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20화>
“……할아버지, 10대 아이? 지금 노인하고 아이가 천 명이 넘는 정예 병력을 뚫고 천공탑 열쇠를 훔쳐 갔다는 거야? 그것도 아무도 죽이지 않고……?”
선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저도 믿기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바람 사막 경주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우승 상품이 사라져서. 지금 바람 사막, 강철 사막, 중앙 사막…… 모든 사막의 부족들이 난리가 났어요! 선장님도 조심하세요! 지금 전부 독이 잔뜩 올라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관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순간 다시 한 번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빨리 내려 오세요! 시장님 부두로 오고 계신답니다!”
“뭐!? 아니 갑자기 무슨!”
깜짝 놀란 관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검문 중이던 다우선들이 돛을 펼치고 부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이제 진짜 가봐야겠습니다!”
사색이 된 관리는 다우선을 타고 부두로 질주했다.
이때 천문석은 쏟아져 들어온 정보를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천공탑 열쇠 도난 사건.
-범인은 할아버지와 10대 아이.
-바람 사막 경주가 무산될 위기.
-사막 부족들이 잔뜩 독이 오르고.
-지얀데에서 마하바나까지 발칵 뒤집혔다.
배경 지식이 부족해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천공탑의 열쇠가 사라져 사막 부족이 분노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마하바나에서 술을 납품하면 바로 열사의 사막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관문 도시 마하바나까지 가는 데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혹시 마하바나까지 가는 데 문제가 있을까요?”
“이곳 항구 도시는 자유 무역도시라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문제는 마하바나까지 가는 길인데…….”
선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마하바나까지는 2, 3일 거리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선원과 호위 무사, 바람잡이를 좀 더 모아서.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길로 항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도시를 안내할 선원을 보내겠습니다. 전 이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갑판장! 항해장! 긴급상황이다!”
선장이 빠르게 대답하고 달려갔다.
특급 헌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외쳤다.
“알바! 저 위에 천공탑 있나 봐! 내 천공탑이랑 비슷할까!? 우리도 천공탑 가는 거야!?”
“……내 천공탑?”
“내 집 위에 천공탑 있잖아! 장민이 철거하고 남은 거!”
“아, 그 박스 성탑!”
그러고 보니 옥탑방 거실, 텐트 위에 놓인 박스 성탑의 이름도 천공탑이었다!
특급 헌터의 천공탑.
사막에 있는 천공탑.
두 탑은 이름이 같았다!
‘이런 놀라운 우연이라니!’
피식 웃던 천문석은 흠칫 놀랐다.
‘뭐지? 이 익숙한 기시감은!?’
삼겹살 구워 먹다가 동대문 게이트가 터진 이래, 수많은 사건·사고에서 굴렀다.
어느새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패턴에 익숙해졌다!
자신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관리가 전한 사건.
‘천공탑 열쇠 도난 사건!’
감이 왔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 사건에 얽혀 개고생할 거라는 감이!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천공탑 안 가! 아니, 다른데 아무데도 안 간다! 준비 끝나는 데로 바로 마하바나로 출발하고! 도착해서도 아카린 안 일어나면, 강제로 깨워서 술통 납품하고. 바로 열사의 사막 거쳐 집에 돌아갈 거야!”
“뭐!?”
특급 헌터가 경악하는 순간.
천문석은 단호히 선언했다.
“우리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 선실에 콕 박혀 밖으로 안 나올 거다!”
“앗! 안 돼! 선실에 있으면 안 돼! 우리 적염성에서 엄청 재밌었잖아! 우리 중간에 천공탑도 들르고. 모래낚시하고 모래 썰매도 타자! 응? 응응!? 엄청 재밌을 거야!”
“안 돼! 안 돼! 안 돼!”
천문석이 단호히 고개를 저을 때.
고속갤리선은 에메랄드 벽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 접촉했다.
* * *
“……!”
천문석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고속갤리선은 거꾸로 흐르는 폭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허공이 머리 위에 있고, 수직으로 선 에메랄드빛 바다가 배 아래 있는 놀라운 광경!
고속갤리선은 마치 거미가 벽을 타고 올라가듯 직각으로 꺾인 폭포 위를 항해했다.
아무 이질감도 없이 중력이 90도 반전됐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아무도 몰라요. 사람들이 아는 건 ‘에메랄드 벽’이 ‘옛 제국’의 유산이라는 것뿐이에요.”
“옛 제국?”
“넵! 아주아주 오래전에 지금 제국 수백 배 크기의 제국이 있었데요. 그때 마도왕이랑 어떤 사람이 내기했는데. 그 사람이 이 에메랄드 벽을 만들었데요.”
설명을 끝낸 소년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내를 맡은 견습 선원 로이입니다! 이 도시 출신이라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돼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때 90도로 일어선 풍경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직각으로 일어선 하늘과 수면이 다시 수평이 되고.
고속갤리선은 어느새 절벽 위에 펼쳐진 호수를 항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구 도시 바나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바다에서 본 항구는 이 거대한 도시의 1할도 되지 않았다.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높아지는 분지에 새하얀 벽돌로 만든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건물 사이사이에 넓은 도로와 끝이 보이진 않는 수로가 놓여 있었다.
도로에는 수레, 마차, 인파가 가득하고, 수로에는 짐을 가득 실은 다우선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로와 수로 옆에는 녹색 잎이 가득한 가로수가 길게 이어지고, 곳곳에 넓은 광장과 푸른 공원이 자리했다.
그리고 멀리 분지 끝.
마치 벽처럼 높게 자라난 방풍림과 그 앞에 펼쳐진 광활한 농경지와 목초지가 보였다.
어디를 봐도 황량한 사막의 모습은 없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사람과 식물이 가득한 생명력 넘치는 활기찬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이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다!
거꾸로 흐르는 폭포를 타고 바닷물이 이 위 호수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 호수는 수로를 타고 저 멀리 농경지와 연결됐다.
“농경지에 바닷물이 흘러들어도 괜찮은 거야!?”
견습 선원 로이는 바로 통을 던져 호수에서 물을 퍼 올렸다.
“살짝 맛만 보세요.”
물을 맛본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바닷물은 민물로 변해 있었다!
“에메랄드 벽을 올라온 바닷물은 민물로 변해요.”
“바닷물에 담긴 소금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아아아-
호숫가에 자리한 탑에서 새하얀 결정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바닷물에서 분리된 소금이다!
“설마 저것도?”
“네 옛 제국에서 만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견습 선원은 고속갤리선이 움직이는 동쪽을 가리키며 자랑스레 말했다.
“저기 사막 항해 작업장은 옛 제국에서 만든 게 아니에요. 우리 대륙 상단에서 자금을 투자해서 만들었어요!”
문득 고개를 돌리니 길게 뻗은 수로 너머 직사각형의 넓은 호수가 보였다.
이 넓은 호수에 수십 척의 배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이 배를 거대한 기중기가 들어 올려 줄줄이 늘어선 선거(船渠) 위로 옮겼다.
육중한 나무와 돌로 만든 선거 위에 놓인 배에는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있었다.
고속갤리선은 금세 직사각형의 호수에 가까워졌고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였다.
커다란 붓과 양철통을 든 사람들이 선체와 돛에 달라붙어 기이한 문양을 그려 넣고 있었다!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주술 문양, 사막 항해!
‘저게 사막을 항해하기 위한 주술 문양이구나!’
천문석이 직감하는 순간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출항한다! 모두 위치 확인!]
[출항한다! 모두 위치 확인!]
[출항한다! 모두 위치 확인!]
세 번 외침이 반복되고 선거에 놓인 다우선의 돛이 부풀어 올랐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깜짝 놀라 자세히 바라보니 돛 뒤에 선 사람이 보였다.
새하얀 천을 머리에 두르고 깃털이 박힌 지팡이를 휘두르는 사람!
깃털 지팡이가 움직일 때마다.
파앙, 파아앙-
돛이 부풀어 올랐다!
‘저 사람이 바람잡이구나!’
직감하는 순간 다우선의 돛 세 개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쿵, 쿵, 쿵-
선거 앞, 배를 고정한 육중한 나무기둥이 쓰러졌다.
그르르르륵-
다우선은 선거에서 미끄러져 새하얀 모래 위로 던져졌다!
쏴아아아-
새하얀 모래가 파도처럼 치솟는 순간.
터질 듯 부푼 돛과 선체에선 주술 문양이 푸른빛을 발하고.
갑판 위 선원들은 돛 줄을 잡고 커다란 장대로 모래를 찔러 균형을 잡았다.
요동치던 다우선은 곧 안정되고 점차 속도를 높여 새하얀 모래 위를 항해했다.
동쪽으로 쭉 뻗은 새하얀 모래 끝,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이 사막을 수십 척의 배들이 항해하고 있었다!
쏴아, 쏴아아아-
새하얀 모래가 파도처럼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푸른빛이 담긴 돛을 펼친 수많은 배가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 위를 달리는 건 경이 그 자체였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진정으로 이해했다.
주술 문양, 바람잡이.
흐르는 모래의 바다.
사막 항해.
주술 문양이 그려진 배를 타고 바람잡이가 부른 바람의 힘으로 흐르는 모래의 바다를 항해한다.
사막 항해는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이 거대한 고속갤리선으로 저 새하얀 모래의 바다 위를 항해하는 거다!
쿵쿵, 쿵쿵쿵-
이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제주도 김옥분 여사님 집에서 바다까지 이어진 농수로 위로 물썰매를 타고 미끄러질 때와 같다!
이런 가슴 뛰는 광경을 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시선을 돌려 넓게 펼쳐진 도시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이 도시에 또 어떤 가슴 뛰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특급…….”
천문석이 입을 여는 순간.
멍하니 사막으로 미끄러지는 배를 보던 특급 헌터가 번쩍 정신을 차리고 말을 쏟아 냈다.
“으아, 으아아! 배가 모래 위를 달리잖아! 엄청, 엄청 멋져! 알바! 설마 이 배도 저렇게 사막을 달리는 거야!? 그렇지!? 맞지!? 우리도 저렇게 사막을 막막 달리는 거지!?”
천문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으앗, 으아앗! 엄청 재밌을 거 같아! 카카카캌- 경석이형, 깡통형, 철수형 엄청 부러워할 거야! 퐁퐁이! 우리 배 타고 사막을 달릴 거야! 카카카캌-.”
특급 헌터는 퐁퐁이의 지느러미를 잡고 빙글빙글 돌며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저거! 뭐야!?”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거야?”
“폭포를 거슬러 오르더니…… 이제는 사막을 달리는 배라고? 하, 하하하-.”
최설과 진교은, 허준은 홀린 듯이 사막으로 미끄러지는 배들을 바라봤고.
한호석 교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쉬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중력 역전! 물도 아닌 모래에서 배가 바람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돛이 찢어지고 선체가 바스러지는 게 먼저야!?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모래의 바다를 달리는 수많은 배들!
동료 모두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 경이로운 광경에 홀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할 일은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짝- 친구들!”
천문석은 박수를 쳐서 동료들의 시선을 모으고 씨익 웃었다.
“우리 출발할 때까지 시간 있는데…… 어때? 이 도시 돌아볼까?”
어느새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천공탑 열쇠 분실 사건’을 피해서 선실에 콕 박혀 있겠다는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연했다.
사막을 달리는 배라는 경이로운 광경을 봤다.
이 거대한 도시에 또 어떤 신비하고, 경이로운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 거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천문석만이 아니었다.
“나, 나나! 완전 찬성이야!”
언제나 그렇듯 특급 헌터가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외치고.
최설, 진교은, 허준, 한호석 교수가 뒤이어 번쩍 손을 들었다.
이 순간 한발 물러서 있던 견습 선원 로이가 외쳤다.
“폭풍해의 보석! 항구 도시 바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