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53화>
‘천강흔 랜덤 박스가 열린다!’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불쑥 머릿속에서 의문이 튀어나왔다.
‘잠깐! 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공격을 쏟아붓는 거야!?’
그리고 바로 답이 생각났다.
이동 성채 도시는 지금까지 적당히 봐주며 싸웠다!
‘어째서!?’
의문을 품는 순간.
갑판 위에 있는 답들이 보였다.
‘압둘라, 오마르, 파티마.’
한자리에 모인 한 가문의 사람들!
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면 가문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모두의 위치를 확인할 때까지 적당히 봐주며 싸웠던 거다!
‘뭐가 이렇게 콩가루야! 하! 압둘라 저 녀석을 데려오는 게 아닌데!’
분통이 터지는 순간에도 정신없이 주술 작살이 떨어져 소리칠 틈조차 없다.
게다가 번쩍이는 섬광과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와 함께 랜덤 박스가 열리기 시작했다!
쓱, 쓱, 쓰윽-
조금씩 조금씩 상자 뚜껑이 열리고 전생에 쌓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업(武業)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영혼육백이 전율하는 순간 진아(眞我), 존재의 본질이 눈을 뜨려 한다!
느껴진다!
쿵, 쿵, 쿵-
랜덤 박스 깊은 곳에서 천천히 맥동하는 무언가가!
‘천마신공!?’
이때 쏟아지던 주술 작살이 멈췄다.
“뭐야? 갑자기 왜 공격이 멈춘 거야?”
“설마, 이 미친놈들이 설마! 선장! 바람잡이! 지금 당장 전속력으로 도망쳐야 한다!”
압둘라의 얼빠진 목소리와 오마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올 때.
천문석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천강흔 랜덤 박스가 이미 반쯤 열렸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후미 갑판으로 달려가 꼬리를 물고 회전하는 내력과 마력을 모두 담아 사자후를 터트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소리에 담겨 쏟아진 내력과 마력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쿠르르르르르-
당장이라도 뒤집힐 듯 선체가 요동치고.
콰아아아아앙-
하늘 높이 치솟은 모래가 돌풍에 실려 날아갔다!
“으아악!”
“어어억!”
깜짝 놀란 선원들이 갑판 위를 뒹굴고 동료들이 귀를 막으며 몸을 숙일 때.
천문석은 전신을 덜덜 떨며 심상 공간을 관조했다!
‘안 열렸지!? 늦지 않았겠지!? 제발제발제발!’
꼬리를 물고 회전하던 내력과 마력은 어느새 느려지고, 반쯤 열렸던 랜덤 박스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
파슥, 파스슥-
몸에 떠오른 천강흔이 수명이 다한 백열등처럼 힘없이 점멸할 때 랜덤 박스에서는 무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왜 이게 반쯤 열려 있어!?’
천강흔 랜덤 박스는 반쯤 열린 뚜껑으로 냉기를 뿜어내는 아이스박스처럼 전생의 무업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중으로 도약한 몸이 허공에 멈춰 선 것과 같은 상태. 상상도 하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에 멈춰 서 있었다!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괜찮아! 완전히 열린 건 아니잖아? 우선 이번 위기를 넘기고 나중에 닫으면…….’
이때 바람이 불어왔다.
후우우우웅-
한껏 달아오른 사막의 대기보다 뜨거운 열풍이!
그리고 돌풍에 실려 날아간 자욱한 모래바람 속에서 함대가 튀어나왔다!
좌우로 활짝 펼쳐진 수십 척의 노범선!
그 사이사이 자리한 쾌속선과 모래 가오리 기병!
그리고 그 중앙, 거대 모래 가오리 위에 올려진 이동 성채 도시가 나타났다!
이동 성채 도시는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학처럼 좌우로 함대를 거느리고 질주하고 있었다!
‘가속하기 위해서 주술 작살 공격이 멈췄구나!’
돌연 공격이 멈춘 이유를 깨닫는 순간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거대한 성채와 시가지, 수많은 사람이 자리한 이동 성채 도시가 돛을 펼친 함대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뭐가 이렇게 빨라!? 야,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야!? 저기 저 성채 속도 빠른 거 맞지?”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오마르 장로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졌다.
“전투 가속! 이동 성채 지금 전투 가속 중이다! 곧 더 빨라진다! 이대로는 따라잡혀!”
순간 성채 도시에서 빛이 폭발하고 자욱한 모래 먼지가 솟아났다!
깜짝 놀라 바라보는 순간 성채 도시에서 생겨난 마력광이 마치 거대한 날개처럼 군함과 쾌속선, 모래 가오리를 품었다!
파아아아앙-
하늘에선 거칠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콰르르르릉-
대지를 흐르는 모래가 거세게 파도치는 급류로 변해 갔다!
이동 성채 도시와 좌우로 펼쳐진 함대는 마력광에 휩싸인 채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배처럼 가속했다!
적과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마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오마르에게 모였다.
“……당장 도망쳐야 한다! 사거리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야! 그건 당연한 거고! 저기 저 성채 왜 저러는 거야!? 아니, 그보다 방법! 막을 방법 없어!?”
“…….”
오마르 장로는 침묵했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돌려 후갑판을 향해 외쳤다.
“선장님!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멍하니 성채 도시를 보던 선장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거대 가오리는 생명체니까! 바람을 타고 도망치면서 지구전을 펼치면……!”
압둘라가 불쑥 끼어들어 선장의 말을 끊었다!
“저 거대 가오리는 보조 동력이다! 실제 동력과 추진력 대부분은 마도 엔진에서 나와! 저 성채 도시! 사실은 추락한 마도 제국의 공중 도시다! 저걸 멈추려면…….”
“카즈빈! 가문의 비밀이다!”
경악한 오마르가 말을 끊으려 했으나.
압둘라는 멈추지 않았다.
“할아버지! 어차피 여기서 잡히면 비밀이고 나발이고 끝장이야!”
압둘라는 바로 말을 이었다.
“반란군 놈들 마력 회로를 작동시켰다! 저 도시 자체가 다른 함대를 가속하는 돛이고 주술 방벽이다! 마력 회로의 핵, 마도 엔진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잡힌다! 아니 그전에 주포가…….”
“멈춰! 그건 진짜 안 돼!”
기겁한 오마르가 달려들어 압둘라를 제지했으나 이미 들은 정보로 충분했다!
‘마도 제국, 공중 도시, 마력 회로, 주술 방벽, 마도 엔진!’
태반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이대로라면 잡힌다는 것!
성채 도시의 질주를 막을 방법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마도 엔진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
천문석은 우선 돛대에 달라붙은 바람잡이에게 확인했다!
“바람을 더 잡으면……!?”
“더는 돛대가 버티지 못합니다!”
“선장님!?”
“성채와 함대가 이 속도를 유지하면 도주는 불가능하다! 바람뿐 아니라 흐르는 모래도 움직이고 있어! 용권풍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방법 없다!”
순간 압둘라가 당당히 외쳤다.
“나한테 계획이……!”
“넌 됐다!”
“뭐!? 야, 왜 내 말은 안듣는 건데!? 나 저 성채 도시 주인이야! 당연히 내가 제일 잘……!”
천문석은 바로 말을 끊었다.
“그 계획 혹시 성채 도시 안으로 들어가서. 반란군 때려잡고 마도 엔진 멈추자는 거냐?”
“…….”
압둘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 침묵이 너무나 분명한 대답이었다.
천문석은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다.
“저 성채에 수만 명이 넘는 병력이 있을 텐데, 누가 반란군 때려잡고 마도 엔진을 멈출 건데?”
순간 모두의 시선의 한 사람에게 모였다.
자신에게로!
“……이럴 거 같더라니! 하…….”
절로 탄식이 튀어나오는 순간 사방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같이 간다.”
“당연히 저도 갑니다! 대인!”
“나도 잊지 마라!”
“기다려! 거의 다 불렀어! 이야얍, 얍얍-.”
“저 성채 도시 지리는 내가 알아! 당연히 내가 있어야지!”
“위험합니다!”
“됐어. 내가 같이 가면 된다!”
소니아, 데이몽, 우론, 특급 헌터, 압둘라, 오마르, 파티마의 결연한 외침이 들려왔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언제나 그렇듯 몸으로 때울 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저 거대한 성채 도시로 들어가 반란군과 싸우며 마도 엔진을 찾아 정지시켜야 한다!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마도 엔진에 담겨 있을 마력!
어째선지 성채에서 발사한 주술 작살에 담긴 마력이 일기일원공의 내력과 호응했다!
그 결과 천강흔, 천마신공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큰 랜덤 박스가 반쯤 열렸다!
지금 저 성채 도시 전체에는 거대한 마력장이 펼쳐져 있었다.
주술 작살에 담긴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마력장이!
즉, 저 안에서 싸우다 내력과 마력이 다시 움직이면, 이번에야말로 천강흔 랜덤 박스가 완전히 열리고 천마신공이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동료들만 보내면!?’
우론, 소니아, 파티마, 압둘라와 오마르.
자신이 없어도 이들이라면 성공할 거다.
그러나 반이나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다!
‘다른 방법! 다른 방법 없을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보지만, 성채 도시와 함대는 마력장에 휩싸인 채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다!
모래 배 한 척이 가장자리로 돌아 도망치려다가 산산조각나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이러다가 이동 사격 사거리 안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야, 빨리 결정해야 해!”
“거리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망루 위 우론과 후갑판 소니아의 외침 뒤로 압둘라의 통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신자 놈들아! 기다려라! 내가 정의를 다시 세우겠다! 하하하-.”
“……어떻게 된 게 항상 이 모양이야. 모두 준비…….”
천문석은 결국 마음의 결정을 하고 외치는 순간.
휘잉, 휘잉-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누군가 장난스럽게 입으로 부는 듯한 바람이.
그리고 이 바람에서 사막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득 담긴 수분이 느껴졌다!
“어……?”
“이 바람!?”
“물기가 담긴 바람이라고!?”
반사적으로 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빠르게 어두워지는 북쪽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선원들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용권풍!?”
“저거 용권풍이잖아!”
“어, 어어! 저 녀석 이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잠깐! 용권풍이면…… 저거 타면 빠져나갈 수 있잖아!?”
“선장님! 저기로! 용권풍쪽으로 이동하죠!”
“기다려! 경비대에서 용권풍이 도시 근처에 오게 그냥 놓아둘 리 없다!”
“맞아! 이 계절에 나타난 용권풍이면 길잃은 용권풍인데…….”
……
‘길 잃은 용권풍!’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벼락치듯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포위망을 뚫을 때 어두워진 북쪽 하늘을 본 자신에게 모래 가오리 기수가 했던 말!
‘길 잃은 용권풍입니다! 바나의 경비대에서 곧 다른 곳으로 유인할 겁니다!’
-점점 거리를 좁히는 성채 도시와 함대.
-길잃은 용권풍과 바나의 경비대.
“……!”
천문석은 전율했다.
바나의 경비대는 용권풍을 다른 곳으로 유인할 수 없다!
경비대원들은 자신을 잡겠다고 난장판이 된 시가지, 부두에 모조리 동원됐으니까!
‘저 길잃은 용권풍을 막을 존재는 없다. 만약 저 용권풍을 탄다면……?’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용권풍을 유인할 경비대는 없습니다! 선장님! 저 길 잃은 용권풍을 타면 빠져나갈 수 있습니까!”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선장과 바람잡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뭐!? 경비대 놈들이 없다고? 미친놈들 용권풍이 도시에 접근하는데 그냥 둬!?”
“가능합니다! 모래가 흐르는 속도! 바람길이 열리는 차원이 달라요! 새처럼 날 듯이! 아니, 전설 속 엘프가 열어 준 밤의 길을 지나듯! 엄청난 속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단……!”
“단!?”
천문석이 반문하는 순간.
바람잡이는 깃털 지팡이로 어두워지는 북쪽 하늘을 가리켰다.
“길잃은 용권풍을 타면 사막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이 계절에 사막으로 나오고. 또 길을 잃었다는 건 저 녀석 엄청난 길치라는 뜻…….”
바람잡이의 말은 리스크가 있다는 것!
이제 두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이동 성채 도시로 잠입해 마도 엔진을 멈춘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길잃은 용권풍을 타고 도망친다.
무엇이 됐든 지금 당장 선택하고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짝-
천문석은 손을 마주쳐 시선을 모으고 외쳤다.
“야, 투표한다! 저 용권풍 타고 도망치는 거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나는 반대야! 그러다가 열사의 사막 너머 지옥! 스카…… 으브븝!”
압둘라가 외치는 순간.
오마르 장로는 재빨리 그 입을 막고 외쳤다!
“찬성한다!”
“아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너희들!”
천문석은 흠칫 놀라 다시 봤다.
입이 막힌 채 뭐라 외치는 압둘라.
압둘라의 입을 막은 오마르 장로.
뒤를 쫓는 함대를 살피는 파티마.
그리고 파티마의 시선이 닿는 곳.
거대한 마력광에 휩싸인 채 질주하는 함대와 이동 성채 도시!
천문석은 이 모든 것을 보는 순간 벼락 치듯 번쩍 깨달았다!
“야! 쟤들 우리가 아니라! 너희 쫓는 거잖아!”
“……!”
“……!”
“……!”
거대한 충격이 갑판 위를 휩쓸고 모두는 깨달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깜빡했다!
이동 성채 도시와 함대는 무장 어선을 쫓는 게 아니다!
파티마와 압둘라, 오마르 장로를 쫓고 있었다!
저놈들은 반란군이니까!
그리고 파티마, 압둘라, 오마르 장로는 동료가 아니다!
압둘라는 인질, 파티마와 오마르 장로는 인질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다!
깨달음의 폭풍이 하늘 고래호에 몰아쳤다.
우론, 소니아, 데이몽.
선장, 바람잡이, 갑판장, 선원들.
망루, 후갑판, 돛대, 뱃머리, 갑판.
하늘 고래호에 탄 모두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얽혔다!
천문석의 시선이 쓰윽- 모두를 훑는 순간.
끄덕, 끄덕끄덕, 끄덕끄덕-
긍정의 제스처 가 모든 곳에서 쏟아졌다.
지금 이 순간 하늘 고래호의 모두는 같은 생각,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천문석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모두의 대표로 나서서 부드럽고 공손하게 말했다.
“선생님들. 압둘라 왕자님도 돌려 드렸는데. 이제 우리 여기서 헤어지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