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64화>
무도왕 나타라자의 조각상.
일기일원문의 대사형이 경계를 넘어가 얻었고, 막내 데이몽 발도가 대상인이 될 밑천 삼아 들고 나왔다가 강 위의 난장판에서 외발 도깨비의 나무 궤짝과 같이 잃어버렸다.
무도왕의 조각상은 하늘 고래 퐁퐁이를 거쳐 특급 헌터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개 길잡이가 특급 헌터에게 한 작은 속삭임에서 모든 게 시작됐다.
‘선물 받은 벽돌 금괴와 조각상을 도깨비 상자 안에 넣어 주세요. 금을 먹고 깨어난 무도왕의 조각상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 탄다바 춤을 보여 줄 거랍니다.’
안개 길잡이, 허공도의 제사장의 이야기대로 모든 일이 진행됐다.
쿵쿵쿵, 쿵쿵쿵쿵-
마도 엔진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파문을 쏟아 내고.
[…… ]
수없이 열린 균열에서 초월적 존재들의 시선이 별빛처럼 쏟아지는 이 순간.
무도왕의 조각상은 허공을 밟고 하늘을 오르며, 세계의 종막을 고하는 파천(破天)의 춤, 아수라파천무를 췄다!
다리가 허공을 밟는 순간 마도 엔진에서 쏟아진 파문이 단숨에 빨려 들고.
부드럽게 펼친 네 팔이 공간을 가르는 순간 파문은 물결치는 빛이 되어 퍼져 나갔다.
거대한 빛의 물결이 공간에 가득 넘실거리자 차원 준위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곧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던 천기와 용맥의 흐름이 역전되고.
지상에서 하늘까지 수없이 열린 균열이 빠르게 메워지기 시작했다.
파천무(破天舞)!
강제로 열린 하늘이 깨어져 다시 닫히고 있었다!
허신, 마룡, 악신, 마왕, 사신…….
초월적 존재들의 분노한 시선의 무도왕의 조각상에 닿았다.
무도왕의 조각상은 힘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현현체 아니, 사념을 쏘아 보내기만 해도 무도왕의 조각상은 산산이 조각나리라!
그러나 그 누구도 균열 너머로 힘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도왕, 나타라자의 조각상은 매개체이자 그릇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무도왕의 조각상은 그들과 인과가 엮여 있었다.
천기와 용맥의 흐름조차 돌리는 거대한 업을 쌓아 올리고.
삼생의 인과를 관통해 뻗어 나가는 세계의 나무를 넘나들며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이들!
스스로 승천을 미룬 강철의 황제.
세계의 정점에 올라 경계를 걷는 천원검.
무정외물, 하늘에게조차 묻고 답을 듣는 조사.
세계의 나무의 그림자, 혼돈의 경계에서 몸을 드러내는 순간 존재가 특정되고 이들의 거대한 업과 얽혀들게 된다.
이들과 엮이는 순간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다!
저 붉은 포탈을 열었던 존재처럼!
초월적 존재들의 시선이 붉은 포탈이 사라진 장소로 모였다.
잠자는 교룡.
어설프게 엮였다가 더 깊은 혼돈으로 도망친 허신, 잠자는 교룡!
그렇기에 초월적 존재들은 닫혀 가는 균열 너머로 단지 바라보기만 했다.
쿵쿵, 쿵쿵쿵-
세계를 울리는 마도 엔진의 맥동과.
파슥, 파스슥-
숨을 쉬는 듯 번져 나오는 펜던트의 빛 속에서.
파천의 춤을 추는 무도왕 나타라자의 조각상을!
무도왕의 춤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이어졌다.
곧 균열이 하나둘 닫히고 초월적 존재들의 시선 또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균열이 닫히는 순간 작은 빛이 휙 균열을 넘어 날아왔다.
작은 빛은 소리 하나 없이 허공을 날아 하늘 고래호 갑판에 떨어졌다.
도르르르르-
그리고 갑판 위에 널브러진 정신 잃은 사람들 사이를 구르고 굴러 천문석 앞에서 멈췄다.
[…… ]
인지를 초월한 웃음소리가 공간을 울리는 순간 마지막 균열이 닫혔다.
탄다바 춤, 아수라파천무가 끝났다.
무도왕의 조각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지성의 빛이 담긴 눈으로 바라봤다.
하늘의 정점 천원에 오르는 길을 여는 존재를!
신이라 하여도 헤아릴 수 없는 이 아득한 인과와 업이 그려내는 인연을!
쿵, 쿵, 쿵…….
마도 엔진의 맥동이 점점 약해지다가 완전히 멈추는 순간.
무도왕의 조각상의 눈에 담긴 지성의 빛도 꺼지듯 사라졌다.
곧 불꽃의 원이 꺼지고.
흘러나오던 황금 광휘가 사그라들며.
허공으로 펼쳐진 네 개의 손이 서서히 멈췄다.
무도왕의 조각상은 다시 평범한 조각상으로 돌아와 갑판 위에 놓였다.
모든 게 끝나고 고요해진 공간에 바람이 불어왔다.
휘잉, 휘잉-
잠시 멈춘 모래 폭풍이 다시 몰아치고.
쿠르르르르-
용권풍은 점점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쏴아, 쏴아아아-
모래가 비처럼 쏟아지는 하늘 고래호 갑판 위.
정신을 잃은 천문석 앞에는 이번 난장판의 전리품들이 놓여 있었다.
춤추기를 끝낸 무도왕 조각상.
완전히 작동을 멈춘 마도 엔진.
숨 쉬듯이 빛이 번져 나오던 펜던트.
뚜껑이 열린 공간 아이템 작은 나무 상자.
그리고 검은 동전, 흑전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 * *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다!’
천문석은 자신이 꿈속에 있음을 너무나 분명하게 인지했다.
깊은 밤 산속 공터.
바짝 마른 소나뭇가지를 잔뜩 품에 안고 있는 자신 앞.
냄비가 걸린 모닥불 너머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스님!
다 해진 가사만 제외하면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전생의 스승님이 있었으니까!
“……스승님!?”
“…….”
아무 반응 없는 전생의 스승님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이 쏟아져나왔다!
“아니, 스승님! 전에도 그러시더니! 왜 자꾸 꿈에 나타나고 그래요!? 영과 혼은 천기로, 육과 백은 용맥으로 날아가도 벌써 예전에 날아갔을 텐데!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흩어진 영, 백으로 이렇게 계속 나오다가 아차! 하면 귀신 되는 겁니다! 혹시 스승님 귀신 되면 봐주는 거 없습니다! 바로 퇴마할 겁니다! 꼬맹이 시켜서 하늘 이으라고 할 겁니다! 꼬맹이 녀석 전법륜인 딱밤 완전 장난이……!”
전생에는 할 수 없던 말을 폭풍처럼 쏟아 내던 중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잇는다!
전법륜인 딱밤!
‘잠깐, 이거 기회잖아!’
천문석은 전생의 스승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염불, 제사, 점치기, 부적 그리기, 우물 자리 찾기, 바둑, 장기, 알까기, 투전, 기와 굽기, 집수리, 야영, 수인(手印), 천문(天問)…… 등등!
짧은 여행 동안 이 모든 것을 가르친 스승님의 교육 방법은 간단했다.
실전 승부!
그 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딱밤을 맞았다!
전법륜인 딱밤을 창안한 것도 언젠가 찾아올 단 한 번의 승리의 순간!
쌓이고 쌓인 분노와 설움, 고통을 한방에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생의 자신은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스승님은 자신에게 천문사를 물려주고 훌쩍 떠나셨고.
천문사를 잘 키워 알짜배기 사찰을 만들겠다던 대박의 꿈은 곧 와르르 무너졌다!
마도 18문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현실의 벽 앞에서!
이 순간 전생의 기억이 폭풍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산속 사당을 떠나 긴 여행 끝에 도착한 천문사.
-구름처럼 몰려드는 손님들과 쏟아지는 제사 의뢰.
-대목을 맞아 부적을 그리다가 강제로 끌려 간 마도 18문.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도망치는 날 시작된 마도 쟁투.
-마도 쟁투에서 구르다가 우연히 입문하게 된 천마 신공.
-어쩌다 보니 들어가게 된 무저갱, 어쩌다 보니 하게 된 마굴 돌파.
-마굴에서 나오자마자 터진 콩가루 마도 18문의 내전.
-황당한 내전과 더 황당한 결과, 천마 즉위.
-기다렸다는 듯 무림맹에서 열린 천하 무림 대회.
-질 수 없다! 우리도 열자! 해서 열었다가 당연히 개판이 된 마도 무림 대회.
-알뜰살뜰 채운 뒷주머니를 가지고 튀려다가 엉망진창이 된 낙양성.
-자신이 피해자인 낙양성 사건으로 어이없게도 무림 공적이 된 사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나 천하십절이 된 무림의 신성 검절과의 비무.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비무에 나타난 건 더럽게 잘생긴 이세기, 어린 시절의 친우였다!
순간 과거의 그 순간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세기 녀석이 검후, 천하삼봉, 강남제일미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할 때.
자신은 흉악한 강도, 깡패, 조폭, 언제든 뒤통수를 치려는 마도 17문 놈들의 살기 어린 외침 속에서 나타났다!
천문석은 꿈속이라는 것도 잊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 인생……!”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고 분통이 터졌다.
이 어이없는 불운!
이세기를 생각하니 더 빡쳤다!
하늘에는 기울기가 있었고, 깨물어서 더 아픈 손가락도 있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까! 이거 전부 스승님 때문이잖아!?’
“……!”
그렇다!
생각해 보니까 전생의 자신이 개고생하게 된 원인은 마도 18문의 일문 천문사를 물려받은 것 때문이다!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천문사를 물려받을 일은 없었다!
“아니, 뭐가 이따위야!? 하, 시바! 그때 그냥 마종문에 들어가는 건데! 괜히 있어 보인다고 스승님 따라갔다가 이게 뭐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타닥-
모닥불에서 송진이 타들어 가며 한 줌 불꽃과 연기가 솟구쳤다.
그리고 방금 전 꿈속의 기억이 떠올랐다.
품에 안긴 소나무 장작!
장작 구하기 승부에서 져서 딱밤을 맞고 숲을 뒤져 이 장작을 구해 왔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전히 무표정한 모닥불을 보는 스승님이 있었다.
그리고 짧은 과거 회상에 잊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하늘을 잇는다!
전법륜인 딱밤!
마침내 찾아온 기회!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전생에 이루지 못한 꿈을, 꿈속에서나마 이룰 기회가 찾아왔다!
천문석은 번뜩이는 눈으로 무표정한 스승님을 봤다.
진짜 스승님이 아니다.
하늘과 대지에 남은 영과 백의 흔적도 아니다.
단지 자신의 심상에 남은 스승님의 그림자일 뿐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홀로그램 우주, 시뮬레이션 가설, 장주지몽!
우주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모든 사람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 지금을 살아간다!
그렇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태어난 순간 예정된 죽음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덧없는 찰나의 삶, 물거품 같은 헛된 기쁨에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
즉, 지금이 꿈이라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됐다!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전생의 스승님과의 실전 승부에서 이기고 최대 출력 전법륜인 딱밤을 날리는 것만이 중요했다!
천문석은 바짝 마른 장작을 안은 채 모닥불에 다가가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스승님 승부 한 번 더 하시죠? 종목은 스승님이 정하시고 내기에 거는 건…… 평소대로 딱밤 어떨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닥불을 바라보던 스승님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
천문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스승님의 얼굴에 드러난 너무나 생생한 표정!
이 표정에서 꿈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현실감, 어이없어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어, 어어어어!?”
천문석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품에 안은 소나뭇가지를 모닥불에 쏟았다.
탁, 탁, 타타탁-
소나뭇가지에 바짝 말라붙은 송진이 불에 타는 순간.
화륵, 화르르륵-
불꽃과 열기가 치솟고, 맵고 얼얼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이 압도적인 현실감!
“뭐지!? 이거 꿈이 아닌 건가!? 아니, 잠깐만! 내가 왜 꿈을 꾸고 있지!?”
“……무장 어선! 맞아! 모래를 달리는 무장 어선을 타고 용권풍 안을 달리고 있었는데!?”
“……마도 엔진 폭발! 그래! 마도 엔진이 터지려고 했어! 그때 상자에서 나온 조각상이 아수라파천무를…….”
……
말을 하면 할수록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기는 분명 꿈속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생생한 현실감은 뭐란 말인가!?
불꽃이 치솟는 소나무 모닥불.
끝없이 별이 펼쳐진 밤하늘.
숲 냄새가 가득 담긴 바람.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숲.
……
장자가 꾼 나비의 꿈.
나비가 꾼 장자의 꿈.
호접몽(胡蝶夢)!
전생 천마가 꾼 현생 알바의 꿈.
현생 알바가 꾼 전생 천마의 꿈.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이란 말인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일대종사처럼 말하는 순간.
깊은 탄식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너 지금도 그러고 다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