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96화>
나뭇가지가 뚝 멈추는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미안! 갑자기 달려들어서 놀랐어!”
‘미안해한다고!?’
번쩍 고개를 들자 당황한 꼬맹이 얼굴이 보였다!
“괜찮아!? 때리려던 건 아닌데 갑자기 손이 나갔어! 섬초 미안해!”
‘뭐야, 이 녀석 진짜 아이였어!?’
순간 꼬맹이 손에 들린 나뭇가지에 시선이 닿았다.
고유 능력마저 제한하는 엄청난 보구!
하지만 그 보구를 손에 쥔 건 어린아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섬초는 재빨리 일어나 털을 곤두세우고 무섭게 울었다.
“캬아아아- 난 엄청엄청 무서운 대대대요괴 섬초님이다! 꼬맹이! 당장 그 검은 돌 나한테 넘겨라!”
섬초가 위협하는 순간.
강자에게 강한 아이, 특급 헌터의 얼굴이 확 변했다.
“특특특특급헌터는 적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특급 헌터는 작은 손으로 딱밤을 날렸고.
“하늘을 잇는다!”
섬초도 이빨을 드러내고 펄쩍 뛰어올랐다!
“아프게 물어 주마! 캬아아-.”
특급 헌터의 딱밤과 섬초의 물기 공격이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내가 더 빠르다!’
섬초가 승리를 직감하는 순간.
꽈아악-
스카라베 전사의 톱날 집게가 공중에 뜬 섬초를 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경악한 섬초가 외쳤을 때 번개같이 날아온 딱밤이 머리를 때렸다.
‘어차피 꼬맹이 딱밤! 버티고 바로 물면……!’
따악-
“……!”
단숨에 정신이 하얗게 물들고 머리끝에서 꼬리 끝까지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따아아아아아앙-
이마에서 시작된 진동이 몸 안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쥐어짜는 극통이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마로 다가오는 손!
‘야, 그만! 제발 멈춰!’
다급히 외쳤으나 입에서 나오지 않는 외침!
이 순간 벼락 치듯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나지 않는 얼굴.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
‘섬초 넌 그 먹튀 근성 안 버리면, 나중에 진짜 크게 당할 거다.’
‘뭐, 대대대요괴 섬초님이 당한다고? 그럴 리가 없어!’
어이없어하는 자신을 보더니 피식 웃던 옛 동료.
‘잘 들어. 그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딱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말야.’
옛 동료는 찰칵- 시계 용두를 누르고 귓가에 방법을 속삭였고, 자신은 바로 대답했다.
‘미친놈! 그 방법 쓸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섬초는 깨달았다.
지금이 바로 그 방법을 사용할 순간이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통 속.
섬초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항복! 항복입니다! 두목으로 모…….”
콰아아아앙-
이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후끈한 열기가 날아왔다!
갑판 위 모두의 시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바위가 지나가고 탁 트인 갈대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에선 검은 뱀이 불꽃의 춤을 추고.
대지에선 거대한 화염 폭풍이 몰아쳤다!
눈에 닿는 모든 대지가 검게 타들어 가고, 하늘 끝까지 검푸른 화염이 치솟고 있다!
강 중앙에 있는데도 전해지는 이글거리는 열기!
그리고 이 거대한 화염 폭풍 속에서 천지를 울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야, 얍삽하게 원거리 공격 그만하고 내려 와! 우리 땅에서 정정당당하게 붙자!]
“…….”
“…….”
고속선에 탄 모두는 소리치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챘다.
이세기!
* * *
“우선 강가로 접근한다! 모두 방화수 준비해라!”
최설의 외침과 함께 노를 젓고 물통에 물을 퍼담는 헌터들!
강가로 접근할수록 열기는 빠르게 올라갔다.
촤아, 촤아아-
고속선 곳곳에 물이 뿌려지고 사람들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그 위에 물을 부었다.
50여 미터 앞!
하늘에선 눈처럼 새하얀 재가 쏟아지고 당장이라도 불이 붙을듯한 열풍이 불어왔다!
이 순간 들려오는 외침!
[야, 내려 와서! 일 대 일로 정정당당히 붙자!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속선 위의 모두는 깨달았다.
‘오지 말라는 의미다! ’
고속선은 바로 선수를 돌려 강 중앙으로 돌아왔다.
갑판 위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화염 폭풍을 바라볼 때.
특급 헌터는 안절부절못했다!
“알바! 앗! 알바! 어떡하지! 내가 알바 도와줘야 하는데!”
힐끗 시선을 돌리는 순간 바로 눈이 마주치는 진교은 누나!
숨만 크게 쉬어도 교은 누나가 달려와 꽈악 끌어안을 거다!
‘퐁퐁이, 사슴이, 반짝이!?’
동물 친구들이 있었지만, 방금 위험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으으윽-
특급 헌터가 머리를 잡고 주저앉는 순간.
섬초는 지금이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저 검은 돌! 잠시만 빌려 줘! 그러면 도와줄 수 있어!”
“친구들!?”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퐁퐁이, 반짝이, 사슴이!
구으으-!
띠디딛-!
구으응-!
“검은 돌 줄게! 얼른 알바 도와줘!”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섬초 앞에 툭- 떨어지는 머릿돌!
섬초는 머릿돌을 꼬리로 잡고 외쳤다.
‘마침내 힘을 되찾는다! 나 섬초는 대대대요괴로 돌아간다!’
그리고 섬광이 번쩍이는 눈으로 머릿돌을 봤다.
머릿돌은 흑옥으로 만들어진 3x3 큐브였다!
이 큐브 표면에는 뚝뚝 끊어진 선과 도형, 다차원 적층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다차원 적층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면, 모든 선과 도형이 이어지게 큐브를 맞춰야 한다!
섬초는 번개같이 머릿돌을 맞추기 시작했다!
빙글, 철컥-
빙글, 철컥-
큐브가 회전하는 매 순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황금빛 선과 도형이 변화했다!
뒤로 돌린다고 취소되지 않는 불가역적인 변화가 끝없이 중첩된다.
큐브를 맞춰서 다차원 적층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것 자체가 머릿돌의 시험이다!
섬초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세계의 나무를 걷고 개구멍을 통과하며 온갖 일을 해결한 여우 일족의 선조다!
힘과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영혼육백에 담긴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머릿돌을 깨워 증명하겠다!
내가 바로 홀로 혼돈을 걸었던 대대대요괴 섬초라는 것을!
섬초는 무섭게 집중해서 큐브를 맞췄다!
* * *
화염 폭풍이 몰아치는 갈대밭 땅속 5미터.
대사형은 이곳에 숨어 사조께서 반격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대사형은 푸르스름한 연기 스크린을 봤다.
[야, 얍삽하게 원거리 공격 그만하고 내려 와! 우리 땅에서 정정당당하게 붙자!]
조사님의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검은 뱀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염 폭격을 쏟아부었다.
콰카카카카캉-
화염 폭풍이 더욱 강해지고, 조사님은 강기가 어린 강철봉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외쳤다.
[야, 내려 와서! 일 대 일로 정정당당히 붙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문득 의심이 들었다.
‘설마……? 조사님 아무 계획도 없는 거 아냐!?’
검은 뱀의 화염 폭격으로 갈대밭은 검은 잿더미가 됐고 대기와 강물이 달아오르고 있다!
거대한 열풍이 화염 폭풍이 되어 몰아치고 새하얀 잿가루가 눈처럼 쏟아졌다!
그런데도 조사님은 정정당당히만 외치고 있었다.
기괴한 계획으로 난장판을 만들어 모두를 굴리던 시가전, 수상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강기로 화염을 뚫고 달리고 있지만, 내력도 무한하지는 않다.
내력이 다하면, 아니 그전에 열풍에 질식해서 훅 가게 생겼다!
머릿속에서 의문이 쏟아졌다.
조사님은 무슨 생각이시지!?
아니, 생각이 있긴 한 건가!?
지금이라도 차원검을 펼칠까!?
그러면 사령 화로가 날아가는데!?
여기서 사령 화로가 날아가면 줄줄이 사고가 터지는데!?
……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폭음과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콰카카캉-
으아아아악-
“……!”
반사적으로 연기 스크린을 보는 순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게 보였다!
화염 폭발에 훨훨 날아간 조사님이 강가에 떨어져 물속으로 반쯤 가라앉았다!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대사형은 지상을 향해 검을 찔렀다!
* * *
“섬초 빨리빨리! 지금 알바! 엄청 힘들어 보여!”
특급 헌터의 외침에도
섬초는 대답하지 않았다.
온 신경과 정신을 모두 모아 3x3 흑옥 큐브, 머릿돌의 다차원 적층 마법진을 맞추는데 쏟았다!
빙글빙글빙글-
찰칵찰칵찰칵-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르게 맞물려 돌아가는 큐브!
회전할 때마다 정육면체 각 면, 9칸에 새겨진 마법진이 변화한다!
뒤로 돌릴 수 없고 무작위로 변화하기에 따라가서는 맞출 수 없다.
직감으로 예측해서 맞춰야 한다!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내가 바로 혼돈을 걸었던 대대대요괴 섬초님이다!
파바바바밧-
섬초의 손과 꼬리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큐브가 정신없이 회전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마법진은 점점 더 끊어지고, 뒤에선 매 순간 훈수가 쏟아졌다.
“앗! 그거 아닌 거 같아!”
“알바! 조금만 기다려!”
“으앗-! 잘못했잖아! 옆, 옆으로 돌려야지!”
“알바 죽겠어! 빨리빨리 맞춰!”
……
결국, 섬초는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젠장! 못해 먹겠네!”
“앗! 내가! 내가 해 볼게!”
특급 헌터는 재빨리 손을 뻗어 흑옥 큐브, 머릿돌을 잡았다!
순간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떠는 특급 헌터.
“어, 어어!? 뭐지?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특급 헌터는 손에 쥔 머릿돌을 요리조리 살폈다!
“야, 못하겠으면 내놔! 내가 다시 할게!”
“아냐! 내가 해 볼게. 나 999단도 외웠어! 될 거 같아!”
특급 헌터는 흑옥 큐브를 유심히 살피더니 빙글- 돌렸다.
철컥-
큐브가 맞물리고 표면의 선과 도형이 변화하는 순간.
특급 헌터의 눈이 확 커지고 입가에 웃음이 생겨났다.
“그렇구나!”
알겠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손이 움직였다!
휘리리리리릭-
큐브가 잔상을 흘리며 회전하고.
처러러러러럭-
표면의 선과 도형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이어졌다!
섬초는 경악했다!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어떻게 큐브를 맞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끊어진 선과 도형이 이어지고 온전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꼬맹이가 다차원 적층 마법진을 활성화하고 있다!
그리고 완성까지 단 한 번의 회전만을 남겼을 때.
특급 헌터의 손이 멈추고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
“야, 뭐 하는 거야. 한 번만 돌리면 완성되잖아! 얼른 맞춰!”
특급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돌리면 처음으로 돌아가! 이거 원래 맞춰지지 않는 거였어! 어떡하지…… 방법이 있을 텐데…….”
“뭐? 그게 뭔 소리야! 줘봐 내가 맞출게!”
섬초가 손을 뻗는 순간.
특급 헌터는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알바! 그렇지! 알바가 방법을 가르쳐 줬어!”
그리고 엄지로 중지를 누르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외쳤다.
“하늘을 잇는다!”
특급 헌터의 딱밤이 완성 직전인 흑옥 큐브, 머릿돌에 떨어졌다.
“……!?”
딱밤을 직접 맞아본 섬초가 경악하는 순간.
따아악-
딱밤이 머릿돌을 때렸다!
3x3 큐브!
머릿돌은 단숨에 27개의 정육면체로 분해됐다!
그리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중심에 있는 정육면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이 새겨진 정육면체가!
그러나 특급 헌터는 이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분해된 27개의 정육면체를 노려봤다.
극에 달한 공간 지각력으로 단숨에 머릿속에서 짜 맞춘다!
눈이 빛나는 순간 손이 움직였고.
27개의 정육면체는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3x3 큐브를 만들었다!
9칸으로 나눠진 3x3 큐브의 6면!
총 54칸 안에 그려진 모든 선과 도형, 마법진이 끊긴 곳 하나 없이 하나로 이어졌다.
머릿돌의 다차원 적층 마법진이 완성됐다!
“됐어!”
특급 헌터가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
화염이 폭발하고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콰카카캉-
으아아아악-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허공을 훨훨 날아온 천문석이 강가에 처박혔다.
그리고 하늘에서 화염을 쏟아붓던 검은 뱀이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 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압축해 만든듯한 검은 송곳니를 벌리고!
전투를 바라보던 모두는 직감했다!
‘막타를 치려한다!’
“이세기! 아직 살아 있다!”
“전투 준비! 바로 돌진한다!”
“반드시 이세기를 빼내야 한다!”
고속선의 모두가 미친 듯이 노를 젓고.
땅에서 뛰어나온 대사형이 미끄러지듯 대지를 달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뱀, 강을 질주하는 고속선.
대지를 미끄러지는 대사형.
모두가 물에 처박힌 천문석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
특급 헌터는 완성된 머릿돌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알바를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