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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713화 (71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13화>

“…….”

아마르는 허리를 숙인 채 깊은 감흥에 빠져들었다.

하늘의 인과란 이 얼마나 놀라운가!

오래전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아 경계를 넘어 적염성을 세웠던 적예.

적예와 가짜 경계석 목걸이를 걸고 맹약을 맺었던 허공도의 제사장.

허공도의 제사장은 맹약을 지키기 위해 적염성에 왔으나 악몽에 삼켜져 모든 게 난장판이 됐다.

이 난장판에 기다렸다는 나타났다.

일기일원문의 개파조사.

시동이 꺼진 타이탄.

아직 어린 하늘 고래

스카라베 전사와 마법사.

벌을 받은 하누만 필마온.

기억을 잃은 왕혈 섬초.

……

이 모든 사람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테피스트리를 만들어 냈다.

아마르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짙은 안개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분명히 느껴졌다.

찬란하게 빛나는 운명의 테피스트리가 그려내는 천기(天氣)가!

그 중앙 천강(天罡)의 빛으로 빛나는 천원좌(天元座)가!

천기와 천원좌 아래.

마침내 끊겼던 인과의 고리가 연결되고 인연의 실이 이어졌다.

일기일원문의 조사는 일기공과 일원공을 나눠 전하게 되고, 대사형은 일기공과 일원공을 하나로 합쳐 황제와 검성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검성은 하나로 합쳐진 일기일원공을 다시 그 사람에게 전하게 된다.

천원좌, 지고한 경지에 올랐으나 스스로 내려 와 세계의 나무 위를 즐겁게 걷게 될 그 사람에게!

아마르는 조심스레 손을 펼쳐 대가로 받은 새하얀 돌을 봤다.

특급 헌터라는 이상한 아이가 대가로 건네준 8점짜리 공기돌.

이 돌이 자신에게 전해졌다는 건,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의미!

심장이 빠르게 뛰고, 열기에 몸이 달아오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찾아올 칭지드 봉우리로 달려가고 싶었다!

몸, 얼굴, 목소리, 기억까지.

모든 게 달라졌겠지만 상관없었다.

그 안에 담긴 본질은 같으니까.

마침내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갑자기 튀어나와 사령 화로를 던지고 감쪽같이 도망친 그를!

하하, 하하하-

아마르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맹세한 대로 복수하리라!

절대 쉽게 만나주지 않으리라!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며칠 동안 걷게 하고, 하누만의 숲에서 고생하는 것도 몰래 지켜보는 거다.

그리고 준비했던 상을 내놓아야지.

하얀 쌀밥, 소고기무국, 잘 구운 생선, 달달한 식혜가 올라온 상을.

이 순간 아마르는 칭지드 봉우리 정상, 자신의 집에서 울려 퍼질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풍등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잘려 나간 선조의 나무에 싹을 틔운다.

그리고 마르픽 1호를 안개의 바다에 띄우게 된다.

이 모든 게 이제 곧 시작된다.

마침내 때가 되었으니까!

아마르는 손안에 놓인 하얀 돌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마르의 시선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금괴로 움직였다.

일기일원문의 조사에게 받은 금괴!

이 금괴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때 어느새 흐릿해진 안개 너머 강변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배! 누구야? 혹시 붉은 털이냐!?”

‘……!’

아마르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소리가 들려오는 강변으로 노를 저었다.

촤아, 촤아아-

노 젓는 소리가 들리자 목소리가 커졌다.

“붉은 털 맞아!? 야, 너 뭐하느라 이렇게 늦은 거야! 혹시 제사장한테 잡힌 줄 알고 조마조마했잖아!”

“…….”

아마르는 대답 없이 후드를 눌러쓰고 계속 노를 저었다.

곧 안개 사이로 작은 선착장이 나타나고, 안개 랜턴과 갈라진 지팡이를 든 하누만이 보였다.

“어, 아니잖아? 뭔 놈의 안개가 이렇게 짙어! 거기 뱃사공! 혹시 하누만 보지 못했습니까? 커다란 술통이 놓인 지게를 짊어지고 강을 타고 내려왔을 텐데!?”

아마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안개 랜턴과 갈라진 지팡이.

허공도에 몰래 샛길을 뚫는 안개 길잡이다!

‘마침내 꼬리를 찾았다!’

말이 좋아 길잡이지 이 녀석들은 도둑놈들이다!

하늘 고래가 뿌린 념(念)의 안개와 허공도의 힘을 훔치는 도둑놈들!

“아, 당신이 그 사람이 인가 보군요? 잠시만요. 배를 대고 이야기할게요.”

아마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 선착장으로 배를 몰았다.

그러나 후드에 가려진 눈은 선착장에 선 하누만, 안개 길잡이를 샅샅이 훑었다.

허공도에 만들어진 수많은 계단은 세계의 나무 곳곳으로 이어져 있다.

이 계단을 걸으면 인연이 닿는 곳이라면 세계의 나무 어디든 갈 수 있다.

큰 대가를 바칠 필요도, 무언가를 희생할 필요도 없다.

단지, 자신의 두 발로 허공도의 계단을 걷기만 하면 됐다.

이건 마도 황제가 선조의 나무를 베어 버리는 사고를 친 후, 황금 명판을 건네주며 걸어 준 세계 개변급의 대마법이었다.

그런데 안개 길잡이 녀석들은 제대로 계단을 걷지 않고 자꾸 샛길과 지름길을 뚫어 대고 있었다!

원인과 결과, 인과는 항상 같이 일어나야 한다.

계단을 걷는다는 ‘원인’ 없이, 목적지에 닿는다는 ‘결과’만 계속 일어나면 허공도의 계단은 그 힘을 잃는다.

인연이 이어진 사람들이 영영 오지 않게 되고, 허공도의 존재 의의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거다!

그래서 아마르는 현실과 꿈속에서 안개 길잡이들을 쫓았다!

몇몇 잔챙이들은 잡았지만,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움직이는지 도저히 안개 길잡이 두목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런 안개 길잡이 중 한 명이 바로 앞에 있었다.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게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자신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하누만!

이제부터 이 하누만을 이용해 두목을 찾아야 한다.

아마르는 선착장에 밧줄을 걸고 단숨에 올라갔다.

“전 친구 부탁받고 왔어요.”

“부탁이요?”

“네, 이걸 전해 주라고 하더라고요.”

아마르는 장갑 낀 손으로 금괴를 꺼내 내밀었다.

노란빛이 다가오는 순간 하누만은 깜짝 놀랐다.

“금괴!? 설마 진짜 금괴!? 으앗! 이거 진짜 금이잖아!”

하누만이 자신도 모르게 금괴를 만지고 경악하는 순간.

‘하나, 둘, 셋.’

아마르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금괴를 거두며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금괴 전해 주기 전에 이름을 확인하라고 했는데……?”

“아카린! 아카린이 부탁한 거 맞죠!?”

“네. 그렇긴 한데…….”

하누만은 환한 얼굴로 다시 손을 뻗었다.

“와, 아카린! 이 짠돌이 녀석이 웬일이야!”

그러나 아마르는 금괴를 넘기지 않았다.

“받을 사람 이름을 말해 주셔야죠.”

“케후르! 케후르입니다!”

‘케후르!’

아마르는 이름을 기억하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금괴를 건네주라는 사람이 아니에요.”

“네!? 그럴 리가……!?”

“사람을 잘못 찾았나 보네요.”

아마르는 바로 배를 고정한 밧줄을 풀고 배로 내려가려 했다.

탁-

케후르는 다급히 밧줄을 잡고 외쳤다.

“키후른!”

“아니에요.”

“크후후!”

“아니에요.”

……

케후르는 계속 이름을 말했고, 아마르는 계속 고개를 저으며 이름을 기억했다.

그리고 마침내 케후르가 폭발했다.

“아니, 도대체 누구야!? 아카린이 그 금괴 누구한테 건네라고 한 겁니까!?”

“제가 이름을 말하면 그쪽이 맞는 사람인지 확인이 안 되잖아요?”

“…….”

케후르는 말문이 컥 막혔다.

“그럼 전 이만. 이 금괴는 나중에 아카린에게 받으세요.”

촤아, 촤아아-

아마르는 미련 없이 밧줄을 풀고 배로 내려가 노를 저었다.

이 순간 케후르가 선착장을 달려 배 위로 뛰어내렸다.

다다닥, 쿵-

그리고 다급히 외쳤다.

“잠깐! 적염성으로. 거기 여관으로 같이 갑시다!”

“적염성 여관이요? 제가 거길 왜 가요!?”

아마르가 황당해하자, 케후르는 완전히 의심을 지우고 말했다.

“거기에 우리 두목 있으세요! 그분은 분명 이름을 알 겁니다!”

‘안개 길잡이들의 두목! 마침내 찾았구나!’

아마르는 내심을 감추고 귀찮은 듯 말했다.

“시간도 늦었고. 그냥 나중에 아카린에게 받는 게…….”

“시간 오래 안 걸려요! 여관 후원이 바로 수로로 연결돼서! 안개길 열면 금방 도착해요!”

안개 길잡이 케후르는 재빨리 랜턴과 지팡이를 움직였다.

파스스스-

사방에서 안개가 밀려 와 순식간에 배를 삼켰고 케후르는 재빨리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

촤아, 촤아아-

아마르와 케후르를 태운 배는 안개길을 타고 적염성의 하누만 여관을 향해 나아갔다.

천문석이 뱀술 칠전팔기를 만들고.

아카린이 하누만 농악대를 고용했던.

안개 길잡이들의 비밀 접선지 여관으로!

아마르는 내심 웃음을 삼키며 장갑 낀 손으로 잡은 금괴를 바라봤다.

역시 일기일원문의 개파조사님!

그분이 전해 준 금괴는 효과가 확실했다!

금괴에 담긴 불운이 얼마나 강력한지 흔적조차 찾지 못했던 안개 길잡이들의 두목을 바로 찾아냈다!

“감사합니다.”

아마르는 강 하류를 향해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인사하며 기원했다.

‘행운을 빌게요. 그리고 힘내세요.’

일기일원문의 조사와 그 일행의 목적지 열사의 사막은 스카라베 왕국의 변경이었다.

끝없는 승부와 영역 다툼이 벌어지는 지역.

그곳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행운이 필요했다.

* * *

안개 길잡이가 떠나가고 고속 갤리선이 자욱한 안개 속을 나아갈 때.

선실에서 돌아온 특급 헌터가 외쳤다.

“알바! 이제 우리 뭐 할까!?”

목소리에 담긴 열망이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특급 헌터의 전신을 스캔했다.

모자처럼 머리에 앉은 퐁퐁이.

뜨거운 열망을 담아 번뜩이는 눈빛!

왼손에는 딱지와 구슬 주머니를.

오른손에는 8점짜리 공기돌을 들고 있다!

감이 왔다!

지금 이 꼬맹이가 뭘 원하고 있는지를!

딱지치기, 공기놀이, 구슬치기!

적염성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를 이 갑판 위에서 열고 싶은 거다!

“알바! 나한테 아주 좋은 계획이…….”

특급 헌터가 입을 여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끊고 물었다.

“아카린이랑 섬초는 일어났어?”

특급 헌터는 휙, 휙 고개를 젓고 말을 쏟아 냈다.

“아니! 내가 하늘 이으려고 했는데. 아까 길잡이 누나가 당분간은 하늘 잇지 말래서 안 했어! 그런데 진짜로 누나가 말한 대로 될까? 이 나무 상자에 노란 벽돌은 넣었는데…… 진짜로 나와서 엄청엄청 멋진 춤을 출까!?”

‘뭐야, 이 녀석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원래 목적이 말을 돌리는 거다!

“어, 될 거 같아.”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자.

특급 헌터는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퐁퐁이! 알바가 될 거 같데! 우리 얼른 사막 갔으면 좋겠어! 엄청 재밌을 거야!”

“그래그래. 사막 가서 재밌게 놀려면 좀 자둬. 너 밤새 고생했잖아?”

“뭐, 해 떠 있는데 자라고!? 한국 사람은 해 떠 있을 때는 자면 안 돼!”

‘뭐지, 이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은!?’

특급 헌터의 외침은 학창시절부터 온갖 알바로 빡세게 살아온 천문석의 마음을 꾹-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하네. 해 떠 있을 때는 움직여야지.”

“그렇다니까!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나도 이거 검사 할아버지한테 배우고 깜짝 놀랐어!”

“검사 할아버지?”

“저번에 박스 성 만들 때. 리어카 빌려 준 할아버지!”

“……아! 너 청량리역으로 데려다준 인상이 날카로운 할아버지!?”

“맞아! 검사 할아버지 엄청 성실해! 매일 새벽에 출근 전에 리어카 끌고 동네 돌잖아!”

“어, 잠깐? 그 할아버지분 명함에 분명…… 검사(檢事)라고 적혀 있었는데?”

“맞아. 검사 할아버지!”

“…….”

천문석은 동음이의어에 관해 설명하려다 그냥 넘겼다.

“그런데 그분 리어카 끄신다고? 재활용품 수거하시는 거야?”

“아닌데? 영역 지키는 건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영역을 지킨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알바 진짜 몰라!? 당연히 매일매일 영역을 지켜야지! 서울은 길거리 빈 병, 깡통, 박스 모두 주인 있잖아! 며칠만 안 나가도 영역 뺏기고 깡통이랑 빈 병 못 주워! 그래서 성실하게 매일매일 열심히 돌아야 하는 거야! 진짜로 몰랐어?”

특급 헌터는 충격받은 얼굴로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

순간 벼락 치듯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깡통을 줍고 신나 하던 특급 헌터!

그러나 특급 헌터는 서울로 돌아오고는 깡통, 빈 병을 줍지 않았다!

이태성 길드장이 대량으로 보내 준 압축 깡통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에 특급 헌터가 하던 말이 있었다.

‘나 이제 빈 병 못 주워. 길거리에 빈 병이랑 깡통도 다 ‘주인’이 있거든.’

제주도에 가기 전에는 주울 수 있던 빈 병, 깡통을 이제는 줍지 못하게 됐다!

“……!”

무언가 번쩍 머리를 스치는 순간.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봤다.

“특급 헌터! 너 설마…… 영역 싸움에서 밀려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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