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702화>
대사형은 잿더미가 된 갈대밭을 단숨에 가로질러 강 상류, 적염성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류호와 미호가 있는 불길이 닿지 않는 갈대밭으로 들어서는 순간 외침이 들려왔다.
“류호! 미호! 어디 있냐?”
“가주님! 어디 계십니까!”
……
태웅과 곰 일족의 무사 수십 명이 넓게 퍼져 갈대밭을 수색하고 있었다!
‘잘됐다! 기절한 류호와 미호를 데리고 적염성까지 달려갈 필요가 없어졌다!’
대사형은 몸을 낮춰 높게 자란 갈대밭으로 숨어 들었다.
곧 무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웅님! 이곳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아래, 전투가 벌어진 들판으로 내려가 보시죠?”
태웅은 고개를 돌려 곡옥을 든 여우 일족의 주술사를 봤다.
“류호의 신호는 여전히 여기에 있나?”
“네! 위치는 특정할 수 없지만, 류호님은 분명 이곳에 계십니다!”
주술사의 대답에 태웅은 다시금 명령했다.
“한 번 더 확인하고 내려간다!”
곰 일족의 무사들은 거꾸로 잡은 창으로 무성한 갈대를 밀어내며 다시 한 번 갈대밭을 헤집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다다닥-
태웅은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느꼈다.
거대한 흑룡이 화염을 쏟아부을 때 이곳 갈대밭에 도착했다.
엄청난 격전에 숨죽이고 전투를 바라보다가 흑룡이 추락하는 순간부터 몇 번이나 이 갈대밭을 수색했다.
류호, 미호, 두 사람의 주술 신호는 이곳을 가리키는데, 아무리 갈대밭을 헤집어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태웅은 문득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지워 버리려는 듯 크게 소리쳤다.
“류호, 미호! 어디에 있냐!?”
“가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고 태웅은 류호와 미호가 누워 있는 갈대밭 가운데 공터를 무의식중에 피해서 움직였다!
태웅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곰 일족의 무사, 주술 신호를 추적 중인 여우 일족의 주술사까지 모두는 류호와 미호가 기절한 공터를 몇 번이나 피해서 지나가면서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대사형이 펼친 진법이 무의식에 영향을 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이때 대사형이 진법이 펼쳐진 장소에 도착했다.
힐끗 고개를 돌리니 검게 불탄 경계까지 나아간 주술사와 무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상하네…… 분명 여기를 가리키는데?”
주술사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대사형은 재빨리 진법을 이루는 돌을 쳐 내고 바닥에 그려진 선을 지웠다.
그리고 돌아오는 무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기척을 숨기고 달렸다.
툭-
무릎에 날아온 돌멩이!
깜짝 놀란 무사는 재빨리 몸을 숙이고 갈대밭으로 창을 뻗었다.
창대에 밀려난 갈대 사이로 빈 공간이 드러나고 누군가 얼핏 보였다.
무사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여기에 누군가 있습니다!”
갈대밭을 수색하던 모두는 무사를 향해 달려왔다.
“뭐? 거기는 몇 번이나 확인한 장소…….”
태웅은 깜짝 놀랐다.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보이지 않던 공터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이 공터에 류호와 미호가 쓰러져 있었다!
“으으으- 여기가 어디?”
“물, 물 좀…….”
두 사람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류호, 미호! 물 가져와라!”
대사형은 다급한 외침을 뒤로하고 갈대밭을 달리며 웃었다.
드디어 새로운 난장판의 시작!
미호 스노우볼이 구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할 때다.
적염성의 유력자들이 사건·사고를 덮기 위해 벌일 성대한 축제.
그 성대한 축제를 거대한 난장판으로 만들 준비를 시작할 때다!
미호와 호랑이 일족.
무사인 카이류, 하누만 농악대.
경계를 넘나드는 노름꾼.
그리고 개고생을 하고 돌아와 다시 한 번 난장판에 끌려들게 될 막내 사제까지!
대사형은 웃음을 삼키며 적염성을 향해 달렸다.
‘카카카카카-’
* * *
“적염성은 무사해?”
“왜 이리 빨리 돌아온 거야!? 최소 하루는 성을 떠나 있기로 했잖아!?”
“제사장은? 허공도의 제사장은 어떻게 됐어!? 계획이 성공한 거야?”
류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말을 쏟아 냈다.
“적염성은 무사해. 주민들은 아직 대피 중이고. 적월 상단, 호랑이 일족, 곰 일족…… 유력 가문이랑 병사들은 성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허공도의 제사장은…… 설명하기가 복잡한데. 야, 네가 설명해라.”
머리를 긁적인 태웅은 여우 일족의 주술사를 가리켰다.
“네, 가주님!”
앞으로 나선 여우 일족의 주술사는 멀리서 지켜본 전투를 설명했다.
“저희가 처음 왔을 때는 흑룡이 화염을 쏟아붓고, 누군가 갈대밭을 달리며 ‘정정당당히 싸우자!’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정당당!’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류호와 미호의 눈이 마주쳤다!
‘이세기!’
‘이세기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주술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거대한 빛의 파도가 밀려 와 화염 폭풍을 삼키고 먹구름 속에서 격전이 시작됐다.
격전은 수천의 뇌전이 폭발해 먹구름을 날려 버리고 흑룡이 뇌전의 춤을 추면서 끝났다.
이때 푸른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져 흑룡과 허공도의 제사장을 강으로 날려 버렸다.
너무 황당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증거가 있었다.
갈대밭 너머 하류 방향 검은 대지.
광활한 갈대밭이 모조리 검은 잿더미로 변했고, 하늘에선 회색 잿가루가 눈처럼 내려 오고 있었다!
이 검은 잿더미에서는 한 점의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 규모의 불길이 일어났는데, 열기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이 순간 류호와 미호는 동시에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너무나 특이했던 새로운 성주님, 특급 헌터.
적염성 전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할 난장판으로 만든, 이세기.
류호와 미호는 어째선지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이세기와 특급 헌터, 두 사람이 이 모든 황당한 일을 해냈다는 확신!
이때 계절에 맞지 않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잉-
이 포근한 바람에서 새로운 성주님과 이세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카카카카카캌-
카캬카카카카-
듣기만 해도 분노가 치솟던 웃음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전해지는 순간.
미호는 하류로 굽이굽이 뻗은 강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이세기! 하, 이 새끼 해냈구나! 하하하-.”
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성주님과 이세기가 해냈다!
적염성은 허공도의 제사장의 분노를 피했다!
새로운 성주님, 축제, 반란, 난장판이 된 도시와 강, 허공도의 제사장!
쉴 새 없이 터진 모든 사건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놀랍게도 인명 피해 없이!
하하하하하-
류호는 이 모든 행운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까!
이때 태웅이 입을 열었다.
“류호 바로 적염성으로 돌아가자. 당종이 제사장 사라지면 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쇄도 했는데…….”
“준비, 시작이라고?”
뜬금없는 말에 반문하자, 태웅이 바로 설명을 했다.
“어, 성주님이 개최하기로 했던 그 대회 있잖아? 딱지치기, 말뚝 박기 그런 거 말야. 그거 당장 열어야 한다던데? 탄, 당종 둘은 동의했고, 난 우선 너부터 찾으러 온 거다.”
“……!”
류호는 당종의 생각이 짐작됐다.
적염성 시가지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난장판이 됐다.
모든 게 좋게 끝났지만, 그 결과 새로운 성주님이 사라지고 적염성의 권력 구조가 개편됐다.
당연히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닐 거다.
당종과 탄은 축제와 대회를 열어 열광과 환호성으로 의구심을 지울 생각이다!
괜찮은. 아니, 아주 좋은 생각이다!
“류호 네 생각은 어때? 성주님도 떠나셨는데 대회 여는 거 괜찮을까? 성주님이 혹시라도 자기 없을 때 대회 열었다고 분노하시면…… 으으윽-.”
태웅은 진심으로 두렵다는 듯 거대한 육체를 부르르 떨었다.
류호는 피식 웃으며 태웅의 갑옷을 툭 쳤다.
“걱정할 거 없어. 성주님은 자신이 없어도 축제, 대회 여는 거 엄청 좋아하실 테니까! 미호 가자!”
“저기 강변에 내가 타고 온 배 있다! 바로 이동하자!”
류호와 미호, 태웅과 무사들은 바로 배를 탔고. 바람 주술에 한껏 돛이 부푼 배는 빠른 속도로 적염성으로 나아갔다.
이때 태웅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깜빡할 뻔했네! 미호 이거 받아라!”
“네? 아저씨 뭔데요?”
“이거 아까 말하려던 인쇄물이야. 여기에…….”
태웅은 주머니에서 꺼낸 종이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너 결혼식 날짜 잡혔다.”
“……네!? 결혼식요!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악한 미호가 반문하는 순간.
류호는 태웅이 내민 종이를 낚아챘다.
“……!”
그리고 얼어붙었다.
“엄마! 뭐야!? 뭔데 그래!?”
미호는 엄마의 손에 들린 종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뚝박기…….
온갖 대회 일정이 줄줄이 적혀 있는 종이 가장 아래에 적혀 있는 내용.
호랑이 일족과 여우 일족의 결혼식!
“정략결혼!”
미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하도 정신없이 사건·사고가 터지고 미친 듯이 굴러서 정작 적염성에서 도망친 이유.
정략결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으아아악-!
미호는 다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지금 있는 곳은 강 한가운데, 그것도 바람 주술로 질주하는 배 위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풍술사 류호, 엄마가 있었다!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빌어먹을 젠장!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으악-.”
쾅, 쾅, 쾅쾅-
미호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단단한 나무 난간을 두들겼다.
“뭐야? 미호 왜 저래!? 쟤 괜찮은 거 맞아!? 야, 위험해!”
깜짝 놀란 태웅이 달려가려는 순간.
류호는 태웅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됐어. 미호는 괜찮아.”
“아니, 지금 전혀 안 괜찮은 것 같은데……?”
하아아-
류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서 그런 거야…… 너무 좋아서…….”
“뭐!?”
태웅은 고개를 돌려 미호를 봤다.
콰득, 콰지직-
섬뜩한 살기를 뿌리는 미호의 주먹에 단단한 나무 난간이 바스러져 흩날리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저게 좋아하는 거라고? 당장 눈앞에 신랑이 있으면 두들겨 팰 기세인데……?”
“…….”
류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정략결혼을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있었던 게 아니다!
류호는 시선을 내려 태웅이 건네준 종이를 봤다.
인쇄된 지 얼마 안 된 빳빳한 새 종이.
여우 일족의 가주인 자신도 모르게 정략결혼 일정이 당겨지고 인쇄까지 돼서 뿌려졌다!
이 안에 담긴 노림수가 한눈에 보였다!
사건으로 사건을 덮겠다는 생각!
성주님이 계획한 대회를 여는 것과 마찬가지 노림수다.
여우 일족과 호랑이 일족의 결혼.
적염성을 양분했던 두 가문의 결합이란 대사건으로 난장판에서 생겨난 갈등과 반목을 덮겠다는 생각이다.
적월 상단의 당종, 호랑이 일족의 탄.
둘 중 누구의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은 외통수에 걸렸다!
대대로 적염성을 지켜온 여우 일족의 가주인 자신은 이 계획을 반대할 수 없었다.
사리사욕이 아닌 대의를 위한 계획이니까…….
류호는 애꿎은 난간만 두들기는 미호를 바라봤다.
직접 할 수 없는 말을 마음으로 전하려는 순간 문득 고개를 돌린 미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류호는 여우 일족의 가주가 아닌 엄마의 마음을 담아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냥 강으로 뛰어내려! 모른 척할 테니까! 지금이라도 도망가!’
“…….”
미호는 가슴이 철렁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섬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엄마에겐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강으로 뛰어내리는 즉시 바람에 꽁꽁 묶여 끌려 갈 거다!
‘젠장! 빌어먹을 젠장! 정신 차리자마자 튀는 건데!’
으아악-
괴성을 지르는 미호.
‘하아-.’
남몰래 한숨 쉬는 류호.
“아니, 쟤 진짜 괜찮은 거야?”
어리둥절한 태웅.
모두를 실은 배는 적염성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리고 이들보다 한발 먼저 적염성에 도착한 사람이 있었다.
일기공과 일원공을 하나로 합쳐, 일기일원공의 불운마저 되살려 낸.
일기일원문 조사 이래 최고의 천재, 대사형!
대사형은 멀리 보이는 적염성을 바라보며 환호했다!
“불운의 별이 적염성에 가까워지는구나! 카카카카카-.”
자신이 굴린 ‘미호 스노우볼’이 적염성으로 굴러 오고 있었다!
여우 일족과 호랑이 일족의 정략 결혼식.
적염성은 다시 한 번 거대한 난장판이 된다!
대사형은 하늘을 향해 맹세했다.
“개파조사님! 일기일원문의 문도로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신나는 난장판을 만들겠습니다!”
카카카카카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