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18화>
천문석은 재빨리 쓰러지는 셋을 잡아 그늘에 눕혔다.
으으, 으으윽-
완전히 탈진해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원, 여량위, 데이몽 발도.
“알바! 내가 아저씨, 누나, 형 깨울까!? 하늘이을까!?”
여전히 쌩쌩한 특급 헌터는 딱밤 자세를 잡고 외쳤다.
“아냐. 우선 쉬게 하자. 그보다 저거 가져와라.”
다다닥-
번개같이 달려와 5관 금괴를 끌고 오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데이몽 발도의 손에 5관 금괴를 쥐여 줬다.
기절한 데이몽 발도가 반사적으로 금괴를 움켜쥐는 순간.
천문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와, 무공 전수 왜 이리 빡세냐!’
어쨌든 무공 전수가 일단락됐다.
무엇이든 첫걸음이 제일 어려운 법!
상생상극 수련의 첫걸음을 뗐으니 이제 이원과 여량위는 혼자서도 수련을 계속할 수 있다!
“알바! 바다 냄새나! 다 왔나 봐!”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배 주위를 뒤덮은 짙은 안개가 점차 흩어지고, 뱃머리의 붉은 안개 랜턴은 꺼질 듯 점멸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열사의 사막이다!’
직감하는 순간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환호했다!
“성공했다! 계획대로 열사의 사막에 도착하기 전에 일원공, 일기공을 전수했다!”
“특급 헌터도 성공했다! 구구국-! 미친 비둘기를 배웠다!”
카캬카카카-
카캬카카캌-
적염성을 떠난 지 3일째.
천문석과 특급 헌터, 일행을 태운 고속 갤리선은 안개길의 끝에 도착했다!
* * *
휘이이이잉-
뜨꺼운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안개 랜턴의 붉은빛은 수명이 다한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느껴졌다!
촤아아아, 끼룩끼룩-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가.
흩어지는 안개 틈의 맑은 바다가!
순간 훅- 올라오는 바다 냄새와 사방에서 느껴지는 개방감!
“돛을 펼칠 준비 한다!”
“장대 들고, 충돌에 대비해라!”
선원들은 능숙하게 움직이며 외쳤다.
“갑판에 손님 분들! 안개길에서 나올 때 혹시 충돌할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천문석, 특급 헌터.
최설, 허준, 진교은, 한호석 교수.
거기에 왕체, 최림, 김기철과 40인의 용역 헌터까지.
안개길을 이동하는 지난 이틀 동안 선실 밖으로 나오지 않은 모두가 갑판에 서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이렇게 개고생을 할 줄은……!”
“저 재수 없는 녀석…….”
“드디어 집에 돌아간다!”
“1년 동안 휴가다!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지!”
“하, 진짜 끝장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돌아오다니!”
왕체, 최림, 김기철과 용역 헌터들의 격앙된 외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최설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야,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용역 헌터 쟤들 뭔가 좀 이상한데……? 지구에 돌아온 것처럼 이야기하잖아?”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최설의 귓가에 대답했다.
“쟤들 안개 흩어지면 지구가 나오는 줄 알아.”
“뭐!?”
경악한 최설은 재빨리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야, 너! 왜 그런 구라를 쳤어!?”
“난 한 번도 바로 지구로 간다고 말 한 적 없어. 재들이 그냥 오해한 거야.”
천문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야, 재들 폭발하면 어떡하려고!?”
“걱정할 거 없어. 나한테 계획 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목소리.
최설은 반사적으로 천문석을 봤다가 흠칫 놀랐다.
천문석은 용역 헌터들을 바라보며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이 순간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개기는 순간 난장판에서 굴려 주마!’
최설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연이은 황당한 사건·사고에 천문석 부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깜빡 잊고 있었다!
무공과 생존 능력도 대단하지만, 천문석 부사장의 진가는 따로 있었다.
심리전과 군중 선동의 달인!
게다가 조금이라도 얽힌 사람 모두를 개고생시키는 그 거대한 불운!
최설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이야! 그러니까 이 안개 너머에 항구가 있다는 거지!?”
허준.
“……분명 경고만 해 주려는 거였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으으-.”
진교은.
“이상 던전이 이렇게 거대하다니! 아무리 …… 던전이라도 불가능해! 이건 게이트나 마찬가진대……!?”
한호석 교수.
“알바! 나 망루 좀 올라가면 안 돼!? 높은 데서 보고 싶은데!”
특급 헌터.
이 자리에 없는 기절한 아카린과 새끼 여우 섬초.
무공을 배우다 탈진한 이원, 여량위, 데이몽 발도.
왕체, 최림, 김기철 조폭과 용역 헌터 40인!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가 천문석 부사장의 불운에 얽혀들었다!
최설은 이 순간 깨달았다.
안개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불운의 수레바퀴가 구른다는 말이니까!
최설은 은근슬쩍 천문석과 거리를 벌렸다.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알바알바! 진짜 망루에서 보는 거 안 돼!? 그럼 퐁퐁이 타고 한 바퀴 돌고 오면 안 될까!?”
“응 안 돼.”
“왜왜ㅡ 왜왜왜!?”
“이제 도착했거든.”
천문석이 특급 헌터를 번쩍 들어 어깨 위로 올리는 순간.
휘이이이잉-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뱃머리에 걸린 안개 랜턴이 마침내 꺼졌다!
파스스스스-
단숨에 자욱한 안개가 사라지고.
갑판장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도착했다! 모두 시작해라!”
파앙, 파아앙-
삼각돛이 줄줄이 펼쳐지고.
촤아, 촤아아아-
고속 갤리선이 바다 위로 떨어졌다!
쿠릉, 쿠르르르릉-
고속 갤리선 선체를 커다란 진동이 훑고 지나가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 파도가 뱃머리로 쏟아졌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감각의 폭풍이 몰아쳤다!
에메랄드 바다를 십여 척의 배가 달리고, 선명한 푸른 하늘에는 새하얀 구름이 흩어져 있다!
뜨거운 한여름 태양이 느껴지는 순간.
끼룩, 끼룩-
바닷새 소리가 울려 퍼지고.
후우우우웅-
물기를 가득 머금은 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고속 갤리선은 나무와 덩굴로 뒤덮인 바위기둥이 곳곳에 서 있는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사막이라는 말과 달리 주위 모든 곳에서 엄청난 생명력이 느껴졌다!
모두가 깜짝 놀라 주위를 살필 때 선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바나항 앞바다다! 바위 절벽을 돌아 항구로 접근한다! 우현으로 회전한다!”
“우현으로 회전한다!”
“우현으로 회전한다!”
복창 소리와 함께 빙글 돛이 걸린 활대가 움직이고, 고속 갤리선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타고 천천히 회전했다.
그리고 항구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사이에 선명한 백색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새하얀 바위 언덕을 층층이 깎아 만든 도시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가 정박한 부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작은 배 수십 척이 끊임없이 부두에 정박하고 떠나고, 거대한 기중기와 수많은 사람이 쉴 새 없이 짐을 싣고 내렸다.
아득히 멀리 있는데도 이 항구 도시에 가득한 활기가 느껴졌다!
“…….”
“…….”
열사의 사막이라는 지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모두가 넋을 놓고 항구 도시를 바라봤다.
“지구에 이런 곳이 있었어……?”
“아니…… 여기 진짜 지구 맞아!?”
“분명 우리가 던전에 삼켜졌을 때가 가을이었는데…….”
“이 공기! 이 열기!? 남반구인가!? 그럴 리가……!?”
……
용역 헌터들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
특급 헌터는 크게 외쳤다.
“알바! 나 진짜로 잘 안 보여! 퐁퐁이 타고 한 바퀴만 돌고 올게! 안전하게 보고 올게!”
구으, 구으응-!
“야, 여기서는 로켓 비행 금지야! 어깨 위로 올려줄 테니까. 위에서 봐라.”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잡아 어깨 위로 번쩍 올렸다.
이때 등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몸을 돌리는 순간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외침과 쑥 내밀어지는 퐁퐁검.
“선장 아저씨 안녕!”
툭-
가볍게 퐁퐁검을 건드린 선장이 고개를 숙였다.
“단주님께서 이세기님의 지시에 따르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선장의 말을 들은 천문석 머리를 굴렸다.
아카린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목적지는 이미 알고 있다.
열사의 사막으로 이어지는 관문 도시, 마하바나!
그러나 눈앞의 항구 도시를 아무리 살펴도 폭포뿐, 마하바나까지 이어진다는 강은 보이지 않았다.
“선장님 강이 보이지 않네요? 혹시 좀 더 이동해야 하는 건가요?”
“강이요? 바나항 근처에 강은 없습니다.”
“네!? 분명 안개길을 거쳐 나오는 항구 도시에서 관문 도시까지 배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 관문 도시! 강은 없지만, 배를 타고 바로 이동할 수는 있습니다. 저걸 이용하면 됩니다.”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항구 끝을 가리키는 선장.
선장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높이 100미터가 훌쩍 넘는 수직 폭포가 있었다.
‘이 사람 제정신인가!?’
천문석이 내심 어이없어할 때.
머리 위 특급 헌터가 외쳤다.
“으앗! 알바! 저 폭포! 폭포 타고 배가 거꾸로 올라가고 있어!”
“하! 그런 저급한 낚시에 내가 걸릴 줄…….”
천문석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눈에 내력을 집중해 살핀 폭포.
100미터가 훌쩍 넘는 수직 폭포를 향해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배는 마치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수직 폭포 위를 거슬러 올라 절벽 위로 나아갔다!
“……!”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알바! 저거 진짜야! 내가 벌써 눈 비벼봤어! 으앗 엄청 멋져! 알바! 우리도 저 폭포 타는 거지!? 맞지!? 그렇지! 엄청 재밌을 거 같아! 카카캌-.”
특급 헌터의 웃음에,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문 도시 마하바나로 가려면, 항구 도시 바나의 저 거꾸로 흐르는 폭포를 올라가서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라고요?”
“네. 지금 상태로는 흐르는 모래의 바다, 사해(沙海) 위를 항해할 수 없습니다. 선체와 돛에 바람 주술 문양을 그려 넣고, 바람잡이와 모래 길잡이를 고용해야 합니다. 아! 사막 항해에 익숙한 선원도 몇 명 모집하고 물품도 보충해야 합니다.”
선장은 생소한 단어를 쏟아 내더니 확인했다.
“바로 거꾸로 흐르는 폭포를 타고 올라갈까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정신이 팔린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폭포 위 선거에 배를 올리고, 모든 준비를 끝내는데. 빠르면 하루 늦으면 이틀에서 삼일 정도 걸릴 겁니다. 도시를 둘러 볼 수 있게 선원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갑판장! 항해장! 어디 있나? 사막 항해를 준비해야 한다!”
선장은 바로 몸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
천문석은 천천히 가까워지는 항구 도시를 멍하니 바라봤다.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특급 헌터는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으아앗! 엄청엄청 재밌을 거 같아!”
“난 사슴이랑, 반짝이 부르러 갈게!”
“경석이형! 이 이야기 들으면 엄청 부러워할 거야!”
“역시 알바 따라오길 잘했어! 카카캌-.”
“퐁퐁이 출동이야! 사슴이, 반짝이! 얼른 나와봐! 우리 폭포 올라가!”
……
다다다닥-
퐁, 퐁, 퐁-
특급 헌터와 퐁퐁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선실로 달려갔고.
항구 도시를 바라보던 용역 헌터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폭포를 올라?”
“저게 무슨 소리야?”
“그러려니 해. 저 꼬맹이 이세기 친구잖아.”
“야, 그것보다 마침내 돌아왔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하하하- 헌터용 카드, 수표 되겠지!”
“당연하지! 그게 안 되는 나라가 없지!”
“그런데 저기 진짜 지구는 맞는 거야? 날씨도 그렇고 건물도 좀 이상한데…….”
“새끼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저기는 지구야! 어! 반드시 지구라고!”
……
현실도피 중인 용역 헌터들의 외침이 들려올 때.
천문석은 갑판 아래 아카린이 잠든 선실 방향을 바라봤다.
거꾸로 흐르는 폭포, 흐르는 모래의 바다.
주술 문양, 바람잡이, 모래 길잡이.
그리고 사막 항해!
선장에게 들은 의미심장한 단어 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전신에 전율이 흘렀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카린. 간단한 술 배달의뢰라며…….”
배를 타고 사막을 항해하는 게 간단한 배달의뢰일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