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49화>
‘……최악의 상황이 됐다!’
아니, 그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카즈빈 압마나프!
방금 성벽에서 대치할 때 파티마는 이세기가 카즈빈을 납치했다고 말했다!
‘파티마와 카즈빈. 가문의 후계자 둘이 동시에 납치됐다고!?’
전율이 오마르 장로의 등골을 스쳤다.
후계자 둘에 자신까지 사라지면, 남는 것은 정통성과 실력 모두 처지는 고만고만한 후계자들뿐!
이대로라면 가문은 수십 개로 쪼개져 치열한 계승 전쟁을 벌일 거다!
그런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다!
‘으아아악-.’
오마르 장로는 전신의 내력을 일시에 격발시켜 제압을 풀려고 했다.
툭-
순간 가슴에 손이 닿고 마치 그릇에 구멍이 뻥 뚫린 듯 끌어올리던 내력이 빠져나갔다!
“……!”
경악한 오마르 장로의 눈이 내력의 움직임을 쫓았다.
가슴에 닿은 이세기의 오른손과 몸을 거쳐, 허공으로 뻗은 왼손에서 피어오르는 내력!
파스스스-
자신의 내력은 통제력이 잃고 봄날 아지랑이처럼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오마르 장로는 그 자신의 경지는 높지 않지만, 보는 눈만큼은 자부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세기가 아무렇지도 펼치는 무위가 어떤 경지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내력을 밀어 넣어 움직이는 수준을 넘어, 타인의 내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흩어 버리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아득한 경지!
이건 마스터급 무사라도 불가능한 경지다.
선조에게 마나심법을 전수했다는 전설의 ‘샤’ 정도나 가능한 경지다!
‘설마! 파티마 알사우드가 원대륙에서 ‘샤’를 찾아서 데려온 건가!?’
그러나 파티마도 자신과 같이 제압당한 상황, 그럴 리 없었다!
‘이런 강자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아니, 어째서 카즈빈, 파티마, 자신을 납치한단 말인가!?’
오마르 장로의 머릿속에서 온갖 가능성이 복잡하게 얽혀 생각났다.
-돈을 노린 인질극?
이런 강자가 돈에 연연할 리 없다!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파 갈등?
자신은 몰라도 후계자 카즈빈과 파티마까지 위험에 빠트릴 리 없다!
-카즈빈과 파티마를 날려 버리고 가문을 이어받기 위한 계략?
이 정도 강자를 움직일 수 있으면 계략을 쓰는 게 오히려 하수다!
……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가능성이 말이 안 됐다!
이 순간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혹시…… 이 모든 게 우연은 아닐까?’
오마르 장로는 다시금 이세기를 봤다.
터번을 쓰고 바람막이 천까지 두르고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이 얼굴을 보는 순간 비열한 악당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카캬카-
“…….”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자기 생각이 사실이라면?
그냥 여기서 모든 것을 없던 거로 하자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오마르 장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세…….”
“뭐야!? 뭐가 이렇게 빨리 풀려!?”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쏟아져 나가던 내력이 벽에 막힌 듯 역류했다!
커억-
시야가 흐릿해지고 의식이 꺼지려 할 때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앗! 장로님! 기혈이 뒤틀리시다니! 얼른 누워서 쉬셔야 합니다!”
이세기는 다급한 목소리와는 달리 비열한 악당처럼 웃으며 오마르를 눕히고 방풍천을 들었다.
‘우연이 아니었구나!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끝장이다!’
오마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세기의 등 뒤 모래 가오리 기수에게 눈빛을 보냈다!
알사우드 가문의 모래 기수지만, 같은 가문!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전해야 한다!
‘당장 멈춰! 이세기는 가문의 적이다! 파티마! 바람검도 납치당하는 중이다! 당장 막아라!’
“……!”
모래 가오리 기수는 무언가 깨달은 듯 흠칫 놀라 달려왔다.
다급한 발걸음과 품속에 들어간 손!
오마르 장로의 마음속에서 희망의 불씨가 생겨나는 순간.
모래 가오리 기수는 품에서 손을 꺼내며 외쳤다.
“이세기님! 혹시 모르니 이 밧줄로 묶어 두죠!”
“아주 좋은 생각이다! 잘했다! 기수!”
‘야, 이 씹…….’
오마르 장로는 꺼지듯 시야가 암전되어 의식을 잃었다.
* * *
잠시 주위를 살피는 동안 오마르 장로의 말문이 트였다!
‘큰일 날뻔했네!’
천문석은 오마르 장로를 꽁꽁 묶어 방풍천 아래에 숨기고 장대를 낚아채 모래 가오리 머리로 달렸다.
쿵쿵, 콰아앙-
도망치는 모래 배와 막고 있는 함대가 쉴 새 없이 충돌하는 난장판!
“뚫을 수 있다! 틈으로 밀고 들어가!”
“장대 들고 밀어내라!”
“이대로면 계속 뚫립니다! 발리스타 사용 허가…….”
“상부 명령이 없다! 발리스타 사용 금지다!”
“2중, 3중으로 포위망을 조이고! 선체로 막아라!”
……
사방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질 때, 앞장서 길을 뚫는 다우선에서 선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긴급 상황이다!”
“상부 명령이라니까!”
“야, 이 새끼야 길 열라고!”
다우선 선장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함대 사이로 길을 열고.
모래 가오리 기수는 고삐를 짧게 쥐고 다우선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가 뒤엉킨 난장판!
다우선에 바짝 붙어도 여전히 위험했다.
파아아앙-
나무조각, 도르래, 끊어진 밧줄과 부러진 노!
온갖 잡동사니와 모래가 끊임없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천문석은 장대를 흔들어 쏟아지는 잡동사니를 정신없이 쳐 내며 동료들이 탄 배를 찾았다.
이때 10시 방향 대형 범선 한 척이 전력으로 밀고 들어와 군함과 충돌하는 게 보였다.
콰아아아앙-
중소형 선박의 충돌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던 군함이 충격에 밀려나며 공간이 벌어지는 순간.
촤앗, 촤아앗-
미끄러지듯이 그 사이로 튀어나온 무장 어선, 하늘 고래호!
하늘 고래호가 뒤엉킨 배 사이를 뚫고 8시 방향에서 다가왔다.
돛이 하나 찢어지고, 활대 끝이 부러지고, 선체 곳곳이 팬 상황에서도 무장 어선은 빠르게 질주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갑판 위를 훑었다.
‘동료들은?’
타륜을 잡은 선장.
돛대에 매달린 바람잡이.
난간 철봉에 안전 고리를 연결하고 장대를 든 선원과 동료들.
데이몽, 특급 헌터, 우론, 소니아, 압둘라 모두 무사……!
‘압둘라!?’
천문석은 깜짝 놀라 갑판을 다시 확인했다.
악을 쓰며 장대로 군함을 밀어내는 사람!
얼굴과 전신을 방풍천으로 가렸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압둘라!
자신이 꽁꽁 묶어 손수레에 숨겨 둔 압둘라가 데이몽 옆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같은 편인 것처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머리 위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거의 다 뚫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포위망만 뚫으면 됩니다!”
다우선 후미 갑판에 올라선 선원이 크게 외쳤다.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의문을 푸는 건 나중일!
지금 중요한 건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과 하늘 고래호와 합류하는 거다!
“알았다!”
천문석은 대답과 동시에 무장 어선을 향해 외쳤다!
“야! 여기야!”
번쩍 고개를 든 특급 헌터가 뭐라 외치자 쏟아지는 시선!
천문석은 손에 든 장대로 원을 그리며 다시금 외쳤다.
“뒤로 붙어! 길 뚫고 있다!”
무장 어선은 곧 모래 가오리를 향해 움직였다.
‘됐다! 이대로 포위망을 뚫은 후 합류하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모래 가오리 기수에게 명령했다.
“포위망을 빠져나가자마자 11시 방향으로 기수를 튼다!”
“알겠습니다!”
모래 가오리 기수의 결의에 찬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뿔피리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부으으으으으으-
섬뜩한 직감에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모래 배를 막던 이동 성채 도시와 함대가 도망치는 모래 배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가속하기 시작했다!
과녁을 향해 쏘아진 화살처럼 천문석 자신이 탄 모래 가오리를 향해서!
‘여기에 오마르, 파티마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어떻게?’
천문석은 의문을 품는 순간 빙글 몸을 돌려 장대를 방풍천에 내려쳤다.
파앙-
방풍천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오마르의 목걸이를 잡은 파티마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목걸이에서는 주술력의 빛이 새어 나왔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움직인 이동 성채 도시와 함대.
예상보다 빨리 깨어나 움직이는 파티마.
목걸이에서 새어 나오는 주술력의 빛.
‘신체를 회복시키고 위치를 알리는 주술 도구다!’
깨달음과 동시에 파티마가 움직였다.
준비 동작도 없이 빙글 몸을 돌리며 손을 뻗는 동시에 뿌려지는 섬광!
후두둑-
일격에 장대가 잘려 나가고.
휘익, 휘이익-
칼바람 소리와 함께 검기가 쏟아졌다!
천문석은 강철봉으로 원을 그려 단숨에 검기를 튕겨 내고 외쳤다.
“야, 잠깐만!”
순간 검기를 뿌리던 곡도가 멈추고 기세가 돌변했다!
파티마는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곡도를 수직으로 세웠다.
수직으로 세워진 곡도에 빛이 맺히는 순간.
마치 공기가 무게를 가진 듯 몸을 짓눌렀다!
이 가벼운 동작에서 분화 직전의 화산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파티마 녀석! 개빡쳤구나!’
기습 공격으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제압했을 때와는 다르다!
이미 굉천수와 구인창은 한 번씩 사용한 상황.
제대로 싸우기 시작하면 최소 200합은 싸워야 제압할 수 있다!
‘200합?’
천문석은 힐끗 주위를 살폈다.
부으으으으으-
뿔피리 소리와 함께 화살처럼 쏘아진 이동 성채 도시와 알사우드 함대!
“읍, 으브븝……!”
입에 물린 재갈을 풀려고 발버둥 치는 오마르 장로!
“파티마님 정신을 차리셨군요!?”
반가움을 담아 외치는 모래 가오리 기수!
“이제 마지막입니다! 저 군함을 지나면 그 뒤로는 사막입니다!”
마지막 포위망을 뚫는 다우선의 선원!
파티마와 싸우는 순간 자신의 구라는 만천하에 까발려지고 주위 모두는 적이 된다!
200합은커녕 10합도 되기 전에 모든 게 끝장날 위기에 처했다.
‘시바시바시바! 이거 어떻게 하지!?’
정신없이 대응책을 찾아 머리를 굴릴 때.
천천히 굽히던 파티마의 무릎이 멈췄다.
시작된다!
파티마의 전신에서 한껏 당긴 시위를 놓기 전의 멈춤과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가 느껴졌다!
“……!”
모든 게 끝장날 찰나의 순간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천문석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야……!”
* * *
파티마는 이세기의 입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몇 번이나 겪었다.
성벽에선 단 두 번의 외침으로 압마나프와 알사우드 가문의 모두를 속이고.
이어진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매 순간 튀어나온 기만술에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패배했다!
이세기는 무학으로 일대종사가 아닌 입으로 일대종사였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그 엄청난 무위보다 위험한 게 그 입과 잔머리였다!
그래서 오마르 장로가 기습적으로 일어나 외쳤다가 다시 제압되는 순간에도 파티마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제압된 오마르 장로의 목에서 빠져나온 보호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
파티마는 오마르의 주술 목걸이를 통해 이동 성채 도시에 구조 신호를 보내고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장대가 떨어지는 순간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고 기세와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싸운다!’
파티마는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곡도에 강기를 담았다!
파스스스스-
유형화된 강기가 당장이라도 터질 듯 떨리는 순간.
이세기의 입이 열렸다.
“야……!”
“문답무용!”
탓-
단단한 모래 가오리 등을 비틀어 밟는 순간 비명 같은 외침이 이어졌다.
“8시! 압둘라!”
“……!”
그리고 도미노가 쓰러지듯 모든 일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마지막 군함을 지났습니다! 길을 틔우겠습니다!”
바로 앞에서 질주하는 다우선 후미 갑판 선원의 외침!
촤아아아-
다우선이 선체를 트는 순간 나타난 탁 트인 모래사막!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쏘아져 공간을 넘어 날아오는 이동 성채 도시의 주술 작살!
파앙, 쏴아아아아-
주술 작살이 모래 가오리 옆에 떨어지고 폭발한 모래가 비 오듯 쏟아지는 순간.
너무나 익숙한 비명, 익숙한 목소리가 8시 방향에서 들려왔다.
“으아악! 이 배신자 놈들!”
다급히 멈춘 파티마가 8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사람의 외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카즈빈 왕자님! 무사하셨군요!”
마침내 재갈을 끊어 낸 오마르 장로의 외침.
“누나! 무사히 배신자를 피해 빠져나왔구나! 얼른 이 위로 올라와! 여기는 안전해!”
얼굴을 가린 천을 풀어낸 카즈빈의 반가운 외침.
배신자?
올라오라고?
여기는 안전하다고?
“…….”
“…….”
납치당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외침에.
파티마와 오마르 장로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에게 향했다.
입을 떡 벌린 모래 가오리 기수 옆.
강철봉을 든 채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이세기.
이세기는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아냈다!’
천문석은 죽어서도 사마의의 계략을 꿰뚫어 본 제갈량의 계책에 감탄하는 강유처럼 웃었다.
그렇다!
천문석은 제갈량이 아닌 제갈량의 계책을 보고 깜짝 놀란 ‘강유’처럼 웃었다!
압둘라!
자신이 인간 방패로 쓰고, 대형 술통에 넣어 데굴데굴 굴린 압둘라가 무장 어선 갑판에서 외치고 있었다!
마치 동료들이 압둘라와 한편인 것처럼.
안전하니까 얼른 무장 어선으로 올라오라고!
‘아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