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10화>
맨몸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는 감각은 물속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했다.
부유감, 저항감, 흐릿한 시야.
그러나 곧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듯한 인력이 느껴지고 빛과 어둠이 빠르게 교차했다.
이 빛과 어둠을 바라보는 순간 거대한 존재가 자신이 주시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감이 미쳐 날뛰어 극한의 고통과 쾌락이 교차하고, 뒤엉킨 생각과 감정이 폭풍이 되어 머릿속에서 몰아쳤다!
무언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헤집고 있었다!
사령관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만! 이제 그만!’
사령관이 절규할 때 천문석은 경악하고 있었다.
무저갱의 마굴을 걸을 때 봤던 인지를 상실한 마신들!
그와 같은 존재들의 악의 어린 시선이 존재의 본질을 헤집고 있다!
이대로면 사령관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영육과 혼백 사이 심상 공간에 벽을 세웠다.
순간 사령관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려지는 게 느껴졌다!
‘먹힌다!’
천문석은 재빨리 심상 공간에 거대한 벽을 세워 사령관의 혼백을 가렸다!
벽이 완성되고 시선이 완전히 가려지는 동시에. 천문석. 아니, 사령관은 물속 깊이 가라앉아 수면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새하얀 모래사장으로 떨어졌다.
높지는 않았다.
불과 3미터 높이.
퍽-
새하얀 모래사장에 떨어지는 순간 물 냄새가 가득 섞인 공기가 느껴졌다!
‘어디지!?’
천문석이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사령관은 정신을 잃고 픽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시야에 담기는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야, 야! 괜찮아!?’
천문석이 말을 걸었지만,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각과 촉각은 사라진 상황.
그런데 어째선지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
촤아, 촤아아-
파도 소리!
정신을 잃고 추락할 때 본 모래사장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곳은 섬인 것 같았다.
이때 젊은 남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야, 이번엔 진짜 확실하지!?”
“이번엔 확실하다니까! 야, 나 무녀야! 그것도 법의 무녀! 너희 나 못 믿냐!?”
“법의 무녀는! 너 그동안 헛다리 짚은 게 몇 번인데!? 당연히 못 믿지!”
“맞아! 저번에도 대박이 분명하다고! 확실하다고 했을 때 누구 나왔냐!”
“저번에……? 기억이 잘!”
“와, 이 황당한 녀석! 대박이라고 해서 별똥별 쫓아 달려가니까!”
“허무의 바다를 건너던 여행자들 튀어나왔지!”
“시바! 그때 백곰권에 맞은 허리가 아직도 아파!”
“난 팔다리, 전신이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어!”
“그 전전전에는 뭐!? 엄청난 강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자칭 검성이라는 이상한 아저씨 나왔지!”
“하, 그 사기꾼 아저씨! 뭐? 들숨과 날숨에 생사를 담아 천지를 이으라고!?”
“어, 난 그 아저씨가 가르쳐 준 호흡법 계속하는데? 뭔가, 뭔가 효과가 있는 거 같아!”
“쯧쯧쯧- 비제우 멍청한 녀석…….”
“하여튼 개고생하고 프록시마 호수까지 왔는데! 이번에도 허탕이면 그냥 안 둔다!”
“매달자!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원래 예언에 실패한 무녀는 돛대에 매다는 거래!”
“와, 이 믿음 없는 녀석들! 이번엔 확실해! 우리 모두에게 대박을 가져다주실 귀인! 그것도 그냥 귀인도 아닌 대대대귀인이 이 섬에 분명 있으시다! 우리 엄마의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그놈의 대박, 대귀인 타령은!”
“걸려면 네 명예를 걸어! 너희 엄마 명예는 왜 걸어!?”
“난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이 무녀라는 걸 못 믿겠다니까.”
“나도. 무슨 놈의 무녀가 맞추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어제도 비 온다더니 창창하기만 하잖아!”
“하 시바! 귀인 찾다가 골병들어 먼저 죽겠다.”
“캬캬캬- 친구들 희망을 가져! 이번에는 진짜 감이 좋아!”
“그래야 할 거다. 너 돛대에 매달리기 싫으면.”
“앗! 저기 누군가 있어!”
“뭐야? 진짜로!? 야, 봤지! 모두 봤지!? 내 예언이 적중한 거! 대대대귀인님이다!”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고 티격태격하던 남녀가 모래사장을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사령관의 얼굴에 물이 쏟아졌다.
촤아아아-
“정신 드세요!?”
사령관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보이고 곧 흐릿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검과 갑옷 냉병기로 무장한 남자 둘, 여자 셋!
“눈 떴다!”
“대대대귀인님 맞으시죠!? 어디서 오셨어요!?”
“이거 보이세요? 제 손가락 몇 개로 보이세요!?”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며 손을 흔드는 남녀.
생전 처음 듣는 언어였다.
그러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안에 담긴 뜻이 이해됐다!
[…… 여기는 어디지?]
잠시 망설이던 사령관이 텔레파시로 뜻을 전하자, 깜짝 놀란 외침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뭐지!? 지금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
“마법!? 아냐! 이거 뭔가 좀 다른데!?”
“사념파! 이거 고위 사제가 쓴다는 사념파야! 역시 대대대귀인님이었어!”
“고위 사제!? 우리 진짜 대박 터진 거야!?”
“진짜야!? 드디어 우리가 한 건 한 거야!?”
“미친! 진짜 무녀였어! 구라가 아니었다고!?”
“야, 조용! 조용해 봐! 귀인님이 혼란스러워하시잖아!”
길게 늘어진 색깔 옷을 입고 머리를 붉은 천으로 땋아 올린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귀인님을 찾은 법의 무녀, 로잔입니다. 이곳은 프록시마 호수 안 거북이 섬이고요! 앗! 프록시마 호수라도 전혀 걱정하실 거 없어요! 거북이 섬 저희가 유인해서 암흑제국 영향권 밖으로 헤엄치고 있거든요!”
로잔이라는 무녀는 활기차게 외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사령관과 천문석 모두 로잔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프록시마 호수, 거북이 섬, 암흑제국?
그리고 섬이 헤엄치고 있다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천문석이 의아해할 때.
초롱초롱한 눈빛의 로잔 무녀가 물었다.
“대대대귀인님은 이름이 뭔가요!?”
다섯 남녀의 뜨거운 시선이 모였다!
사령관은 망설이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천문석은 다섯 남녀와 마찬가지로 집중했다!
이 생생한 꿈속의 대한민국은 자신이 아는 세계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이 꿈은 보통 꿈이 아니다.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비밀은 사령관, 모든 각성력을 사용하는 다중 각성자와 연결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령관의 이름만 들으면 비밀을 알 수 있다!’
천문석은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어쩐지 낯선 듯, 귀에 익은 목소리!
생경한 전투에서 느껴지는 눈에 익은 몸놀림!
마음속에서 생겨난 갈등과 고뇌에서 느껴지는 감정까지!
감이 왔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 들려올 거라는 확신이!
‘설마, 설마! 설마!’
천문석은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이때 거대한 굉음이 아득한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따아악-
반사적으로 시선을 올리자 하늘의 반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텅 빈 허무(虛無) 공간이 되는 게 보였다!
‘이건 또 뭐야!?’
천문석이 경악하는 순간.
따아아악-
두 번째 굉음이 들려오고 남은 하늘 전체가 바스러져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푸른 하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허무 공간이 채우고 있었다!
‘뭐야!? 모두 이거 안 보여!?’
그러나 사령관도 그 앞의 다섯 남녀도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들은 탐색하듯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늘이 사라진 걸 인지하는 건 자신뿐이었다!
따아아아악-
그리고 세 번째 굉음이 울려 퍼지고 대지가 먼지처럼 바스러지는 순간.
마침내 사령관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내 이름은…….”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 집중했다!
어차피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름을 듣는 것뿐!
“김…….”
‘역시! 빨리빨리! 빨리 이름을 말해!’
천문석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사령관의 입에서 이름이 튀어나왔다.
“석철이다.”
‘……뭐? 김석철? 김철수가 아니고……?’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따아아아악-
네 번째 굉음이 울려 퍼지고 이미 사라진 하늘과 땅 사이에 남아 있던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무녀 로잔.
로잔의 친구들.
김석철 사령관.
……
텅 빈 허무 공간에 남아 있는 건 어느새 누워 있는 천문석 자신뿐이었다.
천문석이 스스로를 인지하는 순간.
허무 공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알바아아아아!”
* * *
“……!”
천문석은 번쩍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이고, 정신없는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아아아아! 역시! 내가 맞았어! 봐봐봐봐! 내 말 대로 연속으로 하늘을 이으니까 일어났지!? 역시 될 때까지 하는 게 정답이었어!”
이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정신없이 외치고 자신을 알바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뿐이다.
“특급 헌터!?”
상체를 일으키자 몸에서 호피 가죽이 미끄러지고 이마에서 새하얀 돌이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돌을 잡는 순간 이마에서 엄청난 통증이 밀려 왔다!
쾅쾅, 쾅쾅쾅-
해머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통증!
천마신공으로 극에 이른 천문석조차 움찔할 정도의 극통이 몰려 왔다!
커업-!
자신도 모르게 나오려는 신음을 삼키는 순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왜 그래!? 어디가 아파!?”
“이마! 내 이마가 왜 이래……!?”
이 순간 보이고 들렸다.
벽에 고정된 침상에 누워 있는 아카린과 섬초!
“내 머리! 으으, 으으윽-.”
“엄마! 엄마 으아, 으아아-.”
아카린과 섬초는 가위에 눌린 듯 신음을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마에는 새하얀 돌이 놓여 있었다!
“……!”
천문석은 손을 펼쳤다.
자신의 이마에서 떨어진 돌과 같은 모양, 같은 색이다!
그리고 돌 아래 아카린과 섬초의 발갛게 부어오른 이마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이마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느껴지는 극통!
쾅, 쾅, 쾅-
누군가 자신과 아카린, 섬초의 이마를 때렸다!
그리고 지금 방 안에 있는 건 자신과 아카린, 섬초 피해자 셋과 특급 헌터와 동물 친구들뿐!
천문석의 시선이 움직였다.
퐁퐁이. 사슴이, 반짝이.
셋은 신체 구조상 이마를 이렇게 때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한 명뿐이다!
‘그러나 도대체 왜? 아니, 어떻게!?’
아카린은 엄청난 힘을 지닌 하누만이고, 섬초는 공간 도약 능력을 지닌 여우 요괴다.
게다가 자신은 설령 망치로 내리찍었다고 해도 이런 통증을 느낄 리가 없었다.
천문석은 용의자를 향해 조심스레 질문했다.
“특급 헌터. 설마, 네가 섬초, 아카린, 내 이마 때린 거야?”
특급 헌터는 잠시의 망설임도 고개를 끄덕여 자백했다.
“맞아! 내가 했어!”
“뭐!? 아니, 어떻게!?”
특급 헌터는 작은 손을 내밀며 외쳤다.
“알바한테 하늘 잇는법 배웠잖아!?”
“하늘 잇는법?”
“내가 보여 줄게!”
특급 헌터는 엄지로 중지를 누른 작은 손을 내밀며 외쳤다.
“하늘을 잇는다!”
이야압, 얍, 얍, 얍-
기합 소리와 함께 작은 손에서 날아가는 어설픈 딱밤!
‘아니, 이게 뭐야!?’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딱밤을 보는 순간 경악했다!
특급 헌터의 딱밤에는 어설프지만, 전법륜인의 진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분명 자신이 가르쳐 줬다.
그러나 단 한 번, 그것도 몇 분 남짓 표면적인 형과 그 안에 담을 뜻을 함축해 가르쳤을 뿐이다!
그런데도 특급 헌터는 제대로 된 전법륜인 딱밤을 날리고 있었다!
“이얍! 하늘을 잇는다! 얍, 얍, 얍-!”
“이게 된다고!? 와, 천검 이세기 같은 녀석!”
천문석이 진심으로 감탄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쳤다.
“봤지? 이걸로 내가 알바랑 친구들 깨웠어! 앗! 계획은 천재 전술가 반짝이가 세웠어!”
특급 헌터가 가리키는 순간 황금 풍뎅이, 반짝이는 빛을 번뜩이며 자랑스레 울었다.
띠딛디디딛디딛디디디-!
그리고 그 옆에서 사슴이와 퐁퐁이가 아쉽다는 듯 울었다.
구으으응-
구으으으-
“괜찮아! 사슴이, 퐁퐁이도 다음에는 좋은 계획을 세우면 돼!”
카카카카캌-
구으, 구으응-!
구으, 구으으-!
띠딛디, 띠디딛-!
특급 헌터와 동물 친구들은 일제히 소리 내 웃었다.
이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쳐 지나가는 전율!
뭐지, 뭐가 이렇게 불길하지!?
특급 헌터와 동물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길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야, 하지 마! 앞으로는 계획 세우지 마!”
“뭐!? 왜!? 반짝이랑 내 계획 완벽하게 맞았어! 알바도 깨우고! 량위 누나가 이거! 이 완전 멋진 호랑이 가죽도 줬단 말야!”
“야, 그냥 하지 말라면…… 잠깐 그 호랑이 가죽 누가 줬다……!?”
이 순간 방문이 열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일어나셨군요?”
색색이 실을 꼬아 만든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든 부드러운 인상의 여인이 문에서 나타났다.
“아, 예. 그런데…….”
이름을 물으려는데 여인의 발갛게 부어오른 이마가 보였다!
아카린, 섬초와 똑같다!
“특급 헌터? 이 분도?”
“맞아! 안개 길잡이 누나도 내가 깨웠어! 카카캌-.”
“안개 길잡이! 그 열사의 사막으로 길 열어 주기로 한!?”
“네. 제가 바로 ‘안개 길잡이’예요.”
[적염성 -> 열사의 사막 -> 지구]
지구로 돌아가는 데 꼭 필요한 안개 길잡이.
그런 안개 길잡이 이마에 특급 헌터가 전법륜인 딱밤을 날렸다!
천문석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엉망진창이던 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꿈에서 깨어난 현실은 꿈 이상의 난장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