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41화>
“이세기 미친놈아! 얘를 왜 데려 와!”
“뭐야? 걔가 누군데…….”
다급히 고개를 돌리던 소니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 어어! 저 녀석……!”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연신 손가락질만 하는 소니아.
“맞아. 걔다.”
우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압둘라!’
“이런 쌍!”
소니아는 한달음에 선수로 달려가 밧줄 끝에 매달린 이세기에게 외쳤다,
“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세기 미친놈아!”
“엇! 갑자기 왜 그러세요! 대인의 완벽한 계획으로 탈출했는데!”
“맞아! 특급 알바의 특급 계획으로 탈출했어! 역시 알바는 대단해! 카카캌-.”
데이몽과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소니아는 말문이 컥 막혀 버렸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압둘라는 알사우드, 압마나프 두 가문이 합쳐 탄생한 가문의 후계자다!
소니아 자신이 최고위층 귀족, 제국 검공가의 후계자이기에 너무나 잘 알았다.
인질이라고?
인질극도 급이 맞아야 하는 법!
급이 맞는 상대가 아닌 일개 여행자에게 후계자가 납치되었는데 참을 귀족 가문은 없다!
가문의 전력을 동원해 뒤를 쫓고 수치를 씻으려 하리라!
‘비제우 검공가의 이름을 밝힐까?’
문득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얀데에서 천공탑의 열쇠를 슬쩍하며 자신과 할배의 얼굴이 드러났다.
여기서 이름을 밝히면 제국 검공가가 천공탑의 열쇠를 슬쩍했다고 밝히는 거다.
비제우 검공가의 이름, 제국의 이름에 먹칠하는 순간 정말 무서운 사람이 분노한다!
오대공의 수장, 제국 대법관 로잔 대공.
“으으으- 시바!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으아악-.”
소니아가 머리를 부여잡고 괴성을 지를 때.
다급히 달려온 우론이 외쳤다.
“야, 목소리 죽여. 쟤네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
힐끗 선장과 선원들을 눈짓하는 우론.
소니아는 바로 우론의 말뜻을 알아챘다.
압둘라의 정체를 알게 되면 선장과 선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아! 혹시 모르니 압둘라 얼굴부터 가려야…….”
“찢어진 자루 얼굴에 씌워뒀다! 우선 이세기부터 끌어당기자. 분명 뭔가 계획이 있을 거야!”
이세기는 잔머리의 귀재!
난장판이 된 광장 시장과 부두를 무사히 빠져나와 모래 배까지 얻어 냈다.
분명 압둘라를 데려온 것도 무언가 생각이 계획이 있을 거다!
우론과 소니아는 바로 밧줄에 달라붙어 악을 쓰며 잡아당겼다.
“이세기……!”
“으득- 이세기……!”
* * *
밧줄에 매달린 천문석은 동료들의 얼굴은 바라봤다.
퐁퐁이를 탄 채 환호하는 특급 헌터.
감탄하는 얼굴로 탄성을 터트리는 데이몽.
그리고 이를 갈며 밧줄을 잡아당기는 우론과 소니아.
두 사람의 모습에 방금 전 소리 지르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이세기 미친놈아! 얘를 왜 데려 와!’
천문석은 탄식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그렇다! 진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작살과 사슬을 받으러 간 대장간.
자신은 재빨리 보급품만 받아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장간 안에 술집과 연결된 비밀 문이 있다는 것을!
‘어떤 미친놈이 술집 비밀문을 대장간으로 뚫어!’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는 순간 지난 한 시간여 동안 일어난 황당한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장간 비밀 문에서 뛰어나온 경비대 조장과 삼보 단장을 먹인 경비대장.
-반사적으로 제압하려는 순간 두 사람이 다급히 전한 정보, 여우 사냥.
-재빨리 뒷골목을 달려 배로 돌아오는데, 정면으로 맞닥뜨린 압둘라.
-본능적으로 압둘라를 제압해 빠져나가려는데 나타난 수백의 군인.
-군인들을 쥐어박고 도망치는 순간 몰려드는 용병과 경비대원.
술집, 인도, 주택, 옥상, 도로를 오가는 정신 없는 추격전이 시작됐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초장거리 검기를 쏟아붓던 검은 비단옷의 무인이 나타났다.
압둘라 누나, 파티마 알사우드!
무심코 건드린 도미노가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대장간에서 시작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압둘라를 데려온 건 이 엉망진창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천문석은 넓은 분지의 동쪽 끝, 분지 출입구를 봤다.
거대한 바위가 길게 이어지는 분지 한쪽에 마치 거인이 꾹 밟아 놓은 듯한 공간이 보였다.
부두에서 출발한 수많은 모래 배가 일제히 달려가는 공간!
저곳이 항구도시 바나에서 모래사막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 유일한 통로는 얼핏 보기에는 활짝 열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사막 부족의 정략 싸움에 얽힌 경비대장과 조장에게 ‘여우 사냥’ 계획을 들었다.
사냥개를 풀어 여우가 스스로 사냥꾼이 기다리는 함정으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계획!
저 출입구는 함정이다!
압둘라 일족의 함대와 사막 기병대라는 사냥꾼이 기다리는 함정!
‘하, 시바! 저기는 어떻게 빠져나가지!?’
천문석이 고뇌하는 순간.
으아, 으아악-
악을 쓰는 소리와 함께 우론이 손을 뻗었다!
“야! 빨리 올라와! 힘들어!”
탁-
손을 맞잡고 올라온 뱃머리.
동료들의 다급한 외침이 쏟아졌다.
“알바! 완전 멋졌어! 술통 나도 술통 굴리고 싶은데! 다음에 우리 같이……!”
“대인! 돌아오셨군요! 제가 아주 깔끔히 계약했습니다……!”
“야, 야! 쟤, 어떻게 된 거야!? 너 쟤가 누군지는 알고 데려온 거야!?”
“계획 있지! 너 다른 계획 있는 거 맞지!?”
천문석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재빨리 대답했다.
“기각!”
“잘했다!”
“쟤 정체 들었…….”
“뭐!? 알고도 데려왔다고!?”
“잠깐, 계획, 계획부터 말해 봐!”
소니아가 분통을 터트리고, 우론이 다급히 묻는 순간.
하하하-
천문석은 웃음부터 터트리고 대답했다.
“당연히 계획 있지!”
-계획은 없었다.
“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데려왔겠냐?”
-정신없이 사건이 터져 엉망진창이 돼서, 어쩌다 보니 데려왔다.
“걱정하지 마! 우리는 곧 이 분지를 빠져나가 마하바나로 갈 거다!”
-분지 출입구. 저 뒤에 쫙 깔린 함대와 사막 기병대를 뚫을 수만 있다면…….
‘젠장…….! 이거 말하면 얘네들 엄청 빡쳐 할 텐데!?’
“역시 특급 알바야!”
“과연 이세기 대인이십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데 특급 헌터와 데이몽이 환호하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 있는 표정, 당당한 자세로 확신을 담아 외쳤다!
“난 언제나 계획이 있다! 걱정할 거 없다!”
그러나 우론과 소니아는 언제나 긍정적인 특급 헌터와 달랐다.
바로 핵심을 파고들어 집요하게 물었다.
“야, 뭐 다 두리뭉실한 이야기야!? 계획이 뭐냐니까?”
“그래! 쟤 절대 포기하지 않아! 뒤로 줄줄이 따라올 거야!? 계획 있지!? 숨기지 말고 얼른 말해!”
우론과 소니아는 당장이라도 달려들듯한 기세로 외쳤다.
“임…….”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임기응변’ 네 글자를 말하려는 순간.
부으으으으으-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앗!?”
“뭐야!?”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자욱한 모래 먼지가 모래사막 곳곳에서 일어났다!
파아아아아아-
그리고 다급한 선원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막 기병이다!”
“모래 가오리 기병대다!”
“10, 20, 30…… 미친! 도대체 몇 기야!?”
“뭐가 이렇게 많아!”
“선장! 사막 기병대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
촤아, 촤아아아-
모래 먼지를 뚫고 튀어나와 제트스키처럼 질주하는 몸길이 5미터가 훌쩍 넘는 가오리!
고삐와 안장이 채워진 가오리 등에는 완전무장한 기수, 창병, 궁병이 타고 있었다!
적으면 3에서 많게는 5명 이상!
모래 가오리 한 마리 한 마리가 움직이는 전차였다!
거대한 모래 가오리는 적을 향해 돌진하는 전차처럼, 출입구를 향해 나아가는 배를 향해 돌진했다!
마치 목양견이 양 떼를 몰아가듯이!
촤아, 촤아아아-
새하얀 모래가 파도처럼 치솟아 흩날리는 매 순간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때 깃털 지팡이를 휘두르던 바람잡이가 외쳤다.
“모래 가오리 기병!? 지얀데, 압둘라 일족이잖아!? 쟤들이 여기까지 왜 왔어! 야, 선장! 너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냐!?”
“뭔 헛소리야! 항구 들어가자마자 빠져나왔는데 뭔 사고야! 다른 배에 목표 있나 보지! 야, 주위 둘러봐! 같이 달리는 배가 수백 척인데! 우리가 목표겠냐!?”
선장이 버럭 소리치자 바람잡이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의 말대로 강제 징발을 피해 부두를 탈출한 모래 배들이 뒤엉켜 분지 출입구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어, 그런가? 이상하네…… 왜 꼭 우리랑 엮인 것처럼 불안하지…….”
“…….”
“…….”
바람잡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천문석은 무언의 시선을 느꼈다.
우론과 소니아의 눈에 떠오른 복잡한 감정.
의혹, 불신, 갈등, 고뇌…….
그리고 미약한 희망!
우론은 미약한 희망을 담아 물었다.
“너 방금 계획 있다고 했지!?”
“맞아! 임…… 뭐라고 했는데! 야, 빨리 말해! 쟤들 압둘라 목표로 삼은 게 분명해. 이 배 선장과 선원들이 알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대인! 얼른 말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으앗! 모래 가오리!? 엄청 멋지잖아! 앗! 아냐. 당연히 퐁퐁이가 더 멋지지! 알바 그렇지!?”
동료 모두가 자신을 바라본다.
차마 ‘임기응변’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계획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생각보다 빨리 모래 기병이 나타나며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 무장 어선의 선장, 선원들과 만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모래사막의 유력가문 후계자 압둘라, 만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여행자.
무장 어선의 선장과 선원들의 마음속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천문석에게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며 세운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생살을 뜯어내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다른 방법은 없다!’
천문석은 눈을 질끈 감고 모두를 향해 외쳤다!
“우리의 계획은 임전무퇴다!”
“임전무퇴!?”
“갑자기? 임전무퇴?”
“……대인? 임전무퇴라고요?”
“앗! 나 들어 본 적 있어! 이순신 장군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천문석은 위엄을 담아 외쳤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뭐?”
“지금 뭐라고?”
“대인……?”
우론, 소니아, 데이몽 셋이 고개를 갸웃할 때.
특급 헌터가 퐁퐁검을 뽑아 용맹하게 외쳤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알바는 지금 이렇게 말한 거야!”
“네, 죽는다고요? 대인, 지금 그게 무슨……!?”
데이몽이 황당해하는 순간.
우론과 소니아의 차게 식은 시선이 쏟아졌다.
“뭐!?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게 계획이라고!? 야, 쟤들이 그럴 것 같아!? 당연히 우리가 타겟인 거 알면…….”
“……하, 시바! 망했어 우리는 망했어……! 처음부터 그냥 도망치는 건데…… 시바시바시바!”
“야, 당연히 그것도 생각했지! 잠깐만 손수레가…… 앗! 저기 있구나!”
그르르륵-
천문석은 재빨리 손수레를 끌고 와 외쳤다.
“야, 모두 모여봐! 이게 바로 내 계획의 핵심! 무장 어선의 모두가 임전무퇴, 필사즉생으로 싸우게 할 아이템이다!”
손수레 안으로 쑥 들어간 천문석의 손이 나오는 순간 우론과 소니아는 경악했다.
“……어!?”
“설마 이거…….”
“앗! 깜빡했어! 나도 상자에 만들고 있는데!”
특급 헌터가 엉뚱한 소리와 함께 상자를 꺼내 흔들 때.
데이몽 발도는 격동으로 부르르 떨다가 무릎 꿇고 외쳤다.
“……대인! 완벽한 계획이십니다! 감탄! 또 감탄했습니다!”
천문석은 거만하게 고개를 까닥이며 우론과 소니아에 손을 내밀었다.
“봤지? 이게 내 계획의 핵심이다! 어때? 당장 임전무퇴 하고 싶어지지!?”
끄덕, 끄덕, 끄덕-!
우론과 소니아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임전무퇴!
너무나 허술해 보이던 계획이 더없이 완벽해 보였으니까!
이세기가 내민 손에 있는 5관 금괴, 제국 표준 금화 2435개짜리 금괴가 그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