼈다.

특급 헌터의 친구 황금 풍뎅이, 반짝이!

여량위의 배에 남아 있는 반짝이와 똑같은 울음소리다!

‘특급 헌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퐁퐁이를 탄 채 한껏 뒤로 고개를 젖혀 전광판을 보는 특급 헌터가 보였다!

“특급 헌터! 쟤들 반짝이랑 같은 동족이지! 너 알아듣지!? 쟤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아니 저 전광판에 뭐라고 써 있는 거야!?”

“뭐? 야, 스카라베 놈들 언어는 마도사도 이해 못해! 저거 전설의 마도 공학 언어 기계어…….”

위신의 황당해하는 말은 바로 끊겼다.

“당연하지! 나 완전 잘 이해해! 내가 잘 설명해 줄게!”

특급 헌터는 어느새 빼 든 퐁퐁검으로 초대형 전광판에 점멸하는 문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환영합니다! 손님! 스카라베 왕국의 비경! 열사의 사막! 작열하는 태양! 진흙 목욕탕, 모래 찜질방, 시원한 폭포와 맛있는 음식들! 열사의 사막에 자리한 오아시스 휴양지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편안히 쉬시다가 가세요! 이 모든 게 공짜랍니닷……!]

“앗! 알바! 여기 먹을 것도 있나 봐! 게다가 전부 다 공짜래! 배고픈데 잘 됐어!”

특급 헌터가 환호하는 순간.

위신이 재빨리 끼어들어 외쳤다.

“진짜로 저걸 읽을 수 있다고!? 아니, 그보다 공짜? 유료가 아니라 공짜라고!? 어, 그럴 리가……! 스카라베 놈들은 숨 쉬는 것도 돈 받는 놈인데!? 진짜야!? 저기에 ‘공짜’라고 적혀 있다고!? 스카라베 녀석들이 진짜진짜로 ‘공짜’라고 썼다고!?”

“당연하지! 완전 확실히 공짜라고 적혔어! 나 999단도 외워! 333, 333은!? 일일빵팔팔구! 봤지!? 반짝이 글자는 한글보다 쉬워서 금방 배웠어! 카카캌-.”

구으, 구으응-!

위신이 경악하고 특급 헌터와 퐁퐁이가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일 때.

천문석은 퐁퐁검을 황금 풍뎅이 전광판 구석으로 움직였다.

“특급 헌터. 저기에도 글자 쓰여 있는 거 같은데?”

“어, 진짜네? 저건 왜 거꾸로 써 있지!? 잠깐만! 퐁퐁이 뒤집어! 거꾸로 뒤집어 줘!”

포그르르-

퐁퐁이가 빙글 회전하고 거꾸로 매달린 특급 헌터는 황금 풍뎅이 전광판의 글자를 계속 읽었다.

[……단 여왕님 ‘친구’분만 공짜고 일반 손님분들은 소정의 비용을 후불로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표준 약관에 의거 합리적인 비용만을 받고 있답니다. 이 게시물은 준법감시인의 심의를 거친…….]

“유료잖아! 그럴 줄 알았어! 망했어. 우리는 망했다고! 으으으-.”

털썩 주저앉은 위신이 허망한 얼굴로 머리를 부여잡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너무나 친숙한 협잡과 사기, 바가지의 냄새!

렉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카라베 이 녀석들이 진짜였다!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거대한 심적 고통에 휘청이는 찰나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어, 잠깐만! 나 돈 있잖아!?”

잡낭 안에 들어 있는 5관 금괴!

“야, 걱정할 거 없어! 나 금괴 있어!”

“금괴? 흐흐흣- 금괴라고!? 스카라베 놈들에게 금괴로 갚을 치른다고!? 으흐흐흣-.”

위신이 실성한 듯 웃을 때.

폭음과 함께 호숫물이 치솟았다!

파아아앙-

잡동사니 썰매 방향!

방풍 고글과 누더기!

분노한 염동력자가 호숫물을 휘감고 염동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미친놈아! 하늘에 경고문! 저거 어떡할 거야!? 다시 빚쟁이라고? 시바! 어떻게 도망쳤는데, 다시 강철 도시로 끌려 간다고? 으아악-.”

염동력자가 횡설수설 외치는 순간.

천문석과 우론, 소니아, 파티마의 눈이 마주쳤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가볍게 내리눌렀다.

척하면 척!

몇 번이나 합을 맞춘 우론, 소니아, 파티마는 재빨리 기세와 내력을 감췄다.

초절정에 발을 걸친 무인만 넷!

호랑이 굴인 줄도 모르고 찾아오는 하룻강아지 염동력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파앙, 파앙, 파아앙-

염동력자는 단숨에 호수를 가로질러 뱃머리에 내려서는 순간 분통을 터트렸다.

“내가 몇 번이나 오아시스로 가지 말랬지!? 여기는 채권 추심원 영역이다! 스카라베 채권 추심원은 38사기동대와 달라! 걔네들은 활동 구역도 없어! 지구까지 쫓아오는 미친놈들이라고! 으아아악-.”

그리고 괴성을 지르던 염동력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닿았다.

“……!”

염동력자는 돌처럼 굳은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 어어? 어어, 어어어어어어!”

제압할 기회를 노리던 우론, 소니아, 파티마와 갑판 위 모두의 시선이 염동력자의 경악한 얼굴이 향한 곳으로 모였다.

이세기!

순간 혼을 불사르는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세기! 너 이 새끼!”

“꿈은 아니지!? 이세기 새끼라니! 시바!”

“이세기가 사막에 나타났다고! 으아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중령 새끼야! 봤냐!? 마침내 내가 해냈다!”

“시바! 시바아! 난 돌아간다! 마침내 지구로 돌아간다! 으아아아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