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28화>
정보를 말한 상인이 앉은 테이블 위로 금화가 쌓이고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용병, 모험가, 상인들은 바로 몸을 돌려 술집 밖으로 달렸다!
“……!?”
고개를 갸웃하던 신입 용병과 모험가, 초짜 상인들은 당황했다.
‘아무 이유 없이 금화를 던지고 이름을 말할 리 없다!’
이름을 말하는 건 나중에 빚을 갚겠다는 뜻!
즉 방금 들은 정보가 금화로 값을 모두 치르지 못할 만큼 가치 있다는 의미였다!
“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냥 가지 말고! 설명 좀 해 줘요!”
……
“야, 신입이라도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지! 머리로 안 되면 발로 움직여라! 하하하-.”
누군가 웃음과 함께 던진 말을 마지막으로 반 이상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술집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사람들은 안절부절주위를 돌아보다가 다급히 달렸다.
“안 되겠다! 난 길드에 가봐야겠다!”
“정보 살롱! 살롱으로 가보자!”
“상회에 바로 알려야겠어!”
……
어느새 텅 빈 술집 3층에 남은 건 창가 자리에 앉은 천문석뿐이었다.
천문석은 로이에게 받은 지도를 보고 있었다.
바나항 동쪽에는 광활한 폭풍해가 있었다.
이 폭풍해를 지나 동쪽으로 쭉 나아가면 제국과 판타나우 대습지가 나왔다.
‘제국과 판타나우 대습지 간에 전운이 감돈다!’
지도를 살피며 상인의 말을 되새기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먼바다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당연히 상업 도시인 이곳의 모두에게 기회였다!
상인들은 엄청난 물자를 공급해 막대한 돈을 벌 테고.
용병과 모험가들은 무력과 능력을 팔아 입신양명을 노릴 거다.
어쩌면 갑자기 조용해진 도적단 중 상당수는 한몫 잡기 위해 벌써 제국으로 떠났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서쪽 마하바나 너머 열사의 사막으로 나아갈 자신과 일행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명절 기간 사람들이 고향으로 해외로 떠나 텅 빈 서울과 같다.
모두의 시선이 동쪽으로 쏠리면 서쪽 마하바나, 열사의 사막으로 가는 일행의 앞에 트러블이 일어날 가능성은 확 작아진다!
당장 상인들도 도적단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던가!
“와! 타이밍이 뭐 이리 좋아!?”
천문석은 희희낙락 지도를 접으며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사막의 분위기를 직접 확인했고 좋은 소식도 들었다.
이제 적당히 군것질하며 시장을 구경하고, 중간중간 마도구 상점에 들러 살만한 공간 관련 아이템이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호텔에 돌아가 느긋하게 쉬고, 특급 헌터가 잠든 다음 슬쩍 나와 화려한 상업 도시의 밤을 즐기면 된다!
이렇게 사막 항해 준비가 끝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준비가 끝난 고속갤리선을 타고 텅 빈 서쪽 마하바나로 출발하면 된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순조로운 건 진짜 간만인데!?”
뱀술 만든다고 독사를 찾아 숲을 헤매던 적염성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누군가 인생 난이도 버튼을 ‘쉬움‘으로 바꾼 것만 같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게 당연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당연히 내리막도 있는 법!
계단산과 적염성에서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이제 좀 편안할 때도 됐다!
처음 이상 던전에 들어왔을 때 계획한 대로 느긋한 여행을 즐기면 곧 지구에 돌아간다!
“카캬카카카- 최고로 게으르게 쉬어 주마!”
웃음을 터트리고 시원한 맥주를 단숨에 비우는 순간.
우와아아아아아-
창문 너머 광장 시장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 * *
“꼬맹이 재밌게 구경하고 있나?”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돌려 공연장을 내려다봤다.
서커스 무희는 여전히 홀로 양철 뚜껑을 돌리고.
약장수의 차력 쇼는 하이라이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원자를 받아 약을 바르고 있다.
청년, 용병, 꼬맹이…….
“꼬맹이!?”
깜짝 놀라 자세히 살피자, 상의를 벗고 푸르스름한 약을 발라 스머프가 된 낯익은 꼬맹이가 외쳤다.
“엄청난 힘이 솟는다!”
특급 헌터!
“야, 너 뭐 하고 있는 거야!?”
다급히 달려가려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저 약장수들은 눈속임 차력을 보여 주는 가짜가 아니다.
절정, 초절정의 경지에 달한 강자, 힘을 숨긴 차력사들이다!
두 사람에게선 아무런 살기도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푸르스름한 약을 바르고 스머프가 된 특급 헌터는 너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
순식간에 결론을 낸 천문석은 창문을 활짝 열고 창턱에 앉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차력 쇼를 바라봤다.
곧 차력 쇼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후우우우웅-
거센 파공음을 내며 떨어지는 쇠지팡이!
깡, 그륵-
청년, 용병을 때린 쇠지팡이가 특급 헌터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닿기 직전 단숨에 구부러졌다!
우와아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이 터지고 난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돈을 건넬 듯 주머니를 꺼내 흔드는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능숙하고 은밀한 힘의 운용!
내공과는 결이 다른 게 느껴졌지만, 일맥상통하는 면이 보였다.
“와,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저 차력사 주호랑 붙이면 호각이겠는데!?”
천문석은 연신 감탄하며 맥주를 마셨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홀로 쓰레기통 뚜껑을 돌리던 서커스 무희가 돌연 뚜껑 돌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앞에 놓인 동전 깡통을 들고 환호성을 지르는 인파를 향해 달려갔다.
“……!?”
다다닥- 뛰어가는 서커스 무희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
“이거 막아야 하나?”
서커스 무희에게 시선을 뺏긴 이 순간.
환호성과 웃음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
“힘을 내라 꼬맹이!”
“제대로 한번 보여 줘라! 하하하-.”
“응?”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상체에 푸른 약을 바른 꼬맹이.
특급 헌터가 양손을 번쩍 들어 자세를 잡고 있었다.
전법륜인 딱밤 자세!
“설마, 설마설마!?”
이 순간 차력사가 뒷짐을 지고 이마를 내밀었다!
더는 볼 것도 없었다!
“이런 미친! 갑자기 이게 뭐야!?”
천문석은 창밖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특급 헌터 멈춰! 딱밤 때리면 안 돼!”
전법륜인의 수인은 말로 전할 수 없는 뜻과 깨달음을 전하는 수인이었다.
그런 수인이 백곰 마수의 마석을 깨뜨리며 고통 이상의 고통을 전하는 전법륜인 딱밤으로 진화해 특급 헌터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특급 헌터는 전법륜인 딱밤으로 벌써 셋을 해치웠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아카린과 섬초!
분노를 잊고 착해진 새끼 다람쥐 니케!
지금 이 순간 네 번째 희생자가 나오려 하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개고생, 난장판, 짠 내’가 느껴지던 차력 약장수!
특급 헌터는 애써 피한 ‘재앙’을 향해 전법륜인 딱밤을 날리고 있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으아악-
악을 쓰며 인파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동시에.
천둥처럼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기합 소리!
이야야야압-!
‘이대로면 늦는다!’
천문석이 내력을 실어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의 씩씩한 외침이 한발 먼저 울려 퍼졌다.
“하늘을 잇는다!”
[피해! 절대 그 딱밤 맞으면 안 돼!]
* * *
“하늘을 잇는다!”
특급 헌터가 최대 출력 딱밤을 날리는 순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피해! 절대 그 딱밤 맞으면 안 돼!]
천문석의 내력이 실린 다급한 외침이 터지고.
“……이 외침!? 이 내력!?”
이마를 내민 비토 비제우가 번쩍 눈을 뜨고.
“야, 너희! 진짜 인간적으로 너무하잖아!”
분노한 우론 대공이 인파를 뚫고 차력사에게 돌진하고.
“거기! 공연자! 잠시 검문 좀 하겠다!”
경비대원 30여 명이 구경꾼 사이에서 나타나 모두를 포위하고.
“앗! 언제 경비병이!?”
차력에 온 신경을 쏟던 소니아 비제우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리고 레일을 굴러 간 볼링공이 늘어선 볼링핀을 한 방에 쓰러트리듯 모든 일이 한 번에 일어났다.
“할배 도망쳐!”
소니아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번쩍 눈을 뜬 비토 비제우는 경악했다.
소리 없이 이마로 날아오는 딱밤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힘!
비토 비제우가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후드를 눌러쓴 우론 대공이 화살처럼 돌진했다!
“경비병!? 시바! 어디서 걸린 거지!?”
“조심해!”
“아앗!?”
깜짝 놀란 비토 비제우와 우론 대공이 동시에 최적의 동선으로 피했다.
이 놀라운 반사신경이 역으로 독이 돼, 같은 방향으로 피한 두 사람이 충돌했다.
쿵-
“어, 이 힘!?”
“이건 또 뭐야!?”
비토와 우론 대공이 충돌 순간 느껴지는 반발력에 깜짝 놀라는 순간.
따아아아악-
특급 헌터의 딱밤이 비토 비제우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
모든 게 멈춘듯한 찰나의 순간.
비토 비제우는 머릿속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를 따라 감각이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광장 시장에 모여든 수천명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 거대한 도시에 가득한 사람들의 숨소리 하나까지 들려왔다!
끝도 없이 확장되는 감각으로 바람의 색이 보이고 빛의 소리가 들렸다!
후, 하-
경악한 비토 비제우는 자신도 모르게 비전의 호흡법을 펼쳤다.
그리고 벼락 치듯 깨달았다.
들숨과 날숨.
이 가벼운 호흡에서 느껴지는 감각!
자신이 호흡하는 순간 하늘과 땅이, 천지 만물이 같이 호흡하고 있었다!
“……!”
이 순간 비토 비제우는 자신도 모르게 휘청였다.
하늘의 시선이 땅의 맥동이 느껴졌다!
진정한 마스터까지 마지막 한 걸음을 붙잡고 있던 족쇄!
너무나 간단한 호흡법에 담긴 큰 뜻!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득한 비전이 잡힐 듯이 아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순간 바로 짚이는 게 있었다.
기이한 힘을 담은 채 날아오던 딱밤!
벼락같이 몸을 돌리자 푸르스름한 꼬맹이의 깜짝 놀란 얼굴이 보였다.
“으앗! 정말로 하늘이었는데도 멀쩡하잖아! 차력은 진짜였어!”
그리고 딱밤 자세를 잡은 손이 보였다.
‘방법은 알 수 없지만, 저 딱밤이 원인이다!’
비토 비제우는 직감했다!
자신은 호흡법에 담긴 비전에 닿을락 말락 하는 상태!
한 번 더 딱밤을 맞으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진정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할배 도망쳐야 한다니까!”
[멈춰! 그 딱밤 맞으면 안 돼요!]
“어디로? 어디로 도망쳐야지!?”
“거기 움직이지 마라! 신원 확인만 하고 보내 주겠다!”
사방에서 다급한 외침이 쏟아졌지만, 비토 비제우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비제우 검공가 천 년의 비원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리라!
비토 비제우는 눈앞의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온몸과 마음, 진심을 다해 고개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방금 그 딱밤 한 번 더 날려 주십시오!”
진심에는 진심으로!
특급 헌터는 주저하지 않고 최대 출력 딱밤을 날렸다.
“하늘을 잇는다!”
따아아아악-!
마른 장작 쪼개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비토 비제우, 전대의 검공은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빛을 봤다!
마치 나무가 자라나듯 무한한 어둠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거대한 빛!
이 빛을 보는 순간 호흡법에 담긴 아득한 비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가슴에 쌓이고 쌓인 모든 의문이 단숨에 풀렸다!
-초대 로잔 대공의 ‘책’에 그분의 행적이 샅샅이 기록됐으나 ‘이름’은 적히지 않은 까닭.
-열국의 지배자 하이브리온 가문이 그분이 돌아오는 약속의 날을 숨긴 이유.
-대대로 비제우 검공가의 가주가 대륙을 헤맨 진정한 목적.
-천공탑의 위치를 가르쳐 준 험상궂은 수도승의 정체.
-자신과 소니아가 이곳에 바나항에 오게 된 인과.
……
비토 비제우, 전대의 검공은 운명의 시곗바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째깍, 째깍-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수많은 사건이 시계 톱니처럼 맞물려 마침내 마침 멈춰 섰던 시곗바늘이 돌아간다!
‘하늘의 인과란 이 얼마나 놀랍단 말인가!’
비토 비제우는 자신 앞에 서 있는 푸르게 빛나는 아이를 향해 미소 지었다.
“마침내…….”
그러나 입을 여는 순간 가지를 뻗어 나가던 거대한 빛은 꺼지듯 사라지고.
무한한 어둠, 무명(無明)이 비토 비제우의 의식을 삼켜 버렸다.
스스로 밝힌 빛이 아니기에 여기까지였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과 깨달음을 전하는 수인.
그 힘으로 찰나의 순간 답을 엿본 비토 비제우는 허수아비처럼 픽-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