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95화>
‘정체가 뭐야!?’
의문을 품는 순간 인간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난 특급 헌터다!”
“특급 헌터? 설마, 이름이 특급 헌터라고?”
“맞아! 난 특급 헌터야!”
“…….”
섬초는 말없이 시선을 내려 이상한 꼬맹이 앞을 봤다.
스카라베 전사, 마법사, 어린 하늘 고래. 셋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야, 무슨 사람 이름이 특급 헌터야! 완전 이상하잖아!?”
“하나도 안 이상하거든! 말하는 여우가 더 이상하거든!”
“뭐? 뭐가 이상해! 원래 여우 일족은 말 잘하…….”
발끈하던 섬초는 깨달았다.
‘지금 어떻게 대화가 통하는 거지!?’
이 꼬맹이는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위화감 없이 대화했다!
섬초는 갑판 위에서 다급히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곧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가에 바짝 붙어서 이동한다!”
“이 모래 턱만 지나면 시야가 가려질 거다. 그때 강 중앙으로 움직인다!”
“이세기 그놈 난장판을 만들어 놨을 텐데…….”
“허준 혹시 모르니 준비해. 이세기 빼내야 할 수도 있어!”
……
이들 모두가 꼬맹이처럼 처음 듣는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위화감 없이 쌍방향 의사소통을 했다!
섬초는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챘다.
‘대륙어! 이 녀석들 다른 세계의 나무에서 왔구나!’
가능성과 인과를 이어 자라나는 세계의 나무!
그 세계의 나무를 건너는 순간 마도 황제가 세계에 새긴 대마법, ‘대륙어’의 영향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서로가 각자의 언어로 말하면 대륙어가 중간 다리가 되어 소리와 의미를 자동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설마!?’
순간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머릿돌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
이들이 마도 제국이 멸망하기 전 세계에서 왔다면?
그리고 그분의 명령을 받았다면!?
그렇다면 허신, 악신, 초월종, 마도왕 그 누구도 찾지 못한 머릿돌을 찾은 게 말이 된다!
섬초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꼬맹이! 너희 어디서 온 거야!? 혹시 마도 제국에서…….”
이때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특급 헌터는 나뭇가지 검을 흔들며 외치고 있었다.
“나 특급 헌터는 사슴이, 반짝이, 퐁퐁이한테 아주아주 실망했어!”
구으으-?
띠디딛-?
구으응-?
“아무리 ‘완전 멋진 돌’이라도!”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돼! 내가 엄청엄청 걱정했잖아!”
“만약 여기 장민 있었이면, 엉덩이 맞았을지도 몰라!”
……
화를 내는 특급 헌터와 그 앞에서 바짝 긴장한 스카라베 전사와 마법사, 하늘 고래!
모두는 마탑의 머릿돌이 눈앞에 있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섬초는 문득 고개를 돌려 노를 젓고, 타륜을 돌리고, 심각한 얼굴로 대화 중인 인간들을 훑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꼬맹이를 힐끗힐끗 보는 여자를 포함해 단 한 명도 머릿돌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들이 마도 제국에서 왔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머릿돌만 있으면 무너진 마탑, 가라앉은 박물관, 길이 끊긴 황궁에 갈 수 있는데! 문명의 빛을 다시 밝힐 수 있는데! 아무 관심이 없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았다.
검은 돌의 정체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
마력장 지대의 무한한 마력을 끌어올 수 있는 통제기이자, 마력을 모든 종류의 힘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변환기.
머릿돌!
이 배 위에서 마도 황제의 보석, 머릿돌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자신!
순간 특급 헌터를 바라보는 섬초의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머릿돌을 얻으면 과거의 경지를 넘어서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인간 꼬맹이 한 명 구슬리는 건 대대대요괴인 자신에게는 여반장(如反掌)!
이야압-!
섬초는 손에 남은 주술력을 모아 허공을 쓱 갈랐다.
후두둑-
바람 주술이 담긴 곡옥이 공간에 숨겨 둔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순간 섬초는 외쳤다.
“특급 헌터! 이 반짝이는 곡옥이랑 그 검은 돌 바꾸지 않을래!?”
“……그러니까 앞으로는 조심해야 해! 알겠지!”
친구들에게 열심히 외치던 특급 헌터는 고개를 돌렸다.
“……바꾸자고?”
“맞아! 이 곡옥이랑 저 검은 돌 바꾸자!”
섬초는 사슴벌레 앞에 놓인 검은 돌을 가리켰다.
“검은 돌? 아, 저거! 그런데…….”
특급 헌터가 입을 여는 순간.
섬초는 곡옥을 내밀고 혼이 쏙 빠지도록 말을 쏟아 냈다.
“이 곡옥 3개 있으면 골드 회원 되거든!”
“우와! 골드 회원이라니! 이거 엄청 대단한 거야!”
“골드 회원이 되면 실버 회원들한테 상납받을 수 있어!”
“게다가 골드 회원 셋을 모집하면 다음 등급으로 승급하는데…….”
“골드 회원? 상납금? 별론데?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특급 헌터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순간.
사슴이, 반짝이, 퐁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특급 헌터는 검은 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만!”
다급히 외친 섬초는 재빨리 허공을 다시 갈랐다.
데굴-
공간 주머니에서 뚝 떨어지는 투명한 구슬!
“이거 날씨 구슬이야! 이거 잡고 열심히 기도하면 날씨 바꿀 수 있어!”
이야아아압-
기합을 지르며 주술력을 밀어 넣자 갑판 위에 손바닥만 한 구름이 생기고 비가 쏟아졌다!
쏴아아아-
날씨 구슬은 엄청난 주술력을 빨아드리는 보구(寶具)!
섬초는 주술력이 훅- 빠져나가는 순간 현기증에 쓰러질뻔했으나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섬초는 애써 웃는 얼굴로 외쳤다.
“어때? 엄청 대단하지! 지금 주술력이 모자라서 구름이랑 비가 작은 거야! 이거 엄청 큰 홍수도 만들 수 있어!”
“…….”
특급 헌터는 말없이 품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이얍, 얍얍얍얍-!
그리고 기합을 지르며 양손으로 마구마구 흔들었다.
“너 빈 상자로 뭘……?”
이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나무 상자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닥-
섬초가 깜짝 놀라는 순간.
뚜껑이 활짝 열리고 툭 튀어나오는 구슬!
“이거 용용이가 준 태풍 구슬이야!”
특급 헌터는 태풍 구슬을 잡고 기합을 질렀다.
이얍, 얍얍얍-
순간 강에서 불쑥 튀어나온 물이 비를 뿌리는 구름을 삼켜 물 덩어리가 됐다!
포그르르르르-
그리고 이 물 덩어리에서 엄청난 양의 거품이 생겨났다.
특급 헌터는 거품속에 손을 넣고 외쳤다.
“여기 손 넣으면 엄청 간지러워! 카카카캌-.”
“너, 너! 그 구슬 뭐야!”
섬초는 경악했다!
보구는 힘이 강할수록 요구하는 대가도 크다.
그런데 특급 헌터가 꺼낸 태풍 구슬은 그 힘에 비해 요구하는 대가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설마, 이 꼬맹이도 나처럼 어려진 건가? 혹시 요괴선!?’
의혹 어린 눈으로 볼 때.
특급 헌터의 신나는 외침이 들려왔다.
“힘내! 내 태풍 구슬보다는 못하지만, 그 구름 구슬도 나름 훌륭해! 카카카캌-.”
“…….”
섬초는 멍하니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를 봤다.
으쓱한 어깨.
자랑스러워하는 눈.
입가에 걸린 환한 웃음.
게다가 구슬 이름마저 틀리게 말했다!
지금 눈앞의 꼬맹이는 아득히 오랜 세월, 타대륙과 원대륙을 누빈 대대대요괴인 섬초님을 비웃고 있었다!
“……!”
순간 섬초의 승부욕에 불이 붙었다.
이야압, 얍얍-!
섬초는 손을 휘저어 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툭, 투두둑-
손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흙으로 만든 말과 전차, 무사. 토용이 튀어나왔다!
“이 토용(土俑) 보이지!? 대륙 통일 전쟁 때! 일만의 용인족! 용인 군단을 돌파한 토용 무사야! 돌진해라!”
섬초가 명령하는 순간.
척-
검을 뽑아 군례를 취하는 토용 무사!
무사가 전차에 올라 검으로 앞을 가리키자, 토용 말이 전차를 끌고 갑판을 달렸다!
도르르르륵-
“사슴이 돌진!”
타다다닥-
사슴이가 번개같이 돌진해 토용을 들이박았다!
전차와 말이 뒤집히고 무사가 쓰러졌다.
그리고 이 위에 올라서 용맹하게 우는 사슴이!
구으으응-
특급 헌터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잠깐만 기다려! 이야아얍!”
섬초는 손을 휘저어 숨겨 둔 보물들을 잇달아 꺼냈다.
-황금 무늬가 넘실거리는 찻잔!
“여기에 물 부으면 명주로 변해!”
“명주? 으억- 이 물 뭐야!? 쓰고 엄청 맛없어!”
-붉고 푸른빛을 뿌리는 초롱!
“이거 걸어 두면 벌레들이 근처에 안 와!”
“뭐!? 난 곤충 좋아한단 말야!”
-수정을 깎아 만든 반지!
“이 반지 끼고 손을 흔들면 하늘을 날 수 있어!”
“퐁퐁이! 로켓 비행!”
포아아아앙-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화분에 심어진 나무.
“이 나무에 황금 사과 열려!”
“뭐!? 황금 사과라고!”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는 순간, 섬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어려도 인간!
황금 사과에 눈이 돌아갔구나!
섬초는 천 년에 한 번 열매 맺는 황금 사과 화분을 앞으로 내밀고 외쳤다.
“그럼 이 엄청 좋은 황금 사과나무랑 저 평범한 검은 돌이랑 바꾸는 거다! 한 달만 쓰고 돌려줄게!”
그리고 검은 돌을 낚아채려는 순간.
눈앞에 불쑥 튀어나온 작은 주머니.
“이게 뭐야?”
“이 동전 주머니에 동전 엄청 많아. 음료수도 매일매일 사 먹을 수 있어!”
‘뭐지, 갑자기 생뚱맞게 무슨 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려는 순간 섬초는 흠칫 놀랐다.
말려들 뻔했다!
아니 벌써 말려들었다!
눈앞에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 머릿돌이 있는데 보물 자랑이라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하여튼 황금 사과랑 저 검은 돌이랑 바꾸는 거다!”
섬초는 재빨리 화분을 밀어 주고 머릿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침내 잃어버린 힘과 기억을 되찾는다!
가짜 경계석 반지를 삼키고 겪은 수모를 모조리 떨칠 수 있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저 검은 돌. 내 거 아닌데?”
“이 꼬맹이 녀석이! 날 놀려!”
섬초는 분통을 터트리며 번개같이 머릿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먹고 튄다!’
퐁, 퐁, 퐁-
이때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나무 막대기!
그러나 섬초가 한발 빨랐다!
툭-
먼저 머릿돌에 손이 닿았다!
‘잡았다!’
섬초는 바로 육체를 영체로 변화시켰다.
육체가 흐릿한 영체로 변화되는 순간 뒤늦게 머리로 떨어지는 나뭇가지!
“내가 빨랐다! 냐아아카카캌카카-.”
섬초는 이세기를 낚았을 때처럼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이때 나뭇가지가 영체화된 등을 때렸고 영체화가 저절로 풀렸다!
찰싹-
“으앗! 이게 뭐야!?”
재빨리 다시 영체화 하는 순간 연속해서 떨어지는 나뭇가지!
퐁, 퐁, 퐁-
기이한 소리를 내는 나뭇가지를 맞는 순간 영체는 다시 실체로 변했다!
그리고 영체와 실체를 오가는 육체에 나뭇가지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찰싹, 찰싹, 찰싹-
섬초는 머리를 감싸 안은 채 갑판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잠에서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겪는 치욕!
인간 꼬맹이가 휘두르는 나뭇가지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으아악-
섬초는 악을 쓰며 반격을 하려 했으나, 반격은커녕 구르는 걸 멈출 수도 없었다!
초콜릿을 먹고 바닥났다가 간신히 다시 모은 주술력은 공간 주머니에서 보물을 꺼낸다고 모두 사용!
고유 능력 영체화는 이 이상한 나뭇가지에 맞는 순간 저절로 풀리고 있다!
이렇게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자 사방에 흩어진 자신의 보물들이 보였다.
날씨 구슬, 토용 무사, 술잔, 초롱, 수정 반지, 황금 사과나무!
“……!”
섬초는 벼락 치듯 깨달았다!
대대대요괴인 자신이 인간 꼬맹이에게 낚였다!
가슴속에서 울분과 고통, 자괴감이 치솟아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섬초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만! 야, 그만해!”
그리고 진짜로 나뭇가지가 뚝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