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19화>
촤아아아-
항구 도시에 접근한 고속갤리선은 부드럽게 선회해 부두 앞바다를 지나갔다.
바다와 접한 부두에는 수백척의 배가 오가고, 층층이 계단을 이룬 바위 언덕에는 수많은 건물과 계단, 비탈길이 얽혀 있었다.
이 모든 곳에 완전히 양식이 다른 복장의 사람들, 수인족, 이종족이 있었다.
갑옷을 입고 방패를 멘 용병과 무복을 입고 검을 든 무인이 교차하고.
수수한 복장의 상인과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른 상인이 흥정하고 있다.
활짝 열린 창문에 드리워진 포렴이 바람이 흔들릴 때 이국적인 노래와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후후후훗-
바람에 실려 온 웃음소리와 향기가 오감을 자극하는 순간.
이 모습을 보던 갑판 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난간에 바짝 붙어 몸을 내밀었다.
“…….”
“…….”
갑판에 자리한 모두는 홀린 듯 화려한 항구 도시 바나를 바라봤다.
천문석도 마찬가지로 멍하니 항구 도시 바나를 바라봤다.
보기만 해도 감이 왔다.
사막이란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실제는 완전히 달랐다!
항구 도시 바나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거대한 상업 도시였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항구에 정박한 수많은 배.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상인, 용병, 여행자, 사람들이 뒤섞인 거리!
엄청난 양의 물자가 실리고 내려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 거대한 도시에 흐르는 엄청난 부와 활기가 느껴졌다!
“……사막이라더니…… 어디에 사막이 있다는 거야?”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항만 구역입니다. 바나항의 도심지와 사막은 저 바위 언덕 위에 있습니다.”
“선장님. 혹시 이곳 출신이신가요?”
천문석이 반색해서 묻자, 선장은 고개를 저으며 언덕 위를 가리켰다.
“이곳 바나 출신은 아니고 북쪽 바람 사막에서 모래 낚시배를 몰았습니다.”
“모래 낚시배요?”
선장은 고속갤리선 옆을 항해하는 작은 배를 가리켰다.
“저기 삼각돛이 세 개인 다우선 보이시죠? 제가 몰던 모래 배가 저런 다우선이었습니다. 바람 사막은 용권풍이 주기적으로 다니는 길이 있는데. 그 항로를 천천히 움직이며 용권풍을 찾는 거죠. 그리고 용권풍을 찾는 순간 그 뒤를 따라 달리는 겁니다!”
선장은 입으로 바람 소리를 내고 손으로 용권풍을 따라 달리는 시늉을 하며 설명을 이었다.
“후우웅- 용권풍이 모래를 헤집고 지나가면, 모래 가물치, 모래 상어, 모래 날치 같은 온갖 사막 생물이 용권풍에 휩쓸려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그 위로 모래 배를 몰면, 작살잡이들이 뜨겁게 달궈진 작살을 던져 용권풍에 던져진 사막 생물을 잡는 겁니다.”
“보통 한번 용권풍이 지나가면 모래 배 3, 40척이 동시에 달리며 충돌하고 작살을 던지고 난장판이 되죠.”
하하하-
선장은 어쩐지 그리운 표정으로 웃었다.
“바나 항구도 벌써 3년 만이군요. 어쩌면 목적지로 가면서 모래낚시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장의 이야기는 이해됐으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뭔 소리야?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모래 위를 달리고. 작살을 던져 모래 상어, 모래 가물치를 잡는다고!?’
“……그러니까 지금 저 배들이 모래 위를 달린다는 이야긴가요?”
천문석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우선을 가리키자 선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에 처음 오신 분들은 직접 보기 전까진 믿지 못하시더군요. 저기 거꾸로 흐르는 폭포. 에메랄드 벽을 오르면 직접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에메랄드 벽?’
문득 고개를 돌리자 에메랄드색 물이 벽처럼 일어선 게 보였다.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멀리서 봤던 거꾸로 흐른다는 폭포다!
어느새 폭포가 100여 미터 앞으로 다가왔다!
“저 위로 올라가면 사막 항해 작업을 하는 선거가 근처에 있습니다. 바로 올라갈까요?”
“네. 바로 올라가죠!”
“바로 에메랄드 벽을 올라간다!”
선장이 명령하는 순간 고속갤리선은 주위 배를 지나쳐 천천히 가속했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와 나란히 서서 가까워지는 폭포를 봤다.
거대한 에메랄드의 벽이 서 있는 듯한 장관!
그러나 이 에메랄드빛 폭포에서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도 하얀 물거품과 흩날리는 물방울도 없었다!
폭포는 ‘에메랄드 벽’이란 말 그대로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에메랄드의 벽 위로 수많은 배가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고 내려 오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장관이었다!
최설, 진교은, 허준, 한호석 교수와 40인의 용역 헌터 모두는 거꾸로 흐르는 폭포, 에메랄드의 벽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천문석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원래 이곳에선 저게 평범한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저도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아니, 이 도시의 사람들도 모두 신기해합니다. 저 에메랄드 벽은 ‘옛 제국’에서 만든 기적이거든요.”
“옛 제국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손 망원경을 만들고 크게 외쳤다.
“알바! 저기 거꾸로 폭포 뒤에 누가 커다랗게 글자 써놨는데!?”
‘글자?’
눈에 내력을 모으자, 에메랄드 벽 뒤로 새하얀 암반 위에 페인트로 칠한 읽을 수 없는 문자가 보였다.
“너 저거 읽을 수 있다고?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뭐라고 쓰여 있는데? 혹시 폭포 만든 사람 이름 적혀 있어!?”
“이름은 아니고 뭐라고 적혔냐면…….’내가 이겼다! 마도 공학의 완전한 승리다! 멍청한 마법사들. 크캬카컄-!’라고 써 있는데!? 마도 공학이 뭐지?”
“……마도 공학? 잠깐, 이거 왠지 말투가 익숙한데!?”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거기 벽에 접근 중인 배들 멈춰라!]
길고 날렵한 선체와 바람에 부푼 삼각돛 셋.
소용돌이 깃발을 올린 다우선 십여 척이 폭포로 접근하는 배들을 멈춰 세웠다.
다우선 갑판에는 깐깐해 보이는 관리와 창을 든 경비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바나항의 항구 경비대가 탄 다우선입니다.”
선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갤리선 멈추라니까! 잠시 검문을 하겠다!]
“갑판장!”
선장이 외치는 순간.
갑판장이 다우선이 다가오는 선측으로 달려가 천을 펼쳤다.
“대륙 상단의 배입니다!”
“어!? 아니! 왜 깃발도 안 다시고!? 죄송합니다. 긴급 사태라 잠시만 확인 좀 하겠습니다!”
관리의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선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난간 너머로 머리를 내밀었다.
“이게 누구야! 야, 나야 나!”
선장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젊은 관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선장님!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손을 흔든 선장은 천문석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저 관리 이 도시 시장 가문의 일원입니다. 검문에 동원된 게 이상하네요.”
“네. 괜찮습니다.”
선장은 줄사다리를 던졌다.
“우선 올라와서 이야기하자!”
관리는 단숨에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하얀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청년이 웃으며 선장에게 다가왔다.
“아니, 여기는 웬일이세요! 상단 본부로 영전해서 가셨다더니! 이 갤리선은 또 뭡니까? 거의 2년 만에 돌아오신 거죠!?”
피식 웃은 선장은 검문 중인 배를 눈짓하며 농담하듯 물었다.
“3년 만이다. 그런데 시청이 아니라 여기서 뭐 하냐? 시장님 눈 밖에라도 난 거야?”
시장의 일족이 직접 검문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대륙 상단의 배를 확인하겠다는 것도 평소와 달랐다.
항구 도시 바나에는 대륙 상단의 엄청난 자금이 투자됐다.
대륙 상단의 배라고 밝히고 깃발까지 보였는데 확인하겠다는 건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말이죠…….”
말꼬리를 끌며 주위를 살피는 관리의 시선이 천문석과 그 일행에게서 멈췄다.
“이분들은 누구신지?”
“상단주님의 손님이시다.”
“네!? 상단주님이요! 이런 실례를 죄송합니다!”
깜짝 놀란 관리가 거듭 허리 숙여 사과했다.
“괜찮아. 이분들 이 정도로 화내실 분들 아니다.”
선장은 천문석에게 눈짓하고 슬쩍 끼어들어 관리를 일으켰다.
“그보다 뭔 일인지 말해 봐. 갑자기 무슨 검문이야.”
“지금 지얀데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 때문에 은밀히 수색 중입니다.”
“지얀데? 바람 사막 지얀데? 거기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왜 여기서 검문을 해?”
선장이 어이없어하자, 관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난당한 물건이 물건인지라…… 지얀데에서 관문 도시 마하바나까지 그 사이 모든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고 보시면 됩니다.”
“뭐!?”
선장은 깜짝 놀랐다.
바람 사막의 지얀데에서 관문 도시 마하바나까지면 모래 배로도 한 달은 걸릴 거리다!
이 말은 어지간한 왕국 10개는 들어갈 범위가 난리가 났다는 말!
“아니, 뭘 도난당한 거야? 설마 사자심검(獅子心劍)을 또 뺏긴 거야?”
“아유- 그 말은 하지도 마세요. 우론 대공 그 짠돌이가 전리품으로 뺏어간 거 도로 사 온다고……! 사자심검은 아예 …… 숨겨놔서 이제 전쟁터에 들고 나가지도 못해요.”
“그럼 도대체 뭘 도난당했는데 이 난리야?”
“그 열쇠 있잖습니까. 그 열쇠!”
관리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레 말했다.
‘그 열쇠!?’
심상찮은 분위기에 천문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고 선장은 바로 질문했다.
“열쇠? 무슨 열쇠를 말하는 거야?”
관리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탑에 들어가는 문을 여는 열쇠 있잖아요!”
‘하늘, 탑, 열쇠?’
천문석이 머리를 굴리는 순간.
바람 사막 출신 선장은 바로 알아챘다!
“천공탑 열쇠!?”
“조용! 그거 지금 비밀이에요!”
관리의 말에 선장은 목소리를 낮춰 다시 확인했다!
“천공탑 열쇠를 어떻게 도둑맞아!? 그거 지얀데 폭포 위, 높은 성에 보관했잖아!? 아니, 그보다 어떤 미친놈이 그걸 훔쳐 가!? 사막 부족 전체가 뒤집힐 텐데!”
“높은 성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와.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챙겨서. 술통에 들어가 폭포를 타고 내려 와 지하수로로 도망쳤습니다.”
“높은 성을 뚫었다고? 거기 지키는 무사, 주술사가 천명은 될 텐데! 압둘라! 아니, 성주 일족은 뭘 하고!?”
“……모조리 제압당했어요. 게다가 놀랍게도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이 순간 선장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압도적 열세인 해전에서 아군을 무사히 탈출시키고 사자심검까지 전리품으로 챙겨 간 강자!
우론 대공!
“설마, 우론 대공! 우론 대공이 또 몰래 스며들어온 거야!?”
“아뇨. 우론 대공은 지금 공국이 경제제재 맞아서 딴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습니다. 지금쯤 빚 받으러 다니고 있을 겁니다.”
“경제제재? 빚? 우론 대공이 빚을 받으러 다닌다고!?”
“그게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어떻게 된 거냐면…….”
관리가 설명하려는 순간 다우선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내려 오셔야겠습니다! 시장님이 찾으십니다!”
“알았어! 지금 내려간다! 하여튼 지금 사막 일족 전부 날이 곤두섰으니까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전 이만 내려가보겠습니다!”
선장은 재빨리 관리의 소매를 잡고 확인했다.
“범인! 그래서 천공탑 열쇠 훔친 범인이 누군데?”
“조손(祖孫). 할아버지와 10대 중반의 아이. 검을 귀신같이 쓰는 두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