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25화>
짤랑-
허공을 날아 빈 깡통에 떨어진 동전 하나.
이걸로 깡통 안에 담긴 물건은 두 개가 됐다.
방금 날아온 동전 하나, 꼬맹이가 주고 간 구슬 하나.
“…….”
우론 대공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 맑고 푸른 여름 하늘.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순간 지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공 작위를 받고, 우론 공국을 영지로 받으면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대박이 터졌다고 좋아하던 자신을 두들겨 패서라도 말리고 싶었다!
‘망할 우론 공국! 빌어먹을 우론 대공!’
폭풍해의 해적, 주변 왕국들의 견제.
사막의 도시 국가와의 분쟁.
마경에서 흘러나온 마수와 몬스터!
……
천 길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듯 빡세게 구르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간신히 사막 도시 국가와의 해전에서 승리하고 막대한 배상금에 한 숨돌리나 싶었는데.
멍청한 왕국 놈들 때문에 사막의 도시 국가들에 경제제재를 맞았다!
그 직후. 대륙 남부의 초거대 마경 판타나우 대습지에서 웨이브까지 일어났다!
대습지를 지키는 방벽, 제국에서 보내 주던 지원은 뚝 끊기고 공국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이 위기를 마르지 않는 돈줄, 폭풍해 사략 선단을 털어서 넘기려 했다!
그러나 폭풍해 사략 선단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아무리 폭풍해를 뒤져도 자잘한 놈들만 나올 뿐 제대로 된 대형 갤리선 한 척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공국이 말라 죽게 된 상황!
머리를 쥐어짜 두 가지 해결 방법을 찾았다.
첫 번째. 제국 오대공에게 사기당해서 맡게 된 대공 직위를 반납하는 것!
다른 대륙 출신인 자신을 대륙 십존이라고 추켜세우더니, 갑자기 대공 위까지 내렸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말이 좋아 대공이지, 우론 공국은 밑 빠진 독이었다!
대공에 오른 이후 쉴 새 없이 마수와 몬스터, 폭풍해의 해적, 사막 왕국과 연맹과 싸우고 빵구 난 재정을 때워야 했다!
적당히 편하게 살겠다고 타대륙까지 왔는데, 원대륙에 있을 때보다 더 빡세게 사는 게 말이 되는가!?
바로 자신에게 사기를 친 제국 오대공의 수장, 로잔 대법관에게 서신을 보냈다.
길고 장황한 편지의 핵심은 간단했다.
‘우론 대공 못해 먹겠다! 대공 작위 반납할게! 제국이 알아서 해라!’
그리고 바로 답신이 돌아왔다.
‘대공위 반납은 제국 의회의 2/3 찬성 의결. 그리고 다섯 대공의 만장일치 표결이 필요하다. 지금 오대공 중 일인, 검공이 자리를 비운 봐. 대공위 반납은 의결에 부칠 수 없다. 검공이 돌아오는 대로 검토해서 답신하겠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제국 오대공 중 검의 대공, 비제우 검공은 벌써 몇 년째 행방불명인 상황!
검공이 돌아오면 검토하겠다는 말은 안 한다는 말과 같았다!
‘아니, 줄 때는 넷이서 줬으면서 돌려받을 때는 한 명이 없어서 안 된다고!?’
당장이라도 로잔 대공을 찾아가 항의하고 싶었으나, 제국에 도착하기 전에 공국이 작살나게 생겼다!
결국,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다시 한 번 전리품을 얻어서 한 방에 위기를 벗어나는 것!
무엇을 전리품으로 노릴지도 바로 정해졌다.
이미 한번 대박을 터트렸던 사자심검(獅子心劍)!
사자심검은 옛 제국 시대, 사막에 나타난 ‘샤’가 사막 부족에게 심법을 전수했던 검이다!
수백 개의 지파로 나뉜 사막 부족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정통성의 상징!
그런 사자심검을 경매에 올리면 상상을 초월한 거액을 받을 수 있다!
저번 대박은 우론 공국이라는 밑 빠진 독으로 모조리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엔 반반이다!’
반으로 공국의 급한 불을 끈 후, 남은 반을 가지고 그대로 도망친다!
우론 대공은 인파가 가득한 시장을 돌아보며 맹세했다.
이 화려한 도시에 가득한 부!
이 부의 일부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사자심검만 찾으면 극한직업 대공은 당장 그만두고 유유자적 맛있는 걸 먹으며 한량처럼 놀러 다니리라!
그러나 몰래 공국을 빠져나와 바나항까지 온 뱃삯이 마지막이다.
지금 자신의 주머니 안에는 오늘 밤 숙박비는커녕 저녁 먹을 돈도 없었다.
게다가 평소처럼 아무나 쥐어박고 다니다 신분을 들키면 사자심검을 찾는 계획은 끝장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론 대공은 심기일전했다.
사자심검이 있는 마하바나까지 갈 모래 배 뱃삯을 벌기 위해서!
오늘 저녁과 숙박비, 그리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
핑그르르르-
우론 대공은 최선을 다해 쓰레기통 뚜껑을 돌리며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제가 이제 곧 엄청난 기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거기 멋진 꼬마 손님! 잠시만 보고 가세요!”
그러나 신분을 감춘 우론 대공이 아무리 뚜껑을 열심히 돌리고 크게 소리쳐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길거리 공연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
우론 대공 옆에는 길거리 공연 먹이사슬의 최강자.
입으로 불을 뿜고 이마로 판석을 깨는 차력 약장수 조손(祖孫)이 있었으니까.
* * *
짤랑, 짤랑, 짤랑-
쉴 새 없이 울리는 동전 소리.
우와, 우와아아-
손을 뻗어 몸을 만지는 사람들의 탄성.
깡통을 들고 사람들 앞을 걷고 있는 비토 비제우.
현(現) 차력사, 전(前) 전대 비제우 검공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뭐지? 지금 난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이때 깡통에서 울려 퍼지는 묵직한 소리.
툭-
이 순간 검공가의 후계자, 소니아 비제우의 한 톤 높은 환호성이 들려왔다.
“금화! 와! 이런 큰손을 이렇게 만나다니! 감사합니다! 할배! 큰손께 얼른 인사드려!”
“……감사합니다.”
비토 비제우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쓰으윽-
검은 실크 장갑을 낀 가늘고 긴 손이 비토의 가슴을 훑었다!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귀부인이 탁- 부채를 흔들자, 하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비토의 귓가에 속삭였다.
“차력사. 주인님이 맘에 드셨다. 얼마면 되냐?”
비토 비제우는 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챘다.
밤 시중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순간 배 속 깊은 곳에서 열기가 꿈틀거렸다.
‘제국 오대공의 일원! 검공 비제우 가문의 전대 가주에게 밤 시중을 들라고!?’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몇 푼 동전에 머리를 숙이는 것도 참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후, 하-
비토 비제우는 비전의 호흡으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뒤엎으려는 순간.
꾹-
팔을 당기는 손길이 느껴지고, 다급한 외침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손님! 다음 차력을 보여 줘야 할 때가 돼서!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후후흣-.”
의미심장한 웃음과 찡긋 눈으로 신호를 보내는 소니아 비제우.
하녀가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검은 베일의 귀부인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핑그르르, 툭-
붉은 황금, 일반 금화 10배 가치의 적금화(赤金貨)가 깡통에 들어왔다!
그리고 귀부인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을 보내겠다.”
“앗! 감사! 감사합니다!”
소니아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는 동시에, 검은 베일의 귀부인은 비토의 상체를 핥듯이 바라보며 몸을 돌렸다.
비토는 이 모든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을 보낸다고? 감사하다고!?’
“지금 설마……?”
입을 여는 순간 소니아 비제우는 비토 비제우를 끌고 공연장 중앙으로 이동하며 말을 쏟아 냈다.
“봤지? 봤지! 할배! 내 말대로 대박이 터졌잖아! 히히힛- 지금까지 모은 돈만으로도 숙박비, 모래 배 뱃삯 충분해!”
비토는 반색해서 말했다.
“그럼 차력은 이제 그만…….”
“무슨 말이야!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중간에 무슨 사고가 터질 줄 알고! 지금 우리한테 돈은 생명줄이야! 많을수록 좋다고!”
소니아는 재빨리 할아버지의 말을 끊고 주위를 눈짓했다.
“우리가 마하바나까지 갈 뱃삯만 벌자고,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나온 거 아니잖아!? 수배까지 걸렸는데, 이렇게 계속 공연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이번 한 번에 끝을 봐야 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가문의 명예가 있는데…….”
“할배! 가문의 명예가 중요해? 가문의 무공이 중요해!? 천공탑에 올라 그분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니까! 이제 고지가 눈앞이야! 난 입 털 테니까! 할배는 옆에서 계속 차력으로 바람 잡아줘!”
말이 끝나는 순간 손에 쥐어지는 쇠지팡이.
“…….”
“이제 금방 끝나니까. 화끈하게 끝내고. 오늘 저녁에는 할배가 좋아하는 맥주도 먹자. 알겠지?”
“……그럼 아까 적금화를 던져 준 귀부인은 만나지 않는…….”
소니아는 벌떡 몸을 일으켜 주위를 향해 외쳤다.
“자, 여러분! 그럼 마지막 차력을 보여드리기 전에! 이 신비의 비약을 직접 사용하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 비약을 체험해 보실 지원자 세 분을 받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순간 환호성이 터지고 인파 곳곳에서 사람들이 손을 들고 외쳤다.
“여기요!”
“내가 써 보겠다!”
“멋지고 잘생긴 누나! 나, 나나나! 나 뽑아 주세요!”
……
“거기 코 큰 아저씨! 그 옆에 피부 하얀 청년! 그리고…… 아, 맨 앞에 양 머리 터번 쓴 꼬맹이……!”
“나 뽑혔어! 얼른 갔다 올게!”
소니아 비제우에게 지목된 세 사람이 뛰어나와 신비의 비약을 바를 때.
하아앗-
비토 비제우, 검공가의 전대 가주는 기합을 지르고 차력을 보여 주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든 일은 비제우 검공가의 숙원에서 시작됐다.
아득한 과거, 마도 제국이 멸망한 암흑기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역사의 전면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분은 놀라운 위업을 달성하고 오대공의 다섯 선조에게 하나의 마나 심법을 전해 주셨다.
‘부자 되는 마나 심법.’
이 장난 같은 이름의 마나 심법을 완성하는 게 비제우 검공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숙원이었다.
이 숙원을 이루기 위해 검공가의 가주들은 대를 이어 대륙 전체를 뒤지고 다녔다.
삭풍의 황야, 판타나우 대습지, 카이만 제국, 광활한 사막과 폭풍해까지!
당대의 비제우 검공마저 이 탐색에서 실종된 상황,
다음 대의 비제우 검공, 검공가의 후계자 소니아 비제우는 한가지 계획을 세워 간만에 검공가로 돌아온 자신에게 말했다.
‘할배! 흩어진 단서를 찾는다는 가문의 접근 방법은 잘못됐어!’
‘부족한 퍼즐, 아니 전부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퍼즐로는 절대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없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흩어진 단서, 퍼즐 조각을 찾는 게 아니야!’
‘퍼즐이 되기 전의 큰 그림! 마나 심법을 전수해 주신 그분을 찾아야 해!’
‘그게 가능하다고?’
자신의 질문에 이제 갓 10대가 된 소니아 비제우는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천공탑을 이용하는 거야!’
그리고 소니아 비제우는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마도 제국의 마도 황제 폐하께서 만드신 천공탑은 세계의 나무를 가로질러 뻗어 있다.
천공탑에 들어가 인과가 이어진 세계의 나무로 넘어가면, 오대공에게 마나 심법을 전한 ‘그분’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그분을 직접 만나기만 하면 검공가 천 년의 숙원은 단숨에 해결된다!
평생을 마나 심법 완성에 바친 비토 비제우는 소니아 비제우의 계획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리고 모든 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