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46화>
오마르 장로는 피를 토하듯 열정적으로 외쳤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외침.
그러나 그 안에는 가시가 담겨 있었다.
가문의 치욕을 씻기 위해 당장 우론 대공과 싸우라는 가시가!
파티마는 고개만 까닥이고 그대로 가시를 말에 담아 돌려줬다.
“오마르 장로. 바람 사막에 있어야 할 장로가 바나항까진 무슨 일이냐? 이동 성채 도시까지 끌고 오다니…… 설마 폭풍해를 넘어가 우론 대공에게 설욕이라도 하려는 건가? 주군의 설욕을 대신하다니. 훌륭하군! 과연 압마나프 가문의 원로야!”
설욕을 원하면 네가 직접 움직이라는 가시가 담긴 말!
오마르 장로의 주름이 꿈틀거리고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리가요! 바람 사막의 도적단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춰서 수색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달 거리인 이곳 바나항까지 도적단 수색을 나왔다고?”
파티마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에.
오마르 장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권풍을 따라와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카즈빈님은 만나셨는지요? 오랜만에 남매가 만나셨을 텐데…… 그간의 이야기는 좀 나누셨습니까?”
‘하, 오마르 이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파티마는 내심 혀를 찼다.
이제는 카즈빈, 우론 대공에게 패배한 동생까지 걸고넘어지고 있다!
오마르 장로가 이러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사자심검 때문이다!
문득 며칠 전 대륙 상단을 통해 원대륙에 있던 자신에게 전해진 황당한 서신이 기억났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해전에서 지휘관으로 나선 카즈빈이 패배했다는 사실이 담긴 서신!
패배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사자심검을 우론 대공에게 빼앗겼다는 것!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고 사자심검은 되찾았으나, 가문은 사자심검을 소유할 권리를 잃었다.
그 결과 후계자로 자리를 굳혀가던 카즈빈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오래전 원대륙으로 떠난 자신에게까지 연락이 왔다.
이 황당한 서신의 목적은 간단했다.
파티마 자신이 가문의 이름으로 우론 대공에게 설욕하고, 사자심검을 소유할 권리를 되찾아 카즈빈에게 건네주길 바라는 거다.
그러나 사자심검은 이미 카즈빈에게 넘겨준 물건.
파티마는 검 한 자루 때문에 가문으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게 까마득한 오래전 ‘샤’가 내려 준 정통성의 증표라고 해도.
오히려 서신에 적혀 있던 한 사람이 파티마의 관심을 끌었다.
자신이 가문에 있을 때는 들어 본 적 없는 강자!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재능을 보인 카즈빈을 압도하고 사자심검을 뺏어 갔다는 우론 대공, 새로운 대륙 십존!
마침 파티마가 서신을 받은 강변 도시 하류에는 안개 길잡이들과 만났던 도시 적염성이 있었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그래서 파티마는 동전 던지듯 선택하기로 했다.
운 좋게 안개 길잡이를 만나면 우론 대공을 만나러 돌아가고, 만나지 못하면 가문의 편지를 무시한다.
파티마는 바로 배를 타고 하류의 적염성으로 이동했고. 적염성에서 올라온 불에 그슬리고, 선체가 깨져 엉망이 된 배들을 만났다.
그리고 온갖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 전체가 난장판이 되고, 수백척의 배가 강에서 뒤엉켜 불탔다.
-거대한 산 같은 고래가 도시를 박살 내고, 검은 용이 나타나 화염의 비를 뿌렸다.
-적염성주의 후계자가 나타나 신나는 축제를 명령하시고 하늘을 날아 홀연히 사라지셨다.
-도시에 일어난 혼란을 덮기 위해 정략결혼을 발표하고 15일 보름간의 축제를 열어 엄청난 금을 풀고 있다.
……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가장 어이없던 이야기, 우연은 흠씬 두들겨 맞고 거지꼴이 돼서 작은 배를 타고 도망치는 안개 길잡이들을 만난 것이다.
그 거만했던 안개 길잡이들은 자신을 보는 순간 눈물을 줄줄 쏟으며 정신없이 매달렸다.
가짜 금괴에 낚여 무시무시한 사람에게 꼬리가 잡혔다며 제발 도망치게 도와 달라던 모습.
‘하, 이 녀석들! 뱃삯을 그렇게 후려치더니 임자 만났구나!’
어이없어하기도 잠시 타대륙으로 건너간다는 말을 슬쩍 흘렸다.
안개 길잡이들은 환호하더니 바로 바나항으로 길을 열어 주고 자신과 함께 이 도시에 왔다.
어차피 목표는 우론 대공.
파티마는 바로 폭풍해를 건너 우론 공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가문의 이름을 업지 않은 파티마 한 명의 무인으로서!
그런데 어이없게도 항구에 도착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카즈빈이 나타났다.
알사우드 가문의 함대까지 끌고서!
카즈빈이 나타났다고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상대해 주다가 배를 구하는 대로 우론 공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장에서 얻어터지고 돌아온 카즈빈이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시장에서 쓰레기통 뚜껑을 돌리는 우론 대공을 만났다고!
반신반의 우론 대공을 찾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한 순간.
이세기에게 카즈빈이 납치당하고 도시 전체가 난장판이 됐다.
그리고 이세기를 쫓다 보니 지금 눈앞에 압마나프 가문의 이동 성채 도시와 오마르 장로가 나타났다.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뭐가 이렇게 엉망진창이야……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긴 상념이 끝나고.
파티마는 성벽 위 오마르 장로를 향해 불쑥 물었다.
“오마르 장로. 그 서신 네가 보낸 거냐?”
“글쎄요? 서신이라면 하루에도 몇 통이나 써서…… 무슨 서신을 말씀하시는지?”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하는 오마르 장르.
그러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자 오마르 장로가 서신을 보냈다는 강한 심증이 왔다!
오마르 장로가 서신을 보냈다면 그 목적은 뻔했다.
어떻게든 사자심검을 되찾아 가문 안과 밖에서 쉴 새 없이 까이는 카즈빈의 권위를 다시 세우겠다는 것!
오마르 장로는 오래전 자신을 원대륙으로 밀어냈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낚으려 한 것이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하하하하-
파티마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인과란 이 얼마나 놀라운가!?’
자신을 사자심검을 되찾기 위한 도구를 쓰려 했던 오마르 장로.
그러나 카즈빈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오마르 장로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카즈빈은 사자심검을 되찾아 권위를 세우기는커녕 이세기에게 납치당해 대형 술통 속에서 데굴데굴 굴렀으니까!
‘오마르!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던 그 머리도 이젠 맛이 갔구나!’
하하, 하하하하-
파티마의 웃음이 계속되자.
오마르 장로의 얼굴에 의문이 생겨났다.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파티마는 불현듯 깨달았다.
‘아직 카즈빈이 납치당한 걸 모르는구나!’
함대의 움직임을 보면 이동 성채 도시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당연히 바나항이 카즈빈 때문에 난장판이 됐다는 것도 모를 거다!
문득 한 가지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인생은 선택과 결과. 그리고 우연의 연속!’
파티마는 오마르 장로에게 물었다.
“오마르 장로. 카즈빈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카즈빈 도련님은 파티마님과 같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 가주가 되셔야 할 분이 누이를 이렇게 좋아하시다니…….”
오마르 장로는 여전히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파티마는 씨익 웃으며 손을 들고 경쾌하게 말했다.
“카즈빈. 이세기에게 납치당했다!”
“……네?”
경쾌한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
오마르 장로가 그 괴리감에 얼빠진 소리는 내는 동시에.
파티마의 시선이 성벽으로 움직이고 다시 한 번 경쾌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카즈빈 압마나프는 이세기에게 납치됐다!”
“……지금 그게 무슨! 납치라고요!? 카즈빈! 카즈빈 도련님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오마르 장로가 경악하는 순간.
파티마의 손이 오마르 옆 성벽을 가리켰다.
“그걸 아는 사람 유일한 사람. 이세기 거기에 있다!”
* * *
‘심상치 않다!’
천문석은 성벽 위에 세워진 흉벽에 찰싹 달라붙어 오마르 장로와 파티마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말 속에 숨겨진 가시와 쉴 새 없이 서로를 견주는 태도!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압둘라=카즈빈, 오마르 장로 VS 파티마 알사우드.]
자신의 직감대로다!
오마르와 파티마는 가문의 주도권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압둘라와 파티마의 가문은 마도 18문 이상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은연중 느껴지는 살기를 보면 이건 숫제 원수 사이다!
사실 이들이 원수든 콩가루 집안이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었다!
아니, 상관없었는데 이제는 있게 됐다!
스스로 이곳 오마르 장로의 이동 성채 도시를 결투 장소로 지목하고 활강해 내려섰으니까!
지금 자신은 납치한 압둘라를 지지하는 세력의 본거지로 날아 들어온 것이다!
이제 파티마와의 대결이 문제가 아니다!
무시무시한 주술 작살 수십 개가 쏟아지게 생겼다!
‘압둘라를 납치한 게 알려지면 끝장이다!’
천문석은 흉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리고 은근슬쩍 도망치기 위해 조심조심 움직일 때.
파티마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즈빈. 이세기에게 납치당했다!”
‘야, 이 씹! 그걸 왜 말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파티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천문석은 얼어붙었다.
호선을 그리는 눈.
부드럽게 휘어지는 입꼬리.
자신을 향해 움직이는 손과 천천히 열리는 입!
“……!”
파티마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는 순간.
천문석은 눈과 입, 표정. 온 마음으로 외쳤다!
‘하지 마!’
‘그러면 안 돼!’
‘우리 그러지 말자!’
입 모양으로 돌아온 단호한 대답!
‘돼!’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지듯 수많은 생각과 키워드가 몰아쳤다!
“……이세기 거기에 있다!”
파티마가 외치는 동시에 천문석은 움직였다!
쾅-
단숨에 성벽을 밟고 뛰어올라오마르 장로에게 돌진!
호위병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고.
경악한 오마르 장로와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천문석은 번쩍 손을 들고 내력을 실어 외쳤다!
[파티마 알사우드 만세!]
[압둘라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는 파티마님뿐이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당장…….”
“뭐!? 야,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미친…….”
오마르 장로와 파티마 알사우드가 다급히 명령했으나 두 사람의 명령은 이어지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앙-
굉천수의 굉음과 섬광이 모든 것을 삼켜 버렸으니까!
* * *
굉천수가 터지는 순간 이동 성채 도시, 모래 배 함대, 모래 가오리 기병 모두의 시선은 성벽 위에 집중돼 있었다.
당연히 엄청난 섬광과 폭음에 순간적으로 시각이 하얗게 물들어 무력화됐다.
그러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터진 굉천수기에 무력화되는 시간은 길어야 2, 3분 남짓!
이 거대한 함대를 상대하기에 2, 3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으로 충분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무장 어선 하늘 고래호!
이미 굉천수를 겪은 천문석의 동료들은 굉천수가 터지는 순간 바로 움직였다!
하늘 고래호는 바위 암반과 모래 언덕의 경계, 암초 지대를 미끄러져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굉천수를 터트린 천문석도 움직이고 있었다!
훙, 휘잉, 파앙-
섬광 속에서 날아오는 섬뜩한 검격!
바닥에 납작 엎드려 검격을 피하는 동시에 미끄러진다!
주르르륵, 탁-
손끝에 오마르의 다리가 잡히는 즉시 거칠게 경력을 밀어 넣어 제압하고 외쳤다.
“오마르 장로를 잡았다!”
“야! 조심해! 장로님 칼 맞는다!”
“새끼야! 장로님 피나시잖아! 암살자냐!?”
“검을 멈춰라!”
“장로님이 잡혔다!”
“멈추라니까 새끼들아!”
“물러서! 얼른 물러서라!”
다급한 외침과 함께 검격이 멈추는 순간.
천문석은 오마르를 잡은 채로 바로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푸우욱-
마치 늪에 빠진 듯 허벅지까지 쑥 들어가는 흐르는 모래!
‘생각보다 점성이 더 낮다!’
푹, 푹, 푹푹푹-
천문석은 오마르를 어깨에 걸친 채 발이 쑥쑥 빠지는 흐르는 모래를 달리며 외쳤다.
[파티마님 성공했습니다! 계획대로 오마르를 잡았습니다!]
“미친놈아! 뭔 헛소리를 빨리 사실대로……!”
파티마는 섬광 속에서 곡도를 뽑아 들고 달려 오고 있었다!
과연 사막 최강검!
굉천수를 처음 겪는데도 감각이 살아 있다!
게다가 자신의 계획, 덮어씌우기를 눈치채고 바로 달려 오고 있다!
그러나 고아 소년에서 콩가루 문파 연합체 마도 18문의 지존까지!
온갖 수라장을 헤쳐 나온 천문석이 보기에 파티마는 너무나 허술했다!
‘자신에게 혼자 달려들다니!’
괜히 강자가 자신보다 하수로 인의 장막을 세우는 게 아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파티마님!]
천문석은 제압한 오마르 장로를 집어던지며 다시 한 번 내력을 실어 외쳤다.
[마침내 오늘 파티마님께서 오마르 장로를 직접 처단하고! 가문의 근본을 바로 세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