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91화>
“아니구나!”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데이몽 발도는 반문했다.
“네, 아니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냐. 얼른얼른 나르자! 아직 다섯 상자 더 남았어! 최대한 빨리 나르고 튀어야 해!”
천문석은 고개를 젓고 고속선을 향해 달렸다.
“금괴 상자가 다섯 상자나 더 있다고요!?”
경악한 얼굴로 깊게 허리 숙이는 데이몽 발도.
“이세기 대인!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임하겠습니다!”
데이몽 발도는 황제의 명을 받드는 신하처럼 충성스럽게 외치고 전력으로 달렸다!
* * *
데이몽 발도가 불타는 갤리선에서 금괴 상자를 나를 때.
강가의 갈대숲에선 깊은 한숨 소리가 울렸다.
“최선, 충성? 막내 사제. 이 운 없는 녀석. 하아-.”
갈대숲에 숨은 대사형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돌멩이를 떨어뜨려 막내 사제가 이름을 말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자신은 막내 사제가 적당히 굴러 개김성이 줄어들길 바란 거지, 개파조사님과 직접 얽혀 미친 듯이 구르길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시도는 너무나 쉽게 막혀 버렸고, 별들이 그려내는 천기는 변화했다!
막내 사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조사님과 막내 사제의 인과가 직접 얽혀 버렸다!
조사님께 들키지 않도록 막내 사제의 일기일원공과 본질을 위장했는데, 스스로 이름을 말해 버렸다.
이름은 명운(命運) 그 자체!
데이몽 발도는 스스로 조사님의 불운에 직접 걸어 들어가 미친 듯이 구르게 됐다!
“…….”
대사형은 한참 동안 뭐라 말을 잇지 못하다가, 긍정적 마인드로 입을 열었다.
“힘내라 막내 사제. 미친 듯이 구르겠지만, 더 빨리 검성이 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우와! 20대도 되기 전에 검성이라니! 엄청엄청 부럽다! 화이팅!”
그러나 외침과 달리 전혀 부럽지가 않았다.
검성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 데이몽 발도의 앞에는 하늘의 인과가 준비한 새로운 운명이 놓인다.
검성의 운명!
말이 좋아 검성(劍星)이고 운명(運命)이지, 세계의 나무를 종횡무진하며 수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사고 처리반이 되는 거다!
악의 제국에서 시작해 마도 제국을 거쳐 세계 최고봉까지!
세계의 나무 위를 풍찬노숙하며 개고생을 하게 될 막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긴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었지…….”
그렇다.
사실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둘째 사제, 무사인 카이류.
막내 사제, 데이몽 발도.
두 사람이 일기일원문에 입문하는 순간 그 앞에는 황제와 검성의 운명이 이미 예정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천원좌에 오르는 것도.
그럼에도 대사형은 다짐했다.
“나는 최대한 늦게 천원에 오른다! 아예 안 오르며 더 좋고!”
카카카카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던 대사형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고 돌연 진지해졌다.
아득한 하늘에서 추격전을 펼치는 하늘 고래와 허공도의 제사장.
그리고 푸른 화염을 쏟아 내는 거대한 청염의 뱀.
어린 하늘 고래는 처음 보는 방법으로 하늘을 질주했고.
허공도의 제사장은 악몽에 한 걸음 빠져들어 청염의 뱀을 불러냈다!
청염의 뱀은 교활한 성주가 주민들을 제물로 바쳐 불러낸 수만의 사령 군단과 거대한 성을 하룻밤 새 잿더미로 만들었던 이적이다!
그러나 지금 청염의 뱀은 하늘에 똬리를 튼 채 푸른 화염을 하나둘 쏟아 낼 뿐이다.
‘청염의 뱀은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허공도의 제사장은 완전히 악몽에 삼켜지지 않았다.
이성의 끈을 잡고 힘을 억누른 채 경계석을 쫓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될 거다.
이제 곧 이곳에 거대한 난장판이 만들어진다.
그 순간이 유일한 기회였다.
또 다른 인과의 고리, 사령 화로를 얻을 기회!
문득 이 난장판에 얽혀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하늘 고래.
-스카라베 전사와 마법사.
-후유증으로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섬초.
-악몽에 빠져드는 허공도의 제사장.
-정신없이 달려 오고 있는 류호.
-지금 자신 옆에 기절한 미호.
-이 거대한 난장판을 만들어 낸 원인, 일기일원문의 개파조사님.
그리고 이 거대한 흐름 속에 있으나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존재까지.
이번 난장판의 클라이막스가 다가오고 있다!
휘이, 휘휘휘-
대사형은 휘파람을 불며 미호를 어깨에 걸치고 재빨리 움직였다.
최고의 클라이막스와 화려한 커튼콜을 위해서!
* * *
그으으으으윽-
마지막 나무 궤짝과 데이몽 발도가 널빤지 다리를 미끄러져 고속선 갑판에 내렸다.
천문석은 화염이 치솟는 갤리선 갑판에서 외쳤다.
“다 옮겼어! 바로 밀어내고 출발해라!”
“알겠습니다!”
쿵쿵, 쿵쿵쿵-
헌터들이 선측에 달라붙어 악을 쓰며 노로 갤리선을 밀어냈다!
고속선이 갤리선과 서서히 거리를 벌릴 때.
최설이 타륜을 돌리며 외쳤다.
“야, 너도 빨리 뛰어내려!”
바로 뛰려던 천문석은 멈칫했다.
“어?”
아카린이 아니라 최설이 타륜을 잡고 있다!
재빨리 고속선을 훑었지만, 아카린은 갑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카린은 어디 있어?”
천문석이 묻는 순간 갑판 곳곳에서 대답이 쏟아졌다.
“사고가 좀 있었어!”
“내가 퐁퐁검으로 살짝 쳤는데! 원숭이 형 잠들었어!”
“아카린, 한호석 교수님이랑 선실에 있어!”
“걱정할 거 없어 곧 정신 차릴 거야!”
“야, 빨리 뛰어내리라니까!”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
열사의 사막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아카린과 만나기로 한 ‘안개 길잡이’가 필요하다!
“안개 길잡이는? 연락된 거야!?”
“…….”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천문석은 상황이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안개 길잡이가 없으면 강을 따라 계속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남은 곡옥은 세 개뿐이고 퐁퐁이의 체력도 무한은 아니다.
이대로 도망치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 허공도의 제사장에게 잡힌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서 제사장이라는 꼬리를 끊는 게 낫다!
천문석은 동료들에게 외쳤다.
“먼저가! 난 퐁퐁이 데리고 갈게!”
순간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 외쳤다.
“으앗! 퐁퐁이! 맞아! 퐁퐁이 깜빡했어! 사슴이, 반짝이 찾으러 간 퐁퐁이가 안 왔어! 니케! 당장 니케 불러야……!”
당황한 특급 헌터가 퐁퐁검을 휘두르며 니케를 부르려 할 때.
천문석은 말을 끊고 하늘을 가리켰다.
“특급 헌터! 퐁퐁이 하늘에 있어!”
“뭐!?”
깜짝 놀란 특급 헌터가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을 보고, 고속선 위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원을 그린 거대한 푸른 불꽃의 뱀 너머, 아득히 높은 하늘!
콰아아아아아-
무너질 듯 요동치는 하늘에서 푸른 화염과 빛이 뒤엉키고 있었다.
“저게 퐁퐁이, 그 하늘 고래라고!?”
깜짝 놀란 최설이 외치는 동시에 특급 헌터가 환호했다.
“진짜 퐁퐁이잖아! 대단해! 엄청 훌륭해! 앗! 반짝이! 사슴이도 있잖아! 어!? 저기 꼬맹이 여우도 있는데!?”
‘이 거리에서 섬초가 보인다고!?’
“너 진짜로 여우가 보여!?”
천문석의 질문에 특급 헌터는 바로 손을 들었다.
“이렇게 손으로 망원경 하면 잘 보여! 앗! 이렇게 귀에 대면 소리도 잘 들려!”
특급 헌터는 손을 동글게 말아 귀에 가져다 대고 하늘로 향했다.
‘뭐야, 이녀석 진짜야, 구라야?’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할 때.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 여우 막 화내고 있어!”
“화를 낸다고?”
“어! 뭐라고 하냐면. ‘사기꾼! 나쁜 놈! 거짓말쟁이! 복수할 거야! 으아악-!’라고 하는데! 어, 잠깐 뭔가 이상한데……!?”
“뭐야, 진짜 들리는 거였어!”
천문석이 깜짝 놀라는 순간.
동료들의 다급한 외침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야, 시간 없어!”
“뛰어내리고 놀라!”
“손님! 빨리 뛰세요!”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뛰어내려!”
……
“퐁퐁이 데리고 간다니까!”
천문석이 소리치는 순간.
특급 헌터와 최설이 잇달아 외쳤다.
“알바! 걱정할 거 없어! 내가 퐁퐁이 부를 수 있어!”
“야, 하늘 나는 애를 네가 왜 데리고 와! 걔는 그냥 알아서 올 테니까! 얼른 뛰라니까!”
“…….”
말문이 막힌 천문석은 결국 본심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안개 길잡이 없으면 도망쳐도 결국 잡힌다.”
“야, 그게 무슨……!?”
천문석은 화염을 쏟아 내는 청염의 뱀과 추격전을 펼치는 불꽃을 가리켰다.
“허공도의 제사장!”
“아!”
“……!”
짧은 탄성과 함께 모두의 말문이 막히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여기서 제사장 추적 끊어 내야 해. 그냥 도망치면 잡힌다. 먼저 출발해라. 퐁퐁이랑 곧 따라갈게.”
“…….”
“…….”
모두가 뭐라 말을 잇지 못할 때.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알바 말이 맞아!”
“그렇지!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천문석이 맞장구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눈을 빛내며 퐁퐁검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알바 혼자서는 안 돼!”
“뭐? 너 설마……?”
특급 헌터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쏟아 냈다.
“맞아! 저기 퐁퐁이 추격하는 누나 완전 화났어!”
“잠자기 싫은데 점점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거든!”
“저 누나 완전히 잠들면 저기 푸른 뱀이 엄청엄청! 무서워져!”
“그러니까 알바는 특급 헌터의 도움이 필요해!”
“잠깐만 기다려 퐁퐁이 불러서 바로 내가 넘어갈게! 퐁퐁이! 얼른 내려 와! 이야아압-!”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 내더니 퐁퐁이를 부르겠다며 기합을 지르는 특급 헌터!
지금 특급 헌터가 퐁퐁이를 부르면 고속선까지 휘말린다!
“야, 그만……!”
천문석이 다급히 제지하려는 순간.
진교은이 한발 먼저 움직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특급 헌터의 몸을 꽉 끌어 앉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으브브브븝-.”
“나이스 타이밍! 그 녀석 풀어 주지 마!”
천문석은 크게 손을 흔들고 대나무 장대를 들어 고속선 선체를 밀었다.
쿠우우웅-
천천히 밀려나던 고속선이 확 멀어지는 순간 천문석은 외쳤다.
“그럼 잠시 후 보자! 친구들!”
“조심해!”
“아르바아!”
“이세기 대인!”
“손님! 기다리겠습니다!”
고속선 갑판에서 동료들의 외침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동료들의 외침을 지우는 커다란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
“이세기님! 무사히 돌아오세요!”
“절대, 절대로 다치셔서는 안 됩니다!”
“꼭,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지구로 보내 준다는 약속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왕체, 최림, 김기철과 40인의 용역 헌터.
이들 모두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절절히 외쳤다!
역시 고생을 해야 사람이 되는 법!
용역 헌터들은 절박한 목소리로 이제는 존댓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역 사이사이 몇몇 헌터, 조폭 놈들의 얼굴과 눈빛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게 있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구밀복검(口蜜腹劍).
면종복배(面從腹背).
‘이세기! 반드시 복수하리라!’
고작 2, 3일 굴렀다고 조폭의 본성이 변할 리 없었다.
지구로 돌아가는 순간 조폭 헌터들은 돌변, 본색을 드러낼 거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조폭 헌터들의 생각과 달리 ‘안개 길잡이’의 인도를 받아 도착할 장소는 지구가 아니니까!
그곳은 열사의 사막, 또 다른 이세계였다!
즉, 용역 헌터들의 고난은 끝이 아니다.
다음번은 열사의 사막에서 구르게 된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야, 너희들! 내 동료 명령 잘 들어라! 최설! 말 안 듣는 놈은 벌점 먹여! 벌점 높은 놈은 그냥 버리고 갈 거니까!”
왕체, 최림, 김기철 조폭 보스들의 눈에 얼핏 분노가 스쳤으나 재빨리 분노를 감추고 허리를 숙였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이제 시작이다.
하늘에서 화염이 떨어지고,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갤리선 위.
이곳이 허공도의 제사장을 끊어 낼 전장이다.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하늘을 향해 외쳤다.
[퐁퐁이! 이제 갤리선으로 내려 와!]