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12화>
“여량위!? 네가 여기 왜 있어!”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이원이 바로 대답했다.
“에휴- 그러게 말입니다. 여량위가 갑자기 나타나서 제 강호행이 완전 엉망…… 커억-.”
한숨 쉬며 고개 젓던 이원의 옆구리에 꽂히는 여량위의 장죽!
여량위는 단숨에 남편을 무력화시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
소리 없는 걸음에서 느껴지는 기세, 자연스럽게 좌중을 압도하는 위압감!
호랑이가 다가오듯 등골이 오싹해지고 긴장감과 전율이 몸을 흐른다!
천문석은 바로 알아챘다!
이원이 일류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여량위는 어느새 절정의 경지를 넘어섰다!
“이원 장주 아내분이야. 초절정의 고수다.”
허준이 귓가에 속삭이는 순간.
머릿속에서 여량위와 얽힌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무림 던전, 청해성 흑사회주였던 여량위에게 친 수많은 구라!
소금 벌판에서 진짜 극음도의 후계자와 싸워 이기고, 모든 게 들통 난 후에는 반사적으로 쥐어박기까지 했다!
마도 18문에 찍혔다는 사실에 절망해 눈물을 줄줄 흘리던 여량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마종권을 기반으로 만든 비급을 들려서 남쪽으로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랬던 여량위가 초절정 고수가 되어 돌아왔다!
흑도 무인이 초절정에 오르면 정파 무인보다 상대하기 몇 배는 까다로워진다!
천문석은 내심 긴장한 채 재빨리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때 여량위가 멈춰 섰다.
“……!”
“……!”
눈과 눈이 마주치고 찰나의 침묵이 흐르는 순간.
여량위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힘차게 외쳤다.
“스승님! 다시 뵙습니다!”
‘스승님!? 이녀석 뭐지!? 추진력을 얻으려는 건가!?’
천문석이 움찔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비틀비틀 일어나 외쳤다.
“알바! 이 완전 멋진 호랑이 가죽 여량위 누나가 선물로 줬어!”
“용감한 꼬맹이 호피는 마음에 드냐?”
“훌륭해! 완전 훌륭해! 5점짜리 호랑이 가죽이야!”
“5점? 몇 점 만점인데?”
“100점 만점?”
“뭐? 야, 못해도 70점은 줘야지!”
“70점짜리 물건은 한 번도 못 봤단 말야!”
“꼬맹이 잠깐만 기다려라. 내가 보여 줄 테니까! 서기!”
여량위와 특급 헌터가 티격태격할 때.
최설이 등을 툭 치더니 눈짓했다.
척하면 척!
슬그머니 갑판 구석으로 물러서자 최설은 한껏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경계할 필요 없어. 너 기절해 있는 동안 여량위님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
“여량위가 도움을 줬다고?”
최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을 가리켰다.
“이 강 하류를 요새, 적월 상단, 광신도들이 막고 있었이거든. 여량위님 덕분에 쉽게 통과할 수 있었어.”
적월 상단이면 대형 범선이 물길을 막았다는 이야기다.
“광신도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아, 그 사기꾼 사제!?”
“사기꾼인 건 모르겠고. 광신도들이 이세기가 신상(神像)을 박살 냈다고 대신 쟤를 내놓으라고 달라붙었어.”
최설의 손이 특급 헌터의 머리에 모자처럼 앉은 퐁퐁이를 가리켰다.
적염성을 탈출할 때 만났던 사기꾼 사제가 맞았다!
‘퐁퐁이+사령 화로’ 로켓 공격에 신상이 박살 난 사기꾼 사제!
“그 녀석 엄청 끈질기던데. 그걸 여량위가 처리했구나…….”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특급 헌터 앞에 물건들을 늘어놓는 여량위를 봤다.
거친 흑도에서 흑사회주까지 오른 여량위가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예전에도 여량위는 주먹부터 날리는 스타일!
사기꾼 사제와 광신도들은 뻗대다가 쥐어터졌을 거다.
“여량위가 다 쥐어팬 거지!? 카-! 어, 잠깐 적월 상단은 쥐어팰 수가 없었을 텐데?”
탄성을 터트리던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종 또한 초절정의 경지!
게다가 적월 상단의 막강한 재력을 생각하면 아무리 여량위가 초절정의 경지라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여량위가 적월 상단도 해결한 거야? 걔네들은 쉽지 않았을 텐데?”
최설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본 듯 기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량위님이 쥐어패기는 했는데, 다른 방식으로 쥐어팼어.”
“응?”
최설은 갑판 한쪽 데이몽 발도가 지키는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내가 가져온 금괴 궤짝? 설마, 저 금괴를 넘긴 거야!?”
깜짝 놀라 달려가려는 순간.
최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가져온 금괴 상자를 썼다는 게 아니라. 저 금괴 상자 3배 규모의 금괴를 뿌렸어. 광신도 사제, 요새의 병사들, 적월 상단 배까지. 여량위님 재력으로 모두를 쥐어팼어.”
“……30상자!? 금괴 30상자를 뿌렸다고!? 혹시 은괴 아냐!?”
경악한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여량위 누나가 이거 선물로 줬어!”
그르르르륵-
줄이 묶인 노란 벽돌을 끌고 열심히 달려오는 특급 헌터.
“……으아! 수련된다! 난 조금 더 강해진다! 이야압!”
특급 헌터는 기합을 지르며 멈춰 섰다.
천문석은 홀린 듯 노란 벽돌을 바라보다가 집어 들었다.
“설마, 설마. 설마!”
이 빛깔, 질감, 무게!
10관, 37.5kg!
5관 금괴를 딱 두 개 붙인 듯한 크기와 무게!
“이원!?”
번쩍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여량위 엄청난 부자 됐습니다. 배만 수백 척이 넘어요!”
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 쉬고.
그 옆 여량위는 씨익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 여량위의 손에 벽돌 금괴를 내려놨다!
“스승님도 금괴 좀 드릴까요?”
“……!”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려는 고개를 간신히 멈췄다.
어쩐지 저 금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이미 자신에겐 적월 상단의 대형 범선에서 슬쩍한 금괴 10상자가 있다!
천문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사승 관계에 돈이 끼어들면…….”
“스승님! 그럼 받아서 저한테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원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너희 부부라면서? 너도 부자 아냐?”
“전 그냥 이가장 장주입니다. 대륙 상단은 여량위 겁니다…… 전 개털이에요.”
이원은 처량하게 말했고, 여량위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궤짝에서 금괴를 꺼내려다가 흠칫 놀랐다.
재벌 회장 남편에게 용돈을 주는 격이다!
흠, 흠-
천문석은 헛기침하며 손을 슬쩍 거뒀다.
이때 안개 길잡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준비가 끝났어요. 이제 곧 열사의 사막으로 이어지는 안개길이 열려요!”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선수에 붉은빛이 생겨나고, 갑판에 가득한 안개가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안개 길잡이는 뱃머리에 선 채로 붉은 랜턴이 걸린 지팡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밝아지고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랜턴 앞.
만져질 듯 짙은 안개가 파도치듯 밀려 왔다!
그러나 그 안개는 붉은 랜턴이 서 있는 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유선형의 선체를 타고 흘렀다.
어느새 노가 강물을 젓는 소리가 사라지고.
배는 구름 속을 떠가는 것처럼 짙은 안개 속으로 소리 하나 없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에 모두가 넋이 나갔다.
천문석은 선체 난간 밖으로 손을 뻗어 안개를 만져 봤다.
파스스스-
짙은 안개는 모래처럼 손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안개 길잡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틀 후, 저 랜턴이 꺼질 때면 열사의 사막에 도착할 거예요.”
문득 고개를 돌리자 선수에 꽂힌 장대와 그 장대에 걸린 붉은 랜턴이 보였다.
“안개 길잡이님은 같이 안 가시나요?”
안개 길잡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이미 너무 멀리 왔어요. 이제 돌아가서 오랜 친구를 기다려야 해요.”
어쩐지 애잔한 눈으로 후미 갑판을 바라보는 안개 길잡이.
길잡이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뭔가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카린이 기절해 있어서 드리기로 한 대금을 모르는데…….”
순간 데이몽 발도가 재빨리 5관 금괴를 꺼내 천문석의 손에 올렸다.
천문석은 바로 금괴를 내밀었다.
“대금은 금괴로 치를 생각인데 몇 개나 드려야 할지……?”
“아뇨. 벌써 대가는 받았어요.”
안개 길잡이는 웃으며 손을 펼쳤다.
펼쳐진 손에 놓인 건 자신의 이마에 놓여 있던 것과 같은 새하얀 돌이었다.
“특급 헌터?”
“맞아! 내가 누나한테 대가로 건넸어! 이거 엄청엄청엄청 좋은 돌이야! 앙꼬 대장이 앙꼬한테 준 8점짜리 공기돌이야!”
“……진짜 그걸로 되겠습니까? 그래도 금괴 하나라도 가져가시는 게?”
천문석은 안개 길잡이에게 금괴를 슬쩍 찔러줬다.
“아뇨. 이거면 대가로 충분해요. 아니, 과분할 정도로 넘쳐요. 그리고 그 금괴는 열사의 사막에서 쓰실 곳이…… 아!”
계속 사양하던 안개 길잡이는 금괴가 손에 닿는 순간 흠칫 놀랐다.
“……!”
그리고 반달같이 휘어진 눈으로 손에 닿은 금괴와 줄줄이 쌓인 나무 궤짝을 바라봤다.
“정말, 정말이지. …… 원문은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네? 지금 뭐라고?”
천문석이 반문하자.
안개 길잡이는 금괴를 받으며 미소 지었다.
“이 금괴 감사히 받을게요. 방금 쓸모가 생각났거든요.”
“누나! 이 벽돌도 줄까?”
특급 헌터가 벽돌 금괴를 묶은 줄을 내밀자, 안개 길잡이는 고개를 젓고 특급 헌터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뭐, 그게 진짜야!?”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벽돌 금괴와 품에서 꺼낸 나무 상자를 번갈아 봤다.
“야, 뭔데 그래?”
“비밀이에요. 조만간 아실 거예요.”
안개 길잡이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작은 보트를 타고 떠나갔다.
짙은 안개 속에서 멀어지는 보트 위, 안개 길잡이는 랜턴을 흔들며 외쳤다.
“모두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마치 은인을 떠나보내듯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는 안개 길잡이.
안개 길잡이는 한참 동안 감사 인사를 하다가 특급 헌터를 바라보며 외쳤다.
“제게 주신 이 훌륭한 돌 감사해요!”
“카카카- 맞아! 그거 엄청엄청 좋은 돌이야! 그 돌 따느라고 나 엄청 힘들었어! 안녕! 나중에 또 봐!”
“네, 정말로 엄청엄청 좋은 돌이에요! 제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정말 감사드려요!”
특급 헌터는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고, 안개 길잡이는 몇 번이나 허리 숙여 감사했다.
‘뭐지, 다이아몬드라도 건네는 듯한 이 분위기는?’
어이없어하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지 주머니!
주머니 안에서 나와 펼쳐진 손.
이 손에는 손톱 크기의 새하얀 돌이 놓여 있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 이마에서 떨어지는 걸 무심결에 낚아챈.
안개 길잡이가 대가로 받고 너무나 기뻐한 8점짜리 새하얀 돌이다!
“……이게 특별하다고?”
천문석은 돌 안으로 슬쩍 내력을 밀어 넣고 심상을 두고 관조했다.
그러나 공기돌에서는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급 헌터의 다른 보물들과 마찬가지로.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특급 헌터를 불렀다.
“특급 헌터!”
“알바, 왜?”
“이거 받아라.”
날아온 돌을 받는 순간.
특급 헌터는 깜짝 놀랐다.
“으아앗! 내 돌 돌 놔둔거 깜빡했잖아! 출동! 당장 출동이다!”
특급 헌터는 다급히 갑판을 뛰어 선실을 향해 달렸다.
“야, 위험하니까 뛰지 말고 걸어!”
크게 외친 천문석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안개 길잡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길 열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안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이름도 묻지 않았다!
“이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러나 안개 길잡이는 이미 안개에 삼켜졌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감사합니다! …… 이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안개 길잡이는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깊게 허리 숙여 말할 수 없던 이름을 말했다.
“아마르입니다. 그리고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천원좌를 만드시고 이 모든 인과를 시작하신 일기일원문의 조사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